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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78화 (78/407)

〈 78화 〉 #38 Lava Volcano (3)

그것은 화산 그 자체였다.

이 땅을 밟은 침입자를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듯 화산은 모든 걸 토해냈고, 마침내 그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화산각룡(Volcano Ceratops)]

[체장 108.9m] [체고 37.8m] [체중 1.7kt]

[힘 703] [민첩 408] [체력 672] [마력 500]

[보유 스킬]

[화신火神(A)] [용혈(B)] [대마력(B)] [급속 회복(C)] [괴력(C)] [용린(C)] [뛰어난 마력 재생(C)] [모든 피해 감소(D)] [약한 재생(E)]

형상은 거대한 각룡이나, 그 뿔은 산이라도 뚫을 듯 거대하고, 화산재에 뒤덮였으면서도 붉게 타오르고 있다.

'이런 걸 상대로 대체 어떻게 싸우라고?'

여태 보았던 몬스터, 아니 키메라를 합쳐도 놈에게 비견될 만한 놈이 없다. 태동하는 악? 장담컨데 그런 게 10마리 있더라도 절대 이길 수 없을 거다.

'화신?'

체격만 해도 괴물인데 나도 없는 A급 스킬마저 보유하고 있다. 심지어 총 스킬이 9개나 된다는 점도 어이가 없다.

'차라리 어스 서펜트였다면…'

비록 내부였지만, 귀화로 태울 수라도 있었다. 하지만 머리에 꽃밭이 있는 게 아니라면 놈에게 귀화가 통할 리 없다는 것쯤은 당연히 알 수 있다.

'애초에 내부로 들어갈 수도 없고.'

한 가지 확실한 건 놈이 화산의 분화구에서부터 내려오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으리란 거였다.

"물러나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던전이 아닐세."

여느 때보다도 훨씬 진중한 어조로.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한 백록이 자르듯 말했다.

"그리 대단한 던전은 아니라고 생각했네.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진짜 몬스터들은 화산 속과 용암 아래에 있었으니까. 수준을 착각했어. 우리 둘만으로 어떻게 할 던전이 아니었네."

맞는 말이다. 화산각룡. 지금 놈을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그냥 0이다. A클래스는커녕 강태호쯤 되는 게 아니라면 놈을 쓰러뜨릴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조차도 없다.

"아직도 저 아래, 용암 속에는 마력이 고여있을 걸세. 그 마력이 현계로 빠져나가기까진 좀 더 시간이 필요해. 애초에 지금 클리어해서도 안 되는 던전이었다는 걸세."

"……."

곰곰이 생각하는 듯한 늑대를 보며 백록은 긴 숨을 뱉었다. 설마 이상한 고집을 피우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 용기와 만용은 다른 법. 백록은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제발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말게."

이상한 생각이라. 그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거야?'

처음 프로미넌스 크로커다일에게 뛰어들었던 건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다. 일이 잘못 굴러가더라도 당하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하지만 이건 무모한 걸 넘어 그냥 개죽음을 당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당연히 나도 싸울 생각은 없어."

"그럼 빨리 나가는 게."

"아니. 그게 아니라."

백록의 말이 옳다. 어떤 기상천외한 수를 쓰더라도 저걸 지금 이길 방법은 없다. 확실히 말해 불가능하다.

'그래도.'

떼고집이 아니라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놈의 등장 자체는 나쁘지 않아.'

주변은 들끓는 몬스터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용의 황무지에서 이미 경험하지 않았던가.

'와이번이 코아틀을 사냥했던 것처럼.'

그리고 프로미넌스 크로커다일이 레서 드레이크를 용암속으로 끌고 들어갔던 것처럼. 몬스터끼리 반드시 화합하는 건 아니었다. 규모가 다를 뿐 그들도 나름의 생태계와 먹이 사슬을 이루고 있다.

'그러니까 화산각룡이 날뛰어준다면 고마운 일이야.'

대지가 울리는 순간, 눈을 빛냈다. 놈의 무게. 2천 톤에 가까운 압도적인 중량을 견디지 못하고 화산이 산사태를 일으켰다. 굴러떨어진 거대한 화성암이 턱을 벌리고 있던 용암 상어의 아가리에 틀어박혀 저 아래로 처박혔다.

"백록!"

말할 것도 없이 우리는 이미 달리고 있었다. 수많은 바위 파편. 마치 산 하나가 통째로 부서지는 것만 같은 거대한 충격. 온갖 것들이 떨어지고 재와 먼지가 치솟는다. 하물며 놈이 걸을 때마다 울리는 지진이 천지를 떠나가라 울렸다. 그 여파로 용암과 마그마가 끝을 모르고 치솟았다.

'놈이 위협적인 건 이곳 몬스터들도 마찬가지야.'

압도적인 폭력은 놈들에게도 휘둘러진다. 용암 속 괴물들이 기겁해 숨어들었지만, 떨어지는 바위 파편에 하나둘 쓰러져갔다. 용암 아래에 있는 몬스터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진짜 문제는 화산 지대에 있는 몬스터였다.

"―――!"

실제 산사태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속도. 재와 바위에 삼켜지고 휩쓸려가며 몬스터들이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건 우리에겐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다. 이미 던전의 경계 밖까지 도착했으니까.

"뀨, 뀨우우우우웃…!"

다시 돌아온 환계의 풍경. 페리가 겁에 질려 날개를 퍼덕였다. 한참을 쓰다듬어 준 후에야 녀석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휩쓸릴 일은 없었겠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적인 파괴의 현장. 영상 속에서나 보던 자연 재해. 가까스로 피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당연한 걱정이 뒤따랐다.

"백록. 녀석이 나올 확률은?"

"완전히 시야에서 벗어났었으니, 아마 모를 거라 생각하네."

경계를 벗어난다면 몬스터라고 해도 던전 밖으로 나올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숲의 던전이나 코발트 광산에서 헌터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는 거였다. 만약 놈이 이 환계에 나오게 되면 어떤 재앙이 펼쳐질지는 뻔하다. 이 아름다운 환계가 모조리 무너질지도. 백록의 표정은 여태 본 적 없었을 만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녀석이 나올 기미는 없다. 다행히도 던전 밖으로 나오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백록."

"…왜 부르는가?"

고개 돌린 백록의 말에 경계 너머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설마 들어가자고?"

"꽤 시간이 지났으니까."

백록은 영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 생각이야 뻔하다. 괜히 긁어 부스럼만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겠지.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제정신인가?"

백록이 아미를 찌푸렸다.

"만약 들어갔는데 바로 코앞에 그 괴물이 있으면 어쩔 셈인가? 자살 행위밖에 되지 않는단 걸 정녕 모르는 겐가!"

멀뚱히 녀석을 쳐다봤다. 원래 이렇게 정 많은 성격이었나 싶어서. 그동안 봐왔던 백록은 이지적이었는데. 아니, 종종 요정을 걱정하던 걸 보면 정이 많은 게 맞겠지.

"나도 바보는 아니야."

백록이 말하는 확률이 0은 아니다. 하지만 내게는 은신이 있다. 또한, 놈에게 내 은신을 찾을만한 스킬이 없음은 이미 확인했다.

"괜찮으니까 하는 일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들어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경험치.'

놈에게 휩쓸린 몬스터들은 셀 수도 없을 터. 용암 아래의 몬스터라면 몰라도 지상의 몬스터들만큼은 반드시 챙겨야 한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20레벨에 도달할 수 있을 테니까.

'무조건 가야 해.'

태동하는 악이 날뛰던 때와 같다. 이런 기회를 허투루 놓칠 수는 없다. 죽은 시체가 도망갈 리는 없겠지만, 용암 아래 몬스터들도 입맛을 다시고 있을 테니 언제까지 시체가 남아있을지 모른다.

'시간 싸움.'

어쩐지 묘하게 느껴지는 백록의 시선을 받으며 경계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뀨~ 뀨?!"

따라오려는 듯한 페리를 맡기고 차라리 함께 가는 게 낫지 않겠냐는 백록을 다시 한번 제지했다. 오히려 따라왔다가 화산각룡에게 발각되면 낭패였다.

'은신은 나 혼자 사용할 수 있는 거니까.'

백록의 노파심은 당연한 일이다. 만약 놈이 나를 발견해 따라온다면 환계는 초토화될 테니까. 경계 앞에서 심호흡과 함께 들어가려는 순간, 백록이 말을 걸었다.

"자네… 정말 괜찮겠나?"

백록에게 작게 끄덕여주고, 던전 안으로 진입했다.

***

"……."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백록이 지키고 싶었던 건 바로 이 환계. 어디에서나 보이는 에메랄드빛 바다― 환수들이 뛰노는 풍경이었으니까. 자신이 평생토록 지키고 싶었던 걸 위해 늑대는 죽을지도 모르는 길에 발을 내디뎠다.

물론 백록은 바보가 아니다. 늑대가 어리석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에게 분명 무슨 방법이 있어 들어갔을 거라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두 박쥐와 싸웠던 늑대의 모습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어리숙하고 미숙해 자신에게 수련받았던 며칠 전의 그 또한.

용의 황무지에선 자신을 살리고 대신 땅을 기는 큰 뱀의 배 속으로 들어갔었던 그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만큼 뇌리에 강렬히 각인되어 있다.

'그가 환계를 위해 목숨을 걸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결코, 절대 변하지 않는다.

"…제발, 무사히 돌아오게."

***

'삭막하네.'

내려앉은 화산과 그로 인해 채워진 대지. 감지를 펼쳐 놈의 위치를 찾았으나― 그럴 필요도 없이 머나먼 곳, 화산 가장 가까운 곳에 웅크려 있었다.

'화산각룡은 잠들었어.'

한바탕 날뛴 놈이 다시 움직일 기미는 없다. 은신을 유지한 채로 후각으로 냄새를 맡았다.

폐부 깊숙이 공기를 밀어 넣고 달리기를 머지않아 잿더미로 뒤덮인 곳에서 타는 듯한 냄새를 맡았다.

'여기야.'

그 잿더미를 약하게 일으킨 돌풍으로 치워낸 순간, 죽어 있는 도마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샐러맨더를 섭취했습니다. 경험치와 포만감이 상승합니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나 혼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역시나.'

거대한 용암이 상어의 형태로 지면에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마지막에 우릴 집어삼키려 했었던 상어― 은신을 사용해 몰래 놈의 뒤로 돌아가 마력을 일으켰다. 한창 먹어 치우던 놈이 고개를 돌리자 한계치까지 끌어올린 마력탄을 선물해주었다.

"―――!"

용암이 터지는 순간, 돌풍이 용암의 잔재를 흩날렸고, 마력과 함께 퍼뜨렸던 영량이 놈을 난도질했다.

'…크로커다일과는 달라.'

녀석은 본체인 증기 위에 용암을 덮고 있었을 뿐이었지만, 이놈은 그 자체가 용암이요, 마그마였다.

[마그마 샤크를 섭취했습니다. 경험치와 포만감이 상승합니다]

때문에 놈을 먹어 치우는 건 다소 고역이었다. 죽더라도 용암이 곧바로 식지는 않았으니까. 촉수를 뻗어 녹기전까지 먹고 다시 촉수를 뻗는 걸 반복해야만 했다.

'재생이 없었다면.'

벌거숭이 늑대. 털이 모조리 타버렸을 거란 사실에 실소했다.

[경험치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Lv.14 → Lv.15]

놈을 먹어 치우고 15레벨에 도달했고, 놈이 먹다가 남긴 것도 마저 먹어 치웠다.

[레서 드레이크를 섭취했습니다. 경험치와 포만감이 상승합니다]

감지를 펼칠 것도 없이, 확신할 수 있었다. 잠들어있는 화산각룡이 깨어나지만 않는다면 20레벨을 달성하는 건 정말 일도 아닐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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