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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137화 (137/407)

〈 137화 〉 #57 화산각룡 (4)

화산 그 자체의 의지― 각룡의 화신에 따라 무너져내렸던 화산이 다시 솟아오르자 용암이 들끓어 올라 바닥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

기껏 대마법의 범위를 조절해 바닥을 유지하고 있던 의미가 사라졌다. 그리고 문제는 겨우 그런 게 아니라…!

'화신…!'

―놈에게서 퍼져나오는 파동. 조금씩 커지는 파동은 수면 위에 물결을 일으키듯 대기를 진동시켰다. 열기가 퍼져 안 그래도 뜨거웠던 대기를 더욱 뜨겁게 달구어간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는 별개로 타오르는 가마 속에 있는 듯한, 그런 갑갑함이 전신을 옥죄었다.

숨 막히는 공기 속에서 각룡은 무릎을 굽혔고― 뛰어오르지 못했다. 그 눈에 보이는 것은 비어있는 허공뿐이었으니까. 늑대는 분명히 있다. 근처 어딘가에 숨어있을 테지만, 도무지 그 위치를 특정할 수 없다.

본래 은신이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존재감을 지워 인식되기 어렵게 할 뿐이지 모습을 감추는 게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나아간 은신― 기어코 비가시화라는 새로운 영역에 나아간 이상, 늑대를 찾는 건 절대 쉽지 않다.

홍유리의 추적의 마안으로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거늘 탐지에 관한 스킬이 없는 이상, 선공권은 늘 늑대에게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늑대가 각룡의 스킬을 불합리하다 여긴 것처럼 각룡 또한 마찬가지로 불합리함을 느꼈다.

그리하여, 각룡은 늑대를 찾는 걸 포기했다.

어차피, 전부 부숴버리면 되니까.

화산의 의지는 이 땅을 밟은 침입자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게 파동은 점차 커져 나가 대기를 수십 차례 두드리고 달구며 더욱 기세를 불렸다. 결국,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한계 이상으로 뜨거워진 대기 그 자체가 불타오르기 시작한 것. 더욱, 더더욱. 끓어오르는 용암은 힘을 얻어 주체하지 못하겠다는 듯 터져 나와 용솟음 치기 시작했고 그것은 마치 용암으로 만든 태풍을 보는 듯했다.

세상의 끝에서나 볼 법한 광경이 화산지대에서 일어나고야 말았다.

그리고 아직 끝이 아니다. 아까 검은 안개가 갉아먹었던 각룡의 성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재생을 끝마쳤고 각룡은 숨을 들이켰다.

―마랑을 끝장내기 위해 내뱉어질 숨결.

브레스를 준비했지만, 마력이 모여들지 않자 각룡의 눈동자에 의아함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회복되어야 할 마력이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었으니까. …어째서?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회복되는 마력의 양 이상을 빼앗기고 있어서.

분명 머지않은 곳에 있을 텐데 늑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비가시화한 늑대는 도무지 찾을 수 없다. 하지만 각룡은 그리 둔하지 않다. 늑대가 올라탔다면 느꼈을 터. 애초에 화신으로 불타오르고 있는데 몸 위에 올라탔을 리가 없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숨을 들이켜는 것에 따라 각룡의 몸은 한계까지 부풀어 올랐고 그렇게 각룡의 외침, 날숨이 뱉어지자 대기에 붙었던 불이 비산해 흩날리며 얇고 또 넓게 퍼져나갔고 그와 동시에 숨어있던 늑대의 모습이 드러났다.

"……!"

돌풍으로 밀어내 가까스로 화마에 덮쳐지는 건 벗어날 수 있었지만 열기에 타오르고 말았다. 검은 털이 그을려 타올랐지만, 늑대는 신경쓰지 않았다. 움직이는 데 지장이 없으니까. 또 어차피 재생이 있으니 곧 회복할 터. 그리고 화산각룡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각룡은 꼬리를 휘둘렀다. 그 단순한 움직임에 힘과 무게가 더해지자 공기의 벽을 억지로 찢고 밀어낸다. 공기의 벽에 밀리는 순간, 되려 흐름을 타고 탄력을 발해 수십 미터를 이동하며 늑대는 이를 악물었다. 곧 각룡은 입을 벌리더니 들이킨 숨을 단번에 토해냈다.

마력은 부족하다지만, 압축된 공기는 포처럼 쏘아져 늑대를 향했다. 늑대는 발판을 만들어 촉수로 자신을 끌어당기고 다시 돌풍과 탄력을 이용해 피했지만, 사방에서 다가오는 용암 줄기는 어떻게도 할 수 없다.

―공허는 이미 사용하고 있었으니까.

'망할…'

뿐만 아니라 각룡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말이 좋아 수십 미터를 날아갔던 거지 놈에게 있어 그 정도 거리는 한두 걸음으로 좁힐 수 있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잠깐 고개를 들어 올렸다. 육망성이 메꾸어지는 데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단순히 시간을 버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화산각룡에게 물러나 도망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공허로 먹어치워 마력을 계속 빼앗아온 덕분에 급속 회복과 브레스는 아직 사용하지 못하고 있지만, 재생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결국 용린이 재생되면 대마법이 작렬한다 해도 견뎌내고 말리라. 즉, 재생을 웃도는 피해를 줘야만 한다― 하지만 어떻게?

화신으로 놈의 거신이 세차게 불타오르고 있어 붙을 수도 없다. 귀화는 사용할 수 없고 그림자나 흑무는 불을 뚫을 수 없다. 심지어 돌풍조차 놈에게 있어 산들바람에 불과할 텐데.

기어이 용암의 폭풍이 다가와 휘몰아치자 늑대는 이를 악물었다. 피하는 건 어렵지 않다. 어렵지 않은데…

'일단.''

늑대는 피하는 것보다 먼저 돌풍을 터뜨렸다. ―자신에게가 아니라 영창하고 있는 홍유리를 향해. 은폐막째로 날아가 용암의 폭풍에서 벗어난 홍유리는 그제야 눈을 떴다.

"……!"

이제야 상황을 깨달은 듯 은폐막을 두드리며 무어라 소리치는 홍유리. 하지만 주변이 시끄러워 들리지 않는다. 시간을 끌어달라고 했었던 만큼 집중하고 있었던 모양. 과연 마법사다운 모습에 실소하며 늑대는 발판을 밟았다. 뒤이어 따라온 용암의 폭풍이 발판을 집어삼키고 늑대를 뒤쫓는다. 하나가 아니라 수십 개나 되는 용암 줄기와 부서진 바닥의 무수한 파편이 다가오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성급했나?

타오르는 불과 용솟음치는 용암들. 부서진 대지와 거대한 화산의 각룡을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화신을 드러낸 각룡에게 늑대가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거라고는 알량한 회피밖에는 없다.

피하고, 피하고, 또 피해서… 그래서 뭐?

그렇다고 각룡을 쓰러뜨릴 수 있나? 피하기만 하면 기회가 다가오나? 전신에 둘린 불을 꺼트릴 수 있나?

'역시 불가능해.'

정면에서 놈을 꺾기란 요원하다. 그러니까 결국, 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렇게, 죽음의 위기 앞에서 되려 감각이 예민해지고 직감이 선명해졌다.

[뛰어난 직감(D) Lv.9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뛰어난 직감(D) Lv.9 → 뛰어난 직감(D) Lv.10]

[뛰어난 직감(D) Lv.10이 최대 레벨에 도달했습니다. 뛰어난 직감(D) Lv.10 → 초감각(C) Lv.1]

고개를 들어 올리자 저 높은 곳, 은폐막 속에서 소리치는 홍유리의 모습이 보였다. 막을 두드리며 미친 거냐며, 당장 피하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며 늑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

각룡에게 삼켜지고 말았다. 누가? ―알파가.

"……!"

믿기 힘든 그 모습에 홍유리는 이를 악물었다.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조차 홍유리는 다음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혹시 구할 방법은 없을까? 살릴 방법은? 마법이 완성되려면 얼마나 걸리지?

"―――."

암담함 속에서도 숙련된 마법사는, 스퀘어의 마법사는 영창을 읊는다. 무언가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할 수 있는 게 고작 그것밖에 없어서.

―짐이 되고 말았다.

마법에 집중하겠다고 멋대로 짐을 떠넘기고 말았다. 조금만, 조금만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더라면. 그랬다면, 알아서 피했더라면…!

창백해진 안색. 홍유리는 잘근잘근 입술을 씹었다.

마법의 완성은 정말 머지않았다. 벌써 세 번째 대마법. 마지막이 될 대마법에는 남은 마력의 대부분을 소모했다. 가진 마력을 전부 쏟아붓고 이번에야말로 끝장내고 말리라고 준비했었으니까.

하지만 알파가 먹혔는데…!

혹여나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그녀를 망설이게 했다. 하지만 곧 홍유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쓸데없는 기대를 하는 것보다 확실한 기회를 노려야 한다. 마법사로서 그리고 헌터로서 판단한 그녀는 떨리는 팔을 애써 들어올렸다.

'…하는 수밖에 없어.'

판단의 저울, 무게추가 확실히 기울자 홍유리는 주문의 말을 입에 담았다.

"Arzând în ab…?"

그리고 그 순간, 화산각룡이 꿈틀거리자 창백한 안색, 그녀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설마…?"

***

놈의 거대한 턱이 닫히고 이빨이 맞물린 순간, 돌풍을 터뜨리고 탄력으로 내달린다. 경화된 수십 개의 촉수로 자신을 끌어당겨 마침내 붉은 혀 위에 내려선 마랑은 눈을 빛냈다.

삼켜졌음에도 늑대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건 낯선 일이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무사히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단 것에 안심했다. 놈과 싸우기 위해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싸우는 게 더 나을 테니까. 몇 번이나 벌렸던 화산각룡의 입― 내부만큼은 화신으로 타오르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으니까.

'그리고 브레스도 사용할 수 없을 테니까.'

그만한 마력은 남겨두지 않았다. 공허가 먹어 치운 마력― 늑대는 다시 공허를 불러들였다.

'결국 용린이 재생하지 못할 만큼 데미지를 주면 돼.'

그럼 굳이 외부일 필요가 없으니까― 영량을 퍼뜨려 늑대는 몸 내부의 그림자를 모조리 종속시켰다. 귀화를 포함해 불이 놈의 영역이라면 그림자는 늑대의 지배하에 있다. 그림자와 검은 안개가 각룡의 내부를 찢어발기고 갉아먹기 시작하자 각룡은 괴로운 듯 입을 벌렸다. 집어삼키는 숨― 타오르는 대기의 불까지 들어오기 시작하자 늑대는 돌풍과 공허를 함께 둘렀다.

―밖에서도 그랬지만, 공허를 뚫을 수는 없다. 아지랑이 속으로 삼켜져 사라져갔다. 늑대의 탐지엔 은폐막 속에 있는 홍유리의 존재가 생생히 느껴지고 있다. 또한, 마법이 완성 직전이라는 것도 알겠다.

그 때, 화산각룡의 몸이 크게 움직였다. 아래로 기울어지는 몸. 벌려지는 입― 보이는 광경은 온통 붉게 끓어오르는 모습. 숨을 들이켜도 불을 집어삼켜도 늑대를 쫓아낼 수 없다면 끓어오르는 용암을 집어삼켜 녹이고 말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렇게 용암을 한껏 들이켰을 때― 이미 늑대는 거기에 있지 않았다.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 화산각룡의 호흡기를 통해 빠져나왔으니까. 아직 타오르고 있는 몸― 순식간에 그림자가 불살라지자 늑대는 재빨리 튀어나와 뛰어올랐다.

그렇게 서로의 시선이 마주친 순간― 저항하듯 모여드는 불꽃과 용암을 돌풍이 밀어내고 공허가 먹어 치웠다. 그 틈 사이로 뻗어 나간 늑대의 영량은 단숨에 각룡의 눈을 깊게 파고들었다. 그렇게 그림자가 각룡의 시신경을 잘라놓은 순간, 각룡은 몸을 비틀며 괴로운 비명을 질렀다.

"―――!"

그러는 사이 늑대는 이미 멀어져 있었다. 이미 마법은 완성되어 있었으니까. 더없이 붉게 빛나는 진홍의 육망성을 보며 늑대는 발판을 밟고 뛰고 또 뛰어올랐다.

"Arzând în abis și transformându-se în cenușă―!"

그렇게 마지막 영창이 발해진 순간, 모든 마력을 쏟아부은 혼신의 대마법이 마침내 각룡을 향해 작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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