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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113화 (113/407)

〈 113화 〉 #51 접촉

"알파."

그 이름이 내뱉어지자 좌중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세간에는 이름까지 알려지진 않았지만, 네버랜드 공략대에 참여한 헌터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다.

그 이름― 진홍을 쓰러뜨린 칠흑의 마랑을. 깊어지는 긴장 속에서 여명의 로드, 검성 강태준은 반 토막 난 검을 비틀었다. 그 끝에 서서히 마력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불길하게 일렁이는 그림자로부터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림자보다도 짙은 검은 털빛. 심령을 제압하는 듯한 섬뜩한 붉은 눈.

"……!"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진다. 이윽고 알파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나자, 헌터들은 어느새 자기도 모르는 사이 무기를 들고 있음을 깨달았다. 몸길이가 5m에 달하고 사람이 선 키보다 높은 체고는 그야말로 마물, 아니 마랑이라 불릴 만하다.

"……."

누군가의 숨소리가 커졌다. 거슬리는 소리에 두리번거리던 헌터들은 그게 자신들의 숨소리임을 깨달았다. 벌벌 떨리는 몸과 언젠가부터 고동치는 심장. 무수한 날붙이가 자신을 겨누고 있는데도 알파는 조금의 동요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동요하는 건 헌터들이었다. 누군가가 침을 삼켰고 감정 스킬을 가진 몇몇 헌터의 눈이 빛나는가 싶더니, 딸꾹질 하며 주저앉거나 심하면 눈을 감싸고 고통을 호소하는 자까지 있었다. 언젠가부터 장내가 어두워져 있었다. 마랑을 감싸듯 스멀거리는 안개와 타오르는 불꽃.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검은 불꽃이 귀신의 얼굴을 보인 것만 같았다.

마랑의 전신에 둘러진 문양이 옅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어느샌가 검게 물들어버린 세상에서 강태준은 입술을 짓씹었다.

'승산은…'

있을까? 비록 1구획의 보스라지만, 처형자를 단신으로 쓰러뜨렸다는 건 최소한 구획 보스급의 몬스터라는 거다. 심지어 언어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지성이 뛰어난. 만전의 상태라면 모를까 지금 상태라면 설사 승리하더라도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터.

'실수였나……'

차라리 모른 척하고 있는 게 나았을까. 강태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바보가 아니다. 탕아들을 쫓는 알파와 싸워봤자 아무런 득이 없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심지어 알파가 쫓는 변절자 중 하나가 자신의 아버지인 강훈이라면 알파의 도움은 절실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그가 아니라면 놈들을 쫓을 방법 따위는 없으니까.

그런데도 그가 고집을 부리는 이유는 헌터이기 때문에. 지난 50년간, 멸망해가는 인류에게 몬스터란 별안간 나타난 침략자. 슬라임이나 요정용과 같은 몇몇 특수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처리해야 할 진절머리 나는 적이었다. 그런 존재와 타협하는 게 쉬울 리 없다. 설사 악의가 없고 도움이 되는 존재임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대화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우위를 점해야만 한다는 뜻. 일전에 홍유리가 그랬듯 대화는 알파를 사로잡아 생포한 후에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그리 생각했기 때문에.

'…물러서야 하는가.'

강태준은 눈살을 좁혔다. 고민하는 그와는 반대로 알파는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겠다는 듯 강경한 태도를 보인다. ―지금까지의 늑대라면 이러지 않았을 터. 그가 순순히 물러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늑대의 시선이, 생각이 변했기 때문에. 여태까지 늑대의 시선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약자의 시선이었다. 하지만 진화 이후, 산양과 싸우며 생각이 변했다. 여태까지처럼 물러나거나 굽혀서는 안 된다. 자신의 의견을 똑바로 전하기 위해서는 대등한 위치에 서야 한다고 생각한 것. 그러기 위해 늑대는 물러서지 않기로 했다.

―이제 늑대에게는 그럴 힘이 있었으니까.

"―――."

낮게 우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몇몇 헌터들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영혼에 파고들어 본능적인 두려움을 일으키는 귀기와 살의가 안개에 스며들어 퍼져나갔다. 붉은 눈동자와 마주한 이들은 예외 없이 자기 죽음을 상상하고 말았다.

무엇보다 늑대가 물러서지 않는, 아니 물러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아직 페리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 희박한 가능성이라도 페리를 인질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면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늑대에게 있어 어린 용의 존재는 역린(逆鱗). 타협 따위는 절대 있을 수 없다.

"……."

그 의지를 느낀 강태준은 한숨을 쉬었다.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전의를 상실하지 않은 이는 손에 꼽는다. 무리도 아니다. 아무리 1구획이라지만, 눈앞에 있는 마랑은 단신으로 구획 보스를 쓰러뜨린 괴물 중의 괴물이었으니까. 그들이 알고 있던 워그나 스컬 울프 따위가 아니라…

'먹어치우는 자.'

스퀘어의 걸작으로도 이름을 엿보는 게 고작이었던 정체불명의 마랑. 강태준은 어느샌가 검을 쥔 손끝이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만전의 상태라도 싸워 이길 수 있을 거라 장담할 수 없는데 지금 상태에서야…

'…실수였나.'

네버랜드 공략은 이제 막 끝났을 뿐. 쌓일 대로 쌓인 피로와 부상이 심각하다. 반대로 놈에게 피로나 부상의 흔적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대로 싸운다면 승산은 희박하리라. …하지만 만약에 놈이 돌변한다면? 좀 더 성장한 후에 알파의 행동이 변한다면? 지금까지처럼 인류를 적대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자색의 흑호처럼 손을 쓸 수 없게 된다면.'

차라리 여기서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끝을 보는 게 낫지 않을까. 후회의 싹을 남겨둘 바에야… 강태준의 눈이 차가운 빛을 발했다. 그렇게 그의 생각이 한쪽으로 굳어져 갈 때, 별안간 발소리가 들렸다. 그 누군가는 마랑과 검성이 대치하는 사이를 당당히 걸었다.

"……!"

돌발 행동.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다. 만약 알파가 그럴 마음이 있었다면 확실하게 죽었을 간격. 하지만, 망설임 없이 파고들어 와 손을 내민다.

"은공께서는 여기 계신다."

늑대의 붉은 눈이 잠깐 그녀를 훑는가 싶더니, 천천히 촉수를 뻗어 어린 용을 받아들었다. 소중하다는 듯, 어린 용을 자신의 머리 위에 올려둔 뒤에야 조금이나마 장내의 분위기가 누그러들었다. 마랑의 귀기는 여전했지만, 살기만큼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선자."

질책하듯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선자, 은자림은 쓰게 웃었다. 고작 몇 시간 전에 여명의 소녀에게 그러지 말라 했었는데 자신이 똑같이 행동하고 있었으니까. 몸을 돌린 그녀가 검성의 부름에 답했다.

"예."

"…무슨 짓을 한 겁니까?"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지금 그 행위는 자칫하면 인류에 대한 배신으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알고는 있는 겁니까?"

그 물음에 은자림은 오히려 후련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고 있습니다."

변명할 말은 많다. 하지만 은자림은 구태여 변명하지 않았다. 검성이라면. 여명의 로드 되는 이라면 자신이 할 말 따위는 진작에 전부 알고 있을 테니까.

예를 들어, 알파를 적대해선 안 되는 이유라거나 요정용과 알파가 공략대를 도왔다는, 빚을 졌다는 사실 같은 것들.

전부 다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 모든 행위가 몬스터라는 단 하나의 이유에 덮이게 된다면 그건 너무 불합리한 처사가 아닐까. 고작 그런 이유로 알파를 적대하는 건 어리석음의 극치가 아닐까.

'이번엔 우리 차례야.'

함께할 수 있겠냐는 물음에 늑대는 기다리라고 답했었다. 그리고 그때가 바로 지금이리라. 은자림은 행동으로서 신의를 보였다. 신념에 따라 행동했으니 설령 어떤 결과가 나오든 후회는 하지 않으리라. 그녀는 설득하는 대신 두 눈을 감고 내려질 결정을 기다렸다.

"아 거, 틀린 말은 아니지."

이윽고 들려온 목소리는 검성이 아닌 검공의 것이었다. 그는 멋쩍다는 듯 옆머리를 긁으며 강태준과 시선을 마주했다.

"어차피 저놈 아니었으면 다 갇혀서 뒈졌을 텐데 어디 말이나 한번 들어보자고."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냐?"

"손해 볼 거 없잖아."

강태준의 시선이 한 번 더 돌아갔다. 거기에는 백군태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싸우려면 진작에 싸웠어야지. 솔직히 나는 일의 전말은 모르겠지만…"

다만 백군태가 느낀 것은 지금 상태로 싸웠다가는 전멸을 각오해야 할 거라는 점. 불길함을 상징하는 듯한 마랑에게 누가 승리를 장담할 수 있을까. 싸움을 피할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이리라.

"…알겠습니다."

이미 이 상황 자체가 패배를 시인한 것이나 다름 없다. 짧은 한숨과 함께 강태준이 납검했고, 늑대 또한 살기를 거뒀다. 그러자 긴장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헌터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강태호. 백군태. 은자림. 각기 선발대, 공략대, 후발대의 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지금 여기서! 네버랜드 봉쇄의 종료를 선언한다!"

닫힌 문을 보며 백군태가 소리쳤고, 부상자를 추스르는 등 마땅히 해야 할 절차를 밟아갔다. 그리고 어린 용을 되찾은 늑대는.

"…따라와라."

검성의 말에 순순히 뒤를 따랐다. 안개와 바람. 그림자와 불꽃을 거두고 천천히. 좌중― 뭇 헌터들의 시선은 여전히 늑대에게 향해 있었고 웅성거림은 늑대가 보이지 않게 되자 더욱 심해졌다.

"괜찮은 걸까."

혹시 일이 잘못되는 건 아닐까. 헌터들은 초조한 듯이 그네들을 보고 있었지만, 다름 아닌 검성과 검공이 함께 있는데 별일이야 있겠느냐 여겼다. 그리고 그와는 반대되는 이유로 안절부절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휴…'

혹시라도 싸우게 되는 건 아닐까 노심초사했었다. 아무래도 그럴 것 같지는 않아 이은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대화로 풀 수 있어서 다행이야.'

만일의 사태가 일어나지 않아서. 은자림이 서 있는 곳. 사실 저 자리에 있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주제가 되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다… 이은하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긴장이 사라지자 피로가 찾아왔기 때문에.

***

용인시는 지금 대화를 나누기에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에 가장 적절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네버랜드가 개방되고 모든 주민이 피난했으니까. 유령 도시. 지금 용인시에 남아있는 건 오직 헌터들뿐이었다.

"여기까지 왔다면."

공략대와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원래 가게였을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다소 비좁아 보였는데 늑대는 아무렇지 않게 건물 내부로 들어왔다.

"허 참… 신기하네."

분명 문보다 훨씬 커다란데 숙이지도 않고 잘도 들어온다. 잘 보니 문의 사방에 그림자가 져 있다. 강제로 공간을 넓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들어온 건물은 식당과 같은 곳이었다. 늑대는 혹시 몰라 탐지를 펼쳤지만, 거기에 감지되는 기척은 없다.

'매복은 없는 것 같은데.'

고원이 봉쇄조로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정말 아예 참가도 하지 않은 걸까? 그때, 몸을 돌린 강태준이 검의 손잡이에 한쪽 손을 얹은 채로 말을 걸어왔다.

"…그럼 얘기해보지."

한쪽 벽에 몸을 기댄 강태호와 반대편에 선 은자림. 그리 넓지 않은 건물 내부. 인류와 몬스터의 대화가 성립 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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