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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95화 (95/407)

〈 95화 〉 #45 암운(暗雲) (2)

입 없는 가면을 쓴 이가 담담히 끄덕였다. 푸른 불꽃을 두른 갑주의 사내는 묵묵히 팔을 떨쳤다. 데구르르 한참을 구른 머리가 자신의 발치에 닿자, 로브를 뒤집어쓴 거대한 괴인이 콧김을 내뿜었다.

"―――!"

괴성을 지른 괴인은 떨어진 머리를 집어 들더니, 양쪽으로 달린 뿔을 쥐고 힘을 가했고 머잖아 머리는 처참히 찢어졌다. 그럼에도 괴인은 성에 차지 않았다는 듯, 들끓는 피가 가라앉지 않았다는 듯,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

괴인이 울부짖는 중, 가면과 갑주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 ―――."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그저…"

"――――――? ――――."

무언가를 묻는 듯하다가, 되었다는 듯 고개를 저은 가면이 열린 차원의 틈새에 팔을 집어넣었다. 마치 무언가를 잡아 비틀듯, 혹은 무언가를 헤집듯이. 그렇게 잠깐 틈새를 만지작거리더니.

"――――."

머잖아 차원의 틈새가 둘로 갈라졌다. 그렇게 찢어진 틈새를 가리킨 가면이 괴인과 함께 들어가자, 잠깐 광장을 되돌아보던 갑주는 뒤를 돌아보곤, 가면이 들어가지 않았던 차원의 틈새를 향해 손을 뻗었다.

―곧, 피와 살로 더럽혀진 광장에는 두 갈래로 갈라진 산양의 머리만이 나뒹굴게 되었다.

***

뭍에 올라오자마자 거세게 몸을 털었고, 저번처럼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된 페리가 심통을 부렸다.

"뀨! 뀨뀨뀨!"

불퉁하게 꼬리로 치는 녀석을 쓰다듬어 달래주고 탐지를 펼쳐 기척을 찾아냈다. 얼마 남지 않은 몬스터의 기척… 슬슬 1구역 정리가 다 끝나가는 모양이었다.

'…아직 무난하게 진행 중인 모양인데.'

아까 강을 지나던 중에 은자림을 보기도 했다. 네버랜드의 공략법은 머릿속에 숙지해두고 있기에, 십중팔구 그녀가 이끌던 이들이 후발대였음을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인원이 적기는 해.'

후발대와 본대를 합쳐 느껴지는 기척은 200명 언저리. 하나하나가 뛰어난 헌터임을 생각해보자면 절대 적은 숫자는 아니겠지만, 네버랜드를 공략하러 왔다고 하기엔 비교적 초라한 게 사실이다.

'게다가 스퀘어도 없는 것 같고…'

거기에 더해 고원까지 없는 모양… 마침 1구역을 모두 정리한 공략대의 대장이 짧게 브리핑했을 때, 그 내용을 들은 나는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3구획으로 가지 않는다고?'

분명 2구획까지 처리하는 걸 목표라고 했다. 하지만 그러면 더 의문이 남는다.

'그럼 뭣 때문에 괴멸한다는 거야?'

유일한 가능성이라면 2구획 보스겠지만, 그 가능성도 작을 것 같다. 그들도 2구획의 보스에 대해서 알고 있을 테니까……?

"……!"

그러다가 이 광활한 밀림, 강 저편에서 '누군가'의 기척을 느끼고, 무엇보다 몰려오는 먹구름을 보곤 두 눈을 부릅뜨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분명, 2구역에서 강을 건널 때까지만 해도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마치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나처럼…!'

처형자의 일격에 차원의 틈새가 갈라졌고, 그에 2구역으로 떨어졌던 것처럼. 내 경우엔 전혀 예상치 못했고, 또 우연히 벌어진 일이었지만.

'놈이라면?'

침묵하는 입. 놈이라면 차원의 틈새를 찢고 떨어질 방향, 좌표를 의도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아니, 분명 그럴 수 있을 터.

'망할.'

외부의 개입― 아예 생각을 못 했던 건 아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초입에서 나타날 거라 생각했다. 나처럼 2구역에 떨어질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네버랜드. 이 최악의 던전을 그리 쉽게 뚫고 들어올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했는데 그들에게 불가능할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 그걸 너무 늦게 깨닫고 말았다.

[Lv.30 달성 조건 : 네버랜드 공략대의 괴멸을 막을 것]

―즉, 공략대가 괴멸하는 건 네버랜드 때문이 아니었다는 거다. 늑대는 망설일 시간이 없다는 듯 곧바로 강으로 뛰어들었다. 제발 늦지 않기를 바라면서.

***

1구역과 2구역을 잇는 커다란 강― 마침내 강을 건너 2구역에 내려섰을 때, 옥연의 로드, 김주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군요?"

마침 뗏목에서 내린 은자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그래요. 유난히 적어요."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2구역에서 느껴지는 몬스터의 기척이 유난히 적다. 마치 누군가가 쓸어버린 것처럼. 하물며, 곳곳에 피 냄새가 가득하다. 굳이 마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코를 찌르고 들어올 만큼이나 강렬하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김주섭은 침음을 흘렸다. 강에도 몬스터는 존재했고, 수면 아래를 경계하느라 2구역은 신경 쓰지 못했는데, 지금 막 내리고 보니 2구역의 상황은 절대 정상이 아니다. 마치 무언가가 학살이라도 벌인 듯한 모양새였다.

"혹시 보스가 날뛴 걸까요?"

김주섭의 추측에 은자림은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하지만…"

지난 15년 동안 그런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2구획의 보스는 광란이 일어나지 않는 한, 누군가 깨우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누군가가 선행해 들어와 2구역의 보스를 깨웠다는 말일까? 그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공략대는 미리 대기하다가 네버랜드의 문이 열리자마자 진입한 거였으니까. 그들보다 선행한 이들이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점점 강해지는 이 불길함은 대체…….

'정말 이게 2구획의 보스라고……?'

어느새 정체 모를 불길함에 휩싸인 은자림은 입술을 씹었다.

"……일단 진행하도록 하죠. 더 지체할 수는 없으니까."

머잖아 본대가 1구역을 정리하고 2구역으로 넘어올 터. 그전까지 2구역의 초입을 정리하고, 다시 베이스캠프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굳이 초입의 몬스터를 정리할 필요는 없어졌다. 적당한 위치를 찾아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기만 하면 될 뿐. 따지고 보면 일이 편해진 셈이다.

"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말꼬리를 올린 김주섭이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은자림과 김주섭이 눈을 마주쳤고, 둘의 목울대가 넘어간 순간, 바닥이 울리기 시작했다.

"……!"

은자림이 느낀 불길함은 헛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예상은 적중했고, 머잖아 피투성이 로브를 뒤집어쓴 커다란 괴인이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또한, 그들의 머리 위로 짙은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

"이건 또 무슨 개 같은 상황이지?"

막 1구역을 전부 정리하고 짧은 휴식을 하던 와중, 하늘을 올려다본 강태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재. 2구획에 먹구름이 뜬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 있소?"

"…없다. 그리고 뭣보다 저기는."

임시로 작성했던 지도를 펼친 백군태가 눈살을 찌푸렸다. 마찬가지로 강태호 또한 침음을 흘렸다.

"……후발대가 있는 방향인데."

분명, 후발대가 초입을 정리하고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기로 했던 방향의 근처였다. ―여기서도 저릿하게 느껴질 만큼 몰려오는 암운에는 끔찍한 마력이 담겨있다. 아니, 끔찍한 마력이 담겨있는 게 아니라…

"먹구름 자체가 마법이로군."

뇌전을 다루는― 어떤 식으로든 옐로우 스퀘어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리라. 다만, 스퀘어가 왜? 아니, 그보다 어떻게 자신들보다 먼저 2구역에 도착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마찬가지로 먹구름을 본 헌터들의 웅성거림이 커지자, 구진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망할.'

다른 이들은 모르겠으나, 구진하만큼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덕적도― 그 섬에서 일어난 참변. 수많은 살덩이와 싸웠던, 그리고 얼굴 없는 가면. '침묵하는 입'과 직접 싸웠던 구진하만큼은.

'……놈이다.'

착각할 여지 없는 이 강대한 마력. 뇌전을 다루는 마법사, 변절자중에 이런 괴물이 더 있으리라곤 생각하기 어렵다.

[그래. 소멸했네. 나도 침묵하는 입을 죽였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네. 그것도 세 번이나]

[여태 처치한 간부만 둘일세. 하지만 침묵하는 입은 달라. 놈만큼은 몇 번이고 끈질기게 돌아오더군]

―광휘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거다. 침묵하는 입은 또 한 번 살아 돌아오고 말았다. 강태호와 백군태에게 접근한 구진하는 다른 공략대원들의 눈치를 살피고, 고원과 탕아들이 관계되었다는 이야기를 빼놓고 적당히 각색해 들려주었다.

"…시발. 그랬다고 듣기는 했었지."

이미 그에 대한 모든 사항을 보고 받은 적 있던 강태호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최소한, 놈들의 간부인 침묵하는 입이 여기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지금 우리를 습격한 놈들이 '탕아들'이라는 조직이라고?"

백군태가 정리한 말에 구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후! 정말 미쳐 돌아가는군."

네버랜드 봉쇄만으로도 쉽지 않은데 의문의 조직이 휘젓고 있다는 말에 백군태는 깊은 한숨을 뱉었다. 다른 이가 말한 거라면 정보의 신뢰성을 의심하겠지만, 여명의 세검사가 헛소리를 늘어놓을 리는 없다. 무엇보다, 강태호 또한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 곧, 백군태가 크게 소리쳤다.

"지금부터 공략대의 목표를 변경한다! 후발대와 합류, 아니 구원을 목표로 최우선으로 움직인다! 지금, 당장 도하를 시작해라!"

그렇게, 공략대는 곧장 뗏목을 띄웠고, 그보다 조금 먼저 기척을 느끼고 있던 이은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믿기 어렵다는 듯, 그녀의 눈동자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연신, 그럴 리가 없다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

"Vin nori negri―"

가면이 영창을 시작하자, 서서히 암운이 드리웠다. 세상이 어두워지는 듯한 그 모습에 괴인은 흥분해 울부짖었다. 드디어, 드디어 찾아온 시간에 거센 콧김을 내뿜고, 억제할 수 없는 욕망이 들끓어 본성이 튀어나왔다.

"우오오오오오오―――!"

수 미터나 되는 피와 살점으로 범벅이 된 로브를 누더기처럼 뒤집어쓴 그가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달리자, 걸음마다 지면이 울렸다.

"Este voia lui Dumnezeu, moartea ta."

어느새, 황색 마력에 휘감겨 절벽을 내려보며, 가면은 자신의 영창을 이어나갔다. 어느새 후발대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괴인이 살육을 이어가고 있었다. 무자비한 학살― 막을 수 없는 힘에 후발대가 학살당하는 모습을 보며, 가면은 담담히 영창을 이어나갔다.

"Judecățile cerului aduc tăcerea―"

드리운 암운에 뇌전이 어리기 시작한다. 5절― 머잖아 완성될 주문은 후발대를 덮치게 되리라. 그를 시작으로 퍼져나가는 웅혼한 마력이 형태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괴인을 상대로 분전하고 있는 후발대를 본 가면은 입꼬리를 비틀었다.

어차피, 그래봤자 쓸데없는 발버둥일 뿐. 죽음은 피할 수 없다. 그저, 이 마법만 완성하면 결국엔 모두 스러질 테니까.

――그래서, 가면은 보지 못했다. 어느샌가 검은 잔불이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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