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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139화 (139/407)

〈 139화 〉 #58 정리

땅에 내려서자마자 페리가 머리를 비벼왔고 촉수로 홍유리를 들어 올리자 얼른 다가온 백소율이 두 손을 뻗었다.

"조심해라. 갈비뼈가 부러졌으니."

"네."

스승을 받아든 백소율― 아직 재회의 기쁨을 만끽하는 페리를 쓰다듬어주었고 그렇게 눈이 마주친 순간, 페리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굳이 말을 나눌 필요도 없이 서로가 서로를 알고 있다는 건 이렇게나 편하다.

"무사히 돌아왔군. …정말로 쓰러뜨릴 줄은."

백록이 침음하는 것엔 나도 동감이었다. 이제 와서지만 화산각룡과 싸우면서 놈의 강함을 뼈저리게 느꼈으니까.

예상했던 것보다 몇 배는 더. 강력하고 압도적이며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괴물이었다. 다시 상상하는 것만으로 아연할 정도로.

[경험치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Lv.19 → Lv.20]

[멸망 확률 85.92% → 84.15%]

[1.77%만큼의 업을 획득했습니다]

놈이 얼마나 괴물이었는지는 시스템이 잘 알려준다. 서리 계곡과 용의 황무지에서도 0.1%가량밖에 줄어들지 않았는데, 거의 15배에 이를 정도로.

'사실 조금 맥빠지지만…'

화산각룡을 쓰러뜨렸는데 겨우 이거냐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던전 클리어로 획득하는 업이 적다는 건 알고 있었으니 납득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심지어 환계에서는 더더욱. 그걸 감안한다면 충분한 양이겠지만…

"……그러게."

애써 아쉬움을 숨긴 채 답하곤 쓰러진 홍유리를 보았다. 그녀가 발한 세 번의 대마법이 아니었다면 놈을 쓰러뜨리는 건 요원했을 거다. 앞선 두 번의 마법의 데미지를 회복하느라 급속 회복에 대부분의 마력을 할애했었던 게 그 정도다. 실제로 놈이 마력을 사용했던 건 브레스를 사용했었을 때뿐. 만약 혼자 싸웠다면 이길 수 있었을까?

'절대로 불가능.'

무슨 수를 쓰더라도 발악일 뿐이었을 거다.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아득한 힘의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살아남은 건 우리고 쓰러진 건 놈이다. 용암의 열기가 식기를 기다리는 동안 요정용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각룡의 사체에 호기심을 보이는 모습에 픽 웃은 늑대는 홍유리를 돌아보았다.

페리뿐만이 아니라 늑대가 우화시킨 요정용들이 빛가루를 뿌려대자 일그러진 표정과 창백한 안색이 금세 안정되어갔다.

'문제는 없겠네.'

이제 나머지는 각룡의 사체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문제가 남아있는데… 일단 드러난 상처 속, 용암으로 잘 익은 고기를 떼어내자 요정용과 용벌레들이 몰려들었다.

"백록."

1톤에 가까운 고기. 비천망의 고기 30kg 가량으로 용벌레들을 그렇게 많이 우화시켰는데 화산각룡의 것이라면? 하물며 이 정도 양이라면 상당수를 우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러고도 남을지도 모른다.

"…괜찮겠나?"

백록이 다시 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각룡의 전체 무게는 1.7kt. 물론 싸우는 중에 제법 소실되었지만, 1t이라고 해봤자 1000분의 1도 되지 않으니까.

'그거면 됐어. 그리고 이제…'

드디어, 각룡을 포식할 때가 되었다.

***

"깨어나셨어요?"

상냥한 목소리가 묻는 말에 홍유리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기다렸다는 듯 물을 건네자 한껏 마신 다음에야 두통이 좀 가라앉았다.

"아직 환계에요."

환계… 그렇구나. 결국, 알파가 화산각룡을 쓰러뜨린 모양. ―세 번이나 대마법을 때려 박았는데 쓰러뜨리지 못했다. 다시 떠올려봐도 말도 안 되는 괴물. 하지만 그것보다도 자존심이 상했다.

"……시발."

알고는 있었다. 그런 괴물딴지가 버젓이 있는 세상이란 것을.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홍유리는 질끈 눈을 감았다.

"…상처는 괜찮으세요?"

묻는 말에 조심스레 옆구리를 짚었으나, 고통은 없다. 조금 의아했지만, 옷 곳곳에 묻어있는 빛가루를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그래서 알파는?"

"저쪽에…"

백소율이 손으로 가리킨 곳에 보이는 거라곤 각룡의 사체밖에는 없다. 새삼 무시무시한 덩치… 용케 쓰러뜨렸구나 싶었는데 어쩐지 들썩이고 있다. 저도 모르게 놀라 움찔하자 백소율이 어깨를 붙잡았다.

"괜찮아요. 죽었으니까."

"아,알거든?"

"한나절 정도 지난 것 같아요."

"한나절?"

그렇게 오래 쓰러졌나… 하기야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도대체 뭘 하는 걸까? 게슴츠레 눈을 뜬 홍유리는 각룡이 제법 줄어들었다는. 정확히는 속이 비어있다는 걸 깨달았다.

"설마 먹고 있다고?"

"네…"

포식 스킬이 있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건 심하지 않을까. 저 덩치를, 그러니까 한나절 동안 먹었다고?

'어디에 놀라야 할지…'

그렇게 먹고도 아직 먹는다는 점? 아니면 한나절 만에 저만큼이나 먹었다는 점? 어느 쪽이든 상식 밖이다. 실소하고 있을 때, 각룡의 안에서 커다란 마랑이 튀어나오자 홍유리는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다 드셨나요?"

"…한참 남았다."

"되게, 되게 커지셨네요."

"그래."

1000t 이상을 먹는 건 늑대에게도 고역이었다. 그나마 공허를 얻어 속도가 빨라진 게 이 정도였지. 후각과 시각을 차단하고 묵묵히. 그러고 있다 보면 시간의 흐름도 느끼지 잘 느끼지 못한다.

"네 몫은 어디로 할 거지?"

"뭐?"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묻는 말에 늑대가 다시 물었다.

"네 몫. 너에겐 그럴 자격이, 지분이 있다."

지분. 늑대의 입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어색한 말… 하지만 그건 인삼값이 아니었던가? 의아해하는 홍유리에게 늑대는 다시 말했다.

"힘줄이나 뿔. 너희에게 필요한 건 그 정도 아닌가?"

"그야…"

사실, 몬스터의 부산물 중에 활용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으니까. 고기는 먹어도 될지 의심스러운 데다가 뼈나 발톱 같은 건 당장엔 도움이 될지라도 결국 썩어버리고 마니까. 그런 의미에선 스틸레톤처럼 금속으로 이루어진 몬스터가 오히려 유용하다.

하지만 용암에서 달금질 된… 게다가 용혈을 가진 화산각룡이라면 다를지도 모른다. 놈의 사체는 감히 보물이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귀보. 그런 걸 선뜻 양보하겠다는 뜻이다. 따지고 보면 합의는 했다고 하나 멋대로 따라온 주제에 권리를 주장하긴 어렵다.

"……."

고민하던 홍유리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십수 미터에 달하는 기다란 뿔 하나와 각룡의 피 일부― 그게 홍유리가 받은 몫이었다.

***

드디어 화산각룡이 사라지자 늑대는 긴숨을 내쉬었다. 결론만 말해 각룡을 먹어 치우는 데 꼬박 하루가 더 걸렸다. 아직 잠들어있는 백소율과 홍유리― 사실 먼저 돌아가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기어이 환계의 던전에서 마력을 흡수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다시 환계에 올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이상, 환계의 마력을 최대한 받아들이고 싶을 테니까.

―사실 환계의 존재가 알려진 이상 몇 번이고 도움은 더 받을 생각이었지만. 주로 마력을 흡수하는 쪽으로.

[폭군(먹어치우는 자{Swallower}) Lv.28]

[EXP 811663 / 1474670]

[업 4.75%] [영량(影量) 41.88m³]

[체장 6.62m] [체고 2.12m] [체중 1.14t]

[힘 365] [민첩 404] [체력 441] [마력 517] [극기 30]

체격이 커진 건 말할 것도 없거니와 부족했던 스테이터스도 이제 나름 궤도에 올랐다. 적어도 마력 하나만큼은 대마력의 보조가 없더라도 A클래스에 달했다 할 수 있겠다. 사실 30레벨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늘어난 경험치가 그걸 용납지 않았다. 1000만을 훌쩍 넘기는 경험치를 획득했는데도 불구하고. 하지만 결국에는 시간문제이리라.

―그리고 뜻밖의 수확도 있었다. 스테이터스가 아니라 스킬 쪽으로.

[보유 스킬 목록]

[A] - 공허 (1)

[B] - 용혈, 비가시화↑ (5)

[C] - 초감각↑ (7)

[D] - 가시 촉수 (12)

[E] - 약한 육감 (5)

[F] - 요정어 (1)

[남은 스킬 포인트 35]

그동안 용혈을 마셔왔기 때문인지 용혈을 각성한 것. 이것만큼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용의 피…'

용이 아닌데 용혈이 흐른다는 게 조금 묘한 기분이기는 해도 지금 당장 느껴지는 건 없다. 기껏해야 마력이 조금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정도일까?

극한까지 몰리면 뭔가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럴 일이 있을까 싶었다. 당장 남은 스킬 포인트만 사용해도 곧바로 A등급 스킬을 획득할 수 있다. 괴물이라는 소리는 종종 들었지만 슬슬 실감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주해서는 안 된다.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기준일 뿐. 이미 헌터들이야 설령 칠영웅이라 해도 쓰러뜨릴 수 있겠지만…

'그래도 아직 멀었어.'

이미 늑대의 눈은 그 너머를 보고 있었으니까.

만약에. 만약 지금 화산각룡과 다시 맞선다고 해도 놈을 이길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고 장담할 수 있다. 화산각룡만 해도 그러한데 인류가 틀어막고 있는 것만 해도 벅찬 역병과 질병은? 심지어 쓰러뜨리는 게 불가능하다 여겨 포기한 자색의 흑호는? 아예 손쓸 엄두조차 내지 못한 바다의 재앙에 이르러서는?

하물며 흑린과 여왕 같은 힘의 편린조차 읽을 수 없던 초월자들도 존재한다.

또한, 그런 이들조차 막지 못한 종말도 다가오고 있으니까. 멈춰서거나 만족해서는 안 된다. 계속 나아가야만 한다.

새삼스레 자각한 늑대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안주할 시간 따위는 없어.'

일단, 스퀘어로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홍유리의 공포증을 고친다는 명목으로 그녀가 환계에 동행하는 걸 허락한 거기도 하니까. 퍼플 스퀘어 마스터― 환영의 나비가 영입되는 걸 막기 위해서. 하지만 이미 늦어버린 거라면…

'역시 죽이는 수밖에…'

물론 원작의 시점이라면 아직 영입되지 않았을 테지만, 백소율이 그랬던 것처럼 일정을 앞당겼을지도 모르니까. 늑대는 아침이 되어 둘이 일어날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

"이제 돌아가는 건가?"

백록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열흘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환계에 이렇게 오래 머무른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조심하게. 그리고 언제든 돌아오고."

"그래."

언제나처럼 배웅하는 말에 끄덕인 늑대는 옆을 쳐다보았다.

"돌아가는 방법은…"

"아침에 들었어."

이미 백록과 대화는 마친 모양. 각룡의 뿔 때문에 소란이 이는 걸 막기 위해 이미 여명의 지하에 있었다. 백소율과 홍유리가 뿔 위에 손을 올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늑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환계에서 사라진 넷의 모습을 한참 지켜보던 백록은 요정이 말을 걸어오자 고개를 돌렸다.

"저기저기~! 이 털은 어디다 쓸 거야?"

요정이 쥐고 있는 검고 거친 털― 미리 받아두었던 늑대의 털을 챙기며 답했다.

"다른 환수들에게도 보여주어야겠지. 그는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고. 그의 도움은 꼭 필요하다고."

"와~!"

마냥 좋아하는 요정을 보며 백록은 고개를 저었다. 언젠가 돌아올지 모를 그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젠 늑대의 도움은 필수 불가결하다. 요정들에 둘러싸인 백록이 천천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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