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화 〉 #51 접촉 (2)
"…먼저 말해두지. 우린 널 믿는 게 아니라는 것부터."
검성의 선을 긋는 말에 늑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에 강태준은 이채를 띠었다. 일부러 긁어 본 것인데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아서.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높은 지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와 대화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언어는 이해하는 것 같지만… 말은 할 수 있나?"
"―그래."
낮은 저음. 동굴에서 들리는 듯한 목소리가 건물 내부에 울리자 강태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저거 보라니까. 진짜로 말하잖아. 응?"
최초로 알파가 말을 했던 건 숲의 던전. 바로 거기서 들었던 게 강태호였으니까. 덩치에 맞지 않게 그가 호들갑을 떨었다.
"조용히 해라. …우선 확인부터 하지. 도망치지 않았다는 것. 여기까지 순순히 따라왔다는 건 네게도 대화할 생각이 있다는 뜻일 거다. 맞나?"
늑대는 낮은 목소리로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말했다.
"…경고를 하러 왔다."
"경고?"
강태준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 말에 집중되는 시선. 늑대는 그들을 한번 둘러보고 다시 말했다.
"탕아들의 위협은 이게 끝이 아니다. 네 아버지 강훈은…"
그에 강태호가 앞으로 나서더니, 늑대를 향해 눈살을 찌푸렸다.
"너, 도대체 뭐냐?"
"……."
"네가 어떻게 아버지 일을 알고 있는 거냐. 넌 몬스터…"
몬스터잖아? 라고 말이 나오기 전에 늑대는 답답한 한숨을 쉬었다. 계속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으니까.
"―나는 본래 인간이었다, 고 생각한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좌중의 눈빛에 의문이 담겼다. 인간이었다도 아니고 인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눈살을 찌푸리는 그들에게 늑대는 말을 이어갔다.
"정확한 기억은 없다. 다만 기억처럼 남은 지식만이 있을 뿐."
정확한 기억이 없다―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신분조차 증명할 수 없는데 깊게 파고들게 되면 얄팍한 거짓말 따위는 금세 탄로 나고 말 테니까. 그래서 밑밥을 깔아둘 필요가 있다. 진실 속에 거짓을 숨긴다. 여태 생각해왔던 대로 늑대는 이야기를 각색했다.
"내가 가진 지식과 관념은 너희가 가진 것과 흡사했다. 그 외에 가지고 있는 거라고는 감정뿐."
순간, 늑대의 입에서 서늘한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붉은 안광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깊은 감정을 띠고 있는 듯 보인다. 그것은 여태 본 적 없을 만큼 짙은―
"―놈들에 대한 증오."
"…그들이 널 몬스터로 만들었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모른다. 내 첫 기억은 어느 산에서 태어난 순간일 뿐이니까. 그저 살기 위해 발버둥 쳤을 뿐."
"그럼 네가 여태 변절자를 쫓았던 건…"
"……."
침이 삼켜진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들은 세 사람은 믿기 힘들다는 듯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이어나가야 한다. 강태준은 손을 들어 나서려는 강태호를 제지했다.
"좋아. 그게 사실이라고 치지. 하지만 아직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남아있다."
"……."
"……넌 우리 클랜원을 습격했었지. 기억하고 있나? 지리산 법계사 일주문에서의 일."
강태준의 눈이 빛났다. 그는 날카로운 어조로 늑대를 추궁했다.
"넌 거기서 그녀를 습격했다. 죽이지 않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건 어떻게 해명할 거지?"
늑대에게 가진 유일한 의문. 그것이 의심을 거둘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정말 사람인 거라면. 이성이 있는 거라면 인간을 습격할 이유가 없지 않으냐는 물음이었다.
강태준의 의도는 떠보려는 것일 터. 혹시 자신이 주기적으로 이성을 잃는 등 이상 행동을 보이지는 않는지. 혹은 언행이 불일치하지는 않는지. 다만, 거기엔 강태준이 생각지 못한 진실이 숨어있었다. 은자림의 불안한 시선을 받으며 늑대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이 물음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반대다."
"반대라고?"
"그녀를 습격한 건 내가 아니라는 거다. 반대로 도왔지. 내 첫 기억은 워그가 아니라 슬라임이다."
"……!"
"네버랜드에서 오해는 풀렸을 터. 원한다면 그녀를 불러 물어봐도 좋다."
―늑대의 행동에 남아 있던 유일한 의문점. 늑대는 그것에 담담히 답했다. 클랜원 하나가 명령을 어겼다가 죽을 위기에 처했다는 이야기는 언뜻 들어 알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 숨어 있던 진실은 그들이 예상하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뒤늦게 광장에서 여명의 소녀가 알파와 헌터들의 사이를 가로막았던 이유에 납득이 갔다. 오해가 풀렸다면 그녀에게 있어 알파는 원수가 아니라 은인일 테니까. 그 해명에 은자림은 외마디 탄성을 터뜨렸다.
"아…"
일관성 있는 대답. 이제 늑대의 행동에는 단 한 점의 의문도 남지 않는다. 물론 확인은 해봐야겠지만, 금방 들통 날 거짓말을 하진 않았으리라.
'이걸로 됐어.'
몬스터가 된 이유를 제대로 말할 수 없다면 모른다고 얼버무린다. 내가 슬라임이었단 것을 이은하가 증명해주기만 한다면 가능하다. 왜 몬스터가 됐는지 모른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의심은 하겠지만 증명할 수 없다면 그러려니 납득할 수밖에 없다.
"믿기 힘들지만…"
그게 가장 설득력 있기는 하다. 그들이 아는 한 늑대가 무고한 이를 죽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으니까.
클랜윈을 습격했다 여긴 것은 오히려 도왔던 것이었고 경산의 던전에서는 헌터들과 함께 아라크네와 싸워 그들을 살렸다. 숲의 던전에서는? 지금 생각해보면 홍유리를 죽일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저 강태호가 올 때까지 시선을 끌었을 뿐. 거기에 더해 창칼을 들이민 헌터들에게 탕아들의 존재를 경고했다.
대전의 밤에선 아가일을 비롯한 사각지대의 변절자들을 척살했으며 아카데미가 습격 받았을 때는 백소율을 구했다. 또, 서해안 일대를 정리하고 생존자들의 존재를 알린 것 또한 알파였다. 홍유리와 생사를 걸고 싸웠을 때는 그녀를 죽이지 않는 자비를 보였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네버랜드. 이번에 늑대가 돕지 않았더라면 전멸은 확실했으리라… 강태준은 감정이 담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둘도 각기 복잡한 표정으로 늑대의 말을 곱씹고 있다.
믿기 힘든 진실을 부정하고 싶지만, 거짓이라 증명할 방법은 없다. '인간이었다'가 아니라 '인간이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면 더더욱.
―과거의 행동. 되돌아봤을 때, 늑대가 한 행위는 그 누구보다 고결하고 올바르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납득할 수밖에 없군."
믿는 게 아니라 수긍하고 그렇다는 전제를 깔고 이야기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뭔가 바라는 게 있을 텐데."
"―변절자들을 쫓아라."
"……."
그가 바라는 것은 탕아들의 파멸. 한참이나 시선을 교환해도 눈동자에는 조금의 떨림도 없다. 붉은 눈에 깃든 살의가 향하는 것은 자신들이 아니었다. ―이것만큼은 늑대에게도 분명한 진실이다. 그는 뼛속 깊이 이단의 탕아들을 말살하기를 바랐으니까.
"확실히…"
괴물에게 물욕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어떤 방법으로도 회유할 수 없는 타협하지 않는 괴물. 만약 그런 존재가 이빨을 드러낸다면? 생각하기만 해도 섬뜩하다. 알파와 싸우지 않은 게 정답이었다고 강태준이 확신한 순간, 강태호가 다시 물었다.
"그럼 네가 아버지에 대해 알고 있는 건…"
"그것뿐이다."
"…망할."
강태호는 답답한 심정에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늑대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놈들의 목적은 엘릭서를 만드는 것."
창선에게 들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강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유는 어떤 존재를 깨우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어진 이야기에 좌중의 표정이 심각함으로 물들었다.
***
믿기 힘든 이야기가 막을 내렸다. 그즈음엔 피곤하다는 듯 눈을 부비며 깨어난 요정용이 알파의 얼굴에 뺨을 비비고 있었다. 늑대는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말할 수 있는 것들을 알렸다. 시스템과 환계를 비롯해 섣불리 알릴 수 없는 이야기를 제한다면 대부분. 엘릭서는 어떤 존재를 깨우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으며, 어째서 그 존재를 깨우려 하는지에 대해서는 자신 또한 모른다는 것.
'…그녀는 쓰러뜨리지 못했으니까.'
계속 읽고 있던 소설의 내용. 강훈과 침묵하는 입을 비롯한 많은 간부는 쓰러뜨렸었다. 질병과 역병을 막는 데에도 성공했다. 그 시점에서 인류에게 드리워진 멸망의 그림자는 상당히 걷어냈다고 생각한다. 인과율이 줄어드는 추세로 미루어볼 때 멸망 확률은 50 대 50 정도가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 이상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설은 갑작스러운 완결을 맞이했다.
최종 보스라고 생각했던, 탕아들의 수장인 그녀는 잡지 못했고 해피엔딩이 아니라 종말을 맞았다. ―언젠가 여왕은 멸망과 종말은 다르다고 했었다. 탕아들을 비롯한 멸망만이 아니라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는 종말 또한 막아야만 한다는 뜻.
'이에 대한 의문은.'
시스템을 찾아내면. 아니, 찾아가면 풀리게 되리라. 여전히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이야기는 잘 들었다. 믿기 어렵지만, 굳이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겠지."
심증은 분명하다. 하지만 확인은 해야 한다고 강태준은 그렇게 말했다.
"솔직히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 네가 갑자기 돌변해 도시에서 날뛰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뻔하니까. 너는 고작 맹수 정도가 아니다. 스스로 자각하고 있겠지만, 재앙에 가까운 몬스터가 됐지."
그 말은 사실이었다. 네버랜드의 구획 보스. 그게 검성이 생각하는 늑대의 수준이었다. 칠영웅 혹은 자신과도 대등한… 그에 늑대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강태호까지라고 생각했는데…'
원작이 시작되는 시점까지 적어도 강태호만큼은 강해져야 한다고 여겼건만 어느새 뛰어넘고 말았다. 1년하고도 2개월이 남은 지금. 2069년 12월의 겨울에.
"…널 도시에 풀어놔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건 여전하다."
어느샌가 의자에 앉아있던 그가 가게의 테이블을 리듬감 있게 두드렸다. 소설 속에 묘사됐던 버릇을 실제로 마주한 늑대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하지만 의미는 없을 터. 지금 당장이라도 마음 먹으면 광휘를 제외한 누구도 널 쫓을 수 없을 테니까. 하고자 한다면 언제든 그럴 수 있을 거라는 뜻이다."
"……."
늑대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은신 스킬이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었으니까.
"널 믿기 위해서다. 우리를 따라와라. 신뢰를 쌓는 게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테지. 그동안 네 신변은 우리가 맡도록 하지."
"여명 로드."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한 은자림에게 강태준은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소한의 절차와 확인은 반드시 필요하다. 거절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우린 널 강제할 수 없으니까. 따라서 이건 부탁이기도 하다. 우리가 널 믿을 수 있게끔 도와달라는."
행동으로 증명해라. 또한 이은하와도 대면 시켜 확인해보겠다는 뜻. 쉽게 말해 여명으로 따라오라는 소리였다. 고민하던 늑대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서 모든 일을 할 수는 없으니까. 여태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헌터들과 신뢰를 쌓는다고 나쁜 건 없다는 소리다. 오히려 탕아들을 없애는 데 협력해달라 요청할 수 있다면.
'아니, 반드시 필요해.'
언젠가는 외국에도 가야 할 테니까. 이전, 무노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늑대는 생각했었다. 탕아의 수장인 그녀를 제외하고 칠영웅인 무노를 죽일 수 있는 건 간부 중에서 셋이라고.
'강훈과 침묵하는 입. 그리고…'
아직은 영입되지 않았을 환영의 나비 아멜리아 모레스트. 퍼플 스퀘어 마스터이자 사각지대의 수장, 아가일의 어머니. 그녀가 탕아들에 합류하는 걸 막아야만 한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늑대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마음은 정한 모양이군."
늑대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자 강태준은 긴 숨을 내쉬며 두 눈을 감았다. 일이 일단락되자 뒤늦게 피로가 몰려오는 듯한 기분이었다.
"늦었지만, 고맙다고 해두지."
별안간 들려온 말에 늑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늑대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소설 속에서 단 한 번도 꺾지 않았던 그가 무거운 고개를 꺾고 있었으니까.
"네가 없었다면 공략대는. 여명은 전멸했을 거다. 여태까지의 일을 포함해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 말을 듣고 늑대의 가슴 속에 응어리져 있던 무언가가 조금 녹아내렸다. 감정의 정체는 불합리함과 억울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 깊은 곳에 쌓여있었던 부정적인 감정이었다.
"……."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올바른 단추를 끼운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태 해왔던 일은 잘못되지 않았다고.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 순간이기도 했다.
"뀨우우~!"
꼬리를 세차게 흔드는 페리가 기분 좋다는 듯한 울음을 토했다.
―늑대의 여명행이 결정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