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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98화 (98/407)

〈 98화 〉 #46 이단의 탕아들

"……숫제 괴물이로군."

옥연의 로드, 궁수 김주섭이 침음성을 흘렸다. 강한 마력의 파동에 찾아온 곳에는 두 괴물이 충돌하고 있었다. 하나는 머리 없는 괴인ㅡ 십중팔구는 그가 쫓고 있던 마법사이리라.

그리고 다른 한쪽은 늑대. 처음에는 이곳, 2구획 몬스토피아의 몬스터라 생각했으나 그게 아니었다.

'…진홍을 쓰러뜨린 늑대.'

그래. 바로 그 늑대임이 분명하다. ―김주섭은 잠깐 늑대에 대해 떠올렸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진홍을 죽이지 않았다? 변절자를 쫓는다? 어차피 그래봤자 몬스터는 몬스터.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곧 그는 바닥에 엎드려 몸을 숨겼다. ……분명, 둘을 한 번에 처치할 기회가 찾아오리라 믿으며.

***

어느샌가, 날아갔던 턱의 재생이 끝났다.

[재생(D) Lv.6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재생(D) Lv.6 → 재생(D) Lv.7]

조금만 더 폭발이 강했더라면 뇌까지 단번에 나아갔을지 모를 상처를 회복하고, 늑대는 붉은 안광을 흩뿌렸다.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다. 놈의 머리가 없건, 팔이 없건 간에 숨겨진 매개체의 위치를 알지 못하는 한, 의미가 없다.

'…매개체는?'

―늑대가 가진 투시와 통찰로도 꿰뚫어 볼 수 없을 만큼 마력의 밀도가 짙다. 마치 안팎으로 갑옷을 두른 것처럼 몇 겹이나 두른 마력이 외부와 내부를 완전히 격리시키고 있었다.

'아예 끝장을 봐야 한다는 건데…'

대마법을 파훼 당했음에도 놈은 금세 냉정을 되찾았다. 따지고 보면, 놈에게 5절 영창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시간만 있다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일 뿐이니까― 고작 시간을 벌었을 뿐이다. 어느새, 놈으로부터 퍼져나간 불온한 검은 마력이 다시 밤을 불러오고 있었다. 이미 그들이 서 있는 절벽은 검게 물든 뒤였다.

놈에게 더 시간을 줄 수는 없다. 늑대는 곧바로 내달렸고, 침묵하는 입은 손을 들었다. 손가락을 까닥이는 동작만으로 완성된 마법― 수도 없이 생성된 번개의 창이 섬전이 되어 늑대를 노렸다. 수도 없이 내리꽂힌 마법은, 하나도 남김없이 안개 속으로 스며들었고 당연하다는 듯 소멸했다.

'…그렇군.'

그 장면을 똑똑히 보며 침묵하는 입은 직관적으로 저 안개가 자신의 마법을 집어삼켰음을 알아차렸다.

둘 사이의 간격은 빠르게 좁혀진다. 머잖아 늑대의 송곳니는 자신에게 닿고 말리라. 수인으로 펼친 마법은 모조리 안개에 의해 집어삼켜 지고 만다. 지척까지 다가온 늑대의 턱이 벌려졌을 때, 침묵하는 입은 팔을 휘저었다.

"……?!"

아주 잠시간, 늑대의 시야가 가려졌다. 하지만 곧 눈을 부릅 뜨곤 투시로 꿰뚫어본다. 그리고 늑대는 곧바로 탄력을 발해 자리를 벗어났다. ―이미 놈은 거기에 있지 않았으니까. 뒤늦게 어둠 속에서 뻗은 손이 아까 늑대가 있었던 자리를 쓸었다.

그 손에 둘러진 농밀한 검은 마력은 그것만으로 어지간한 마법 이상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 놈이 어떻게 사라졌는가, 그것에 대한 답은 이미 알고 있다.

'…블링크.'

페리의 점멸과 같다. 다만, 스킬이 아니라 오로지 마력으로만 사용한다는 점이 다르다. 안 그래도 난해한 공간 마법을 전투 중에 사용하는 건 쉽지 않다. 괜히 스크롤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거다.

'하지만.'

한때 스퀘어 마스터였던 놈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늑대는 이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던 영량이 놈을 덮쳤지만.

"……?!"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쯧……]

귀찮다는 듯, 침묵하는 입이 손을 털자 그림자는 허상처럼 사라졌다.

―그림자 지배는 분명 B등급에 걸맞은 뛰어난 스킬이다. 다만, 그것은 강해서가 아니라 높은 활용도를 지녔기 때문이다.

결국, 일대를 뒤덮은 마력을 걷어내지 않는 한 그림자를 사용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 늑대를 비웃은 침묵하는 입이 영창을 시작했다.

[Flăcările acoperă totul]

[Fulger în formă de balaur]

[Robia rădăcinii copacilor―!]

동시에 들리는 목소리― 다중 영창. 음성이 아니라 마력의 진동으로 소리를 발한다면 성대의 숫자에 의미는 없다. 이글거리는 화마가 밀림을 불태우고, 지면을 뚫고 거대한 나무뿌리가 치솟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용의 형상을 띈 번개가 음속을 넘어 귀를 먹먹하게 하는 소음을 발하며 쇄도한다.

'번개는…!'

순식간에 다가온 용이 코앞에서 입을 벌렸을 때, 늑대는 탄력으로 몸을 날려 피했다. 하지만 뇌전의 용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선회했다. 침묵하는 입의 손이 용을 지배하고 있다.

'그렇다면…!'

돌풍을 일으켜 침묵하는 입에게 달려들었다. 광폭한 바람이 밀림을 파괴하고, 순식간에 놈에게 도달했을 때, 놈은 또 한 번 모습을 감췄고, 다시 되돌아온 용이 늑대를 덮쳤을 때, 뇌전의 용은 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

[……!]

그에 침묵하는 입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냥 달려들었던 게 아니야.'

피할 거란 건 예상하고 있었다. 단지 조금 시간이 필요했을 뿐. 놈과 간격을 좁힌 짧은 순간, 일으킨 돌풍은 검은 안개를 둘렀고, 흑무는 기어코 뇌전의 용을 집어삼키는 데 성공했다. 나무뿌리를 타고 번져가는 화마― 그것조차 소용없다는 듯, 안개에 휩싸여 사라지고 만다.

어떤 현상으로 나타나건, 결국 본질은 마력. 암운을 집어삼켰던 것처럼, 흑무는 마력을 집어삼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

침묵하는 입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에겐 저 안개를 없앨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아니, 더 정확히는 그럴 여유가 없다는 것을.

안개가 흩뿌린 마력을 모조리 집어삼키는 건 시간문제다. 그렇게 되기 전에 침묵하는 입은 검은 마력을 되돌렸다.

그에 늑대는 작게 끄덕였다. 마력에 붙잡혀 사용할 수 없었던 그림자를 다시 쓸 수 있게 됐으니까.

안개가 밤을 밀어냈을 때, 늑대는 검은 불꽃을 일으켰다.

―그렇게, 불길이 번져가며 절벽을 덮어 가기 시작했다.

***

"Add! 5시 방향에 둘!"

"궁수! 장전!"

구진하의 호령에 궁수들이 활에 시위를 걸었다. 애초에 2구획까지의 원정이었던 만큼 당장 남은 화살은 많지 않다. 다시 정비와 보급을 행할 필요가 있다. 발사하라는 명령에 헌터들의 화살이 일제히 쏘아지자, 달려오던 매머드는 벌집이 되었으나, 그 커다란 덩치가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산개!

그 말에 따라 헌터들이 일사불란히 양쪽으로 갈라져 길을 터줬고, 매머드의 돌진은 아무것도 들이받지 못했다.

"전열은 교란! 궁수들은 재장전!"

화살통에서 다시 한번 활을 꺼내는 이들. 진형 깊숙이 파고든 매머드가 다시 빠져나가지 못하게끔 헌터들이 주변을 돌았다.

당장에라도 공격할 듯, 전열의 헌터들이 아슬아슬한 거리를 유지하며 매머드를 교란시켰다. 덕분에, 놈들이 진형을 탈출하는 게 늦어졌다.

"발사!"

다시 쏘아진 화살들이 매머드의 전신에 적중한다. 두꺼운 가죽과 털을 뚫고 박히는 화살들. 그렇게, 매머드 한 마리가 옆으로 쓰러졌다.

그래도 아직 한 마리가 더 남았다. 구진하는 상황을 둘러보고, 더 몬스터가 없음을 깨닫고 세검을 고쳐잡았고. 달리기 직전, 매머드는 미간을 꿰뚫은 얼음창에 그 육중한 몸을 바닥에 뉘었다.

"……?"

차가운 인상의 여인, 여명 1팀의 부팀장인 하연. 그녀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영 익숙하지가 않군.'

공략대장이 쉽게 자리를 이탈해서는 안 된다는 뜻일 터. 구진하는 끄덕이며, 이젠 정말 얼마 남지 않은 후발대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을 때, 누군가- 아니 후발대원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Add! 3시 방향으로 7 아니 8!"

―몬스터를 달고 오는 꼴에 구진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번 위기만 넘긴다면 분명.

'후발대가 있던 곳까지 도착할 수 있을 거다.'

이젠 정말 멀지 않았다는 생각에 구진하는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궁수 재장전!"

ㅡ몬스터의 접근을 알렸던 이은하는 초조한 듯 손톱을 깨물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그럴 리 없어…'

잊을 수 없는 마력의 파동, 패턴― 자신의 것과 무척이나 흡사한 마력을 느낄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은하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하며 생각했다. 냉정하게 생각해 그럴 리 없다. 불가능하다. 네버랜드에 있을 리도 없거니와 애초에 죽었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그럴 리가…!'

검게 타오르는 절벽을 바라보았을 때, 이은하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짓씹었다.

불가능하다고. 이미 죽었다고. 여기 있을 리가 없다고.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데도.

그럼에도… 이 술렁임만큼은 도무지 가라앉질 않는다.

***

휘두른 검과 검이 충돌할 때마다 충격에 저릿해진다. 전력을 드러낸 둘의 싸움에 백군태는 눈살을 찌푸렸다.

"…진짜 괴물이 따로 없군."

두 사람이 거리를 두고 떨어졌을 때, 기다렸다는 듯 무식하리만치 거대한 철퇴를 휘두르는 주교. 일흔을 넘어 여든에 가까운 노파의 모습이라곤 생각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수십 킬로나 나가는 무식한 철퇴가 갑주의 괴인을 후려쳤으나, 당연하다는 듯 튕겨 나갔다. 쇠사슬을 잡아당긴 주교가 다시 머리 위로 철퇴를 회전시키며 기회를 노렸다.

"거, 이상한데…"

"뭐가 말이냐?"

"으음."

강태호는 옆머리를 긁적였다. 아까부터 왠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진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거울을 보고 싸우는 듯한 기이한 느낌. 아니, 검을 다루는 기초가 같다. 저도 모르게 시선을 내렸을 때.

"……시벌?"

강태호는 어이없다는 듯 욕지거리를 뱉었다. 패태검에 금이 가 있었기 때문에. 가끔 정비는 했지만, 몇십 년을 휘둘러도 멀쩡했던 검인데. 적어도 괴인의 힘이 자신에 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강태호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쳤다.

"거, 어디 이런 괴물이 숨어 있었는지…"

구진하의 말대로라면 창선을 쓰러뜨리고 무노를 죽였다는 뜻인데 과연 그럴 만한 실력자였다.

정말 문제인 것은 놈은 아직 전력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 갑주를 두르고 있는 창염도 신경쓰인다. 생각하는 것보다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에 강태호가 달렸고, 둘은 또다시 충돌했다.

"거암 로드!"

주교의 말에 백군태가 창을 투척했고, 날아가는 중에 창은 점점 거대해졌다. 주교는 철퇴를 휘둘렀고 양쪽에서 날아오는 공격에 괴인은 검을 휘둘렀다. 철퇴가 잘리고, 창이 갈라진다. 허무하리만치 쉽게 막혀버린 공격. 하지만 그걸로 충분하다는 듯, 강태호는 드러난 빈틈을 노리고 파고들었다.

"―――!"

강태호에게 필살의 일격이나 특출난 기술은 없다. 아니, 필요가 없다. 그의 매 일격이 필살과도 같은 것이었으니. 극한까지 단련된, 인간을 아득히 초월한 힘이 수 미터에 달하는 무식한 대검, 패태검을 휘둘렀다.

괴인은 빠르게 반응해 검을 되돌렸으나, 아직 자세를 잡지 못했다. 그렇게 두 사람의 검이 충돌했을 때, 이제까지와는 격이 다른 충격이 일대를 휩쓸었다.

"……!"

강태호의 힘을 정면에서 받는 건 제아무리 괴인이라 해도 쉽지 않다. 결국 한 걸음 물러난 순간, 가장 가까이에서 힘의 충돌에 휩쓸린 갑주― 투구의 일부분이 깨져나갔다. 푸른 불꽃이 타오른 순간, 투구는 순식간에 복구되었었으나 '그 안에 있던 것'을 본 강태호는 딱딱히 표정을 굳혔다.

아주 잠깐의 정적. 곧, 강태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으스러져라 잡은 검의 손잡이가 그의 심정을 알려주고 있었다.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었지만… 그럴 리가 없다. 그건, 잘못 볼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망할…"

―납득하긴 어렵지만, 그렇게 생각하자 여태 느꼈던 의문의 상당수가 해소되는 것만 같았다.

―묘한 기시감. 낯익음. 검을 다루는 법이 같았던 것.

―탕아들이라는 조직. 창선과 광휘가 그들을 도왔던 이유.

그리고 무엇보다, 숲의 던전에서 들었던 알파의 말까지.

"……이 무슨 개 같은."

강태호는 이를 악물고 눈을 부라렸다.

***

정적을 깨뜨리고, 검성이 물었다.

"…그래서였습니까? 탕아들을. 변절자를 돕고, 또 숨겼던 것은."

"……."

"말해주셔야겠습니다. 전대 검성, 아니."

잠깐 숨을 고른 강태준이 창선과 정면으로 시선을 마주했다.

"내 아버지, 강훈이 왜 그딴 변절자들과 손을 잡고 있는지."

"……."

"그리고, 대체 어떻게 살아있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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