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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91화 (91/407)

〈 91화 〉 #44 Never Land (2)

금속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미로이자 미궁인 곳.

또한, 네버랜드의 시작점이기도 했다. 일렁이는 공간의 틈. 던전의 경계 너머에서부터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그림자를 두른 늑대였다. 늑대가 들어오자, 끝도 없는 몬스터들이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망할…'

푸른 뼈다귀들이 칼과 창을 휘두른다. 이곳이야말로 네버랜드 1구획. 단번에 그림자 아래로 파고들어 한 녀석을 바닥에 눕혔지만, 소란에 기척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스틸레톤(Steeleton)]

[신장 1.81m] [체중 199.7kg]

[힘 324] [민첩 288] [체력 476]

인체에서 뼈가 차지하는 중량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건 확실히 비정상이다. 아니, 애초에 스켈레톤이 아니라 스틸레톤이니까.

'밀도 높은 금속.'

마치 합금처럼 만들어진 몬스터. 특히나 단단한 맷집을 과시하듯 476이라는 체력은 압권이었다.

'문제는.'

한 마리라면 상관 없다. 높은 체력과 비정상적인 단단함이라곤 하지만, 탈식이 있는 한 무조건 쓰러뜨릴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건 놈들의 끝도 없는 숫자.

'1구획 데스 페어.'

1구획의 본래 이름은 글로벌 페어지만 던전이 된 이후, 네버랜드 1구획의 이름은 공평한 죽음(Fair Death)이 되었다.

'왜냐하면.'

이 끝도 없이 포진해 있는 스틸레톤들 때문에. 날아오는 검을 탈식으로 물어뜯고 귀화를 일으켰지만, 역시 간단히 타오르진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밀쳐내고 잠깐 정신을 집중했다.

'……없어.'

탐지를 펼쳐봐도 공략대라 생각되는 기척은 없다. 아무래도 진작 1구획을 돌파한 모양인데.

'그럼 최소 2구획까지는 갔다는 뜻인데… 생각보다 네버랜드가 빨리 열렸던 건가?'

아니면 공략대의 수준이 높았거나. 스틸레톤이 끝도 없이 밀려오는 걸 보고, 페리가 점멸을 사용했다. 놈들의 포위망에서 빠져나온 순간, 허공에 발판을 만들었다.

슬쩍 뒤돌아 던전의 경계를 확인했지만, 들어온 헌터는 없는 모양. 쫓아올 수도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하긴. 네버랜드가 그리 만만하지는 않지.'

함부로 진입할만한 던전이 아니다. 괜히 대규모 공략대를 만드는 게 아니란 뜻이다. 설령 A클래스 헌터라고 해도 살아남을 수 있다곤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아니, 십중팔구 1구획은커녕…

'여기서 죽을 게 뻔해.'

발판에 발판을 이어 밟고 계속해서 나아갔다.

'아무리 경험치를 준다고 해도 놈들과 싸우는 건 불리해.'

아니, 미친짓이다. 한 마리도 얕볼 몬스터가 아니건만, 하물며 이만한 숫자와 싸우는 건 불가능하다. 게다가 지금 당장은 공략대를 찾는 게 급선무였다. 그쯤, 스틸레톤들이 무릎을 굽히더니.

"……!"

단숨에 뛰어올랐다. 수 미터의 미궁과 미로의 복합형 던전. 발판을 만들었다고 해도 그리 높지는 않다. 파도 타듯 뛰는 놈들을 피해 계속해서 발판을 밟았다. 밟고, 밟고, 밟는 중에 화살이 날아오고 그걸 물어뜯었지만, 부러지지 않았다.

'망할…'

놈들을 이루고 있는 금속과 이 화살은 같은 재질이니까. 다만, 탈식으로 먹어 치우는 건 가능했다. 수십 발의 화살 세례가 나를 노리고 날아오다 천장에 부딪쳐 떨어졌다. 그대로 놈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화살― 그러나 동일한 금속으로 이루어졌다는 건 별다른 피해를 입진 않는다는 뜻이다.

체력에는 강인함(强靭)이 포함되어 있었고, 강인함은 맷집과 몸의 단단함을 나타내는 것이었으니까.

"……!"

―스틸레톤들은 금속으로 이루어진 서로를 투포환이라도 된다는 듯, 던지기 시작했다. 300이 넘는 힘으로 서로가 폭탄이라도 된다는 것처럼.

미궁의 벽에 부딪혀도 놈들은 내게 손을 뻗어왔다. 발판을 밟고 동선을 예측해봤자, 화살과 함께 미궁 전체를 파랗게 덮는 끔찍한 광경을 전부 피할 순 없다.

지나치지 못하면 붙잡힌다. 그래서, 놈들을 밟고 뛰어올랐다. 전부 피할 수는 없어 결국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스틸레톤의 손이 324이라는 무식한 힘으로 마치 프레스 기계처럼 내 발목을 조였다.

"……!"

귀화를 일으켰음에도 금속 병정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녹일 수야 있겠지만, 지금 그럴 시간은 없다. 결국, 그림자로 절단해야만 했다. 놈이 아니라, 놈이 붙잡은 내 발목을.

―펼친 영량이 충분히 퍼져나갔을 때, 재빨리 천장으로 숨어들었다. 천장에 진 어둠,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어 가능한 한 빠르게 움직여 달렸다.

'오래가지는 못할 거야.'

그림자 속에 숨어드는 게 무적은 아니다. 지형이 일그러지는 공격이라면 혹은 마력을 사용한 공격이라면 데미지를 입는다. 하지만, 이 미궁 벽 또한 놈들과 같은 금속으로 만들어졌다. 바닥이라면 모를까 천장을 부수는 건 절대 쉽지 않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놈이 이 미궁에 딱 하나 있었다.

'미궁의 보스.'

진짜 보스는 아니지만, 그렇게 통용되는 놈이 있었다. 얼마간 미궁을 달렸을 때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난히 커다란 스틸레톤. 이 미궁 중앙을 가로막고 있는 스틸 자이언트(Steel Giant). 넓은 미궁이 좁아 보이는 거대한 금속 거인. 놈이 들고 있는 거대한 몽둥이가 휘둘러진 순간, 그림자 속에서 빠져나왔다.

'힘 634…!'

민첩과 체력은 그렇게까지 특출나지 않지만, 다른 스틸레톤들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무식한 힘이 문제다. 같은 금속이라도 저 힘으로 휘두른 몽둥이라면 천장이 무너질 게 뻔하다.

"……!"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림자 속에서 뛰쳐나와, 되려 놈에게 달려들었다. 아직 발목이 다 재생되진 않았지만, 서서히 아물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없어…!'

공략대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스템은 괴멸할 거라 했다. 지금, 놈과 싸우고 있을 시간적 여유 따위는 없다. 한시라도 빨리 그들을 찾아야 한다.

―돌풍을 일으켜봤자, 스틸 자이언트는커녕 스틸레톤 한 마리 밀어낼 수 없을 터. 하지만, 압축시킨 돌풍을 단번에 터뜨리자 이야기는 달라졌다. 압축된 바람이 풀어 나온 그 추진력을 이용해 순식간에 나아갔다. 마치 쏘아진 로켓처럼. 수십 발의 화살과 거인의 일격을 피해 앞으로. 더욱 앞으로.

폭발하는 돌풍에 의해 나아갈 때, 촉수를 변화 시켜 임시로 발목을 만들었다. 발판을 밟고 한 번 더 도약하자마자 커다란 폭음과 함께 천장이 내려앉아 폭삭 무너졌다. 역시 이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

다만, 그렇다고 놈이 포기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섬뜩한 기척. 기어코 천장을 무너뜨린 금속 거인이 스틸레톤을 밟고 차며 달려오고 있었다. 짓밟힌 스틸레톤들은 그래도 상관없다는 듯 금속 거인을 밀어준다. 하나 된 집념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끝까지 붙어 따라붙어 오는 놈. 촉수로 발목을 만들었다지만, 그건 진짜 내 발이 아니다. 전력으로 달리는 속도와는 거리가 멀다. 본래라면 따돌릴 수 있었을 테지만, 발목이 재생되지 않은 지금은 어렵다.

게다가 서로를 던지는 스틸레톤과 화살 세례까지 피해야 한다는 페널티까지 있었으니까.

결국, 거리가 좁혀지고 만다. 충분히 간격을 좁혔다고 생각한 놈이 몸을 던지듯 뛰어올랐고, 그 거대한 손이 나를 감싸 쥐기 직전―

"페리!"

"뀨우우웃!"

가까스로 페리의 점멸로 벗어날 수 있었다. 자신을 던지듯 했던 녀석은 미궁의 바닥에 엎어졌고, 마침내 미궁의 끝을 알리는 거대한 문이 보이기 시작헀다.

"―――!"

넘어진 금속 거인. 그 아래 깔린 스틸레톤들이 부서지고 으스러졌다. 그런데도 스틸 자이언트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스틸레톤을 쥐더니, 전력으로 던졌다―!

'…기다리고 있었어!'

오히려 놈이 던져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투척은 무척이나 빨랐지만, 뒤집힌 마천루에서 보았던 음속을 넘어선 속도로 달려들던 천둥매에 비하면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린 속도였다. 직감과 간파. 놈이 던진 스틸레톤의 방향을 읽고, 미리 그 동선에서 벗어났다. 수십 발의 화살 세례가 뒤따르는 와중― 다시 한번 돌풍을 일으켜 발끝에서부터 폭발시켰다.

"뀨우우웃…!"

강한 풍압에 날아갈 뻔한 페리를 붙잡은 순간, 금속 거인이 투척한 스틸레톤이 폭음을 내며 미궁의 거대한 문과 부딪쳤다.

'됐어!'

634. 무식한 힘과 한없이 단단한 스틸레톤과 부딪친 충격으로 활짝, 문이 열렸다. 본래 A클래스에 상응하는 힘을 가지고 있거나 스틸 자이언트를 쓰러뜨리는 것 외에 미궁의 문을 열 방법은 없다. 어느쪽이든 내게는 불가능한 방법. 그렇기 때문에 놈이 던져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성공이야.'

돌풍의 추진력을 받아 내달리던 중, 드디어 발목의 재생이 끝났다. 거추장스러운 촉수를 버리고 허공에 발판을 만들어 전력으로 도약했다. 수십 개의 화살이 동시에 시위를 놓았고, 무시무시한 화살 세례가 뒤따르는 중, 닫혀가는 문의 틈새를 비집고 아슬아슬하게 벗어날 수 있었다.

"……."

거친 숨을 몰아쉰 순간, 한 박자 늦게 수십 발의 화살 세례가 미궁의 문을 두드렸다. 그에 심호흡과 함께 숨을 가라앉혔다. 어찌어찌 도망칠 수 있었지만, 기진맥진 기가 빠지는 기분이었다. 스틸 자이언트가 문을 열어준 것―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게 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미궁을 빠져나온 건 절대 운이 아니다.

'…사실은.'

A클래스에 버금가는 힘이나 스틸 자이언트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다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페리의 점멸이라면 상관없이 넘을 수 있었을 터. 만약의 상황이라도 대비하고 있다. 그동안 네버랜드를 대비해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 했는지 모른다.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그걸 이 던전에서 증명할 뿐.

상념에서 벗어나 발아래, 이젠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짓밟았다.

[스틸레톤을 섭취했습니다. 경험치와 포만감이 상승합니다]

아까 문과 부딪쳤던 충격으로 산산이 조각난 스틸레톤. 그렇게 지천에 깔렸던 놈들인데 고작 한 마리로 3만에 달하는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었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영 아쉬움이 남는다.

'…먹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럴 시간도 없고 그럴 여유도 없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정면을 바라봐야만 했다.

"뀨우우우…?!"

그에 페리가 불안하다는 듯 달라붙었다. 짙은 회색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좁고 구불구불한 미로. 미궁의 끝은 바로 여기였다. 그렇다고 여기가 2구획이라는 뜻은 아니다.

'1구획의 일부였을 뿐이야.'

미궁과 미로 그리고 광장 이렇게 3구역이 합쳐 1구획을 이루고 있다. 지금 막 빠져나온 미궁조차 1구획의 일부였을 뿐. 괜히 15년을 넘게 공략하지 못한 던전이 아니라는 뜻이다.

'…원래는 여기가 가장 골치 아프지만.'

네버랜드가 폐쇄되면 다시 개방될 때 미로의 구조가 완전히 달라진다. 애초에 이 벽부터가.

"……."

몰래 스멀스멀 뻗어 나온 촉수를 내 촉수가 붙잡았다. 화들짝 놀란 촉수가 숨어들려 했을 때, 그림자로 절단했고 그것이 떨어져 바닥에서 꿈틀거렸다. 그것을 강하게 짓밟았을 때.

[기생 촉수를 섭취했습니다. 경험치와 포만감이 상승합니다]

스테이터스가 높은 몬스터는 아니다. 오히려 네버랜드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낮은 편에 속하지만.

'귀찮아.'

은신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몬스터다. 게다가 몰랐던 사실이지만, 통찰해 본 결과 흉내 스킬도 가지고 있었다. 또 현혹과 극독 같은 귀찮은 스킬까지도. 설령 미리 놈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해도, 미로 전체를 뒤덮은 감각을 교란하는 불쾌한 안개가 깔린 미로에서 기생 촉수를 발견하기란 절대 쉽지 않았을 거다.

―이제 내게는 통용되지 않는 이야기지만.

'탐지가 있으니까.'

고작 E등급 은신으로 탐지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 벽에 들러붙어 숨어 있는 놈들의 존재가 손에 잡힐 듯 느껴지고 있었다.

'…다행이야.'

덕분에 이 미로를 돌파하는 게 그리 어려울 것 같지는 않다.

비록 미래이기는 하지만, 소설 속 주인공은 네버랜드를 공략하는 데 성공했었다. 마찬가지로 나도 이 네버랜드 공략에 필요한 만큼은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동안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했었다. 어떻게 하면 이 던전을 공략할 수 있을지. 어떻게하면 클리어할 수 있을지. 하지만 그렇다 해도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내봤자, 능력이 받쳐주지 못한다면 뚫을 수 없다. 네버랜드는 그렇게 만만한 던전이 아니니까.

'…미로는 골치 아프지만.'

탈출하는 방법은 쉽다. 이런 상황이기에 사용할 수 있는 거였지만 모로 가든 도로 가든 2구획만 가면 된다.

'이미 지나간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까.'

내게는 후각이 있다. 냄새를 쫓아 공략대가 지나친 길을 뒤따르기만 하면 길을 헤매지 않을 수 있으리라.

"뀨우우웃!"

속도감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페리를 그림자와 촉수로 감쌌다. 사실 이번만큼은. 이 네버랜드에 페리를 데려오는 데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점멸은 반드시 필요해.'

이 던전에서 페리의 도움은 필수 불가결하다. 실제, 페리가 없었다면 미궁을 빠져나오지 못한 채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녀석을 데려온 건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었다.

"뀨우우우…?"

의아해하는 녀석을 쓰다듬어주고, 나는 발길을 재촉했다. 이제 고작 첫 번째 구역을 빠져나왔을 뿐이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그렇게 1구획의 첫 번째 구역인 미궁을 돌파한 늑대와 어린 용은 두 번째 구역인 미로를 헤쳐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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