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 #36 섬 정리 (3)
쥐와 고래의 울음이 섞인 듯, 웅장한 소음을 토해낸 놈이 앞다리를 휘저어 바닷속 깊은 곳에서부터 상승해 입을 벌렸다.
쥐의 머리가 마치 뱀의 턱처럼 한계까지 벌어지자 늑대는 물살에 몸을 맡기며 유유히 선회해 촉수를 뻗었다.
'생각보다 두껍네.'
꿰뚫을 셈이었지만 힘들었다. 몇 번이나 일방적으로 공격당한 놈이 더는 싸우기 싫어졌는지 몸을 돌렸다. 하지만 이미 앞다리가 촉수가 걸려있다. 놈이 앞니로 물어뜯기 전에 그림자로 앞다리를 절단했다.
"―――!"
다리가 잘려 균형이 맞지 않게 되자,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머지않아 촉수에 휘감긴 놈을 탈식으로 먹어 치웠다.
[무스벨리를 섭취했습니다. 경험치와 포만감이 상승합니다]
[경험치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Lv.12 → Lv.13]
13레벨에 오를 수 있었다. 영흥도 인근 해역. 마침내 달이 떠오르자 늑대는 밤바다에 몸을 담군 채 끄덕였다.
'이제 됐어.'
Code 3. 영흥도로 모일 것. 이제 슬슬 모일 만큼 모였을 테고, 밤이 되어 야음을 틈타기 적절한 때였다. 섬으로 올라가자마자 비친 손전등의 빛이 반짝인다. 순찰하는 이들이 있기는 했으나, 은신을 간파하는 건 무리였다.
'…….'
언제나 그랬듯, 가장 먼저 기척을 감지했다. 섬 전체에 61명― 제법 많은 숫자,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다 모였다는 거지.'
지도로 확인했던 영흥도는 섬이긴 하지만, 본토와 비교적 가깝고 이어지는 다리도 있었다. 아마 이곳이 놈들의 물자 공급을 담당하는 전진 기지라 생각하면 편할 것 같다.
'일단.'
3인 1조― 그림자를 뻗어 무전기를 든 놈의 손목을 잘랐다. 놈의 손목을 자름과 동시에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었다.
"무슨?"
눈이 휘둥그레짐과 반사적으로 손전등을 비춰오자 놈의 그림자로 튀어나와 목을 꺾었다.
'…하나는 처리했고.'
옆에 있던 동료가 죽어도 비명 한 번 지르지 않는다. 곧잘 무전기를 주우려 하는 판단력에 감탄하며 놈이 무전기를 들어 올리는 순간, 촉수로 붙잡아 목을 비틀었다.
'나머지 하나.'
영창이 완성되어가는 중, 갑작스레 녀석이 내 앞으로 이동했다. 아니, 이동됐다. 얼떨떨한 심정이었지만, 반사적으로 뻗은 그림자가 미간을 꿰뚫었다.
"뀨!"
인제 보니 페리가 놈의 어깨 위에 올라타 있었다.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저번에 날 데리고 이동했었을 때 떠올렸어야 했는데. 촉수로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뀨~!!"
그래도 가급적이면 사용하지 말아달라 말하고 수납을 열어 살덩이를 건네줬다. 말단이었으니 망정이지 만약 꼬리라면 페리가 다쳤을 수도 있다.
'…일단.'
이 섬에 있는 나머지 탕아― 58. 이 밤이 밝기 전에 모조리 정리한다.
***
'생각 보다 늦는데.'
설마 여길 발견하지 못한 걸까? 고원 혹은 여명.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긴장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소식이 없다.
"……."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던 꼬리는 곧 눈살을 찌푸렸다.
'피 냄새?'
코를 찌르는 냄새. 설마 하고 살폈지만, 냄새는 밖에서 흘러들어오고 있다. 황급히 계단을 올랐을 때, 꼬리는 일렁이는 그림자를 보았다.
"……!"
밖을 지키던 말단들이 깨닫지도 못한 사이, 처참히 몰살당해 있었다. 만약 후각 스킬이 아니었다면 계속 모른 채 있었으리라. 죽은 말단에게 다가간 꼬리는 침음을 흘렸다. 날카로운 무언가에 목이 꿰뚫려 절명한 상처.
'습격…!'
정말 누군가 왔다는 사실에 꼬리가 무전기를 들었지만.
"Area C 침입자 발생. 여명 혹은 고원이라 추정…?"
어째선지 먹통이었다. 그가 다시 무전기를 확인하자, 어느새 둘로 갈라져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도대체 언제?'
아연해 하던 꼬리가 물러나려는 순간 이미 무언가가 자신의 발목을 단단히 붙잡고 있음을 깨달았다. 무언가― 질척거리는 기다란 촉수.
"……!"
눈을 부릅뜬 그가 단검으로 촉수를 잘라낸 순간― 죽은 말단으로부터 그림자가 스멀거리더니 이내 그를 집어삼켰다.
***
'목소리는 들었어.'
꼬리의 목소리. 간부가 없다면 놈들이 통솔자다. 하나하나가 B클래스에 상응하는 힘을 지닌 강자였지만, 흩어져있으면 아무 의미도 없다.
'…기껏 영흥도로 모이게 했으면서.'
놈들의 입장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습격을 미리 알아야 대비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여기는 Area A. 각 구역 상황 보고하라]
[Area B. 이상 없음]
"Area C. 이상 없음."
―그건 내게 아무 의미도 없다. 아까 들었던 꼬리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대답하자 E구역까지 대답이 돌아왔다. E구역. 적어도 여기를 제외하고 4개 구역이 더 있다는 뜻이다.
'적어도 꼬리가 넷은 더 있다는 뜻이야.'
놈이 있었던 지하를 살펴보다가, 수많은 팩과 플라스크를 발견했다.
'혈액 샘플.'
그 내용물은 하나같이 혈액. 각종 동물의 피였다. 두말할 것 없이 모조 엘릭서를 만들기 위한 재료들이다. 그중에는 인간의 혈액도 있었다. 무엇보다 벽 한쪽 구석에 있는 빈 철창ㅡ 그 안에 남은 흔적을 보고 이빨이 맞물렸다.
'…….'
채 지워지지도 않은 수많은 얼룩. 몇번이나 몇번이나. 손이 닿지 않는 천장까지 튀어있는, 선명한 핏자국. 철창 안에서 벌어졌던 일을 어렵잖게 상상할 수 있어 늑대의 숨이 거칠어졌다.
'…여기서 섬으로 사람들을 옮겼거나.'
당장 필요한 거라면 가둬놓고 필요할 때마다 '사용'했을 터.
'5개 구역.'
그 전부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었을 거다.
'―너희는 실수했어.'
영흥도를 버리고 도망쳤어야 했다. 본토에 숨어들었더라면 혹시라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놈들은 그러지 않았다. 이 시설이 아까워 버리지 못했다.
'각 구역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단 한 마리도 놓칠 생각이 없다. 그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끝마치고 다시 수납을 열어 무전기를 꺼냈들었을 때, 전파가 흘러나왔다
[Code A. Code A]
무전은 몇 번이나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알리고 있었다.
'그래.'
놈들도 바보는 아닌 모양인지 습격당하고 있다는 건 눈치챈 모양. 에어리어 하나를 쓸어버렸으나 각개격파는 여기까지. 감지를 펼치자 놈들이 모두 한곳에 모여들고 있었다. 집결. 그게 코드 A의 내용이리라. 눈을 감은 늑대가 깊은 숨을 흘렸다.
'―시간이 됐어.'
섬을 정리할, 쓰레기를 청소할 시간이 됐다.
***
늑대는 망설이지 않았다. 숨지도 않았다. 마침내 섬 전체의 기척이 한곳에 모이자, 기다렸다는 듯 모습을 드러냈다. 그림자를 두른 늑대가 나타나자 탕아들은 당황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나, 이내 전열을 가다듬었다.
"나머지는 경계를 계속…?"
하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목이 분리돼 떨어졌다. 커다란 앞발이 머리를 짓밟자, 피와 뇌수가 튀었고 그림자 속 일렁이는 늑대의 형상이 이를 드러냈다.
"……!"
순간, 끔찍한 살기가 퍼졌다. 심장의 고동이 크게 요동치며, 숨이 거칠어졌다. 그들 모두가 저도 모르게 죽음을 떠올리고 있었다. 상상할 수 있는 방법으로 죽음을 떠올리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렇게 안색이 창백해지는 가운데, 가까스로 마력을 끌어올린 꼬리가 소리쳤다.
"정신 차려!"
마력이 담긴 외침에 탕아들이 가까스로 정신을 붙잡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었을 거라는 공포― 누군가는 침을 삼키며 주문을 읊었고, 또 누군가는 창칼을 들어 올렸다.
그러는 사이, 늑대는 장내의 모든 탕아들을 통찰했다. 말단은 46. 꼬리는 4. 촉수에서부터 뻗어 나온 그림자가 가차 없이 목숨을 거두기 시작한다. 창칼을 휘둘러 촉수를 막아봐도 그림자는 그들의 창칼을 타고 흐르듯 목숨을 앗아갔다.
"―――!"
불합리한 폭력― 그것은 말할 것도 없는 학살이었다. 피와 살점, 조각난 장기와 뇌수가 제멋대로 흩뿌려진다.
"놈이 그림자를 이용한다!"
"Fereastra de foc!"
말단이 구현한 이글거리는 불의 창이 늑대를 향해 나아간 순간― 갈가리 찢겨 사라졌다.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일까? 의아해하던 말단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의문에 차 있을 시간은 없다. 다시 주문을 영창하는 사이 어느새 늑대는 다시 모습을 감췄다. 꼬리는 지켜보고 있었다. 놈이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었음을. 창칼을 들고 영창중인 말단의 등을 지키고 있었을 때, 늑대는 그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물어뜯겨 목과 머리가 떨어진 또 다른 마법사. 그에 꼬리는 이를 악물었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그림자 속을 제멋대로 드나드는 놈을 대체 어떻게 상대해야 한다는 말인가? 다시 한번 유유히 사라지는 늑대. 그에 꼬리는 식은땀을 흘렸다.
'이번엔 어디지?'
말단 하나의 목을 물어뜯으며 그림자가 일렁이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마법사들이 일제히 목청을 높였다.
"Fereastra de gheață!"
"Stâncă mare―!"
무수한 마법. 불과 얼음의 창. 커다란 바위와 마력탄이 늑대를 향해 쇄도한다. 저만한 수의 마법이라면 결코 쉽게는 막을 수 없다. 피하더라도 틈이 생길 터. 그 틈을 노릴 준비를 하던 꼬리는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
그림자가 크게 일렁이자, 모든 마법이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찢어발겨졌기 때문에.
'어떻게?!'
―어디선가 불어온 작은 바람이 그의 코끝을 스친 순간, 따끔거리는 아픔이 전해졌다. 멍하니 검지로 코끝을 쓸자 피가 닦여 나왔다. 그사이, 어느새 복면을 뒤집어쓴 꼬리가 늑대의 배후를 점하고 있었다. 그가 가진 C등급 은신을 발견할 수는 없다. 어쩌면 놈을 죽이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1초 후, 산산이 부서졌다.
"――크흑!"
당연하다는 듯, 복면을 쓴 꼬리의 심장과 폐가 동시에 꿰뚫렸다.
'저렇게 쉽게…!'
분명 그의 은신은 뛰어났다. 늑대의 감지로도 그의 은신을 간파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은신은 냄새를 숨기는 스킬이 아니다. 늑대의 코를 속일 수는 없었다.
"크르르―"
끓는 듯한 낮은 울음이 꼬리의 가슴을 서늘케 했다. 놈이 복면의 꼬리를 던진 순간, 꼬리는 검을 휘둘렀다.
'결국 싸우지 않으면 전부 죽는다!'
일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는 동료였던 시체를 두 동강 냈다. 말단들과 함께 늑대에게 달려들었을 때, 거센 바람이 불었다. 말단에 불과한 이들이 그걸 막을 방법은 없었고, 가까스로 마력을 끌어올린 꼬리만이 돌풍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런 괴물이.'
꼬리 혼자 살아남았을 뿐, 함께 달려든 말단들은 몰살당했다. 이대로는 도무지 이길 수 없겠다고 생각한 그는, 옆에 있던 말단의 목을 그었다.
"…네가 좀 도와줘야겠다."
어차피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죽는다. 그는 당황하는 말단의 턱을 부숴 벌리고 품속에 있던 병을 꺼내 억지로 마시게 했다. 당장에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은 말단이 꼬리에게 저항할 방법은 없었고, 결국 그는 병 속의 액체를 들이키고 말았다.
"읍!?"
순간, 그의 목에 난 상처가 아물어갔다. 그에 꼬리는 작게 끄덕이며 말단을 난도질했다.
'이걸로 됐다.'
마력이 다하자 서서히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는 말단― 타이밍 좋게 로브를 입은 또 다른 꼬리가 마법을 완창하는 데 성공했다.
"Robia rădăcinii copacilor―!"
말단들과는 격이 다른 3절의 마법.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지면이 들썩이더니― 바닥을 뚫고 나온 셀 수 없는 나무뿌리가 순식간에 늑대를 휘감았다. 거대한 나무뿌리. 이 속박은 놈의 힘을 서서히 갉아먹을 터.
"됐…?!"
이제 살았다며 꼬리가 주먹을 쥐었을 때, 서서히 연기가 피어올랐다.
"……?!"
피어오른 연기― 순식간에 나무뿌리를 집어삼키고, 검은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칠흑의 불꽃이 모든 것을 불사르는 와중, 꼬리는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잘못 본 건가?'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불꽃이 귀신의 형상을 이룬 것 같아서. 머잖아 섬뜩한 귀기가 퍼져나가자 꼬리는 절망했다.
'이미 이길 수 없다.'
거센 바람이 연기를 걷어냈을 때, 늑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마법을 영창했던 꼬리가 비명을 질렀다.
"……!"
어느새 목덜미를 물어뜯고 있었다. 놈이 목을 비틀자, 마법사는 경추가 부러져 숨을 거뒀다.
'…도망쳐야 했다.'
너무 늦어버린 판단. 처음부터 그래야 했다. 이미 말단들은 몰살당했고 남은 꼬리도 자신을 포함해 고작 둘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새 부풀어 오른 '미완성품'을 보며 꼬리는 입술을 비틀었다.
'이거라면.'
새삼 놈을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도망칠 시간을 벌 수는 있으리라. ―그 계산은 빗나갔다. 그가 본 것은 헛것이 아니었다. 늑대로부터 타오른 검은 불꽃이 일렁이며, 귀신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바람과 함께 늑대는 거대한 살덩이의 위로 올라탔고.
'망할.'
꼬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순식간에 살덩이를 태워버린 늑대는 모로 고개를 꺾었다.
'말단은 모두 처리했어.'
남은 건 꼬리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도망치는 둘. 다리가 있는 곳으로 도망치는 꼬리를 보던 늑대가 고개를 돌렸다.
'…저건 됐어.'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 통찰로 확인한 놈의 민첩은 374. 어지간한 민첩이었지만, 머지않아 따라잡았다. 그러자 놈은 예상했다는 듯 스크롤을 찢었다.
'단거리 이동 주문서?'
아니, 어쩌면 텔레포트 스크롤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죽여야 해.'
탄력을 발해 뛰어든 순간, 놈이 단검을 휘둘렀다. 고개를 비틀어 물어뜯자 탈식이 단검을 집어삼켰다. 칼자루밖에 남지 않은 단검에 놈이 당황한 순간, 뻗어 나온 그림자가 목을 꿰뚫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놈이 빛무리에 휘감겨 사라졌다.
'텔레포트 스크롤.'
어차피 저 상태에서 살아나는 건 불가능하다. 유일하게 살아남을 방법은 미완성품을 마시는 것일 테지만 그렇게 살아봤자 의미는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 마리.'
늑대의 붉은 눈은 아직 살의를 머금고 있었다.
***
이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이 꼬리의 다리를 움직이게 했다. 그렇게 마침내 다리에 다다랐을 때, 그는 그 자리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아."
희망이 산산이 부서지고, 절망이 차올랐다. 암담한 현실에 절규하던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부서진 다리를 넋이 나간 채 바라보았다.
영흥대교가 끊어져 있었다. 도망칠 길이 없다. 당장에라도 부서질 것처럼 위태로운 다리에 검은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가쁜 숨으로 품속의 무전기를 꺼내든 순간, 눈앞에 그림자가 일렁이고 있었다. 늑대가 모습을 드러내자 꼬리는 뒤늦게 이 모든 게 놈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것임을 깨달았다.
"너는 대체…"
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내려다보는 붉은 눈동자― 살의와 광기가 가득한 시선에 압도당한 꼬리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검을 쥐었다.
거칠어진 호흡을 다듬고 발끝에 남은 마력을 담았다. 그 반동에 바닥이 부서지고, 여태까지 느껴본 적 없었던 속도에 그는 눈을 부릅 떴다. 마치 기적처럼 꼬리는 이 순간, 질주라는 스킬을 획득했다.
어쩌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다시 부풀어 올랐을 때, 늑대가 기울었다.
"……?"
곧, 그는 깨달았다. 기운 것은 늑대가 아니라 그의 세상이었음을. 저 멀리 홀로 달리는 목 없는 몸뚱아리를 본 꼬리는 마지막 순간, 허탈한 웃음을 뱉었다.
***
떨어진 꼬리의 머리를 짓밟아 터뜨렸다. 더 감지되는 기척은 없다. 서해 일대의 섬은 깨끗이 정리했다.
놈이 꺼내 들었던 무전기에서 전파가 흘러나왔다. 마지막에 놈이 연락했던 이. 서해안의 지배자가 누구였던가? 아직 '돌아오지' 못한 그에게 늑대는 스산한 음성으로 답했다.
"―기다려라."
"내가 네 목숨을 거두러 갈 때까지."
그렇게, 늑대는 서해안의 섬 전체를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