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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94화 (94/407)

〈 94화 〉 #45 암운(暗雲)

주변을 둘러보니 거친 밀림이었다. 탐지를 펼치고, 느껴지는 기척에 곧바로 은신을 사용했다.

"끼우웃!"

처형자가 보이지 않게 되자, 무서워 벌벌 떨던 페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날개를 펼치고 즐거워했다.

놈에게 쫓겨 어쩔 수 없이 차원의 틈새를 넘었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100% 죽었을 테니까. 잘못된 곳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 혹은 아예 경계를 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있었는데,

'…다행이야.'

내가 아는 중에 네버랜드에서 밀림이 펼쳐진 곳은 2구획밖에 없다. 제대로 떨어졌다. 즉, 여기가 2구획 몬스토피아가 맞는다는 거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초입은 아닌 것 같은데.'

초입이라면 공략대가 정리했을 테고, 이미 베이스캠프를 설치했을 테니까. 2구획인 건 확실하지만…?

'……?'

느껴지는 물 냄새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다.

'…2구역인가 본데.'

2구역이란, 거대한 밀림을 가로지르는 강 너머를 뜻한다. 원래라면 1구역의 초입에 떨어졌어야만 했는데…

'차원의 틈새가 갈려서?'

처형자의 마지막 참격이 틈새를 갈랐기 때문에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게 아닌가 싶었지만, 오히려 좋다.

'…초입에 떨어졌다면 난감했을 테니까.'

아무리 은신이 있다지만, 후발대의 베이스캠프에 떨어지고도 그들의 눈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긴 어렵다. 최악의 경우도 염두에 두기는 했지만, 분명 마찰을 빚었을 테니 2구역에 떨어진 건 다행한 일이었다.

'내 모습이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던전에서 헌터가 몬스터의 사정을 봐주진 않으리라. 대화를 할 수 있을거란 보장이 없다. 일단, 공략대가 언제 또 무슨 이유로 괴멸할지 모르니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들을 지켜보는 게 정답이리라.

'그러려면.'

2구역에 몬스터의 기척이 느껴지는 걸 보아하니, 아직 1구역을 벗어나지 못한 모양. 냄새를 쫓아 강을 향해 달렸다.

***

"……후우."

백군태는 긴 숨을 들이켜며 심호흡했다. 전부는 아니지만, 가까스로 1구역 대부분을 정리하는 데 성공했다. 공략대의 태반 이상이 큰 부상을 입기는 했지만, 병아리들을 제외하면 의외로 사망자는 적었다.

'강태호 저 자식.'

검공(劒公)이라는 칭호는 도박으로 딴 게 아니다. 무식하게 커다란 패태검 한 자루로 제 형을 제외한 '현존하는' 모든 검사를 꺾어 붙여진 명칭. 그 실력은 녹슬기는커녕 더욱 발전해 갈고닦아져 있었다.

'괜히 설쳤던 건 아닌 모양이군.'

안 그래도 괴물 같았던 놈이 한 층 강해졌다면 이제는 정말로 칠영웅에 견줄 실력을 길렀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 정도로는 턱도 없다.

'…그래. 봉쇄로 바꾼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이런 생각은 좀 그렇지만, 백군태는 홍유리가 다쳐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막바지에나마 인원이 늘어난 지금도 2구획에서 이 고역을 치르고 있는데 3구획으로 넘어갔다간, 정말 공략대가 전멸했을지도 모르니까.

'거긴 정말 끔찍하지.'

언젠가의 기억을 떠올린 백군태가 몸서리쳤다. 단 한순간만 길을 벗어나도 죽을 각오를 해야하는 곳. 육신이 아닌, 정신에 파고드는 고통. 하지만 홍유리가 다친 덕분에 목적을 바꿀 명분이 생겼고.

'2구획까지만 처리한다면…'

이전 구획에서 그다음 구획으로 나아가는 데는 조건이 필요하지만, 그 반대는 조건이 없다. 쉽게 말해서 1구획에서 2구획으로 넘어가는 데 광장에서 의식을 치러야 했지만, 2구획에서 1구획으로 돌아가는 건 자유라는 뜻. 원한다면 언제라도 차원의 틈새를 넘을 수 있다.

'그리고 광란.'

광란이란, 네버랜드의 모든 몬스터가 미쳐 날뛰는 현상을 말한다. 광란에 물든 몬스터들은 맹목적으로 침입자, 공략대를 쫓게 된다.

'…그래서 한번 호되게 당한 적이 있었지.'

그때, 백군태도 있었다. 지금처럼 지휘권을 잡았던 건 아니지만, 단순히 정보를 얻기 위해 최대한 많은 구획을 돌아보려 했던… 하지만 광란이 일어나 공략대의 태반이 사망하고 나서야, 네버랜드 공략의 뼈대가 바뀌었다.

'모든 몬스터를 처리해야 한다고.'

차라리 주기가 확실히 정해진 거라면 모를까, 네버랜드의 개방 및 폐쇄는 무작위이기 때문에 예측하는 건 어렵다. 따라서, 자연스레 모든 몬스터를 처치하는 것으로 갈래가 바뀌었다.

아직 1구역을 다 처리한 건 아니다. 백군태는 이은하를 쳐다봤고, 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대견히 견디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왜? 관심있수?"

그러자, 어느새 다가온 강태호가 느물거렸다.

"거, 아재 나이엔 과한 욕심 아니오? 쟤가 학교 졸업한 지 이제 1년인가 2년인가 그랬을 텐데~?"

"이 미친놈이?!"

휘두른 주먹을 강태호가 낄낄거리며 잡자 백군태는 눈을 부라렸다.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어도 유분수지. 나이가 거의 세바퀴나 차이가 나는데.

"……됐고, 아무튼 저 애는 대체 뭐냐?"

"뭐가?"

"마법은 아니고. 분명 마력을 쓰는 게 맞는데."

마법사들도 급하면 마력을 무기처럼 휘두르듯 사용하고는 한다. 그 무식한 휘두름에는 기예도 없고 기술도 없지만, 이은하만큼은 달랐다. 마법과 마력― 마치 양면에 발을 하나씩 걸치고 있는 듯한 모습.

그건 백군태의 기나긴 헌터 생에서도 처음 보는 방식이었다. 마력이 만능에 가까운 힘인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정말 만능인 건 아니다.

아니, 더 정확히는 사용하는 이가 전능하지 않다면 만능일 수가 없다. 한데 이은하가 마력을 다루는 방식은 여태 백군태가 본 이들 중에서 가장 만능에 가까웠다.

"모르오. 유리가 가르치던데 별로 관심 없수다. 애초에 내 팀도 아니고."

"뭐? 관심이 없어?"

"왜? 컨택이라도 해보시게?"

능글맞은 물음에 백군태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마음이 없잖아 있기야 하다마는. ……쯧."

그랬다간 괜한 욕심에 아까운 재능 하나를 버리는 꼴이리라. 마력에 관한 한, 스퀘어를 제한다면 진홍 이상가는 이는 없을 테니. 고개 저은 백군태가 목청껏 소리쳤다.

"언제까지 퍼질러져 있을 셈이냐! 회군한다!"

짧은 휴식의 끝에 공략대는 후발대가 있는 베이스캠프로 회군하기 시작했다. ―지친 상태로 무리하게 공략을 이어나갈 순 없다. 다소 시간은 지체되겠지만, 네버랜드라는 던전을 질릴 정도로 경험해 본 백군태는 안전을 우선시했다.

***

[지옥 사냥개(Inferno Hound)]

[체장 1.64m] [체고 82.2cm] [체중 78kg]

[힘 243] [민첩 328] [체력 298] [마력 299]

[보유 스킬]

[뛰어난 후각(D)] [질주(E)] [미약한 재생(F)]

―강까지 도착했을 땐, 대충 이런 놈들이 무리 지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은신 상태이기는 한데.'

이전에 내가 그랬듯, 놈들도 후각으로 나를 쫓아온 듯하다. 놈들의 입에서는 녹색 불꽃이 이글거리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털은 타올랐는지 없고, 눈도 없다. 그리고 이놈들 한 마리 한 마리가 지리산의 괴물 늑대를 훨씬 웃도는 괴물이란 건 확실하다.

그런 놈들을 보고 나는 침을 삼키지 않을 수 없었다. …군침이었다.

'이런 개꿀이 있다고……?'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다른 곳도 아닌 네버랜드. 심지어 1구획도 아니고 2구획에 고작 이딴 놈들이 있다고? 아무리 무리 짓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냥 먹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내가 가만히 서 있자 겁먹었다고 생각했는지 단숨에 달려든다. 강철같은 턱이 나를 씹었으나, 되려 당황하며 버둥거린다.

'……진짜 쉬운데?'

[경화(D) Lv.9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경화(D) Lv.9 → 경화(D) Lv.10]

[경화(D) Lv.10이 최대 레벨에 도달했습니다. 경화(D) Lv.10 → 뛰어난 경화(C)]

이빨을 잘근잘근 씹고 발톱을 할퀴며 발버둥 쳐봤자 하나도 박히지 않는다. 경화와 완화가 있는 이상은 말이다. 속에서 이글거리는 녹색 불꽃이 퍼져 올랐지만, 머잖아 치솟은 검은 불꽃이 지옥불을 집어삼켰다.

"­―――!"

경악하는 놈들이 그렇게 타올라 쓰러지고, 곧장 도망치려는 놈들을 향해 가시를 쏘아냈다. 마력이 담긴 가시가 녀석들을 쫓아 꿰뚫었다. 급소를 꿰뚫린 놈들은 죽기야 했지만, 아무래도 전부 죽이는 건 무리였다.

'어차피…'

굳이 쫓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놈들을 쫓는 것보다 1구역으로 가 공략대의 괴멸을 막는 게 더 급하니까. 그래도.

'…기왕 잡은 걸 그냥 버리기는 아까우니까.'

[지옥 사냥개를 섭취했습니다. 경험치와 포만감이 상승합니다]

놈들을 먹어 치운 뒤, 남은 경험치는 대략 10만. 레벨 업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정말 강가를 넘어 1구역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별안간 아까 도망쳤던 지옥 사냥개들이 다시 돌아와 이를 드러냈다.

"……?"

먹잇감이 제 발로 기어 온 상황에 의아해하고 있었는데, 머잖아 헛웃음을 터뜨리며 실소했다. 의기양양하게 돌아온 녀석들이 머리 둘 달린 자기네 우두머리를 앞세웠기 때문에.

우두머리― 쌍두견이 자신 있다는 듯, 콧김을 뿜으며 달려들었다. 대부분 능력치가 400에 가깝다. 이 정도라면 몬스토피아에 있어도 그리 이상하진 않지만.

"……."

발아래 펼친 영량, 그림자가 순식간에 심장을 꿰뚫었다. 그래도 의외로 견디는 듯 달려들더니.

"―――!"

엎어지면 닿을 곳까지 다가와, 정말로 엎어졌다. 그렇게 쓰러진 놈에게 발을 올렸고.

[지옥 쌍두견을 섭취했습니다. 경험치와 포만감이 상승합니다]

―놈들이 다시 도망치려 했지만, 이번엔 한 마리도 도망가지 못했다.

'사냥개라는 이름이 아깝다.'

[EXP 524397 / 530232]

그렇게, 늑대는 1구역을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

"……커흑!"

끔찍한 전격에 폐부가 타들어오르고, 전신이 화상에 뒤덮였으면서도 우택은 죽지 않았다. 최후의 순간, 가진 마력 전부를 방어에 사용했기 때문에. 덕분에 머리가 깨질 듯이 지끈거렸다. 곧바로 핸드폰의 긴급 통화버튼을 누르려다가, 자신이 이 지경인데 핸드폰이 작동할 리가 없단 걸 깨닫고 쓰게 웃었다.

아직,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어지간한 건 체력으로 버티겠지만, 지금은 도저히 무리였다. 오히려 숨이 붙어있다는 게 기적으로 여겨질 정도니까.

가까스로 고개를 돌려보니, 봉쇄조의 전원이 검게 타올라 있었다. …제대로 된 반항조차 하지 못했다. 아니, 그럴 겨를이 없었다.

어느샌가 몰려왔던 먹구름이 두둥실 떠오르더니, 거대한 벼락이 내리쳤기 때문에. 천둥을 동반한 낙뢰가 떨어진 순간, 용인시 전체가 정전됐고 다시 눈을 떴을 땐, 이미 이렇게 되어 있었다.

'구조는……'

머잖아 올 거다. 네버랜드로 인해 다들 대피했지만, 이만한 소란이라면 금세 구조가 올 거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든 상황에서 우택은 한 번 더 죽은 피를 토했다.

"……!"

번개가 내리치기 전, 그는 언뜻 느꼈었다. 세 명의 기척이 다가오는 것을. 고작 셋에 불과했지만…….

……만약 그들이 경계를 넘은 거라면, 어쩌면 그 셋이라면, 공략대 전체가 전멸을 각오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부디 무사하시길…'

그것이, 그가 다시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떠올린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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