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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81화 (81/407)

〈 81화 〉 #39 뿌리 뽑기 (2)

……

한참을 기다린 끝에 미완성품을 들고 움직이는 기척을 느꼈다. 점점 멀어지는 냄새를 맡으며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고양이처럼 기지개를 켰다.

'생각보다 늦었네.'

놈이 차에 오르는 순간, 통찰로 확인한 순간, 눈에 힘이 들어갔다. B클래스에 상응하는 스테이터스― 필경 꼬리이리라.

'어디까지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쫓아가면 본거지까지 안내받을 수 있을 거다. 놈이 탄 차는 머지않아 고속도로로 빠졌고.

'헌터 전용 차로.'

헌터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 속도 제한이 없는 차로. 과연 시속 200km에 가까운 속도까지 페달을 밟는다. 페리가 어깨 위에 내려앉자마자 떨어지지 않게끔 그림자와 촉수로 덮고 달렸고, 그렇게 놈은 김포에서 강화도로 이어지는 다리를 넘었다.

'사람들이 있네?'

드물지만 종종 인기척이 있기는 했다. 어쩌면 본토와 가깝기 때문에 섬을 버리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놈을 뒤쫓아 다리를 넘고 얼마 가지 않아 놈이 주차했다.

'어디까지 가는지.'

꼬리는 한참을 걷더니, 점점 외진 곳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

사람의 인적이 드물어지는 걸 보고 속으로 끄덕였다. 십중팔구 놈들이 숨어있는 아지트 중 하나이리라. 적당히 먼 곳에 모여있는 기척을 느꼈다. 암시가 진화한 스킬인 투시― 덕분에 다소 먼 거리에 있는 건물을 뚫고 놈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통찰이 닿지는 않지만.'

그동안의 경험 덕분일까? 본능적으로 놈들이 탕아들이라고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굳이 꼬리를 살려 둘 필요는 없을 거다. 가시를 날리자 놈이 화들짝 놀라 반응했지만, 그것보다 조금 더 빨리 반응해야 했었다.

"―――!"

손목 발목이 꿰뚫려 바닥에 틀어박혔고, 놈이 비명을 지르기 전에 입을 틀어막았다.

"……."

고통이 멎어들 잠깐의 시간을 주고, 새파랗게 질린 안색을 보고서야 틀어막은 입을 풀어주었다.

"……!"

위압의 효과 덕분인지 놈이 몸을 떨었다. 이 정도라면 순순히 답하겠지 싶어 다가간 순간,

"대답―?"

발밑의 무언가가 작게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청각 스킬이 아니었다면 듣지도 못했을 만큼 작은 소리. 착각이 아니라는 듯 천천히 마력이 모여들고 있었다. 새파랗게 질렸던 놈의 안색이 다시 원래 색을 되찾아간다. 그것이 뜻하는 것은.

'함정?!'

황급히 바닥을 파헤쳐보니 스크롤이 찢어져 있었다. 무게가 가해지면 찢어지게끔 설계되어 묻어진 스크롤. 곧잘 그림자로 비릿한 미소를 띠는 꼬리를 찢어발긴 순간, 빛무리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

최대한 마력을 끌어모았다. 스크롤의 마력에 저항했지만, 점점 빛무리가 모여들고 있었다. 절대 평범한 스크롤이 아니다.

'이건…?!'

적어도 스퀘어에서 제작한 스크롤은 아니다. 사용자의 상태 따위는 염두에도 없다는 듯, 억지로 집행하려는, 강한 마력이 나를 짓누르는 강제력이 느껴졌다.

'침묵하는 입…!'

필경 놈의 소행이리라. 어쩐지 일이 너무 잘 풀린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순응한다면 놈들이 파둔 함정에 걸리게 되는데…!

"―――!"

이를 악물고 놈이 스크롤에 심어둔 마력에 맞서 최대한 저항했다. 하지만 침묵하는 입이 심어둔 마력에 온전히 저항하는 건 어렵다. 설사 본연의 힘을 되찾지 못했다 하더라도 놈은 견줄 자가 손에 꼽을 만큼 뛰어난 마법사였으니까.

'망할…!'

***

빛무리가 일렁이고, 기다리고 있던 꼬리들은 준비해 둔 마법을 연달아 발사했다. 3절 혹은 4절까지도. 온갖 마법이 범람했다. 벽면에 펼쳐둔 보호 마법이 깨져나갈 정도로 강한 충격. 설령 그 누구라 한들, 이 마법의 융단 폭격에는 견딜 수 없으리라. 놈의 죽음을 확신한 꼬리는 일그러진 미소를 띠었다. 하지만 곧이어 먼지가 걷어졌을 때, 눈살을 찌푸려야만 했다.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워서.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한 가지 경우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실패했다고?"

어이없는 투로 꼬리가 중얼거렸다. 도대체 어떻게? 침묵하는 입께서 만드신 스크롤에 담긴 강대한 마력에 저항했다는 말인가?

"이 정도였다니."

미리 대기하던 꼬리들이 침음을 흘렸고, 어딘가로 연락하던 중―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정신을 놓는 순간, 당장 어딘가로 끌려가고 말리라. 결국 마력이 고갈되고, 대마력이 심층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이가 맞물려 안간힘을 쓴 끝에― 가까스로 빛무리가 흩어졌다.

"……!"

몇 번이나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정신 고갈의 전조인지 약간 머리가 멍했다. 고작 스크롤에 심어둔 마력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방대했다.

'설마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는데.'

유인당했던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지만 아슬아슬하게 저항할 수 있었다. ―함정은 무산됐지만, 자만했었음을 깨달았다.

'그동안 일이 너무 잘 풀렸어.'

구상섭, 구마준, 이백섬, 사각지대, 서해안의 섬까지.

놈들에게 그동안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놈들이 내 존재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이점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이미 몇 번이나 모습을 드러냈으니 슬슬 위화감을 느껴도 이상하지 않다. 아니, 어쩌면 진작에 내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함정을 판 게 한 번이라곤 장담할 수 없으니까. 애초부터 성동구의 미완성품은 미끼였다는 뜻. 보기 좋게 속아 넘어간 셈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속기는 했어도 당하지는 않았다는 것. 스크롤의 마력에 저항해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자칫 잘못했다면…

'…죽었을지도 몰라.'

놈들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쫓고 있는 게 나라고 특정한 것인지. 아니면 어렴풋이 느끼고 떠보듯 함정을 판 것인지. 어느 쪽이든 중요한 것은.

'함정은 무산됐다는 거야.'

제법 먼 거리에서 느껴지는 기척들에 숨을 골랐다. ―침묵하는 입이라 여겨지는 기척은 없다. 그렇다면 아무 문제도 없다. 그걸 확인하는 사이 호흡이 돌아왔고.

[마력 재생(D) Lv.4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마력 재생(D) Lv.4 → 마력 재생(D) Lv.5]

마력이 회복되어 간다. 페리를 잠깐 떨어뜨려놓고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사냥해주마.'

펼쳐진 영량에 그림자가 이어진다. 건물 내부로 진입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1초 남짓.

지하층에 있는 놈들은 고작 여섯이다. 게다가 전부 꼬리. 하지만 그렇다 한들 위협이 되진 않는다. 서서히, 검은 불꽃이 타올라 점차 건물 내부를 뒤덮어간다. 연기는 없었지만 열기는 바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그렇게 곧 투시로 놈들이 웅성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저 안에선 준비가 되어있을 테니까…'

지하에 내려가서 싸우는 건 불리하니 놈들을 끄집어낼 필요가 있었다. 머잖아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위층으로 올라오는 놈들. 대전의 밤, 사각지대의 아지트와 똑같다. 폐건물의 2층― 지하에서 상층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만들어둔 모양. 계단에서 내려오던 놈들이 검은 불을 보고 놀란 듯 되돌아간다. 아무래도 1층으로 내려오는 것보다 2층에서 뛰어내리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한 모양.

'영리하기는 한데.'

창문을 열고 하나둘 떨어지는 놈들. 그렇게 한 놈을 그림자로 꿰뚫어 죽이자, 막 떨어지고 있었던 놈이 창문을 아슬아슬하게 짚었고 다른 꼬리들이 놈을 끌어올렸다. 방향을 바꿔 이제는 아예 건물 높은 곳으로 달리기 시작하지만, 상관없다.

'일단 두 놈만 살려놓으면.'

그 정도면 충분히 정보를 캐낼 수 있을 터. 6명 모두가 꼬리인 모양이니까. 결국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꼬리들이 옥상까지 올라갔고 그러는 사이에도 불길은 서서히 위층까지 번져가고 있었다.

'탈출하게 두지 않아.'

답이 없다고 여긴 걸까. 옥상― 5층이나 되는 높이에서 놈들이 각자 다른 방향으로 뛰어내렸다. 보통이라면 자살행위거나 운이 좋아도 어딘가 부러지겠지만, 하나하나가 B클래스에 상응하는 헌터. 5층 높이에서 떨어진 정도로 무리가 가지는 않는다. 떨어지는 중― 가장 근처에 있었던 두 놈을 참살했지만, 나머지 셋이 부리나케 달아나고 있었다.

"……."

올라가면 창문으로 내려갈까 봐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리는 놈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목숨을 걸면서까지 하고 싶을까.'

B클래스라면 어디서든 써먹을 수 있는 인재일 텐데. 아니, 애초에 탕아들의 지원이 있어 B클래스에 도달했다고 봐야겠지만. 그래도 목숨을 걸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미친놈들.'

이단의 탕아들― 놈들을 생각하면 바득바득 이가 갈린다.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자고, 엘릭서만 완성된다면 모든 게 끝난다고 꼬드겼겠지. 정작 엘릭서라는 것 자체가 만들어질 수 없는 환상 속의 것임을 모르고. 신이 창조한 피조물의 피를 섞는다고 신의 피가 만들어질 리가 없지 않은가.

'…속았건 아니건 간에.'

놈들이 여태 한 일들은 절대 용서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꼬리건 말단이건 한 마리도 남겨둘 생각은 없다. 놈을 따라잡자 마력의 폭풍을 일으켜 반항해온다. 그에 맞서 나도 마력을 일으켰다. 일순 팽팽해보이던 것은 머잖아 대마력의 보정을 받았고, 결국 내 마력이 놈을 짓누르고 억제했다.

"……!"

억눌러졌음을 믿기 힘든지 다시 발버둥 치려는 것을 그림자로 목을 잘라 쓰러뜨렸다. 앞으로 둘.

'나머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고 있다. 여유 부렸다간 감지 범위 밖으로 빠져 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력으로 달려 가시를 쏘아냈다. 지면에 처박힌 놈의 손목과 발목 힘줄을 잘라놓고 입안에 수납으로 저장해뒀던 살덩이를 쳐박아 눕히고 만약을 위해 파우치까지 뜯어냈다.

'일단 하나.'

한 놈은 확보했다. 나머지 하나는 감지의 범위 밖을 아슬아슬하게 벗어나려 하고 있다.

'섬이라 망정이지.'

본토에서 가깝고 다리가 연결된 강화도는 완전히 버린 섬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인기척이 드물었다.

'이 정도면.'

소란이 일어나기 전에 끝낼 수 있으리라. 놈이 아무리 달려봤자 나와 속도로 맞설 순 없다. 스테이터스는 내가 조금 밀리겠지만, 스킬의 차이가 극심하니까. 머지않아 따라잡아 놈을 눕혔을 때, 빛무리가 어리기 시작했다. 그놈의 스크롤. 곧바로 숨통을 끊고 놈의 시체만이 어딘가로 사라졌다.

'…결국 하나밖에 못 잡았네.'

조금 아쉬웠지만, 죽이는 게 놓치는 것보다는 낫다. 나는 붙잡은 꼬리에게로 발걸음을 돌렸다.

***

"하… 이것 봐라?"

어이가 없다는 듯, 빨대로 커피를 홀짝이던 홍유리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남아있는 마력의 잔향― 무엇보다 자신의 눈. 남들의 눈은 속였을지 몰라도 흔적은 남는다. 그렇다면 추적의 마안을 속일 수는 없다.

"아주 버젓이 돌아다녔다 이거지?"

몬스터가 서울 한복판을 대놓고 돌아다녔단 사실에 홍유리의 입꼬리가 경련했다. 양손을 겹쳐 손가락을 꺾고 목을 비튼 홍유리의 선홍색 눈동자가 짙게 물들어갔다.

"이번엔― 절대 안 놓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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