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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88화 (88/407)

〈 88화 〉 #42 Inverted Skyscraper (3)

창공을 날며 그것이 고도를 높이고 있었다. 일견 영악하게 지친 모습을 연기하고 있지만, 그게 기만임을 잘 알고 있다.

놈의 눈빛에 남아있는 건 피로가 아니라 분노. 자신의 영역을 엉망으로 만든, 그리고 먹이를 독식한 나를 향한 강렬한 분노였다.

감지에 느껴지는 백록의 기척을 확인하고 끄덕였다. 페리와 함께 물러난 백록에겐 미리 맡겨둔 일이 있었다.

마침내 천장까지 도달한 놈이 흥분한 듯 콧김을 내뿜었다. 그 속에 언뜻 보이는 불꽃이 놈이 용종임을 증명해준다. 다만, 놈은 바로 달려들지 못하고 나를 살폈다.

'불안한 거야.'

날짐승의 천국에 나타난 들짐승. 놈에게 있어 미지의 존재인 내가. 무엇보다 자신의 한쪽 눈을 가져간 내가.

"―――!"

떠나가라 울부짖은 이무기가 그 기다란 꼬리로 건물을 붙잡아 으스러뜨렸다. 그리곤 그 파편을 던진다. 다가오는 파편을 보며 눈대중으로 거리를 가늠했다.

'대략…'

얼추 계산을 마치고 촉수를 뻗어 휘감았다. 단숨에 끌어당겨 파편을 피했다. 그 반동을 이용해 이무기에게 달려들었지만, 놈은 아무렇지도 않게 피했다. 쉽게 올라탈 수는 없을 거라 예상했었다.

'끝이 아니야.'

백록이 했던 것처럼 나도 먼 곳에 발판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직감과 간파 그리고 예측을 이용해 놈의 다음 움직임과 그걸 피할 수 있는 타이밍에 비스듬한 발판을 만들었다.

'반동으로.'

촉수가 휘감은 기둥을 중심으로 크게 돌아 반동을 이용해 발판까지. 그 충격을 감당치 못한 발판이 깨지기 직전, 탄력으로 방향을 급변시켰다. 비천망의 벌린 턱 사이로 들어가 귀화를 남기고, 반대쪽 턱의 끝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귀화를 남긴 것과 더불어, 촉수를 뻗어 놈의 어금니를 붙잡아 높게 뛰어올랐고.

'됐…?!'

마침내 놈의 등 위에 올라탈 수 있을 거라 여겼지만, 놈이 몸을 비틀고 천장에 몸을 부딪쳤다. 그 때문에 놈의 등 위에 올라타는 걸 포기해야 했고, 떨어지기 전 발판을 만들어 추락하는 걸 막았다.

'쉽게는 안 된다 이건가?'

저만한 능력치에 용린까지 가지고 있으니 천장에 부딪힌다 해도 아무렇지 않을 만도 하다. 화산각룡이나 어스 서펜트도 그랬지만, 충격과 피해의 개념 자체가 다르다.

'망할.'

고작 천장에 등을 부딪치는 정도는 놈에게 있어 아무것도 아니란 소리. 젤리처럼 물렁물렁한 벽이 아무 소용도 없는 것처럼.

'…역시 여기서 등을 타고 오르기는 힘들어.'

전혀 충격을 받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내려다보며 고개를 떨군 놈이 한계까지 입을 벌렸다. 귀화가 번져 타오르는 입속, 목구멍 너머로 시뻘겋게 타오르는 화염을 보고 재빨리 방향을 바꿨다. 최대한 로테타워에서 멀어져야 한다. 설마 자기 보금자리를 부수겠냐는 싶었지만, 거기에 백록과 페리가 남아있으니 도박은 할 수 없다.

"……!"

날아오는 브레스― 막연히 레서 드레이크 때보다는 빠르겠거니 생각했지만, 현실은 상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촉수로 집기 전에 닿을 거라는 생각에 탄력을 발했다. 공중에서 방향을 바꾸기 위함이 아니라 가속하기 위해 사용해서는 다음 순간이 비고 만다.

"―――!"

놈의 브레스는 단발이 아니다. 끝없이 이어지며 도시를 녹이고 불태워간다. 귀화도 절대 약한 불꽃은 아니건만, 놈의 숨결에는 조금도 당해내지 못한다.

'화력보다도.'

출력에서 너무 큰 차이가 난다. 귀화가 두둥실 뜬 산들바람이라면, 놈의 숨결은 마치 돌풍을 보는 듯하다. 그렇게 놈의 날숨이 다했을 때, 꼬리로 천장을 치더니 깨진 아스팔트가 마치 산탄총처럼 날아왔다. 일일이 셀 수조차 없는 속도에 돌풍을 일으켜 흩어야 했다.

"――――――!"

떠나가라 소리 지르는 비천망이 자신의 강함을 과시한다. 이무기. 비록 용이 되지는 못했다지만, 이미 그 자체만으로 파멸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A클래스에 상응하는 스테이터스. 그리고 창공을 누비는 비행 실력까지. 그런 괴물을 두고 누가 방심할 수 있을까?

하지만, 늑대의 시선은 비천망에 있지 않았다.

'뒤는…'

신경 쓰지 말자. 감지를 펼치고 나서야 둘의 안전을 확인하고 안심했다. 페리와 백록이 고작 멀리서 쏜 브레스 따위에 당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걸리는 게 없다면―!'

늑대의 눈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

처음에는 분노였으나 그것은 의심과 불안이 되었다.

당장에라도 쓰러뜨릴 수 있을 것만 같은데, 그 어떤 공격도 놈에게는 닿지 않는다. 혹시 놈이 나를 기만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 혹시 놈을 이길 수 없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

커져가는 의심과 불안이 서서히 자신을 좀먹기 시작했다. 두 감정은 끝도 없이 커지더니, 이윽고 두려움으로 변했다. 그렇게, 이무기의 안에서 늑대는 점점 괴물로 변해가고 있었다.

***

홍유리와의 싸움에서 공중전을 겪은 적은 있지만, 바닥이 아예 없는 싸움은 처음이었다. 지난 나흐레는 늑대에게 있어 먹어 치우는 시간이었지 싸움이 아니었으니까. 지쳐 보금자리로 돌아오는 날짐승의 날개가 의미가 없듯, 일방적인 사냥이었을 뿐.

'하지만.'

비천망은 다르다. 놈의 비행은 스킬로 발현된 것. 날개가 있지도 않았으며, 애초에 지치지도 않는다. 그러기 전에 돌아와 나와 싸우고 있을 뿐. 허공을 밟고 뛰어올라 이무기의 꼬리를 피했고, 대신 건물이 산산이 무너졌다. 낭떠러지로 우수수 떨어지는 파편. 그것들을 밟아 발판 대신 이용했다.

"―――!"

탄력을 이용해 따라붙는다. 발끝에 머무는 돌풍을 터뜨려 뛰어올랐다. 단순히 두르고 있을 뿐이 아닌 탄력과 같은 순간적인 가속을 발한다. 이 발상은 수륙양용을 획득하고 와류를 생성했을 때 떠올린 것. 200kg를 초과하는 무게임에도 불구하고 거센 바람은 순식간에 나를 밀어냈다.

'이걸로!'

비천망과 붙기 직전, 가시를 쏘아냈다. 용린을 가진 놈의 비늘에 피해를 줄 순 없겠지만, ―나흘 전, 놈은 이 공격에 한쪽 눈을 잃었다. 그 아픈 기억이 굳이 피하지 않아도 될 공격을 구태여 피하게 했고, 덕분에 틈이 드러났다. 달라붙어 놈의 몸 사이사이를 촉수로 붙잡았다.

브레스. 용린. 되다 만 아룡이라는 것까지. 모든 면에서 비천망이 웃돌기는 하지만, 놈과 레서 드레이크 사이에는 유사점이 많다. 그리고 이미 경험해 알고 있다.

'이 비늘을 뚫기 위해서는.'

악식. 아니, 탈식이 유일한 정답이라는 것. 촉수에 닿은 비늘이 스멀스멀 녹아들어 가기 시작한다. 그럴수록 몸부림은 거세졌지만, 변화로 추가한 성질은 점성.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끈질기게 버티는 내게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운다. 꼬리로 쳐내려는 움직임. 촉수를 포기하고 그대로 떨어져 추락했다.

'여기서.'

거대한 꼬리가 자신의 몸을 강타하고, 그 풍압은 돌풍에 의해 상쇄됐다. 그렇게 떨어지기 직전, 꼬리에 붙여놓았던 촉수가 나를 끌어 올렸다.

메달려 있던 나를 뒤늦게 눈치챈 비천망이 떨쳐내기 위해 거센 움직임을 보였다. 그렇게 강제로 끌려 올라가던 중, 비늘의 미세한 틈새 사이를 발톱으로 파고들었다. 곧바로 꼬리에 이어진 촉수를 끊어냈다.

발톱 또한 내 신체의 일부. 탈식이 먹어 치운 만큼 틈새가 넓어졌고, 곧바로 뛰어오를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이 생겼다. 놈은 이번엔 천장으로 몸을 들이박지 않았다. 대신 아래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

천둥매가 그랬듯, 놈 또한 공기의 벽을 뚫었다. 놈이 뚫은 공기의 벽이 밀려와 버티고 선 나 또한 충격을 감수해야 했다. 이를 악물고 발톱과 이빨 그리고 촉수를 총동원해 놈의 비늘을 씹고 긁어 버텨낸 끝에 드디어 놈의 비행이 멈췄다.

'망할…'

―여기서부터다. 결국 싸움은 버티느냐 버티지 못하느냐로 결정 날 터.

'기다리고 있었어.'

결국, 놈에게 들러붙지 못하면 죽일 수 없으니까. 천장이 있는 곳에서 놈을 쓰러뜨리기란 요원했다.

'너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서로가 서로를 쓰러뜨리기 어려운 전장에서, 한 번의 실수가 치명적인 실수로 이어지는 창공으로. 마침내 늑대는 울부짖었고, 검은 불꽃은 귀신의 형상을 이뤘다.

새까맣게 타오른 불길이 질주한다. 꼬리에서부터 머리까지 내달리는 걸음에는 망설임이 없다. 늑대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그러기 위한 준비는 이미 모두 마쳤으니까.

"―――!"

용이 몸을 비틀고 꺾었다. 공중에서 이어진 수십번의 회전에도 늑대를 떨칠 순 없다. 발바닥에 부여한 점성이 끝까지 늘어져 버티고 있었다. 커다란 턱이 늑대를 덮쳐올 무렵, 늑대는 결국 이무기의 몸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저 아래는 무한한 창공과 끝도 없는 낭떠러지.

발판을 만든 늑대가 자신을 지탱하려는 순간, 커다란 마력의 폭풍이 발판을 처참히 깨부쉈다. 싸움이 끝났다고 이무기가 떠올린 것과는 달리 늑대는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밟은 늑대가 순식간에 뛰어올랐다.

"―――?!"

당황하는 비천망. 늑대가 밟은 것. 그건 떨어지는 잔해, 부서진 파편이었다. 고개를 든 이무기의 눈에 언뜻 보이는 건 어느 사슴의 모습.

'여기까지 읽고 있었을 줄이야.'

늑대는 처음부터 예상하고 있었다. 처음, 백록은 늑대를 만류했다. 무모하고 위험한 발상이라고. 하지만 늑대는 눈을 빛내며 백록을 설득했다.

'멀어지지만 않는다면.'

브레스를 봉쇄할 수 있다고 자신에 찬 눈이 말했던 게 떠올랐다. 늑대는 백록에게 많은 걸 바라지 않았다. 단지, 적당한 타이밍에 건물을 부숴 잔해를 떨어뜨려 달라 말했을 뿐.

"정말이지…"

이무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늑대의 손아귀에서 놀아났을 뿐. 자기 목숨을 도외시한 방법이었으나, 백록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옳았노라고.

***

떨어지는 잔해를 밟고 달려드는 늑대. 이무기는 그 이상으로 멀어지려 했으나, 늑대를 쉽게 떨쳐낼 순 없었다. 무엇보다, 종종 날아오는 가시가 이무기의 진로를 방해했다.

'할 수 있어'

마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공중전을 할 수 있을 만큼 적절하게 떨어지는 파편. 축지를 가지고 있는 백록의 속도는 늑대를 상회한다. 비록 늑대의 예측은 백록을 뛰어넘었다지만, 늑대보다 빠르게 한발 먼저 움직일 수 있는 백록 이상으로 늑대에게 맞춰줄 수 있는 조력자는 없다.

'이제…!'

모든 스킬을 끌어낸 늑대는 비천망의 비늘을 촉수로 붙잡았다. 조여드는 가시가 틈새를 파고들고 늑대를 끌어당겼다. 타오르는 검은 불길은 여전히 이무기를 태우고 있었다.

다시 한번, 마력의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떨어질 위기― 사실은 그렇지 않다. 폭풍만으론 늑대를 떨쳐낼 수 없다. 추락하던 때도 마력 폭풍은 늑대를 밀쳐내지 못했었다. 단지 발판을 부섰을 뿐. 이번이라고 다르지 않다. 돌풍과 검은 불길이 폭풍을 막고 대마력의 힘으로 기어코 뚫어내고야 만다.

'올라왔다.'

이무기의 등에 올라탄 늑대는 무수한 촉수와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타오르는 불길, 뻗어낸 촉수와 스멀거리는 그림자. ―마침내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

늑대가 뒤집힌 도시에서 비천망과 싸우고 있을 때―.

"드디어…!"

천천히 굳게 닫힌 철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목표는 제 2구역까지의 봉쇄― 처음 참가를 표명했던 클랜 외에도 수많은 인원들이 모여 네버랜드가 열리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다.

"열린다…!"

불안과 기대로 가득 찬 눈빛들이 하나같이 문을 주시한다. 머잖아 활짝 열린 문에서,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차원의 틈이 개방된 순간.

"현 시각 06시 11분. 지금부터!"

공략대의 선봉대장인 강태호가 목소리를 높였다.

"네버랜드 공략을 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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