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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83화 (83/407)

〈 83화 〉 #40 vs 진홍

이성이 날아간 늑대로부터 검은 화염이 서서히 일어나자, 홍유리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

입으로는 끊임없이 주문을 영창했지만, 시선은 알파로부터 떨어지지 않았다. 목울대가 꿀꺽 넘어가더니 침을 삼켰다. 숨을 쉬기 어려울 만큼의 살기― 분명, 자신을 죽이고 말리라는 살의가 느껴진다. 역린을 건드렸다. 뛰어난 지성을 가지고 있으니 섣불리 덤벼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요정용만 붙잡고 있다면… 오산이었다.

이성으로 행동하던 늑대가 본성을 찾았을 때― 그녀는 괴물의 탄생을 목도했다.

'이성이 완전히…!'

순간, 홍유리의 시야에서 늑대의 모습이 사라졌다. 공중에 떠 있던 그녀는 재빨리 감지를 펼쳤고 아슬아슬하게 늑대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직감. 후방에서부터 스멀스멀 검은 무언가가 기어들어 오려 하자 홍유리는 재빨리 한 겹의 마력을 더 둘러야만 했다.

'그림자!'

아카데미 습격 사건 당시 들어 알고 있던 능력이지만, 실제로 보니 전혀 다르다. 만약 몰랐다면… 아예 떠올리지도 못했다면 하는 생각에 그녀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얕보지는 않았다. 어찌 됐건 퍼플 스퀘어의 후계자였던 아가일 모레스트를 끝장낸 건 바로 저 알파였으니까.

"Lanț de flacără―!"

2절― 순식간에 영창한 주문이 늑대를 향했다. 붉게 타오르는 사슬이 늑대를 향했지만, 닿기도 전에 검게 불살라지고 강한 바람에 흩어졌다.

"……?!"

통하지 않는다. 한 번에 여럿을 쏘아낸다면 모를까 2절 마법 하나로는 알파에게 유효한 피해를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홍유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는 사이, 늑대로부터 튀어나온 무언가가 자신을 두른 마력의 막을 끊임없이 두드려댔다.

'가시?'

홍유리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검은 가시가 발출되어 장막을 뚫어버리겠다는 듯 두드려댔다. 개개의 위력은 뛰어나지 않아 부서질 걱정은 없겠지만, 문제는 놈이었다.

"―――."

마력에 타 공중에 뜬 상태였기에 망정이지 지상에 있었다면― 하는 생각은 으스러졌다. 잠깐 올려다보던 놈이 몸을 굽히더니, 순식간에 뛰어올랐기 때문이었다. 10m… 20m… 끝도 없이 솟구친 알파는 결국 자신이 있는 곳까지 닿았다. 아무리 신체 능력이 뛰어나다지만, 이게 가능하다고? 홍유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Scutul cu flacără arzătoare!"

영창한 주문. 마법이라는 법칙 아래, 구현된 마력이 몸 전체를 가리는 방패가 홍유리의 앞을 덮었다. 붉게 타오르는 화염의 장벽은 순식간에, 검게 타올랐다.

"……!"

강한 돌풍이 눈 앞을 가리자, 홍유리는 처음으로 진심을 내비쳤다.

"이, 씨발…!"

붉은 마력이 소용돌이치며 늑대를 짓눌렀다. 강한 마력의 압박. 마력 그 자체로 이루어진 거대한 벽에 늑대가 추락해 떨어졌고, 홍유리의 눈동자는 어느새 선홍에서 심홍으로 물들어있었다.

'진짜로 할 생각은 없었는데…!'

어디까지나 이야기를 할 생각이었다. 한데 이래서야 완전히 글러 먹었다. 슬쩍 고개 돌린 홍유리는 가두어놓은 요정용에게 흘깃 시선을 돌렸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풀어준다면 이성이 돌아올까? 그럴 리가. 결국 방법은 늑대를 쓰러뜨리는 것밖에 없다.

'B클래스라고 생각했는데.'

느껴지는 마력은 그 정도였다. B클래스보다는 높아도 A에는 닿지 못하는 정도. 그래서, 적당히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문제없이 짓누를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게 두 번째 오산이었다.

"……!"

추락한 늑대는 짓누르는 붉은 마력에 저항하고 있었다. 본래, 이 정도로 마력의 차이가 극심하다면 저항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늑대가 가진 어떤 스킬이 기어코 송곳처럼 심홍의 마력을 뚫어내고야 말았다.

'설마, 대마력?!'

그녀의 눈동자가 좀 더 짙어졌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그리고 평생을 바라왔던 스킬을 고작 몬스터 따위가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

순간, 늑대가 다시 한번 뛰어올랐다. 이에 홍유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수인을 맺었다.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로 현란한 손놀림. 화염의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좀 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만 한다.

"Robia rădăcinii copacilor―!"

나무뿌리가 치솟아 늑대를 뒤덮었지만, 홍유리는 이걸로 끝이라고는 추호도 생각지 않았다. 그리고 그를 반증하듯 검게 타오른 불길이 나무뿌리를 집어삼켰다. 어느새 바닥을, 그리고 수면 위를 불태워 불바다로 만들어놓는다. 마치 밤을 만들어 낸 것처럼 주변이 어둑해졌다.

여전한, 아니 가일층 짙어진 살기ㅡ 서로의 붉은 눈동자가 마주쳤을 때, 홍유리는 몸을 떨었다. 오롯이 자신을 죽이겠다는 살의가 그녀를 잠식해 좀먹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홍유리의 자존심은 절대 그것을 용납지 않았다.

"Multiplexarea glonțului arzător―!"

머릿속에 그녀가 이미지한 것에 따라 손을 휘두르자, 붉은 마력의 총탄이 늑대를 향해 쏘았다. 그리고 늑대로부터 발출된 셀 수 없는 가시가 홍유리의 총탄과 맞부딪쳤다. 가시― 검은 불꽃을 두른 가시는 홍유리의 전부를 쳐부수고 꿰뚫었다.

하나하나가 그녀의 탄환을 능가하고 있다.

'……!'

자존심이 상했다. 현격한 마력의 차이가 있는데도 시간을 끌리고 있다는 사실에. 고작 한 번이지만, 밀렸다는 사실에…! 늑대가 다시 뛰어올랐을 때, 홍유리는 또 한 번 마력으로 짓누르려 했으나, 늑대에게 같은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는, 통하지 않게 됐다.

"하?"

타오르는 검은 불꽃이 붉은 마력을 게걸스레 먹어 치웠다. 그리고 일순― 홍유리는 검게 타오른 귀신의 얼굴을 보았다. 착각이었을까? 하지만 어째선지 등골이 오싹했다. 저것은 이해의 범주를 벗어나 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스킬을 가지고 있길래. 이미 그녀가 목도한 것만 따져도 열이 넘어간다. 정말 더는 없을까?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스킬까지 합치면?

"……!"

고작 이딴, 이딴 몬스터 따위한테…!

자신의 마력을 집어삼키고 달려든 알파가 지척까지 다가오자 아직 고민하고 있던 그녀의 마음이 서서히 기울어갔다.

"Iată moartea ta―!"

순백의 빛이 어려 서서히 천지를 뒤덮어 간다. 그것은 일전, 태동하는 악이 그녀에게 집착을 품게 만든 마법. 3절의 마법인 동시에 4절에 가까운 위력을 발하는 마법이기도 했다. 순백의 빛은 검은 귀화를 덮어 일순 압도하는 듯 보였으나― 곧 드러난 검은 악귀에 의해 잡아먹히고 말았다.

"……?!"

믿을 수 없다는 듯 크게 눈을 뜬 홍유리는 다음 순간, 바닥으로 추락했다. 공중에서 탄력을 발한 늑대와 부딪히고 말았기 때문에.

'공중에서도 사용할 수 있었다고…?!'

저 점프력조차 스테이터스가 아니라 스킬이었다는 뜻이다. 홍유리는 속으로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만약을 대비해 둘렀던 마력 갑옷이 아니었다면 방금 충격으로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처참히 깨져나간 마력 갑옷과 바닥에 쓰러진 자신. 여전히 이를 드러내며 다가오는 알파. 등골에 일어난 소름과 가슴을 서늘케 하는 한기. 늑골이 나갔는지 숨을 쉬는 게 어려웠다. 거친 숨으로 홍유리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좋아."

손을 웅크리며 흙을 한 움큼 쥐었다. 씹어뱉듯 말하며, 그녀는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결의했다.

"반드시 죽여버리겠어…!"

A클래스는 분명 모든 헌터의 정점이다.

그러나 그런 이들 중에서도 더 특출난 이들이 있다. 고작 클래스의 구분 따위로는 그 능력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다 하여 별칭과도 같은 이명을 갖는 이들이. 속된 말로는 랭커라고 불리는 이들이 있었다.

검공 강태호. 세검사 구진하. 선자 은자림처럼. 그리고, 새벽의 여명 최고의 마법사이자 어쩌면 레드 스퀘어의 후계자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홍유리의 별칭은 진홍(眞紅).

그녀의 선홍색 눈동자가, 마침내 심홍을 넘어 진홍의 색을 드러냈다. 살의를 드러낸 홍유리는 처음으로 결심했다. 설령 클랜의 명을 어기게 되더라도, 이 자리에서 알파를 죽이고 말겠다고.

―그러지 않으면 자신이 죽을 테니까.

***

늑대는 멈추지 않았다. 탐욕스레 달려 홍유리를 먹어 치우겠다는 듯 으르렁거린다. 포효하는 두 눈동자엔 이미 이성이라곤 한 줄기도 찾아볼 수 없다. 그와 반대로 홍유리의 눈은 깊게 침잠해갔다.

숙련된 마법사는 그 어떤 순간에도 영창을 멈추지 않는다. 바닥에 내려앉은 홍유리를 향해 발사되는 가시와 뒤따르는 촉수. 이글거리는 흑염과 날카로운 바람. 그리고 어느새 지면을 모조리 뒤덮은 그림자까지. 그 모든 것이 그녀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살의의 향연 속, 홍유리의 손가락이 까닥였다.

"―――!"

짐승의 울부짖음과 마법사의 영창이 교차한다. 모든 공격이 진홍의 막 아래 무산된 가운데, 뛰어오른 늑대의 턱이 마력을 물어뜯어 결국 찢어발기고야 말았다.

"……!"

악식. 늑대는 몰랐지만, 가리지 않고 먹는다는 것은 실체를 가지지 않는 마력에 대해서도 유효했다. 늑대의 턱이 들이밀어 지자 홍유리는 전신에 붉은 마력을 둘러 늑대를 향해 주먹질했다. 거력이 담긴 주먹. 어깨가 빠질 걸 각오한 일격이었다. 본래의 늑대라면 반응하지도 못했을 속도. 허나, 직관. 원래 흰 사슴이 가르치려했던 본능. 늑대는 백록의 의도와는 달리 더 깊은 이성의 영역을 개척해 예측이라는 힘을 얻었었다.

그러나 늑대에게도 본능은 있었다. 그저 여태까지 잠들어있었을 뿐―!

짐승의 감으로 턱을 비틀어 손목을 물어뜯었을 때, 검은 불꽃을 어그러뜨린 진홍의 마력이 늑대를 압박했다. 턱이 으스러지고 이빨이 뽑혀 나간다. 안와에서 눈이 튀어나와 바닥을 제멋대로 굴렀다.

그러자, 본래라면 있어서도 있을 리도 없는 일이 벌어졌다. 턱을 비틀어 찢어발긴 홍유리의 손목을 물어뜯은 늑대는 기어코 그것을 삼키고야 말았다.

키메라를 상대로는 있었다고 하나, 늑대에게 있어 식인은 금기 중의 금기. 그리도 기피하던, 무의식중에서조차 거부했던 일을 행했다는 것은 늑대의 이성이 완전히 가라앉고 괴물의 본성이 드러났다는 뜻. 무의식의 너머― 마침내 내면의 괴물이 눈을 뜨고야 말았다.

순간, 홍유리가 만들어 낸 붉은 마력의 폭풍이 서로를 밀어 떨어뜨렸다. 강한 반동에 처박힌 늑대는 낮은 울음을 토했지만, 마법사는 비명을 질러야만 했다.

"―――!"

손목이, 손목이 사라졌다. 아니, 먹혔다. 음영랑(陰影狼). 늑대가 두른 그림자가 일렁이는 그 모습이 마치 홍유리에게는 자신을 조소하는 것처럼 보였다. 신체결손이라는 상실감― 절망하거나 분노하거나. 홍유리는 후자의 인간이었다.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그녀의 자아는 '고작 이 정도로는' 패배를 용납지 않았다.

홍유리의 표정이 한없이 일그러졌다. 보류했었던, 정말 만약을 위해 준비했던 마법이 최후의 주문을 읊음과 함께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Arzând în abis și transformându-se în cenușă!"

본래 던전 밖에서는 사용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된 대마법. 이성을 잃어가는 건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섬에 아직 사람이 남아있다는 사실조차 머릿속에서 깔끔히 잊혔다. 자칫하면 강화도 전체가 초토화될지도 모르는 대마법. 거대한 육망성이 구름 아래 서서히 형상을 갖춰갔다. 룬어와 고어가 육망성 사이를 빼곡히, 진홍으로 물들였다. 보류했다고 해도 마력의 재구현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즉발할 리는 없겠지만, 그때는 결코 멀지 않으리라.

엇갈린 입장과 서로를 향한 섬뜩한 살의. 파멸로 치닫아가는 파국 속에서 ―이성을 잃은 늑대에게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

'도와줄까?'

그것은 무엇보다 달콤하게 들리는 목소리였다. 이 모든 갈등과 고뇌를 끝내주겠다는 유혹. 단지 말 한마디면 된다고. 가라앉은 이성― 무의식의 저편. 거기까지 기어코 따라와 늑대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바~보. 보고도 모르겠어? 넌 쟤 못 이겨.'

키득거리는 듯한 조소. 내면에서 말을 걸어오는 그것은 마치 악마의 속삭임과도 같았다. 온통 검게 물든 공간에서도 더욱더 검게 타오르는 화염.

"흑린."

아가일을 쓰러뜨리는 데 일조했던 칠흑의 불꽃. 감정을 먹어 치우고 힘을 빌려주는 검은 도깨비불(黑燐).

'왜~? 필요하잖아?'

그것이 양손으로 얼굴을 붙잡고 시선을 맞춰왔다.

'도와달라는 한 마디면 돼. 그럼 내가 전부 치워줄 테니까. 지금 느끼는 불합리한 감정까지 전부 가져가 줄게. 어때?'

유혹하듯 속삭이고 기대하듯 반짝인다. 흑린. 아가일의 검은 장미와 강욕조차 우습다는 듯 불살랐던 미지의 존재. 잠깐 스킬로 발현됐던 그 능력조차 분명 그녀가 가진 힘의 일부에 불과하리라. 흑린의 도움을 받는다면 사태를 해결하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모든 일이 쉽게 풀리고 원만하게 지나가리라. 일전에 느꼈던 그 아득한 전능감을 다시 떠올리자, 늑대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이 타버릴 듯한 감정을 주고 흑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건―

"…러워."

'……?'

"시끄러우니까 그 입 다물라고!"

ㅡ절대 사양이었다.

타는 듯한 시선. 그토록 갈망하고 바라왔던 들끓는 감정. 여태 느껴본 적 없었던 짙은 살의. 그리고 늑대의 눈동자에 비치는 것을 보았을 때 흑린은 황홀감에 젖어 부르르 몸을 떨었다.

"끼어들지 마."

늑대의 입에서 짐승의 울음이 흘러나왔다. 만약 끼어들었다간, 적으로 간주하겠다는 강렬한 의지에 흑린은 조용히 침을 삼켰다. 그런 흑린을 지나치며 늑대는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더 이상, 너희한테 휘둘릴 생각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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