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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134화 (134/407)

〈 134화 〉 #57 화산각룡

"슬슬 된 것 같군. 이 정도면 충분하네."

이틀이 지난 시점, 마침내 백록의 허락이 떨어졌다. 실제로 지난 이틀간 던전에 잔존하는 마력의 상당수를 흡수했으니까. 전체의 7~8할 가까이 백소율이 받아들였고 5푼 정도는 홍유리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한 차이에 저렇게까지 차이가 나는가 싶었지만, 괜히 마녀라 불린 건 아닌 거겠지. 물론 나도 시도는 해봤지만, 티도 나지 않을 만큼 소량밖에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리고 백소율과 홍유리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환수라 그런 건지 페리도 제법 마력을 받아들이는 데 성공했다.

"뀨우우!"

기어코 200에 달하고야 만 마력. 장하다는 뜻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기쁜 듯 비벼왔다.

"그럼 이제…"

서리 계곡에 더 있을 필요는 없다. 춥다는 듯 부르르 몸을 떠는 홍유리와 백소율의 시선이 향해오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밭 위를 걸어 발자국을 남기며 미리 움직일 수 없게 만들어 둔 몬스터들의 앞에 섰다.

"알지?"

"……네."

조금 망설이는 듯하던 백소율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을 늘리는 것만이 아니라 경험도 쌓게 해야 한다…… 그게 홍유리의 의견.

"너도 방해하지 마."

여전히 본신을 보는 건 힘든 모양인지 시선을 돌린 채로 홍유리가 말을 걸어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이틀간, 홍유리는 제법 공포증을 극복했다. 본신과 눈을 마주치는 건 아직 힘들어하지만, 그래도 작은 접촉 정도로 기절하지 않을 정도로.

'그리고 백소율…'

그녀가 성장한다면 마녀의 재앙이 일어날 확률은 그만큼 희박해진다. 탕아들이 움직일 수단이 하나 줄어든다는 뜻. 또한, 시간이 지나 무진장한 마력을 휘두를 수 있다면 그녀에게 나름대로 기대를 걸어볼 수도 있으리라.

"알고 있지? 네가 하는 거야."

그 말에 백소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부터 들어왔고 그럴 각오도 되어 있었으니까. 단순히 마음을 독하게 먹는 게 아니라― 몬스터를 향해 마법을 사용해야만 한다. 그것도 여태 사용해본 적 없는 마법을.

"집중해."

시선은 외부로 집중은 내부로. 가진 마력을 관조해 끌어올림과 동시에 입으로는 주문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Vopseste-l alb."

일찍이 마녀라 불리었던 재능의 편린― 환계의 푸르스름한 색을 띤 마력은 주문을 영창함에 따라 새하얗게 물들어갔다.

'저건…'

태동하는 악을 쓰러뜨리기 위해 홍유리가 사용했던 백색 빛. 소설 속에서조차 묘사된 적 있던 그녀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마법이었다.

"Al, Alb pur Stelele sunt sa explodeze―"

"쯧."

아주 잠깐 영창을 더듬자 마력이 출렁였고 그에 홍유리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찼다. 그렇게 마지막 영창이 남았을 때, 백소율의 이마에는 이미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마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단순한 집중 때문에. 새삼스러운 거지만, 3절 마법만 사용할 수 있어도 나름 뛰어난 마법사임에는 틀림없다. ―일반적인 기준에서는.

'데릭 클라크.'

대전의 밤에서 보았던 마법사. 비록 변변찮은 반격도 못 했다지만, 나름대로 제대로 된 마법사였다. 아마 환계의 일이 끝나면 데릭 클라크 정도는 뛰어넘을 수 있지 않을까.

"집중하라고 했지!"

홍유리의 언성이 높아지고 백소율의 마력은 영창이 이어짐에 따라 기어코 순백으로 물들어갔다. 티 한 점 없는 백색 빛이 완성된 순간, 마지막 영창을 영창해낸다.

"Iată moartea ta―!"

―폭사하는 순백. 퍼져나가는 빛 속에서도 늑대는 똑똑히 그녀의 마법을 지켜보았다. 조준하는 손이 떨려 살짝 엇나가 몬스터가 있는 위치에서 약간 빗나가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충분하고도 남는 위력이다. 하지만 홍유리에겐 아니었던 모양.

"……40점."

어쨌건 마법은 성공한 거 아닌가. 박한 점수에 늑대는 쓰게 웃었다.

'그나저나 3절 이상은 못 가르치는 거 아니었나?'

언뜻 그런 언급이 있었던 것 같은데. 스퀘어 소속이 아닌 헌터나 학생에게 허락되는 마법은 2절까지. 그 이상은 스퀘어 소속이거나 허락을 받은 이들에 한정한다고. 물론 홍유리가 어련히 알아서 했겠느냐마는…

"시작됐군."

그 말대로 던전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몰아치던 눈보라는 서서히 멎어 이내 사라졌고 풍경은 덧씌워진다. 결국, 드넓은 설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드높은 빌딩 숲이 자리 잡게 됐다.

[멸망 확률 86.03% → 85.92%]

[0.11%만큼의 업을 획득했습니다]

무너져내린 서리 계곡. 그에 따라 마땅한 멸망 확률과 업을 획득한 늑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남은 건…'

[Lv.20 달성 조건 : 화산각룡을 처치할 것]

등을 떠밀어주는 듯한 메시지에 조용히 숨을 골랐다. 기다리던 때가 오고 말았으니까. 처음 화산지대에 갔을 때는 도저히 대적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괴물. 흑린과 여왕 같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화산각룡은 여태 봐왔던 것 중 이견의 여지 없이 가장 강하다. 물론 강훈도 강하기는 하지만 화산각룡과는 타입이 다르니까. 그런 강훈이라 해도 화산각룡을 정면에서 쓰러뜨리는 건 불가능하리라.

'이제부터…'

그런 괴물을 상대하러 간다. 남산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늑대는 화산지대에서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문제는 몬스터들이 빠져나갈 수도 있다는 거야.'

용암 속에 살아가는 괴물들. 가능하면 용암을 벗어나려 하지 않았지만, 화산각룡과 싸우게 되면 그 여파에 의해 던전을 벗어나려 할 수도 있다. 홍유리와 내가 싸우게 되면 용암 괴물을 막을 사람은 백록과 백소율― 사실상 백록 혼자라 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나는 이 같은 사실을 일행에게 알렸다.

"용암 몬스터라니…"

눈살을 찌푸리는 홍유리와 상상하기 어렵다는 듯 묘한 표정의 백소율.

"알겠는데… 그럼 먼저 처리하면 되는 거 아냐?"

화산각룡과 싸우게 되면 무엇도 장담할 수 없다. 승패는 물론이요, 그 여파까지도. 가능한 한 최대한 유인해 던전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들긴 하겠지만, 싸움의 여파에서 벗어나기 위해 용암 속 몬스터들이 던전을 빠져나오려 할지도 모른다. ―놈들이 전부 나오게 되면 아무리 백록이라도 혼자서 막는 건 불가능하리라.

'그렇게 되면 환수들이 휘말릴 거야.'

따라서, 화산각룡을 처치하기 전에 용암 속 몬스터들을 먼저 처치해야 한다는 홍유리의 의견은 옳다. 나 또한 그리 생각하고 있었고.

"그 역할은 내가 하겠다. 화산각룡을 제외한 몬스터를 처리한 뒤, 마력부터 흡수하고 화산각룡과 싸우게 될 거란 뜻이다."

지금의 나라면 은신 상태를 해제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테니까. 되려 다른 이들이 끼면 괜히 놈에게 발각당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마력을 흡수할 동안 너희가 발각당하지 않는 건데."

나는 홍유리를 빤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럴 방법이 있느냐는 시선에 홍유리는 손가락을 튕겼다.

"――Ascunde."

막이 생기더니 모습을 감춘다. 마치 격리되는 듯한 마법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은 해봐야겠지만 이 정도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나는 몬스터를 처리하고 홍유리와 백소율은 경계 앞에서 마력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행동 방침을 정하고 남산의 던전, 그 경계를 넘기 전에 늑대는 진지하게 말했다.

"벗어라."

***

―드물다. 던전에 들어선 홍유리가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이었다.

"시발…"

삐질삐질 흘러내리는 땀을 닦은 홍유리는 손으로 부채질했다. 서리 계곡은 얼어 죽을 것만 같았는데 극과 극으로 푹푹 찌는 열기에 죽을 것만 같다. 외투를 벗지 않았다면 더위에 쓰러졌을지도…

'화산지대라고.'

그런데 정작 그 화산은 무너져있다. 그뿐만 아니라 군데군데 부서진 바닥은 격렬한 전투의 흔적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용암이 굳어 새로운 바닥이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었다.

"그래서, 화산각룡이란 건 어디 있는데?"

그 물음― 늑대는 대답 대신 턱짓했고 시선을 따라가 봤지만 거기엔 바위산밖에…

"미친?"

―착각이었다. 바위산이라 여겼던 것이야말로 화산각룡이리라. 헌터로서 온갖 몬스터들을 봐온 그녀였지만, 비슷한 것조차 없다. 그나마 숲의 던전의 봤던 살덩이가 덩치가 비슷하긴 했겠지만, 감히 비교할 수는 없다.

"지금 저런 걸 잡겠다고? 제정신이야?"

굳이 안목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다. 저게 얼마나 불합리한 괴물인지를. 2구획의 보스인 스노웰 이상 가는 괴물. 이미 그 덩치만으로 재앙에 가깝다. 과연 대마법으로도 죽일 수 있을지 의문인데… 홍유리는 잘근잘근 입술을 씹었지만,

"――그래."

늑대는 담담히 긍정했다.

"너…"

그러겠다고 했지만, 실제 그 모습을 보니 상대할 엄두가 나지 않는 걸까. 둘의 만류에도 늑대는 요지부동이었다. ―늑대만큼은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시선을 돌렸을 때, 백소율 또한 화산각룡을 목격한 건지 믿지 못하겠다는 듯 입을 가리고 있었다.

"자네, 굳이 지금 무리하지 않더라도…"

어차피 늑대의 성장 속도라면 언젠가 화산각룡조차 압도할 수 있게 되는 건 확실할 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백록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늑대는 싸우려 하는 것일 터. 그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용의 황무지에서도 그랬고 뒤집힌 마천루에서도 꺾이지 않고 나아갔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그가 추구하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흰 사슴의 오목한 깊은 눈이 늑대의 모습을 담았다. 결국 그 의지를 꺾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조심하게."

"어차피 지금 당장 싸우는 것도 아냐."

마력을 흡수하고 몬스터들을 모두 처치한 뒤, 당장 던전이 붕괴하더라도 문제없도록 만든 다음이어야 한다. 10분 정도 기다린 다음에야 홍유리가 만든 마법의 막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늑대가 멀어지자, 홍유리는 뒤를 보았다. 가슴에 손을 얹은 백소율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염원하듯 강하게 쥐고 있었다.

'털?'

그것도 검은 털. 무언가 중얼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눈빛이 달라진다. 아까 마법에 대해서도 그랬었다. 주문이 끊겼다고 충고하던 자신에게 주눅 드는 기색조차 없이 마법을 더 배우고 싶다는 적극적인 태도… 원래부터 의지는 있었지만, 무언가 목표라도 생긴 것처럼. 혹은 무언가를 결의한 사람처럼 변했다.

'아마 알파랑 관련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눈살을 찌푸린 홍유리는 잠깐 생각하다가 눈을 감고 마력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뀨우?"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페리 또한 마찬가지로 둘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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