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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140화 (140/407)

〈 140화 〉 #58 정리 (2)

현계로 돌아오자 작은 소란이 일었다. 아무리 여명의 지하라지만 십수 미터나 되는 뿔을 옮기기란 쉽지 않다.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로 옮기는 게 불가능해 강태호가 불려왔을 정도.

"아니 뭐 이런 걸 다…"

말과는 달리 입가에는 헤벌쭉 미소 짓고 있다. 헌터로서의 경력일까? 한눈에 각룡의 뿔이 범상치 않음을 알아챈 듯하다. 생각해보면 네버랜드에서 패태검은 부러졌으니 관심을 보이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뿔을 깎아봐야 절삭력이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어차피 그 무식한 힘은 칼질이 아니라 몽둥이질에 더 어울릴 테니.

"꿈 깨지? 내꺼거든?"

자신의 몫으로 받은 것이니 건들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적발의 소녀가 으르렁거렸다. 용혈이라면 모를까 그녀가 뿔을 쓸데가 있겠나 싶었지만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정말이냐는 듯한 강태호의 시선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자 세상 잃은 듯한 표정으로…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

어차피 클랜원의 소유라면 뭐라도 주고 받으면 되는 거 아닌가? 어째선지 이미 포기한 듯한… 뭐 잘못한 거라도 있나?

"에휴. 근데 왜 벌써 왔냐?"

거의 열흘 정도 있었는데 이만하면 제법 오래 있었던 거 아닌가 싶었지만 아무래도 강태호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

"일이 끝났으니까."

"흠…"

강태호는 아래턱을 긁었다. 아까 그 뿔은 그로서도 여태 본 적이 없을 만큼 거대하다. 대체 얼마나 커다란 놈이지? 강신한 바포메트? 아니면 스노웰? 아니, 더 거대할지도 모른다. 헌데 그런 괴물을 잡았는데도 불구하고…

"…어째 팔자 좋아 보인다?"

"여기서 본신을 드러낼 순 없으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여러 번 훑어보던 그는 늑대를 끌어안은 소녀의 모습을 보곤 작게 중얼거렸다.

"이건 뭐 목줄이라도 준비하던가 해야지."

***

"뀨우웃!"

한참 미련을 내려놓지 못하던 백소율은 페리가 위협하듯 울자 결국 끌어안은 팔을 풀었고 늑대는 내려서서 찌뿌둥한 몸을 풀었다.

"바로 가실 건 아니죠?"

"그래."

"기다릴게요. 꼭이에요."

어차피 스퀘어로 출발하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게 있을 테니 못해도 하루 이틀은 체류할 터. 물론 내가 아니라 홍유리가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릴 테니까. 그렇게 멀어지자 홍유리가 짧은 한숨을 쉬었다.

"무슨 신파 찍는 것도 아니고."

"뀨~!"

페리까지 공감하며 머리를 주억인다. 사실 그렇게 말하면 뭐라 할 말이 없기는 한데…

"됐으니까 올라가지?"

눈살을 찌푸린 홍유리가 위층을 향해 턱짓했다.

"돌아오셨군요."

"어."

하연의 인사를 대충 받는가 싶더니 문 앞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옷에 묻은 털을 털어낼 뿐이었지만.

"들어와라."

하연의 알림에 강태준의 허락이 떨어졌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사이에 새로운 안경을 구한 모양인데 내가 들어오자 안경을 벗었다.

'저것도 아마 스퀘어의…'

네버랜드에서 그랬듯 안경이 부서지는 걸 신경 쓰는 것일 터. 어지간한 감정으로는 내가 두른 업을 뚫는 건 불가능하니까.

"일은 끝마쳤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순 홍유리의 안색을 살핀 강태준이 알게 모르게 웃었다. 생각해보면 홍유리를 동행시킨 건 그였으니까. 의도대로 공포증은 거의 극복했으니 그 점이 마음에 든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는 사이, 홍유리는 강태준에게 일의 경과를 보고해갔다. 그녀가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환계에 대한 전부를. 심기가 불편하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화산각룡과 싸우며 생각이 바뀌었으니까. 어차피 강태준이라면 쓸데없이 떠벌리지도 않을 터. 괜한 비밀을 만들어 의심을 심는 것보단 확실하게 알리고 도움을 청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뿐. 그 생각은 화산각룡을 상대로 함께 싸우며 더욱 강해졌다.

"…그렇군."

보고가 끝나자 강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환수라는 존재가 살아가는 또 다른 세상… 거기다 대마법을 세 번이나 견뎌낸 존재 화산각룡까지. 믿기는 어렵지만, 거짓으로 보고할 리 없다.

"수고했다. 각룡의 뿔은 나중에 보러 가도록 하지. 쉴 시간이 필요한가?"

"괜찮습니다."

"그래. 3팀장의 소식은 들었나?"

"……."

"역시 아직인 모양이군. 다행히 회복세에 접어들었다 하더군. 이제 면회도 가능할 거다. …이만 돌아가 보도록."

그 말에 고개 숙인 홍유리가 방 밖으로 나섰다. 그러자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물어왔다.

"……그래서 알파. 할 말이라도 있나?"

"홍유리를 빌리고 싶은데."

"홍유리를?"

의아하다는 듯한 눈으로 되묻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퀘어로 가야 하니까."

"……스퀘어?"

강태준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그 의미를 알고는 있는 건가? 클랜에 들어가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알고 있어."

모를 리가 없다. 인류의 정신적 지주가 칠영웅이라면 실질적으로 지탱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스퀘어라는 것을. 당장 역병과 질병을 틀어막고 있는 것도 스퀘어였고.

헌터 이상으로 접촉하기 까다로운 상대들이다.

설령 무슨 이유가 있더라도 몬스터인 내가 그들을 설득하기란 쉽지 않다. 아니, 쉽지 않은 게 아니라 불가능할 거다.

'강태준에게 부탁하더라도…'

스퀘어 마스터인 환영의 나비가 배신자이거나 배신자일지도 모른다는 말 따위가 통할 리 없다. 하물며 그 정보의 출처가 몬스터인 나라면 더더욱.

"그래서 몰래 들어갈 생각인데."

"……."

비가시화를 획득한 지금이라면 가능할 거다. 예를 들어 홍유리의 그림자 속에 숨어든 상태로 비가시화를 사용하면 아마도.

"그랬다가 만약 들킨다면 넌 스퀘어 전체를 적으로 돌리게 된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일에 협력해줄 수는…"

"아멜리아 모레스트."

"뭐?"

무슨 뜻이냐는 반문에 나는 대충 둘러댔다. 원작― 더 정확히 말해 평행세계에서 그녀가 배신했었다는 뚱딴지같은 소리를 할 수는 없으니까.

"네버랜드에서 침묵하는 입과 싸웠을 때, 놈이 혼자 중얼거렸던 이름이다."

"그래서 의심한다고?"

"사각지대의 수장이기도 한 아가일 모레스트의 부모이기도 한 그녀가 어떻게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잠깐 정적이 맴돌았다. 하지만 내 말의 진위여부를 가릴 수 있을 리 없다. 침묵하는 입의 꼭두각시와 싸웠던 건 나 혼자뿐이었고 그나마 대화라도 들을 수 있었던 건 김주섭밖에는 없었으니까. 정작 그 김주섭 또한 강훈에게 죽었기도 하다.

"…일단 그렇다고 치지. 그래서 넌 어떻게 할 생각이지?"

"스퀘어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아멜리아 모레스트를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거다."

나는 강태준의 앞에서 비가시화를 펼쳐 보였다. 강태준은 침음했지만, 어차피 발아래 카펫이 구겨져 위치는 보인다.

"그리고 확인해 볼 생각이다. 그녀가 탕아에 합류했는지 아닌지를. 그리고 만약 들어갔다면…"

타협을 모르는 마랑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

강태준은 내 말에 승낙했고 스퀘어에 갈 수 있게끔 준비하겠다 말했다. 100% 믿는다기보다는 환영의 나비가 만약 탕아들에 합류했을 경우를 생각한 것일 터.

덕분에 일이 쉽게 풀렸다.

'그러면…'

남은 문제는 이거였다.

지금의 내가 환영의 나비를 쓰러뜨릴 수 있는가 하는.

그리고 거기에 대한 답은 가능하다였다.

아멜리아 모레스트.

퍼플 스퀘어의 마스터이자 달리 환영의 나비라 불리는 대마법사였지만, 솔직히 말해 나는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강태준이 했던 말. 스퀘어 전체를 적으로 돌릴지도 모른다는 것. 이길 수는 있겠지만, 그녀를 소리소문없이 죽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아무리 나라도 스퀘어 마스터를 다수 상대로 해서는 승산이 없을 테니까.

'그전까지 방법을 강구해야 해.'

하지만 어디까지나 최악의 상황일 뿐. 아직 그녀가 돌아서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늑대는 잠자코 다가올 그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

"오늘은 빠르신데요."

회복 스킬을 가진 클랜원이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았다.

"이 정도면 얼마 가지 않아서 손목도 완전히 재생될 겁니다."

"그게 얼마나 걸리는데?"

"사나흘? 길면 일주일까지도 걸릴 것 같은데요."

"…알았어. 수고했어."

"네~ 올라가 보겠습니다."

혼자 남은 홍유리는 손가락 없는 손바닥을 움직였다. 이질적이기는 해도 확실히 움직여진다… 자연스레 그때가 떠오른 홍유리는 흠칫 몸을 떨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제는 일어날 리 없는 일이니까.

…환계에서 있었던 일은 제법 도움이 됐다.

덕분에 조금씩 식어가던 열망이 다시금 불타기 시작했으니까. 언젠가 본때를 보여주리라 스퀘어를 나왔던 그 날의 기억이.

한층 늘어난 마력을 느낀 홍유리의 눈동자에 힘이 들어갔다.

세 번의 대마법으로도 쓰러뜨릴 수 없었던 괴물을 목도하고 벽을 느꼈지만, 달리 말하자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거였으니까.

"좋아…"

그러는 중, 별안간 문이 열렸고 얼빠진 목소리가 그녀를 반겼다.

"어? 부팀장님 오셨네요?"

얼빠진 목소리. 물을 것도 없이 이은하였다. 금세 다가와 다친 곳은 없냐 어딜 갔다 오셨느냐 이것저것 캐묻길래 귀찮아서 딱밤을 때렸더니, 아픈 모양인지 끙끙 앓는다. 그러면서도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며 무언가를 찾는 듯 보였다. 그야 말할 것도 없이 알파이리라.

"…쯧."

하여간에 이년이고 저년이고 알파에 푹 빠져서는 아주 살림이라도 차릴 기세. 애초에 그런 몬스터가 뭐가 좋다고?

'등신 같은 년들.'

장점이라고 해봐야 기껏해야 조금 따뜻하고 포근한 정도? 그거야 뭐 늑대니까 당연한 거였다. 근데 그런 것치곤 지성도 있고 생각도 깊은 것 같고… 또 함께 싸우면 든든하기도 하고. 아, 그러고 보면 성격도 좋은 것 같다. 게다가 몬스터인 주제에 배려심도 있고. 또 행동은 흠잡을 데 없고…

"부팀장님~?"

상념에 빠진 홍유리를 깨운 목소리. 수상하다는 듯 게슴츠레 좁힌 눈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알파는 혹시 안 왔나요?"

"뭐. 몰라. 찾아보던가."

퉁명스레 답한 홍유리는 관심 없다는 듯 몸을 돌렸다. 그렇게 문이 닫히자마자 그녀는 짧은 숨을 뱉었다. 어쩐지 조금 숨이 가빠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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