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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136화 (136/407)

〈 136화 〉 #57 화산각룡 (3)

"미친…"

일그러진 표정이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 숲의 살덩이와는 전혀 다르다. 조준이 빗나간 것도 아니고 직격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살아있다. 심지어 쓰러지지도 않고…!

"―데미지는 있다."

"뭐?"

"브레스가 멈췄으니까."

그 말에 홍유리는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다시 각룡을 보았다. 늑대의 말대로 각룡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용린 대부분이 뜯겨나가고 그 속에서 불이 타올라 용혈을 불사르고 있다. 거기에 더해 브레스까지 멈췄다. 의심할 여지 없이 데미지는 있다는 뜻.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유리는 잘근잘근 입술을 씹으며 초조한 모습을 보인다.

'침착하지 못할 만도 하지.'

늑대는 그녀를 이해했다. 마법사에게 있어 대마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직격해서 쓰러뜨리지 못했다는 건 자존심의 문제. 절망 혹은 벽이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멈춰서는 안 된다. 두 번으로 안 된다면 세 번으로. 그렇게 해도 안 되면 마력이 다할 때까지. 늑대의 시선에는 그런 불굴이 담겨 있다. 눈을 마주친 순간, 홍유리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계속 영창해라."

"……Se înroșesc."

군말하는 대신, 홍유리는 주문을 입에 담았다. 붉게 물들어라― 그 주문의 말에 따라 진홍의 마력은 더욱더 붉게 물들어갔다. 그 심정은 이해하더라도,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만 놈을 쓰러뜨릴 수 있을 테니까.

각룡이 재생 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 시간을 끌어봤자 승산은 낮아져 갈 뿐. 마법사가 영창을 이어가는 것을 확인한 늑대는 다시 한번 각룡을 살폈다.

접근하는 게 위험한 건 당연하지만, 재생하지 못하도록 그만한 데미지를 끊임없이 입혀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거리를 좁혀야만 한다.

'공허 그리고 흑무.'

아지랑이가 일렁이고 검은 안개가 스멀거렸다. 돌풍이 터져 두 스킬을 밀어낸 순간, 대마법의 충격의 여파에서 정신을 차린 각룡이 몸을 돌렸다. 무식하리만치 거대한 놈의 전신에서 아직 남아있는 비늘, 용린이 곤두세워졌다.

'아직 화신은 사용하고 있지 않아.'

그만한 변화는 없다. 한껏 턱을 벌린 각룡의 시선이 향했을 때, ―등 뒤에서 무언가가 터지는 듯한 굉음에도 늑대는 돌아보지 않았다. 오히려 달려 나가 각룡의 등 위에 올라섰다. 뒤늦게 각룡의 꼬리가 늑대가 있었던 자리를 후려쳤지만, 밟고 있던 발판만이 깨져나갔을 뿐. 용린의 대부분이 부서져 투시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내부를 볼 수 있을 정도로 각룡의 상태는 좋지 않다.

'재생만 막을 수 있다면…'

쉽사리 브레스를 내뿜지는 못하리라. 검은 안개가 곤두선, 또 부서진 용린 사이를 헤엄치듯 나아가며 각룡을 갉아먹었고 공허는 놈을 게걸스레 먹어 치워갔다.

―의외로 쉽게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망상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생각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대마법을 기어코 두 번이나 견뎌낸 괴물 중의 괴물. 발판에 발판을 밟고 뛰어오른 늑대는 놈의 등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미지수는 화신이야.'

게다가 거리를 두면 브레스가 날아온다.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건 각룡의 숨결에 당했다간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

"Puterea cuvintelor mele Acoperă lumea."

따라서 거리를 두는 건 홍유리의 대마법이 쏘아질 때, 그 여파에서 벗어나는 딱 한순간만이어야 한다. 놈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휘청이고 말았지만, 금세 다시 균형을 잡았다. 새살이 돋아오르고 용린이 다시 만들어지는 걸 보며 늑대는 눈살을 찌푸렸다.

'……?'

상처가 재생되고는 있지만, 그 속도가 느리다. 흑무와 공허가 먹어 치우는 속도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어째서?

'분명 회복도 있을 텐데…?'

놈은 E등급 재생만이 아니라 C등급 회복까지 보유하고 있다. 그 의문은 머지않아 풀려나갔다.

'어째서 회복을 사용하지 않는지 의문이 있었는데…'

―사용하지 않는 게 아니라 이미 사용했던 거다. 두 번의 대마법을 온전히 견뎌낸 게 아니라 급속회복까지 사용하고 나서 버틸 수 있었던 거다.

'하지만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어.'

다소 무리해 사용한 모양인지 당장 회복은 사용할 수 없어 보이지만, 머잖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될 거다. 억지로 회복하느라 마력까지 상당히 사용한 모양이지만, 그나마도 C등급 마력 재생이 있으니 오래 걸리지는 않을 터.

"Prin urmare, Ceea ce vreau este devenit realitate."

―새삼 스킬이라는 게 얼마나 불합리한 힘인지 깨달았다. 늑대는 전력을 다해 달렸고, 그로부터 짙은 그림자가 퍼져나갔다. 한계까지 퍼진 영량은 각룡의 등을 덮었고 걸음마다 탈식이 작용한다. 꿰뚫고 찢어발기고 먹어 치우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마력은 아낌없이 사용한다. 아니, 아껴서는 안 된다. 육체의 한계를 넘은 출력으로 진탕되어가는 내부는 완화와 재생이 커버한다.

쓰고, 또 끌어써야만 한다. 그래야만 각룡의 마력을, 급속 회복을 사용할 마력을 없앨 수 있다. 대마법의 상처가 회복되면 지금의 균형조차 무너지고 말 테니까.

'반대로 마력만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면…!'

마력을 사용하지 않은 급속회복으로는 그 거대한 덩치를 회복시킬 수 없다. 곤두세워진 용린을 찢어발기고 물어뜯으며― 순간, 각룡이 발을 구르자 용암은 각룡의 전신을 덮을듯 수십 미터를 솟아올랐다. 용암뿐만 아니라 부서진 바닥이 파편이 되어 높은 곳까지 솟구쳤다.

말도 안 되는 일은 말도 안 되는 힘이 가능케 한다.

솟구친 용암과 파편을 본 늑대는 눈살을 찌푸렸다. 혼자라면 그림자속으로 숨어들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홍유리가 있는 이상 그건 불가능하니까. 용암과 파편이 떨어지는 순간, 늑대는 되려 눈을 감았다.

―발 구름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모든 걸 초토화하겠다는 듯 달리기 시작한 각룡의 등 위에서 견디는 것만 해도 쉽지 않다.

'그래도야.'

늑대는 공허를 불러일으키는 대신, 파편과 용암의 경로를 모조리 예측했다. 뇌에 과부하를 일으키는 듯한 정보량이 쏟아졌지만, 멈추지 않았다. 예측하고 또 예측한다. 그런데도 부족하다면 직관까지 끌어낸다. 미처 생각할 수 없는 거라면 생각하기 전에 반응하면 된다. 돌풍을 터뜨려 용암을 밀어내거나 촉수로 파편을 쳐내는 등,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견뎌내고 또 피해냈다. 각룡도 늑대도 멈추지 않는다. 떨어뜨리려는 자와 버티려는 자― 그 싸움에서 끝내 승리를 쟁취한 건 각룡이었다.

"―――!"

고개를 돌린 각룡이 떠나가라 소리 지르자 매질이 된 공기를 공허가 먹어 치웠다. 그리고 다시 숨을 들이켜자 마력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설령 자신이 휘말리는 한이 있더라도 브레스를 쏘겠다는 뜻. 또한, 놈의 몸이 서서히 달구어지는 것에 늑대는 발판을 밟고 뛰어올랐다. 혼자라면 견뎠을 테지만, 비 오듯 흘러내리는 땀이 홍유리의 전신을 적시고 있었다.

"Acoperit în foc negru―"

마지막 한 절의 영창을 남겨놓고 주문의 완성이 머지않았다. 다시 떠오른 육망성을 경계하듯 각룡이 고개를 돌린 순간, 놈이 들이킨 숨결에 검은 안개가 섞여들었다.

'……!'

브레스를 막을 수 있을 거라 여겼지만, 각룡은 안개를 목구멍 너머로 집어넣고도 한참이나 숨을 삼켰다. 마치 부풀어 오른 듯한 몸을 보며 늑대는 마력을 끌어올리며 가능한 한 멀어지기 시작했다.

각룡은 자신의 꼬리를 용암 속에 담구더니 퍼 올리듯 휘둘렀고, 곧 늑대를 향해 용암이 비산했다. 공허로 막을 만들어 감싼 순간, 각룡은 삼킨 숨을 단숨에 토해냈다.

그 거대한 덩치에 가득 들어찬 숨은 그것만으로 충분한 무기가 될 테지만, 멈추지 않고 붉게 물들어간다.

―브레스.

대마력까지 가진 각룡의 숨결이 쏘아졌을 때, 늑대는 이를 갈며 탄력을 발했다. 홍유리의 전신을 억누르듯 붙잡고 충격을 억제하려 했지만,

"……!"

억지로 발한 탄력에 그녀의 늑골이 부서지고 말았다. 은자림에게는 충격을 견뎌낼 스테이터스가 있었지만, 홍유리에게는 아니었으니까. 브레스는 던전의 천장을 꿰뚫을 듯이 날아가 한계 없이 치솟아 올랐다.

뜨겁게 달구어진 공기― 갈비뼈가 나가고 땀을 흘리면서도 홍유리는 여전히 영창하고 있다. 놈에게 어지간한 마법은 통하지 않는다. 필요한 건 대마법임을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늑대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브레스를 회피하는 건 성공했지만, 창공에 떠오른 육망성이 꿰뚫리고 말았다. 대마법은 멈춘 게 아닐까― 저런 상태로도 마법을 완성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그런 늑대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홍유리가 말했다.

"내려놔. 그리고…"

붉은 눈과 마주한 순간, 진홍의 눈동자는 살짝 떨리는가 싶더니,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시간이나 벌어줘."

그에 늑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든 마법은 완성해 보이겠다― 그런 의지가 담긴 말. 어차피 대마법 정도의 공격이 아니라면 화룡을 쓰러뜨리기란 요원한 일이다.

"Ascunde."

허공에 떠오른 홍유리는 은폐막 속에 숨어들어 주문을 깁고 덧대기 시작했다. 마력이라는 실로 찢어진 육망성을 다시 만들어간다. 뜨거운 열기가 위로 치솟는 가운데 늑대는 숨을 가다듬었다.

'…시간을 끌어달라고 했지.'

그 말에 늑대는 각룡을 내려다봤다― 마지막 순간, 뜨겁게 달구어져 가던 몸. 충격이 쌓여서였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각룡이 가지고 있던 스킬인 화신이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같은 등급의 스킬이었던 강신은 바포메트를 전혀 다른 존재로 탈바꿈시켰었다. 조그마한 처형자는 거대한 산양이 되어 광장을 부쉈었다.

―화신은 다르다.

던전의 바닥 가득히 깔려있던 용암이 서서히 일어나더니 그 의지에 따르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늑대의 검은 불꽃마저 그에 종속하기 시작했다. 화신, 그 이름 그대로 불을 두른 각룡은 생물이라기보단 경배받아 마땅한 신의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얕보고 있었나?'

―냉정했다고 생각한다. 쓰러뜨릴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대마법에 두 번이나 직격당했음에도 이렇게까지 견딜 수 있을 거라곤 예상치 못했을 뿐. 결국, 오산이었다는 뜻이다.

'귀화는 사용할 수 없어.'

결국 놈에게 종속당하고 말 테니까. 사라졌던 비늘이 하나하나 돋아나기 시작하는 모습에 늑대는 더 생각하지 않았다. 돌풍과 탄력을 비롯해 전력으로 내달린다― 화신에 종속된 용암은 용오름이 되어 수십 줄기로 나뉘어 허공을 달리는 늑대를 쫓았다.

파편까지 포함된 용암은 늑대에게 닿지 못했다. 늑대가 보고 있는 것과 각룡이 보는 것은 전혀 다르다.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보는 늑대― 따라서 각룡의 공격이 닿을 리 없다. 제아무리 위협적인 공격이라 한들, 대마법조차 닿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처럼.

'전부 피한다.'

홍유리는 시간을 끌어달라고 했다. ―겨우 그런 거로 끝낼 생각은 없다. 온전히 혼자가 된 늑대는 탄력을 발하고 몸을 비틀며 발판을 밟아 입체적으로 움직였다. 눈으로 좇기도 힘든 속도는 흐릿한 잔상을 남겨 늑대를 검은 선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 ―――?!"

소리 지르려던 각룡은 소리가 나오지 않음에 당황했다. 날숨에 섞여나온 것은, 목구멍 너머에서 보이는 것은 숨결이 아니라 검은 안개. 아까 집어삼켰던 흑무는 집요하고 끈질기게 각룡의 내부를 갉아먹고 있었다.

소리 없는 화산의 격노― 각룡의 전신을 두르고 있던 불꽃이 활화산처럼 폭발해 터져나갔고, 늑대를 쫓던 용암 줄기는 서로 부딪치며 넓게 퍼져 물결을 만들어냈다. 용암의 막이 창공을 덮어 흩뿌려지고 늑대를 뒤덮은 순간, 붉은 눈은 안광을 빛냈다.

―다음 순간, 터진 화산의 불꽃과 용암의 막이 모습을 감췄다. 우뚝 멈춰 선 각룡의 눈은 의문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당연한 일이다. 화신이 A등급의 스킬이라면 공허 또한 마찬가지. 같은 등급의 스킬이 서로를 막지 못할 리 없으니까.

각룡을 물어뜯기 위해 마랑이 이를 드러낸 순간, 무너졌던 화산이 출렁이고 각룡으로부터 무언가가 파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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