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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73화 (73/407)

〈 73화 〉 #36 섬 정리 (2)

아무리 요정용이 부정한 것을 먹고 자란다고 해도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 남은 살덩이들은 수납으로 쟁여두고 필요할 때마다 페리에게 먹이기로 했다.

[수납(E) Lv.2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수납(E) Lv.2 → 수납(E) Lv.3]

수납의 레벨이 오를 때마다 공간면적도 늘어나 현재 보관할 수 있는 용적은 대략 10L. 2L 생수통 5개를 겹친 정도였다.

'페리는.'

그사이, 좀 더 성장했다. 어느새 400g을 돌파. 어마어마한 성장세였다. 이 정도라면 머지않아 1kg도 넘길 터.

"뀨우우?"

지긋이 보자 녀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양손에 조그맣게 잘라 준 살덩이를 들고 천진난만하게 먹고 있는 모습이 퍽 귀여워 쓰다듬어주었다.

'부정한 것을 먹고 자란다라…'

요정이라는 이름과는 다소 이미지가 맞지 않는다. 애초에 녀석이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도 처음 보는 일이었다. 환계의 생물들은 마력이 대용인지 대부분 식사를 하지 않는 듯 보였으니까.

'따지고 보면.'

미완성품 때문에 변이한 살덩이는 본래 인간이었을 테니 조금 꺼림칙하다. 과연 이대로 줘도 되는가에 대한 도의적인 걱정과 혹시 미완성품의 영향을 받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

'잘 먹는 걸 보면 괜찮은 모양이지만.'

순조롭게 성장하고 있는 거로 보아 큰 문제는 없을 터. 덕적도 전체를 둘러보아도 다른 인기척은 없다. 이 섬에 인간은 남아있지 않다.

'…수습하러 올 생각이 없나?'

하다 못해 뒷정리라도 하러와야 정상일 텐데. 페리가 배를 두드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른 섬을 향해 헤엄쳐 간다. 지도가 없으니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다 정리할 거니까.'

수중 몬스터들을 쓸어 담으며, 가장 근처의 섬까지 도착했다. 몸을 털어서 물기를 떨쳐내니 페리가 단숨에 먼 곳으로 사라졌다.

"뀨! 뀨!"

점멸. 고작 D등급이라는 게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사기적인 스킬. 당연히 나도 획득하려 찾아봤지만, 스킬 목록에는 없었다. 예전 슬라임 시절, 시각 스킬을 곧바로 얻을 수 없었던 것처럼 무언가 제한이 있는 모양인데.

'그게 조금 아쉬워.'

물에 젖은 생쥐 꼴로 변한 페리가 심통을 부리건 말건, 감지를 사용해 기척을 포착했다. 생각 이상으로 많은 숫자에 페리에게 눈짓하자 녀석이 날아오른다.

"뀨!"

그 사이, 은신을 이용해 숨어들었다. 작은 섬에 퍼져있는 놈들을 하나씩 처리해갔다. 꼬리는 없었지만, 나름대로 말단 중에서는 실력이 있는 놈들. 머잖아 섬의 중앙에 건물을 발견했다.

'나머지는 저기 있어.'

전부가 47. 오는 길에 여섯을 처리했으니 41. 이 좁은 섬에 생각 외로 많이 있다 싶었더니 대부분 일반인이었다. 사각지대의 사육장까지는 아니었지만, 감옥과 비슷한 환경에 사람들을 가두어놨다. 지키고 있는 건 밖에 있는 녀석들을 제외하고 고작 셋 뿐이지만 헌터들에게 저항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미친놈들.'

바다에 사는 몬스터들의 존재로 노를 저어야 하는 배밖에는 사용할 수 없을 텐데 무슨 수로 여기까지 데려온 지도 의문이다. 한 번 더 다른 기척이 없음을 확인하고, 영량을 퍼뜨렸다.

"…갑자기 왜 이리?"

서서히 그림자가 퍼져나가 문틈을 파고들어 건물 내부를 장악했다. 창문까지 뒤덮어진 그림자― 머지않아 영량은 건물 내부의 빛까지 완전히 집어삼켰다. 전구가 깨져 으스러지자, 완연한 어둠이 찾아온다.

"이게 무슨…?!"

당황하는 와중에 주문을 외는 놈의 목을 가장 먼저 꺾어 비틀었다.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등을 붙였고, 남은 둘이 건물을 빠져나가기 위해 버둥거렸다.

"2층으로! 빨리 가!"

둘은 계단을 오르는 중, 어둠 속에 일렁이는 무언가가 있음을 깨달았다. 본능적인 공포에 움츠러들고, 마침내 붉은 안광과 마주친 순간 사시나무 떨리듯 얼어붙었다. 새하얘진 머리. 마력을 끌어올려 저항하려해도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어째서? 내려다보니 심장과 폐가 동시에 꿰뚫려 있다.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당했다. 그에 두 탕아는 서로를 보며 실소했다. 결국 실 끊어진 인형처럼 생동감 없이 쓰러지더니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됐다.

'…일단 여기는 정리했고.'

놈들을 처리한 건 좋지만, 문제는 뒤처리. 한둘이라면 모를까 저들을 모두 본토로 옮기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이대로 가두어 놓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감옥 문을 부수고, 영량을 거뒀다. 머지않아 웅성거리는 소란을 느끼고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뒤처리는 나중에.'

보다 급한 건 주변 섬을 쓸어버리는 거였으니까.

***

돌풍에 안구가 찢어지고 그림자와 촉수는 자비 없이 목숨을 거둬갔다. 비명을 지르고 목숨을 구걸하기도 했지만, 늑대는 그 어떤 자비도 보이지 않았다.

"……!"

마침내 마지막 남은 탕아의 숨통을 끊고 짧은 숨을 뱉는 늑대. 이로써 다섯 번째 섬까지 정리가 끝났다. 뒤늦게 놈들이 가지고 있던 지도를 확인해보자, 여기가 선갑도라고 불리는 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얼추 지나온 길을 확인해보니.

'문갑도. 굴업도. 백아도. 울도. 선갑도.'

외곽쪽으로 크게 반원을 그린 셈이다.

[멸망 확률 96.06% → 95.27%]

[0.79%만큼의 업을 획득하였습니다]

다섯 개 섬을 쓸어버리고 획득한 업. 섬을 쓸어버렸다고 생각하면 적고 꺾인 손가락을 생각하면 많은 양. 놈과 다시 싸우느니 섬 여럿을 쓸어버리는 게 낫다. 말단 하나가 주는 업은 얼마 되지 않았다. 구마준도 말단이었지만, 놈이 주는 업은 좀 더 많았는데. 아마 놈이 신전에 잠입하는 걸 막았기 때문이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무전기에서 전파가 흘러 나왔다.

[Code 3]

그 단어만을 계속 반복해서 말한다. 용케 이 거리까지 전파가 닿는다. 교란하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수신 전용으로 만들어진 모양이라 불가능했다.

'불편하지도 않나.'

명령을 하달받기만 하는 처지라. 섬인데도 어지간히 철저하다.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무전기의 내용을 떠올렸다.

'…코드 3?'

슬쩍 지도를 확인하니 꽤 먼 곳에 있는 섬이었다. 지도를 확인하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훨씬 섬이 많아.'

덕적도 아래 붙어있는 소야도까지 포함해 대략 7,8개의 섬이 더 있었다. 지금과 같은 정도로 탕아들이 숨어 있는 거라면 앞으로 1%정도는 업을 더 확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전히 Code 3의 내용을 모르겠다. 이제쯤 놈들도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깨달았을 때가 됐다. 분명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겠지만... 수납으로 지도와 무전기를 챙기고 다시 바다로 뛰어들었다.

'어차피…'

놈들은 섬마다 흩어져 있다. 무슨 수작을 부리기 위해서라면 어딘가 모일 필요가 있을 터. 나는 눈을 빛냈다.

***

"빨리빨리 저어라!"

발령된 명령은 Code 3. 습격을 의미한다. 아마도 헌터들이 낌새를 눈치채고 온 모양인데 어떻게 벌써?

'광휘와 여명이 덕적도까지 왔었다는 말은 들었지만…'

설마 이렇게 발 빠르게 행동할 줄은 몰랐다. 적어도 며칠은 더 걸릴 거라 예상했는데. 고원 혹은 여명이 온 거라면 섬마다 흩어진 자신들을 처리하기엔 충분한 전력이었다.

'…네버랜드 공략이 멀지 않았을 텐데.'

꼬리는 초조히 입술을 짓씹었다. 그런 와중에 용케 인원을 차출한 모양. 말단들이 노를 젓는 가운데,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귀상어?'

노를 젓는 걸 보고 눈치챈 모양이다. 모터가 안 달렸다고 무조건 안전한 건 아니다. 수면에 가까이 있다면 눈치챈다 . 주문을 영창하던 꼬리는 곧 의아해했다.

'사라졌다?'

분명 아귀상어가 다가오고 있었는데 어느새 놈이 사라졌다. 귀찮은 상황을 피했으니 다행. 말단들은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열심히 노를 젓고 있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꼬리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

머지않아 자월도를 지날 테니 영흥도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갑작스레 배가 흔들렸다.

"?!"

처음엔 파도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다. 마력을 퍼뜨려 감지한 순간, 꼬리는 수면 아래에 무언가가 있음을 느꼈다.

"망할…"

아까 보았던 아귀상어인가? 아니다. 느껴지는 기척은 훨씬 더 작은 무언가. 아까의 충돌 때문인지 배에 구멍이 뚫려 물이 차오르고 있다. 머지않아 가라앉을 거라는 사실에 그는 바드득 이를 갈았다.

"Fereastra de gheață!"

짧은 영창끝에 곧잘 구현되는 마법. 그가 구현해낸 얼음송곳이 무언가를 공격하려던 순간ㅡ 배가 뒤집어졌다.

'……!'

만약을 위해 발현해놓았던 수영과 잠수. 물속에서 꼬리의 눈이 크게 떠졌다.

'늑대?!'

웬 검은 늑대가 수중에서 부하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수없이 뻗어가는 촉수와 거기서 또 한 번 뻗어 나가는 그림자. 침을 삼킨 꼬리는 늑대와 눈이 마주쳤고, 살의를 담은 붉은 눈과 마주하자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

그 순간, 꼬리는 확신했다. Code 3가 발령된 이유. 섬을 습격하던 것은 고원과 여명의 헌터들이 아니라 바로 이 늑대였음을.

'이놈이 그…!'

십중팔구 소문으로만 들었던 여명이 쫓고 있다던 늑대이리라. 언뜻 자신들을 쫓고 있다고는 들었지만, 그게 말이 되냐며 그저 개소리라 여겼는데.

'진짜였다니.'

놈도 수영과 잠수 스킬을 가지고 있는 모양인지 물속을 자유로이 헤엄치고 있다. 대체 저 늑대가 왜 여기에 있는 건지에 대한 의문을 떠올리기도 전에 꼬리는 재빨리 수면 위로 부상했다. 팔을 아래로 뻗어 구현해두었던 얼음송곳을 쏘았고― 알 수 없는 와류에 산산이 찢어 발겨져 흩어졌다

'……!'

알갱이가 흩어진다. 그 모습을 보고 꼬리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도망쳐야 한다는 것 하나뿐이었다. 자월도… 여기서 가장 가까운 섬까지만 가면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도무지 수영할 수 없었다. 제아무리 수영과 잠수 스킬을 가지고 있다고 하나 이 거대한 와류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다.

소용돌이에 휩쓸려 수도 없이 회전하다가 꼬리는 결국 참지 못하고 숨을 들이켰다. 헌데ㅡ 수중일 텐데 어쩐지 숨이 쉬어졌다. 어떻게?

'빠져나온 건가?'

자신이 수면 위에 있다는 걸 깨닫고 꼬리는 도망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으나, 허리에 느껴지는 위화감에 고개를 내린 순간, 늑대가 촉수를 뻗어 자신을 들어 올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망할.'

도망치기는커녕 완전히 붙잡혀버렸다. 마력을 끌어올려 촉수를 으스러뜨리려던 꼬리는 어느새 자신의 목에 닿아있는 그림자를 보고 침을 삼켰다. 조금만 움직이면 죽을 거라는 공포와 동시에 어째서 죽이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 그리고 그 의문은.

"―대답해라. Code 3가 무엇인지."

늑대의 물음과 함께 사라졌다. 늑대에게 지성이 있다는 사실에 꼬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놈은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우리를 사냥하고 있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 목울대 너머로 침을 삼켰다.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을까― 수인을 맺던 손이 그대로 으스러졌다.

"……!"

그림자가 목을 파고들어 피를 흐르게 한다. 입술을 씹던 꼬리는 결국 자신에게 선택권이 없음을 깨달았다.

***

[위압(E) Lv.6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위압(E) Lv.6 → 위압(E) Lv.7]

놈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불었다. 위압에 더해진 칭호의 효과는 확실했다. 최근에 사용하는 빈도가 높은 만큼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스킬이기도 하다.

[멸망 확률 95.27% → 95.06%]

꼬리를 포함 서너 명을 처리했을 뿐인데 0.2%이상의 업을 획득했다. 확실히 꼬리는 말단보다 획득하는 업이 많다. 놈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고 침음을 삼켰다.

'한 곳에 모인다라…'

서해 인근 섬에 주둔하는 모든 탕아는 즉시 영흥도로 모일 것. 그게 Code 3의 정체였다.

'뀨우우우!'

페리가 머리 위에서 토닥이자, 수납을 열어 살덩이를 건넸다. 녀석이 먹어 치우는 것과 동시에 감지를 펼쳤고, 느껴지는 인기척이 더는 없음에 끄덕였다. 영흥도에 모이게 될 인원이 얼마나 많을지는 모르겠지만, 간부만 없다면야.

'꼬리가 10명쯤 있는 게 아니라면.'

망설일 필요가 없다. 모여준다면 오히려 처리하기 쉬워지니까. 나는 곧잘 영흥도로 향했다.

***

"아재. 오랜만이오."

강태호가 건네는 인사에 용마의 거암, 클랜 로드인 백군태가 끄덕였다.

"그건 알겠는데. 왜 이리 늦어?"

"오다가 길이 좀 막혔수다."

"너네 클랜장은?"

"형님은 오늘 안 오시오."

백군태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고원도 없는데 여명이 이렇게 나오면 곤란하지."

"그건 걱정마쇼. 내가 왜 여기까지 왔겠소? 알아서 다 하려고 왔으니까."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미심쩍은 투였지만, 강태호는 여명을 대표할 만한 자격이 있는 인물이었다. 끄덕인 백군태가 앉은 자리에서 팔짱을 꼈다.

"몇 명?"

"A 이상은 한 명 빼고 전부. B는 열. 그 아래는 대충 20명 정도로 생각하고 있소."

"여명 말고도 옥연이랑 은자의 숲에서도 왔다."

옥연… 대구의 대표 클랜이다. 신전에게 숲의 던전을 넘기더니 아무래도 네버랜드 공략을 준비하고 있었던 모양. 담담히 끄덕인 강태호가 되물었다.

"얼마나?"

"너희만큼은 안 된다. 은자의 숲은 클랜 로드까지 셋. 옥연은 10명 정도."

"그것뿐이오?"

"다들 다음 기회를 노리고 있으니까."

착잡한 표정으로 백군태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공공연하게 다들 창선이 쓰러졌다는 걸 알고 있다. 고원이 참가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그러니까 다들 발을 빼셨다?"

"그래. 신전은 간만 보고 있고."

이미 10년이나 넘게 클리어하지 못하고 있는 던전.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고원이 없다면 그만큼 클리어할 확률이 낮아지니 의미 없이 참가하는 것보단 발을 빼겠다는 뻔한 계산에 강태호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럼 다들 후회하겠구려.”

"……글쎄."

"분명히 말하겠소. 나는 이번에 클리어할 생각이오. 그러니까 준비 단단히 하는 게 좋을 거요."

"……."

잿덜이에 담배를 짓이긴 백군태가 한숨을 쉬었다.

"…스퀘어도 참가하지 않아."

"바라지도 않았소."

"정말 가능할 거라 생각하는 거냐?"

네버랜드― 여전히 클리어하지 못한 최악의 던전. 인제 와서는 사실상 포기하고 클리어가 아니라 봉쇄를 목표로 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을 정도다.

"그때와는 다르지. 지금은 정보가 있으니까."

"여전히 5구획은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강태호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나는 당기지 않는다. 네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끌어가는지는 알겠지만 여기서 실패하면 그 여파를 생각하고는 있는 거냐?"

성공했을 때는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실패한다면? 대전의 밤과 아카데미 습격에 이은 절망적인 소식이 전해진다면 그때는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른다.

"어차피 다들 올해는 무리일 거라 여기고 있다. 태호야. 냉정하게 생각해. 차라리 내년에 좀 더 심혈을 기울여서…"

쾅! 내리찍은 주먹에 테이블이 부서졌다. 백군태는 눈살을 찌푸렸고, 강태호는 거센 콧김을 뿜으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걸로 만족하자는 거요?!"

"……."

"아재 말이 맞다는 건 나도 알고 있소! 머리가 텅텅 비지는 않았단 말이오. 하지만 시도조차 안 하면?"

"음…"

"놈들에게 휘둘리고 있다고 말하는 거랑 뭐가 다르오? 난 그것만큼은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겠수다."

백군태는 눈살을 찌푸렸다.

"감정으로 될 만큼 쉬운 던전이 아니다."

"나도 나름 생각은 있소."

강태호의 눈빛은 올곧게 앞만을 보고 있었다. 이미 그는 실패따위는 염두에도 두지 않는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신전에는 말해두마."

"참 나. 어차피 내가 간다고 하면 할멈은 올 거 아니오?"

"그거야 그렇지."

뻔뻔한 대답에 강태호가 피식 웃었다.

"거 테이블은 미안하오. 갚아 주겠소. 얼마요?"

"1200."

"생각해보니까 지갑을 안 가져왔네. 다음에 주겠수다."

"네놈이 잘도 주겠다."

멋쩍게 자리에서 일어난 강태호가 문고리를 잡고 뒤를 돌아봤다.

"아무튼 거암도 준비해두란 얘기요."

"말 안 해도 그럴 생각이었다."

"그럼 다행이고."

방에 혼자 남은 백군태가 중얼거렸다.

"망할 놈. 고집하고는."

그러더니 곧 부서진 테이블에 놓여있던 서류 뭉치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글쎄. 남은 클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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