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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144화 (144/407)

〈 144화 〉 #59 스퀘어로 가는 길

이은하를 환계에 데려다주고 홍유리와 백소율을 기다리며 늑대 또한 나름 필요한 물건을 챙겼다.

"뀨."

마침내 출발할 시간이 되었을 때, 시간을 지켜 도착한 둘이 배낭을 메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배웅할 생각인지 몇몇이 더 있기도 했고.

"이제 출발할 텐가?"

강태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스퀘어― 인류 최후의 보루이자 마법사들의 성지이기도 한 곳.

또한, 유럽 전체를 멸망시킨 주된 원인이며, 그 때문에 전쟁의 신전이 이를 갈고 있는 질병과 역병을 막고 있는 집단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린 유럽 근처까지 갈 필요가 있다. 더 정확히 말해선 질병과 역병이 퍼진 경계선까지 말이다. 스퀘어는 거기서 머지않은 곳에 있으리라. 생각을 읽은 것처럼 강태준이 말했다.

"중국까지는 공항으로 이동할 수 있을 거다. 문제는."

귀찮은 절차들. 그리고 공항으로 이동하는 동안 늑대를 완전히 숨길 수 있는가― 또 그 이후에도 들키지 않게끔 조심스레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고 강태준이 말하려는 순간, 늑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렇게 가려는 거지?"

"뭐?"

무슨 소리냐는 듯한 반응에 늑대는 페리를 턱짓했고 그에 홍유리는 뒤늦게 깨달은 듯 외마디 소리를 흘렸다.

"결국 가려는 건 스퀘어 아닌가?"

그렇다면 굳이 공항을 이용할 필요도 없다. 환계를 통해 이동하고 다시 현계로 돌아오면 되니까. 그렇게 하면 들킬 염려도 없으니까. 국경을 경계하는 이들? 그런 이들이 환계에 있을 리 만무하다. 맘 놓고 얼마든지 돌아다닐 수 있다는 소리. 이야기는 들었지만, 환계에 가 본 적 없는 강태준은 홍유리를 쳐다봤고 그녀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가능할… 것 같아요."

오히려, 왜 그 당연한 걸 생각지 못했는지 의문이라는 듯한 반응이었다.

"…잘 됐군."

그 말에 늑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배웅하는 이들과 인사를 마치고 환계로 이동한 순간, 늑대는 몸을 털며 본신을 드러냈다. 조그마한 강아지가 사라지고 곧 그 자리엔 검은 털을 가진 마랑이 네 발로 서 있었다. 순간, 홍유리는 반사적으로 몸을 떨었으나 화산각룡과 같이 싸우기도 한 만큼 이제 와 새삼스레 공포를 느끼진 않았다.

아침부터 계속 뚱한 눈초리이던 백소율이 늑대의 털을 쓸었다. 2m에 달하는 체고― 등에 올라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럴 필요 없다는 듯 늑대가 촉수를 뻗었고 어어? 하는 순간, 이미 등 위에 올라타 있었다.

"출발하겠다."

둘이 털을 꽉 쥐었을 때, 늑대는 안전벨트라도 채우는 것처럼 촉수로 허리를 둘렀고 그렇게 달리기를 얼마간― 마침내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사실 바닷길로 가고 싶었지만.'

수륙양용을 가진 이상 혼자라면 상관없겠지만, 홍유리와 백소율은 아니었으니까. 적당한 거리라면 모를까 아무리 작게 잡아도 300km는 넘을 거리를 그렇게 가긴 힘들다. 발판을 만들어 달리더라도 마력이 바닥나는 게 먼저일 테니까.

―그렇게 경계를 지나 국경을 넘어 얼마 가지 않았을 때, 짧은 한숨이 나왔다.

'길 찾는 게 힘든데.'

환계에서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을 리 없으니까. 여기까지 오기는 했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방향, 찾을 수 있겠나?"

그 말에 배낭에서 지도를 꺼냈지만, 주변에서 길을 찾기란 어려울 거다. 폐허가 된 땅. 북한은 국가로 존속할 수는 있었지만, 계속해 쇠퇴의 길을 걸어야했다. 영토의 상당 부분을 포기하고 가까스로 견디고 있을 뿐이라 이처럼 아예 폐허가 된 땅도 많았고.

"그냥 해안선 따라 가면 되는 거잖아?"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했지만, 가능하면 그 거리조차 낭비하지 않고 싶은 게 속마음이었다. 결국 뾰족한 방법 없이 서해안의 해안선이 보이는 거리에서 한참을 달리고 달려 중국과 북한의 경계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잠깐 휴식하지."

압록강 앞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던 백소율이 의아한 듯이 물었다.

"…그런데 여긴 환수가 없나요? 아까부터 한 마리도 안 보이는 것 같아요."

국경을 넘기 전까지만 해도 환수들을 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국경은 사람들이 정한 것이고 애초에 여긴 환계였으니 전혀 상관없을 텐데…

"……."

그 질문에 답해줄 백록은 없다. 하지만 늑대만큼은 알 수 있었다.

'그랬던 거였나.'

시스템에게 진실을 듣고 여왕과 만나러 왔을 때, 백록은 분명히 '그가 돌아온 줄 알았다'고 말했었다. 그라는 건 십중팔구 자색의 흑호. 평행세계, 원작에서도 쓰러뜨릴 엄두조차 내지 못한 괴물. 비록 단세혁이 자색의 흑호를 직접 마주친 적은 없어 묘사된 내용밖에 없어 짐작밖에 할 수 없지만…

'인류가 포기한 몬스터.'

쓰러뜨리는 게 불가능하다고 손을 놓아버린 몬스터가 몇몇 있었고, 그중 하나가 바로 자색의 흑호였다. 비록 의문이 전부 풀린 건 아니었지만 확실한 것 한 가지는.

'놈이 환계 출신이었던 거야.'

그거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지금도 확연하게 느껴지는 잔재― 마력이 아니고 냄새도 아니다. 그렇다고 놈을 만나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놈이 환계에 있었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환수들이 접근하지 않는 게 놈을 두려워해서라는 것 하나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리라…….

***

"어디까지 달리면 되지?"

현재 스퀘어가 자리한 곳― 질병과 역병의 저지선이 지금 어디냐는 물음에 홍유리는 이란 쪽일 거라 답했다.

"일단 중국은 벗어나야지. 그전까진 돌아가서 찾는 게 나을걸?"

"이란…"

백소율은 묘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잘 생각해보면 외국에 가는 건 처음이네요."

하기야 이런 세상에 쉽게 외국으로 나갈 수 있을 리 없으니까. 끄덕인 순간, 목에 팔이 둘렸다. 마치 안심한 것처럼 눈을 감고 몸을 기대어 체중을 실어 온다.

"……야, 너 무슨."

그 갑작스러운 행동에 홍유리가 눈살을 찌푸리자 백소율은 기댔던 몸을 일으켰다.

"아… 죄송해요. 선생님도 계시는데."

순간, 홍유리는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 쳤다. 진심으로 면목 없다는 듯 사과하는 태도였지만, 그녀가 지적한 건 그게 아니었으니까.

"뀨우우!"

그걸 지적하려는 순간, 거긴 내 자리라는 듯, 페리가 날갯짓했다. 백소율이 비키자마자 날개를 접고 둘렀고 홍유리는 백소율을 빤히 쳐다보다 고개를 저었다.

"…슬슬 출발하지?"

어쩐지 언짢아 보이는 듯한 심기― 홍유리의 말에 휴식을 마치고 둘을 등 위에 앉혔다.

그렇게 종일 달렸을 때, 국경을 지나 한참을 히말라야산맥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빠르긴 하네."

"인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쉬고 갈 텐가 아니면 이대로 끝까지? 묻는 말에 홍유리는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대답했다.

"빨리 가는 게 속 편할 것 같은데?"

슬쩍 백소율을 돌아봤지만, 마찬가지로 피곤한 기색은 적다. 아직 헌터는 아니라지만, 아카데미 학생인 만큼 일반인과는 체력이 다르다.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산맥을 넘기 위해 다시 달리기 시작했지만 얼마 가지 않고 발을 멈췄다.

"…몬스터?"

환계의 땅에 버젓이 있는 몬스터. 그 동안 제법 환계에서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던전이 아닌 곳에서 몬스터를 본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게까지 이상한 일은 아니리라. 백두산에서 어느 정도 멀어졌을 때부터 환수들이 다시 곳곳에 보이긴 했지만, 이런 산맥 깊숙한 곳에 자리한 던전까지 찾아 클리어하는 건 쉽지 않았을 테니까.

[레서 서리 트롤]

[신장 2.71m] [체중 419kg]

[힘 295] [민첩 244] [체력 278]

[보유 스킬]

[미약한 재생(F)]

―그래봤자 의미는 없다. 그림자를 일으키며 지나가려는 순간, 홍유리가 내 털을 강하게 쥐었다.

"잠깐만."

그 말에 잠깐 그림자를 멈췄다. 눈에 덮인 전형적인 트롤의 모습에 고개를 돌린 그녀가 백소율을 향해 턱짓했다.

쓰러뜨려 보라는 뜻― 곧 백소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백소율이 몬스터를 쓰러뜨린 적은 없었으니까. 서리 계곡에서 그녀가 했던 건 그대로 놔둬도 죽었을 몬스터들을 확인 사살한 것에 불과하지 그녀가 직접 몬스터를 쓰러뜨린 건 아니라는 소리. 직접 가르쳤으니 인제 한 번 시험해보겠단 의도가 아닐까. 곧 심호흡한 백소율이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저 정도라면…'

갑작스레 찾아온 첫 실전임을 감안하더라도 적당한 상대이리라. 백소율이라면 어렵지 않게 쓰러뜨릴 수 있을 테니까.

곧, 거리를 두고 멀어진 그녀가 영창하기 시작했을 때, 홍유리가 말을 걸어왔다.

"야."

중얼거리는 듯한 작은 목소리였지만, 서리 트롤에게 들리지 않게끔 배려하고 있음은 알 수 있었다. 곧 무표정한 홍유리가 다시 물었다.

"너, 어제 무슨 일 있었어?"

"……?"

고개를 갸웃거리는 내게 선홍색 눈동자가 시선을 맞춰왔다.

"쟤. 새벽에 잠깐 나가던데 어차피 너 보러 갔을 거 아냐?"

굳이 부정할 것도 없는 사실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라고 했는데?"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스퀘어로 가게 되었다고 하는 말에 나도 마찬가지로 스퀘어로 간다고 답했을 뿐. 그에 홍유리는 한껏 눈살을 찌푸렸다.

"고작 그거뿐이라고?"

이상하다는 듯 갸웃거려지는 고개. 다시 무언가를 물으려하던 홍유리는.

"Lanț de flacără!"

불타는 사슬. 순식간에 간격을 좁힌 사슬이 차륵거리며 휘감으려는 순간, 트롤이 반응했다. ―반응했지만 한 박자 늦고 말았다. 더 정확히는 그녀가 구현한 사슬이 커다랬을 뿐. 덕분에 사슬에 휘말린 트롤이 울부짖으며 몸부림쳤지만, 풀리지 않고 감겨들 뿐이었다.

트롤의 몸에 덮인 눈이 순식간에 증발하고 놈이 몸부림치는 사이, 그 숨통을 끊겠다는 듯 백소율은 또 하나의 마법을 영창했다.

"Fereastra de gheață―"

사슬과 마찬가지로 마력을 쏟아부어 구현한 거대한 얼음 창이 허공에 떠올랐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백소율은 손을 뻗었고, 불타는 사슬에 붙잡힌 서리 트롤은 변변찮은 저항 하나 하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그에 홍유리는 고개를 주억였고, 나는 의외라는 듯 그녀를 보았다.

조금쯤은 망설일 거라 여겼는데 그런 기색조차 없다. 이런 세계였기 때문일까? 몬스터는 인류의 적― 마찬가지로 아카데미 학생인 백소율 또한 그리 생각하고 있을 테니 오히려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홍유리는 혀를 찼다.

"쯧. 일단 나중에 얘기해."

더 할 말도 없는데…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둘을 태운 채 이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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