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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109화 (109/407)

〈 109화 〉 #49 마랑 강림 (3)

처형자의 낫이 들어 올려진 순간, 늑대의 눈이 깊게 침잠했다. 검은 안개가 일렁일 때 산양의 눈동자가 빛나며 커다란 낫을 내리찍었다. 낫이 공기를 가르는 것을 보면서도 늑대는 움직이지 않았다. 머잖아 거대한 회색 참격이 늑대를 둘로 양단했다.

"……?"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의아하다는 듯, 산양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의 대낫을 빤히 쳐다보았다. 몇번을 다시 휘둘러봐도 여전히 참격이 나가지 않는다. 어느샌가 검은 안개만이 대낫에 휘날리고 있을 뿐.

"―――."

낮게 울부짖는 소리. 산양은 검은 안개를 쥐어 뜯으려 했지만, 잡을 수 없는 안개를 잡으려해봤자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 뿐. 마력까지 둘러 안개를 붙잡으려 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되려 검은 안개는 마력을 먹어 치웠다― 당연한 일. 대마력과 600이 넘는 마력을 가진 괴물이라 한들 검은 안개를 뚫는 건 불가능하다. 흑무는 마력에 대해 절대적인 상성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으니까. 미증유의 마력을 가진 탕아의 간부, 침묵하는 입조차 뚫지 못했을 만큼이나.

다만, 어디까지나 마력에 한한다. 산양이 신경질적으로 낫을 휘두르자 풍압이 안개를 떨쳤고, 산양은 그사이에 낫을 휘둘렀다.

회색 참격이 발해진 것을 늑대는 어렵지않게 피했다. 거리를 두고 있는 상황에서 동선을 알고 있기까지 한다면 당할 리가 없으니까.

두 세번 같은 결과가 반복되자 표정의 변화 없이 산양이 걸어오기 시작했고 공기가 이완돼갔다. 산양의 그림자가 일렁였다. 이미 늑대의 지배 아래 침식당한 그림자가 주인을 꿰뚫었으나 깊게 파고들지는 못했다.

'…역시 쉽지는 않아.'

아니,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싸움이다. 최악의 던전 네버랜드의 구획보스란 절대 무르지 않으니까. 놈으로부터 회색 마력이 천천히 흘러나왔지만, 흑무는 그 마력을 모조리 먹어치웠다.

늑대가 뛰어올랐고 산양은 의아해했다. 산양이 보기에 늑대의 속도는 느리디느렸으니까. 그 사실은 누구보다 늑대가 자각하고 있다.

'정면에서 싸워선 이길 수 없어.'

그리하여, 늑대는 허공에 발판을 만들어 올라섰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서 귀화가 타오르는 가시가 쏘아졌을 때, 산양은 낫을 휘둘렀다. 600이 넘는 힘이 마력에 강화되어 무시무시한 바람을 일으켰다. 늑대를 향해 되돌아오는 가시들은― 닿기도 전,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의해 당연하다는 듯 사라졌다. 산양은 의문을 가지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는 사이, 그림자가 꿰뚫은 상처로 파고든 검은 안개가 산양의 내부로 들어가 갉아먹기 시작했다. 본래 내부로 들어온 무언가를 밀어내는 건 통상적으로 마력이다. 일전, 페리의 점멸조차 봉쇄했던 격이 다른 마력이지만, 그래도 안개를 밀어내는 건 불가능했다. 흑무는 산양의 다리를 안에서부터 갉아먹어갔다.

"―――!"

시종일관 표정이 드러나지 않던 산양이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울었다. 곧 낫을 들더니 자신의 다리를 절단했고 아무렇지도 않게 잘라낸 다리에서 피가 떨어지며 흥건한 웅덩이를 만들었다.

떨어져 나간 다리에서 검은 안개가 스멀스멀 흘러 나왔다. 다리를 잘라낸 절단면으로 다시 파고들면 그만이라는 듯 안개가 다시 쫓아갈 때, 산양은 무릎을 굽혔다. 하나밖에 없는 다리로 뛰어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수십 미터를 도약한 산양을 예상했다는 듯 늑대가 막아섰다. 양손으로 휘두른 낫을 탄력을 발해 아래로 피하고 발판을 밟고 다시 뛰어오른다.

'이거라면.'

공중에서 몸을 돌리는 건 힘들다. 제아무리 대마력을 가지고 있어도 발판을 만드는 걸 곧바로 학습할 수는 없다. 배후로 돌아온 늑대가 목덜미를 물어뜯었고, 산양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추락하는 와중, 산양이 고개를 돌렸고 벌린 턱에서 부정한 것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놈이 가진 C등급 스킬, 사역. 몸을 돌리는 건 어려워도 목을 비트는 정도는 할 수 있다. 산양은 늑대의 앞발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부정한 무리― 무수한 뱀과 벌레들이 늑대에게 쏘아졌다.

[약한 독 내성(E) Lv.1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약한 독 내성(E) Lv.1 → 약한 독 내성(E) Lv.2]

독이 침투했지만 완화와 독 내성이 막아 큰 피해는 없다. 뒤늦게 일어난 귀화가 부정의 무리를 잿더미로 만들었고 앞발이 으스러지는 듯한 산양의 악력에 늑대는 그림자로 하여금 산양의 손목을 자르려했다. 잘릴 리 없다고 여겼으나 놀랍게도 깔끔히 잘려나갔다. 떨어지고 있는 손목을 산양이 낚아챘을 땐 이미 바닥이 가까웠다. 늑대는 다시 탄력을 발해 산양을 발판 삼아 뛰며 가볍게 착지했다.

그렇게 늑대와 산양이 지면에 내려선 순간, 그림자 속으로 숨어든 늑대와는 달리 산양은 압도적인 중량에 휘말려 수십 미터를 날아갔다.

"―――!"

그 정체는 울부짖는 사자. 그 앞발에 적중당해 날아간 것이다. 흙먼지가 가라앉았을 땐 산양은 입가에 흐르는 검은 피를 닦으며 잘린 손목을 붙였다. 재생이 손목의 사라진 부분을 메꿨으나, 어째선지 회복되는 게 느리다.

"……?"

두 팔을 뻗은 산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먹힌 것처럼' 팔의 길이가 맞지 않았으니까. 결국, 붙은 손목을 뜯어내고 다시 재생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산양은 뒤늦게 눈치챘다.

어느새 늑대가 자신의 낫을 물고 있다는 것을.

***

"……!"

갑작스레 나타나더니 수십 미터를 날아간 바포메트는 그렇다 치더라도 늑대가 낫을 물고 있는 모습에 헌터들의 긴장이 깊어져 갔다. 코앞에서 붉은 눈과 마주하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생물의 본능. 두려움을 느낀 헌터들이 창칼을 겨누자 늑대는 짧은 한숨을 쉬었다.

날아오는 창칼을 늑대가 담담히 지켜보고 있을 때, 누군가가 양팔을 벌리며 그사이를 가로막았다.

"이은하. 너 미쳤…!"

눈을 부라리는 헌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 자루 창이 낭창낭창하게 휘더니 겨눈 창칼을 모조리 쳐냈다.

"선자, 지금…"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냐 묻기도 전에 은자림이 차갑게 질타했다.

"상황을 이해하고는 있는 건가요? 적의 적은 동료. 구획 보스를 셋이나 상대하고 싶나요?"

알파마저 적으로 돌리겠냐며 차갑게 끊는 은자림의 말에 헌터들이 잠깐의 텀을 두고 고개를 끄덕였다. 숨을 가다듬는 이들.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였다. 생각을 못한 게 아니라 공포에 질렸을 뿐. 뒤늦게 날아온 페리가 화를 내며 헌터들을 꼬리로 때렸지만, 헌터들에겐 토닥거리는 걸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뀨우우우!"

분노한 용의 포효… 귀엽게만 들리는 울음소리가 대치를 깼다. 뒤늦게 어안이 벙벙한 듯, 이은하가 팔을 내렸을 때 작게 실소하는 듯한 바람 빠지는 숨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몸을 돌렸을 때, 이미 알파는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에 은자림은 짧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다른 클랜인 제가 뭐라고 할 권리는 없겠지만… 위험했단 건 알고 있겠죠?"

은자림의 말에 이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헌터가 했던 미쳤냐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정신 나간 짓이었으니까. 하지만 은자림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잘했어요. 하지만 다음부턴 그러지 말아요."

휘둥그레 눈을 뜬 이은하는 어안이 벙벙해있다가, 감사의 인사를 표하려다 목이 완전히 쉬어버려 말할 수 없단 걸 자각하고 고개만 푹 숙였다. 등 돌린 은자림이 슬쩍 발아래를 보았을 땐, 일렁이는 그림자가 다시 제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알파의 성정상, 진홍 때와 마찬가지로 죽이지는 않겠지만, 늑대의 자비가 어디까지 베풀어질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녀가 나서서 감싼 건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정상은 아니더라도 틀린 행동은 아니었다. 지금 알파의 도움이 없다면. 혹시라도 그를 적으로 돌렸다간 던전을 벗어나긴커녕 전멸할 거라는 건 확실하니까. 상념을 마친 은자림이 다시 창을 쥐고 백사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헌터와 백사자가 서로 지쳐가는 와중 마법사는 현기증을 참으며 영창을 계속했다.

"Totul este înghețat și înghețat―"

이제 4절. 마법이 완성되어가고 있을 때, 무언가가 날아와 바닥에 처박혔다.

***

"……."

간격을 둔 두 검성. 강훈이 검을 휘두르자, 강태준이 눈살을 찌푸렸다. 타오르는 창염과 온도가 낮아진 일대― 서리불꽃이 강태준의 소매를 얼렸고 엄지와 검지로 소맷자락을 집자 가루가 된 얼음이 흩날렸다. 검과 검의 승부에서 크게 밀리진 않았지만, 끝도 없이 타오르는 얼음의 불꽃이 거슬린다.

"슬슬 폐쇄가 머지않았겠구나."

혼잣말을 하듯, 강훈이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도 강태준은 아무 대답 없이 검을 들어 올려 그를 향해 겨눴다.

'―빠르게 끝내야 한다.'

숨을 뱉은 강태준의 눈빛이 강해졌다. 꿰뚫어 보듯 저편을 보는 그의 눈에 강훈의 다음 동작이 수십 수백 가지로 읽혔고, 그 순간 강훈이 쇄도했다. 다만, 그것은 강훈도 마찬가지. 겉으로 보기에는 공방의 교환이었지만, 그들의 눈이 보는 것은 지금이 아니라 미래였다.

―두 검성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서 검을 들이밀고 있었다. 정해진, 짜놓은 듯한 연극. 수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의 정보. 스승과 제자. 또한, 혈육이었던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질릴 정도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난 15년간은 다르다. 승부는 거기에 달려 있었다. 강태준이 강훈을 얼마나 따라잡았는가― 현재의 검성은 전대의 검성을 뛰어넘었는가에 따라 승패가 정해지리라. 무수히 많은 은빛의 궤적, 그걸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이 넓은 광장에서 도대체 몇이나 있을까? 강태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쯧…"

신체 능력이라면 뒤떨어지지 않지만, 아득한 검의 길. 기량에서 따라가지 못한다. 얼마간의 수 싸움은 따라갈 수 있었지만, 두 사람이 보고 있는 건 고작 이 정도가 아닐 터. 섬광이 번쩍이고 서리 불꽃이 타오른 순간, 한발 앞서나간 강태준의 검이 갑주를 꿰뚫었다. 심장 어림을 뚫었음에도 피가 튀지 않는다.

'괴물이 됐다 했었나.'

과연 그 말대로였다. 검을 타고 넘어오는 망령의 존재를 느낀 강태준이 검에 담은 마력을 폭발시켰고 망령들은 빛이 되어 폭사했다. 칼이 박힌 채로 강훈은 검날을 쥐었다.

"……."

강한 악력에 도무지 검이 뽑히지 않자 강태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쩌저적- 갑주에서부터 서리불꽃이 뻗어오자 강태준은 갑주를 발로 차 밀어냈으나 강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가 휘두른 대검이 갑주에 박힌 검을 잘라냈다. 반 토막 난 검으로도 강태준은 망설임 없이 달려들었고, 창염이 일어 멈칫거린 순간의 틈을 놓치지 않고 강훈이 그를 걷어찼다. 수십 미터를 나가떨어져 바닥에 처박힌 강태준은 사라진 소매 대신 손목으로 입가의 피를 닦으며 일어섰지만, 이미 강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옅게 타오르는 푸른 불꽃은 이미 백사자를 지나쳤다. 마지막으로 타오르는 듯한 안광과 마주한 강태준은 터진 입술을 씹었고, 피로 물든 손으로 머리를 쓸어올렸다.

"여명 로드. 자네, 괜찮나?"

"괜찮습니다."

백군태의 물음에 고개를 주억인 강태준은 반 토막 난 검을 비틀었다. 강훈의 말대로 이젠 정말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까. 한시라도 빨리 입구를 막은 스노웰을 쓰러뜨리고, 폐쇄 직전의 광란― 던전이 닫히기 전에 탈출해야만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슬쩍 고개 돌린 강태준의 눈에 보인 것은 두 괴물이었다.

"―――!"

서로를 향해 울부짖는 산양과 늑대. 강신(降神)을 사용해 본 모습을 드러낸 처형자와 불길한 안개를 두른 마랑― 두 괴물의 싸움이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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