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 #53 던전 동행
지난 며칠간 여명에서 지내는 동안 늑대에 대한 인식은 제법 크게 바뀌었다. 처음 두려움이 서려 있던 눈빛에는 이제 호기심과 욕망이 담기게 됐다. 주로 쓰다듬어보고 싶다는 쪽으로. 그 시선을 느낄 때마다 늑대는 자신의 이미지가 변하고 있음을 느꼈다.
…마랑에서 까칠한 강아지로. 강태준의 밑 작업이 성공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젠 익숙해진 클랜― 오랜만에 나서는 것 같아 찌뿌둥한 몸을 풀었고 그에 강태호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완전히 짬타이거가 다 됐구만."
간부 한 명이 동행할 거라더니 예상대로 강태호. 하기야 다른 간부들은 네버랜드의 피로가 전부 가시지 않았으리라. 조금 거리를 둔 곳에 봉고차가 있었는데 차종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크다. 그 앞에 대기하고 있는 4명의 헌터. 그리고 그중 한 명인 이은하는 입을 가리고 놀라워하고 있었다.
"알파…!"
그러고 보니 어제 동행한다는 건 말하지 않았던가. 놀라 하는 그녀에게 대강 촉수를 흔들어줬더니 마주 손을 흔들어온다. 고개를 끄덕이자 강태호가 차키 버튼을 눌렀다. 어지간히 커다란 차라고 생각했더니 직접 운전할 생각인 모양.
"……뀨우."
타라고 고개를 까닥이는 강태호의 모습에 페리가 꼬리를 휘둘렀다.
"아니! 안 한다고!"
저번에 멋대로 쓰다듬으려 한 게 제대로 미운 털이 박힌 모양. 한참을 얻어맞은 강태호가 아픈 체를 하자 페리는 그제야 만족했다는 듯 끄덕이며 몸을 돌렸고 늑대는 고개를 저었다. 페리가 새침하게 몸을 돌렸을 때 강태호는 웃고 있었으니까. …안타깝게도 승패는 명확해 보인다.
그렇게 차에 올라타고 얼마 가지 않아 도착한 던전은 커다란 동굴. 그 앞에서 차를 멈추자 헌터들이 내려 트렁크를 열었다. 배낭에서 물건을 꺼내더니 허리띠와 파우치를 연결하고 무기를 꺼내 무장하기 시작했다.
두 명의 전사. 한 명은 방패와 검을, 다른 한 명은 방패와 횃불을 들고 등에는 창을 메고 있었다. 그 뒤로 궁수와 배낭을 멘 이은하의 모습이 보였다. 허리춤에 작은 단검 하나. 각반과 같은 보호구를 착용하고는 있지만 제법 단출한 차림이었다. 이은하를 마법사라고 불러도 될지는 의문이었지만 구성은 좋아 보인다. 헌터들을 통찰한 늑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대로.'
네버랜드에 참가했던 인원은 이은하밖에 없었다. B클래스 아래의 헌터들밖에 없다는 소리. 오히려 이은하야말로 네버랜드에 참가했는데 왜 또 던전에 왔을까 하는 의문은 들었지만…
'빨리 성장하면 좋은 거니까.'
의문은 가지지 않기로 했다. 이내 창잡이 헌터가 라이터로 불을 옮겼고 횃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동굴 안을 한번 휘젓는가 싶더니 헌터들은 이내 던전 안으로 진입했다.
'…랜턴으론 안 되나?'
투시로 엿보니 배낭 안에 랜턴이 있기는 했다. 헌터들이 진입하자 강태호가 턱짓했고 늑대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들의 뒤를 따랐다. 어차피 어둠 따위는 늑대에겐 조금의 장해도 될 수 없으니까.
"근데 인마."
문득 강태호가 말을 걸어오자 늑대는 고개만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함만 쓰다듬… 아오. 더러워서 안 한다."
그림자가 스멀거리는 모습에 강태호는 기겁해 손을 거뒀다. 두 번 쓰다듬었다간 상 치르겠다고 투덜거리면서. 순간 늑대의 귀가 쫑긋거렸다.
***
동굴과 같은 던전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시야의 확보. 횃불은 들고 있지만 그래도 눈을 적응시킬 필요가 있다. 초입에서 어둠에 눈이 익숙해졌을 때, 리더 역할을 맡은 헌터가 지시했다.
"진입합니다."
창잡이가 선행하며 횃불을 들고 전사가 그 옆을 지킨다. 후방에는 궁수. 이은하는 대열의 중앙을 걸었다. 그녀가 맡은 역할은 경계와 키퍼. 감지를 사용해 적의 접근을 알리는 게 주된 역할이었고 급한 상황에서 전투에 참여하란 것. 그렇게 초입에서 얼마간 전진하자 이은하가 몬스터의 접근을 알렸다.
"전방에 6."
그 말에 궁수가 쪼그려 앉아 바닥을 쓸었다. 그러더니 귀를 붙이고 발소리를 듣는가 싶더니.
"…코볼트 아니면 고블린? 둘 중 하나입니다. 그 외에는 없는 것 같네요."
전사들이 끄덕였다. 궁수가 말했던 대로 몬스터의 정체는 코볼트였다. 여섯 마리 코볼트가 무기를 쥐고 곧바로 전투 상황이 벌어졌다. 코볼트 두 마리가 창을 던지는 것으로 교전이 시작됐다.
"종대로!"
궁수의 오더에 이은하는 잠깐 허둥지둥하는가 싶더니 금세 지시에 따랐다. 한 줄로 선 앞에서 전사가 방패를 들었고 창을 쳐내는 데 성공했다. 던진 게 코볼트이기도 했거니와 좁은 동굴이라서 날아오는 궤도가 뻔하기도 했다.
코볼트가 달려들자 창잡이가 횃불을 든 팔을 크게 휘둘러 움찔한 사이에 화살 하나가 빛살처럼 날아와 미간을 꿰뚫었다. 코볼트들이 망설이는 사이 창잡이가 앞발로 걷어차 진형을 무너뜨렸다. 그사이, 전사는 방패로 밀어내고 확실한 타이밍에 검을 찔렀다.
나무랄 데 없는 연계. 그에 강태호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어때 보이냐?"
"……."
"왜. 인마. 말이나 해보라니까."
강태호가 묻는 건 헌터들이 몬스터를 사냥하는 방식에 대한 것. 몬스터가 보기에 몬스터를 사냥하는 건 어떠하냐고 묻고 있었다.
"…잘하는데."
그건 늑대로서도 고개를 끄덕일 만했다. C클래스 언저리인 헌터로서는 최선이었으리라. 다만 어쩐지 아쉽다는 듯한 표정에 강태호는 고개를 모로 꺾었다.
"말할 거 있음 해라. 고칠 건 고쳐야지."
기꺼이 의견을 받아들이겠다는 말에 늑대는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말할 게 없는 건 아니었지만, 늑대가 아쉬워 하는 건 헌터들에 대한 게 아니었으니까.
"……."
침묵하는 늑대. 일단 더 지켜보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강태호는 팔짱을 꼈다. 그러는 사이 남은 코볼트의 숫자는 어느새 셋까지 줄었다. 여섯으로도 안 됐는데 세 마리로 될 리가 없다. 무난하게 코볼트를 처리하고 한쪽으로 밀어 치워두는 모습. 그게 혹시라도 나중에 후퇴할 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함임은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었다. 턱에 손을 얹은 강태호는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근데 진짜 한 번만 만져 보면 안 되냐?"
"―――."
"뀨우우우!"
"아 알았다고. 자식들. 거 되게 깐깐하네."
***
순조롭게 진행해 어느새 던전의 중간까지 와 있었다. 여기까지는 무난하게 진행했지만, 슬슬 수준 높은 몬스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외눈박이]
[신장 2.21m] [체중 161.1kg]
[힘 336] [민첩 281] [체력 303]
[보유 스킬]
[질긴 피부(E)]
어디까지나 헌터들 입장에서. 외눈박이라면 일전에 환계에서 본 적 있는 몬스터였다. 보스로 등장했던 주제에 겁먹고 도망쳤던지라 기억에 남아 있다. 놈은 제법 위풍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더니 동굴 벽면을 떼어 던졌다.
"―――!"
전사는 방패를 들어 노련하게 막았지만 강한 힘으로 던진 충격을 감당치 못하고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창잡이가 앞서 횃불을 휘둘렀지만, 그걸로 외눈박이를 물러나게 하는 건 역부족이었다. 그에 궁수가 소리쳤다.
"산개!"
오더가 내려지자 전사와 창잡이가 비스듬히 중앙을 비우고 둘러싼 순간, 궁수의 화살이 그 틈새 사이로 외눈박이를 향해 쏘아졌다. 마치 석궁처럼 직선으로 쏘아진 화살이 외눈박이의 심장 어림에 틀어박혔으나 꿰뚫지는 못했다. 두꺼운 지방층과 질긴 피부 때문에 깊이 뚫리진 않았다. 외눈박이는 고통스러워하며 소리 질렀고 거세게 휘두른 팔에 전사 하나가 나가떨어져 벽에 등을 부딪친 순간, 이은하가 중얼거렸다.
"Distort."
짤막한 말과 함께 외눈박이가 무형의 마력에 붙잡혀 옴짝달싹 못하게 됐다. 그러는 사이 창잡이의 횃불이 외눈박이의 눈을 불태웠다. 커다란 눈이 불타는 사이에 나가떨어졌던 전사가 외눈박이의 목에 검을 꽂았다.
"Add. 5!"
여유가 없다. 소리를 듣고 몰려오는 몬스터의 접근을 경고하자 전사의 눈이 후방을 향했다. 순간 외눈박이의 팔이 들려졌고, 이은하는 주먹을 쥐었다. 핏물이 된 외눈박이의 뒤로 거대한 거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벽과 천장을 타고 달려드는 모습에 궁수가 외쳤다.
"후퇴! 좁은 골목까지 후퇴합니다!"
옳은 판단이었지만 거미가 더 빠르다. 이대로라면 따라잡히고 말 터. 창잡이는 횃불을 휘두르며 거미들을 막으려했으나, 오히려 놈들이 뿜어낸 대량의 독이 횃불을 끄고 말았다.
"……!"
불이 꺼지고 캄캄한 어둠이 내려앉자 준비하고 있던 이은하의 마력이 폭발을 일으켰다. 목표는 천장. 작은 폭발은 종유석을 떨어뜨렸고 어김없이 거미를 꿰뚫었다. 폭발로 인해 아주 잠깐 빛이 밝혀진 순간, 전사는 몸을 비틀고 거미를 차 냈다.
남은 거미들이 짓쳐들어오기 전에, 궁수는 뒤늦게 새로운 횃불을 밝혔다. 쏘아진 독을 공간을 왜곡시켜 막아내자 처리하는 건 쉬웠다. 이제 남은 건 고작 한 마리. 헌터들이 쫓은 순간 세 갈래 길이 그들을 반겼다.
"일단 거미는?"
"오른쪽 길로 들어갔어요. …여덟 마리 정도 더 있어요."
"보스는 느껴집니까?"
"…죄송해요."
고개를 숙이는 이은하의 어깨를 어느새 횃불을 건네받은 창잡이가 두드렸다.
"뭐가 죄송해? 덕분에 편한데. 아까도 잘했어."
늑대는 창잡이의 얼굴을 유심히 보다가 그제야 예전, 아카데미에서 말단들과 싸우던 그 젊은 헌터였음을 깨달았다. 고민하던 헌터들은 일단 몬스터가 없다는 왼쪽 길을 내버려 두고 오른쪽 길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보스와 교전하는 중에 뒤통수를 맞지 않기 위해서. 안전을 추구하는 방식. 등급은 낮지만, 베테랑 헌터들답게 무난하게 진행하고 있다. 잠깐 중앙 통로에 시선을 향한 늑대는 눈살을 찌푸렸다.
"―――."
던전에 입장했을 때부터 늑대만은 듣고 있었던 코를 고는 소리가 끊어져서.
***
헌터들은 거미들을 어렵지 않게 처치했다. 정확히는 처치가 아니라 처리에 가까웠지만.
"허 참."
그에 강태호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설마 천장을 무너뜨려 매몰시킨단 발상은 떠올리지 못했으니까. 깔린 거미들이 키익거리더니 푸른 피가 잔해 사이로 흘러나왔다. 아무리 몬스터라도 저래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돌아온 헌터들은 중앙 통로로 돌아왔고, 저 멀리 알파와 2팀장의 모습이 보였다.
"……."
감독 역으로 따라왔다더니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정말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움직이지 않을 테고 그들이 움직이지 않게 만드는 게 헌터들의 일이었다.
"왼쪽은 없다고?"
이은하가 고개를 끄덕이자 궁수는 바닥에 귀를 가져다 댔다. 소리를 듣는 거라 움직이지 않는다면 확인할 수 없긴 하지만… 적어도 지금 움직이고 있는 몬스터는 없는듯하다.
"전진합시다."
이제 중간을 조금 넘겼을 뿐이다. 아직 도착하려면 조금 더 시간이 걸릴 터… 헌터들이 다시 전진하던 와중, 그 예상과는 달리 이은하가 다급히 외쳤다. 중앙 통로에서부터 몬스터들이 물밀듯 밀려오고 있었으니까. 마치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