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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142화 (142/407)

〈 142화 〉 #58 정리 (4)

다음 날 아침. 그 이례적인 크기 때문에 클랜 창고에도 둘 수가 없어 일단 옥상에서 꺼내게 된 각룡의 뿔을 보러 헌터들이 모여들었다. 아공간에서 나오기 시작하는 각룡의 뿔을 보러 모여든 인파는 금세 물러나야만 했다. 한참을 꺼낸 끝에 마침내 그 위용을 드러내자 헌터들은 절로 감탄을 뱉었다.

"와. 이건 무슨."

그럴 수 밖에 없다. 뿔 하나가 어지간한 고래만하다고 하면 이해가 갈까? 자연스레 생전의 위용을 상상한 헌터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런 걸 던전에서 잡았단 말입니까?"

우택이 묻는 말에 홍유리는 팔짱 낀 채로 고개만 끄덕였다. 환계에 대한 건 당연히 비밀이었기에 적당한 곳의 던전에 갔었다 둘러댔을 뿐이지만.

"……클리어 해서 다행입니다."

우택은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자칫하면 살아돌아오지 못했겠구나 하는 생각조차 들 정도로.

"…그러게."

"예?"

홍유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 중에는 강태준도 있었고, 그가 가진 감정의 안경은 뿔의 여러가지 정보를 읽어냈다.

'화산각룡의 뿔이라…'

단단함은 두말할 것 없거니와 용암으로 담금질 되어있으니 그 자체로 최고의 무기이리라.

'휘두를 수 있다면 말이지만.'

당연하지만 수 톤에 달하는 무게를 휙휙 휘두를 수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적당히 가공만 한다면 처형자의 낫 이상가는 무구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다.

'상상 이상이군.'

이런 거라면 억만금을 들여서라도 살 가치가 있다. 강태준은 머릿속으로 뿔의 값어치를 계산해갔다.

그렇게 놀라하는 좌중의 반응에 홍유리는 당연하다는 듯 끄덕였다. 이걸 잡느라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대마법을 세 번이나 견뎌냈는데 본래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다. 그 사실을 알면 과연 감탄 정도로 끝날까 싶었다.

'이건 뭘 만들어도 무조건 성공이야.'

어차피 스퀘어로 갈 생각이었으니 구체적인 건 거기서 생각하기로 하고… 그러던 홍유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헌터들이야 엄두를 못 내는 거겠지만, 강태호가 정말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건 의문이라서.

패태검도 부러졌겠다 분명 뭐라도 할 줄 알았는데…?

'뭐라도 있나?'

새로 구하기라도 한 걸까? 하기사 알 바는 아니다. 오히려 말을 걸어온 건 강태준이었다.

"귀물이군. 팔 생각은 있나?"

"…클랜장님?"

"당연히 전부는 필요 없다. 검 하나 만들 정도면 족하니까. 네 소유권은 인정하고 있으니 필요한 게 있다면…"

그러고 보면 칼이 부러진 건 강태준 또한 마찬가지였다. 얼떨떨하게 그러겠다 말하자 그의 표정이 드물게 상기되었다.

생각해보면 안경부터가 스퀘어의 물건일 정도로 품질을 선호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그가 뿔을 탐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기대되는군. 그리고…"

거래가 성사되자 움찔거리던 강태호가 헛기침을 하며 다가왔다.

"나도 거 뭐냐, 칼이 부러져서 말이다?"

"……."

"아니! 미안하다니까? 진짜 반성하고 있으니…"

한참을 흘겨보던 홍유리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앙금이 있기는 해도 겨우 그런 걸로 어쩌네 마네 할 수는 없으니까… 그에 강태호는 놀랐다는 표정이 됐다.

"오. 진짜냐? 진짜?"

"아 준다고."

속고만 살았나. 혀를 차는 모습에 강태호는 떨떠름히 물었다.

"…뭐 얼마나 받으려고?"

바가지를 씌울 게 분명하다 여기는 눈빛에 홍유리는 한숨을 쉬었다.

"안 뜯으니까 지, 걱정 마시죠?"

습관적으로 욕이 튀어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참아내는 데 성공했다. 아무리 그래도 클랜장이 있는 자리에서 상급자에게 욕 할 수는 없으니까. 이젠 숫제 의심하는 눈빛에 홍유리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돈 따위는 평생 써도 썩어넘칠만큼 있고. 대가는 받겠지만 급한 건 아니다.

"…어째 너 성격 좀 고친 것 같다?"

뭔 개소리냐며 홍유리가 눈살을 찌푸릴 때쯤, 강태준을 포함해 헌터들이 각자 일을 보러 해산하기 시작했다. 옥상에 남은 사람들이 적어지자 홍유리는 팔짱을 꼈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자르냐는 건데.'

강태호가 동행하는 게 아니라면 아무리 그래도 이걸 이대로 스퀘어까지 운반하는 건 무리였으니까. 최소한 절반은 잘라야 할 텐데… 슬쩍 강태호에게 시선을 주자 주먹으로 두드려보더니 이내 고개를 저어 보인다.

“못 자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대마법의 여파에서도 멀쩡히 형상을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각룡이라는 이름답게 그 뿔은 부러지지도 잘리지도 않는다. 설령 강태호의 패태검이 멀쩡했더라도 쉽지 않은 작업이었으리라.

"그럼 클랜장님께선…"

"형님도 힘들 걸?"

강태준 또한 검을 잃은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물론 처형자의 낫이 있기는 하지만 과연 그걸로도 자를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애초에 그런 데 사용하라고 있는 게 아닌만큼 낫이 상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마력을 담아봤자 어지간한 검으로는 흠집 하나 나지 않으리라. 그러니까 각룡의 뿔을 탐내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한참 방법을 강구하며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있을 때, 홍유리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불러와."

"누굴 말입니까?"

의아해하는 우택에게 홍유리가 눈살을 찌푸렸다.

"누구겠어?"

눈치 좀 있으라는, 생각 좀 하라는 듯한 말에 우택의 눈이 살짝 커졌다.

"설마 지금 있는 겁니까?"

"그럼?"

"…알겠습니다. 찾아오겠습니다."

그렇게 그가 내려가자 홍유리는 약간의 자괴감을 느껴야만 했다.

기껏 받은 걸 어떻게 처리하지도 못해서 결국 부르는 꼴이 한심하게 느껴져서.

***

“어? 선배?”

옥상에서 내려오던 이은하가 반기자 우택은 손을 흔들었다. 혹시 알파가 어딨는지 알고 있느냐 물어보려다가 그 옆에서 쑥 뻗어나온 무언가가 자판기에 동전을 넣는 모습에 눈을 끔뻑였다.

"무슨 일 있어요? 옥상에서 많이들 내려 오시는 것 같던데."

"안 그래도 그거 때문인데…"

대답하는 우택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해있자 늑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깐 떠오르지 않았지만, 자세히 보니 몇 번인가 마주친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예전에 지리산에선 덕분에 목숨을 건지기도 했고. 대체 무슨 일이냐고 이은하가 묻는 말에 우택은 각룡의 뿔을 자르는 데 문제가 생겼다고, 그래서 알파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알겠다."

의문 없이 답하는 늑대의 말에 조금 어안이 벙벙했다. 듣기는 했었지만 정말 말을 하는 걸 들은 것도 처음이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당연하다는 듯 늑대가 올라가자 이은하 또한 그 뒤를 따랐다. 곧 계단을 오르던 그녀가 몸을 돌리며 갸웃거렸다.

"선배. 안 올라와요?"

"어, 어."

***

옥상에 도착했을 때, 거대한 각룡의 뿔이 떡하니 놓여있고 그 앞에 홍유리와 강태호의 모습이 있었다. 그 커다란 덩치 옆에 있으니 유독 작아 보여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데려왔습니다."

"오. 왔냐?"

강태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홍유리가 물었다.

"가능할 것 같아?"

"그래."

아무렇지도 않게 나온 시원스럽기까지 한 대답에 눈을 끔뻑인 강태호가 다시 물었다.

"야 인마. 진짜 되겠냐?"

어째 불안해보이는 모습. 아마 본인이 사용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어차피 공허가 있으니 물체의 경도나 강도 따위는 걸림돌이 되지 못한다. 정확히는 자르는 게 아니라 먹어 치우는 거였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나는 얇게 촉수를 뽑아내었다.

"어떻게 자르면 되지?"

그에 홍유리가 선을 그었고, 촉수를 변형하고 경화시켜 최대한 얇게 만들어 뿔에 가져다대었다. 흔들리지 않게 다른 촉수로 고정하면서.

'최대한 얇게.'

가능한 한 공허를 컨트롤한다. 일렁이는 아지랑이는 옅어지고 또 옅어져 촉수의 표면에 둘러졌다.

조금씩이지만 분명 잘려가는 각룡의 뿔에 좌중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진짜 자르네…"

그것도 무척이나 예리하게. 실제로는 먹어 치우는 거였지만, 그들이 보기에는 자르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 걸까? 유심히 지켜보던 이은하는 촉수의 표면이 작게 일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분명 알파가 가진 힘이리라. 그에 홀린 듯 손을 들어올렸지만,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도대체…'

어지간한 건 보면 금방 따라할 자신이 있지만, 저것만큼은 다르다. 따라하기는커녕 그녀의 이해를 한참이나 벗어나 있다.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알 수 없다.

한참을 살펴봐도 전혀 이해할 수 없다. 마력인지 스킬인지 대체 어떤 힘인지조차. 이해하기는커녕 오히려 집어삼켜질 듯한 그런 불안감조차 느껴진다. 저도 모르는 사이 손을 떨고 있었다. 그녀가 가진 직감이 여기서 멈추라고. 더 나아가지 말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고민하던 이은하는 입술을 짓씹었다. 과욕이겠지만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살짝이나마 넘어섰다. 결국 눈에 힘을 주고 마력을 담은 그녀는 아득해지는 무언가를 느꼈다. 밤… 아니, 그냥 빛이라는 개념 자체가 먹어 치운 듯 사라진 것 같다.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깊은 어둠 속을 홀로 걷는 듯한 기분. 보면 볼수록 심연 속에 빠져드는 듯한… 그래도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그렇게 집중하던 이은하는 무언가가 끊어진, 어긋나는 듯한 감각에 비틀거렸다.

"이은하 너 괜찮아?"

"괜찮아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 아무것도 없다는 게 정확하리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덕분에 알 수 있는 게 있었다. 저것만큼은 자신이 감히 넘볼 수 없는 힘이라고. 격이, 차원이 다르다. 고작 보려고 하는 것만으로 정신이 어긋나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정신 고갈과는 다른 정신 그 자체가 먹어치워진 듯한… 직감의 경고를 무시하고 선을 넘었을 때, 이은하는 자신이 모르는 세계의 편린을 엿보고 몸을 떨었다.

'저런 걸…'

알파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루고 있다. 새삼스럽게 그 격차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늑대 또한 마찬가지로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재능이 있단 건 알았지만, 방금 공허를 보려 한 그 행동 하나로 이은하는 새로운 스킬을 얻었으니까. ―안목. 따지고 보면 감정이나 통찰의 하위호환이겠지만, 백록과 홍유리가 가지고 있는 만큼 상당히 유용한 스킬이기도 하다.

'조금 부러운데.'

스킬 포인트가 아니라 행동으로 새로운 스킬을 획득한 게 대체 언제였던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다.

결국, 그렇게 각룡의 뿔을 잘라내자 강태호가 동그랗게 눈을 떴다.

어이없다는 건지 기쁜 건지 알기 힘들게. 잘린 각룡의 뿔을 받아든 그가 껄껄 웃어젖힌다. 뭐니뭐니해도 새로운 무기가 될 재료였으니까.

문제가 있다면 이걸 가공하는 게 쉽지는 않을 거라는 점이겠지만 그거야 알아서 할 터. 아무리 그래도 거기까지 도와줄 순 없으니까.

"…고마워."

일견 퉁명스러워 보이는 말. 그에 시선을 돌렸지만 홍유리는 잘린 각룡의 뿔을 임시로나마 마법을 걸어 확장된 가방에 담고 있었고 늑대는 돌아선 그녀에게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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