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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89화 (89/407)

〈 89화 〉 #43 다섯 번째 진화의 실마리

"―――!"

비천망은 뜯겨 나간 비늘 사이로 타오르는 귀화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마력을 일으켜 떨쳐내려 해도 늑대는 떨어지지 않는다. 발길이 닿고 이빨이 물어뜯으면 어김없이 용린은 사라져간다. 유일한 타개책이라면 브레스일 테지만, 그랬다간 자신도 휘말리고 말 테니 사용할 수 없다. 모두, 늑대가 의도한 대로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비천망에게 남은 선택지는 없다. 몸을 비틀어 자신에게로 쇄도했고, 커다란 입이 늑대를 덮쳐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워 늑대를 집어삼킨 순간.

"―――!"

이무기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몸통을 꿰뚫고 이빨이 파고들었지만, 하나 남은 눈동자엔 희열이 담겨 있다. 강적을 쓰러뜨렸다고. 이겼다고 자신했을 때, 비천망의 눈에 무언가가 비쳤다.

그것은 일렁이는 그림자를 두른 늑대였다. …어떻게? 비천망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무기의 눈빛이 혼란에 잠기는 것을 본 늑대는 담담히 시선을 마주했다.

'뻔했으니까.'

이무기의 머리가 들이밀어져 그림자가 나타났을 때, 이미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 빠져나왔다. 진작 피할 수도 있었겠으나 놈이 자신을 물도록 유도했을 뿐. 비천망이 늑대와의 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게 이무기의 하나 남은 눈을 촉수가 파고들었고, 그림자는 더욱더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갔다. 용린에 단단히 박힌 턱을 억지로 빼내자 독니가 박힌 채로 턱만 빠져나왔다.

비천망이 그 고통에 몸부림치며 몸을 비틀고 흔들었다. 더 깊은 곳을 파고 든 그림자가 뇌를 건드리기 직전, 이무기는 가지고 있는 마력 전부를 전력으로 폭발 시켜 폭풍을 일으켰다. ―여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규모의 마력.

'그만큼.'

비천망에게 여유는 없다는 소리. 이무기의 안에서 커져 나간 공포와 두려움은 이미 늑대를 괴물로 인식하고 있었으니까.

"―――!"

이를 악문 늑대가 모든 것을 동원해 폭풍에 맞섰으나, 감히 저항하긴 어려웠다. 비천망이 공포에 휩싸여 발하는 과할 정도로 거센 폭풍이 늑대를 뒤덮었고―

'이건 차라리.'

―늑대는 폭풍에 저항하는 대신 흐름에 몸을 맡겼다. 아무리 대마력이 있다지만, 저항하는 건 어렵다. 한없이 밀려 나간 늑대는 허공에 여러 겹으로 발판을 만들어 자신을 지탱했다. 발판을 만들어 촉수로 휘어잡아 견디기도 했으나 너무 간단하게 끊어져버린다. 결국 잔해와 부딪힌 늑대는 그 충격에 눈을 부릅 떴다.

[모든 피해 감소(D) Lv.9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모든 피해 감소(D) Lv.9 → 모든 피해 감소(D) Lv.10]

[모든 피해 감소(D) Lv.10이 최대 레벨에 도달했습니다. 모든 피해 감소 (D) Lv.10 → 완화(C) Lv.1]

척추가 내려앉을 것만 같던 충격이 완화되고, 감소한다. 그에 늑대는 멈추지 않고 다시 한번 뛰어올랐다. 자신을 태우는 불꽃과 증발하는 피, 무너지는 잔해. 귀화에 타오른 입천장은 이무기의 후각을 가렸다. 가진 마력을 대부분 소진하고 휘청이는 이무기는 늑대에게 있어 좋은 먹잇감일 뿐.

본래 비천망에겐 고속 비행으로 얼마든지 늑대를 피할, 도망칠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두 눈은 남아있지 않고, 마력은 소진했다. 청각과 후각이 가려진 지금, 이무기가 늑대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저 어둠 속에서 공포에 떨며 도망칠 뿐. 비천망이 한 실수는 좀 더 빨리 늑대를 공격하지 않았다는 것. 늑대를 본 순간, 처음부터 건물을 무너뜨리고 덮쳤다면 승산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으나.

'지금은 아냐.'

지난 나흐레간, 늑대는 이 장소에 익숙해졌으니까. 앞이 보이지 않게 되자 이무기의 두려움은 끝도 없이 부풀어 올랐다. 익어가는 살점에 자신이 죽을 거라 여긴 이무기는 최후의 순간, 한없이 고도를 높였다. 몸을 마찰 시켜 귀화를 꺼뜨릴 수만 있다면 연명할 수 있을 테니까.

'천장으로 오를 셈이겠지.'

그러리라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거라 여겼다. 마지막에 놈의 시선에서 읽은 건 한없는 두려움과 공포뿐이었으니까. ―그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비천망의 동선을 미리 읽은 늑대가 뛰어올랐다. 무언가가 자신을 올라탔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그저 겁에 질린 이무기는 한없이 고도를 높였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이무기는 단지 한 마리 짐승으로 전락했고, 마침내 천장에 닿기 직전, 늑대로부터 뻗친 그림자가 끝내 이무기의 안와를 파고 들어 뇌를 건드렸다.

"――――――!"

더 없는 급소.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단말마를 지른 비천망은 결국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했고, 그 직전에 늑대는 건물로 촉수를 뻗어 자신을 당겨 추락하지 않을 수 있었다.

"…괜찮겠나?"

어느새 다가온 백록이 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간 늑대와 함께 던전을 다닌 백록은 늑대가 포식의 상위 스킬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

늑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떨어지는 비천망을 계속 바라보고 있을 뿐.

'많이 아쉬웠나 보군.'

그러나, 백록이 읽은 늑대의 눈동자에 담긴 것은 미련이나 아쉬움 같은 게 아니었다. 다만, 어떠한 기대와 확신으로 가득할 뿐.

"……?"

순간, 백록의 귓바퀴가 움직여 귀를 쫑긋거렸다. ―무언가, 이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백록! 뛰어!"

늑대의 말에 백록은 뒤늦게 상황을 이해했다. 늑대는 비천망의 시체를 포기할 생각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었다고. 다만―!

'이 무슨 무식한…!'

서서히, 세계가 일그러진다. 아니 그 반대였다. 던전이라는 이름으로 침식당했던 세계가 본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아래와 위가 서서히 뒤바뀌더니, 마침내 바닥과 천장이 반전한다. ―위는 아래로. 아래는 위로.

환계로 돌아왔음에도 늑대와 백록은 망설이지 않고 달렸다.

"자네! 제정신인가!"

뒤집힌 마천루가 원래대로 돌아왔고, 마천루의 상공에 있었던 던전의 경계를 비집고 떨어지는 것은―!

"……!"

거대한 이무기가 마천루와 충돌했다. 40t에 달하는 거구가 수백 미터나 추락한 충격을 견딜 수 있을 리가 없다. 폭음과 함께 건물이 붕괴했고, 그 여파로 대지가 울렸다. 구름처럼 치솟은 먼지가 대기를 뒤덮고 마침내 가라앉았을 땐―

"하… 자네?"

이미 마천루가 무너지고 주변이 초토화되어 있었다. 그에 늑대는 무안하다는 듯, 약간 시선을 돌렸다.

"……."

조금 예상이 틀어졌기 때문에. 사실, 현계가 아니라 환계였기에 벌인 일이기는 했다. 일이 틀어져도 수백 미터 상공에서 추락하는 거라면 만약의 경우에도 요정과 환수들은 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자네는 대체…!"

이젠 정말 질렸다는 듯, 백록이 고개 저었다. 한바탕 쏘아주고 싶었지만, 비천망의 사체를 먹기 위해서는 확실히 이 방법밖에 없었음은 알겠다. …그래. 그건 알겠는데.

"후우우우."

드물게도, 백록이 답답한 심정을 참지 못하고 한숨을 뱉었다. 원래, 백록이 지키고 싶었던 건 이 환계였으니까. 머잖아 복구될 거란 건 알고 있지만.

"이런 일을 벌일 거라면 하다못해 미리 말해주면 안 되겠나?"

"…미안."

늑대의 계산에 오산이 있었다면, 그건 던전이 붕괴하는 것이 늑대의 생각보다 더 느렸다는 것. 생각했던 대로라면 천장 가까이에서 비천망의 뇌를 망가뜨린 순간, 던전이 붕괴되고 천장― 바닥으로 떨어졌어야 했는데.

'생각보다 좀 늦었어.'

왜 던전이 붕괴할 때까지 시간이 걸렸는지 갸웃거리고 있을 때, 일어난 소란에 요정과 용벌레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

그에 늑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히 비천망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후우우…"

그 모습을 보던 백록은 억지로 심호흡했다. 비록 건물은 무너졌지만, 휘말린 환수들은 없었으니까. 이 또한 결국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복구될 터. 환계는 현계에 종속된 거울과도 같은 세계. 환계가 다시 현계를 비출 때, 환계의 풍경도 변할 테니까.

백록의 생각이 깊어질 무렵, 늑대는 먹고 있던 비천망의 살점 일부를 뜯어 용벌레들에게 건넸다.

"꺄아악~! 괴물 시체다! 괴물 시체!"

요정은 꺄르르 웃으며 늑대의 주변을 맴돌았고, 용벌레들은 화색을 띠며 모여들고 있었다. 무려 38t의 비천망의 사체 중 10kg도 되지 않는 살점이지만, 손가락 마디보다 작은 용벌레들이 먹기엔 충분하고도 남는 크기였다.

'한 가지 확인하고 싶어.'

비천망을 먹어가면서도 늑대의 시선은 용벌레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일전에 백록은 말했었다. 용벌레의 대부분은 굳이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 진화하려 하지 않은 채, 평생을 유충인 채로 살아간다고. 굳이 현계로 나가는 용벌레는 얼마 되지 않는다고.

'요정용으로 성장하는 방법은.'

십중팔구 무언가를 먹어 치우는 것. 늑대 자신이 레벨을 올리는 것과 비슷하게. 지금도 그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원래 자신의 크기에 비해 훨씬 큰 고기가 필요할 테지만, 비천망의 고기라면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다.

'혹시 내 생각이 맞는다면.'

[비천망을 섭취했습니다. 경험치와 포만감이 상승합니다]

[경험치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Lv.26 → Lv.27]

[EXP 137521 / 496722]

―비천망을 모두 먹어 치우자 27레벨까지 상승하고도 대략 10만에 가까운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었다. 거의 100만에 가까운 경험치를 획득한 셈.

'그런데도 2레벨…'

경험치의 단위가 달라지고 있다. 레벨이 오를 때마다 경험치의 요구량도 커지고 있다. 이래서야 벌써부터 다음 진화가 걱정이었다.

'그야 어려운 싸움은 아니었지만.'

백록의 도움이 있었긴 하지만, 일방적인 흐름이었다. 정말 위험했다고 느낀 순간은 손에 꼽았을 정도로. 만약 바닥이 있었거나 지상에서 싸웠더라면 비천망은 늑대의 상대가 되지 못했을 터. 그 점을 고려하더라도 아쉬움이 남는다.

"와~! 늑대가 커다란 뱀을 다 먹었어! 뚱뚱해! 뚱뚱해!"

"바보! 뚱뚱한 게 아니라 잘 먹는다고 하는 거야~!"

앉은 자리에서 비천망을 모두 먹어 치운 늑대를 본 요정들이 기겁했다. 그 사이, 나는 용벌레들을 확인했다. 아직 남아있는 용벌레. 그리고 그중에서.

[용벌레(우화 중)]

예상했던 대로 우화하기 시작한 녀석들이 있었다. 이제 더는 못 먹겠다는 듯, 용벌레들이 뻗어 있었지만, 건네줬던 10kg의 고기는 아직도 절반 가까이 남아있었다.

'예상대로.'

수십 마리나 되는 용벌레를 우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에 눈을 동그랗게 뜬 요정들이 우화중인 알을 주워들었고.

[멸망 확률 91.54% → 91.53%]

[0.01%만큼의 업을 획득했습니다.]

뒤집힌 마천루가 붕괴하고 0.12%의 멸망 확률이 내려갔고, 거기에 용벌레들을 우화시켜 0.01%를 추가로 획득했다.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역시.'

나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요정용들이 탄생하는 게 이 세계에 도움이 되는 거라면 멸망 확률이 내려가는 게 당연하다.

'이게 언제까지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당연, 요정용들이 계속 태어난다고 멸망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제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요정용들이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고, 일정 숫자 이상 불어난다면 더는 멸망 확률이 내려가지 않게 될 거다.

하지만, 이런 방법도 있음을 깨달은 게 중요했다. 분명 언젠가는 써먹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화 루트를 공개합니다]

마침내 기다리던 순간이 다가왔음에 늑대의 눈이 빛을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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