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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145화 (145/407)

〈 145화 〉 #60 Empyrean Square

예상했던 대로 던전 자체가 붕괴했는지 몬스터가 잔뜩 널려 있었다. 서리 트롤을 보았을 때부터 그럴 거라 예상은 했지만.

'방법은 많은데…'

싸우기 싫다면 발판을 만들어 산맥을 넘으면 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나 싶었다. 이것도 다 경험치였으니까. 그동안 늑대가 성장한 만큼 마찬가지로 성장한 영량 또한 그 크기를 부풀렸다. 이젠 능히 수십 미터를 덮을 수 있는 거대한 그림자― 산맥 일대를 검게 물들인 영량이 기괴하고 탐욕스레 모든 것을 집어 삼켜갔다.

"……미친."

작게 한정하면 모를까 아직 공허를 완벽히 다루지 못하는 늑대로서는 몬스터와 동물 그리고 지형을 전부 구분하기란 힘들었고 그에 따라 그림자가 덮은 곳의 고도가, 눈이 있던 장소가 수십 미터에 걸쳐 움푹 들어가고 말았다.

새삼스레 이 마랑이 홀로 구획보스를 쓰러뜨렸고, 화산각룡까지 먹어 치운 괴물임을 떠올린 홍유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 고민은 했어.'

마음은 이미 정했다.

홍유리는 잘근잘근 입술을 씹었다. 역시 싫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하기는 싫다. 싫지만…

하지만 그때가 오면 결국 선택해야만 한다. 또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스퀘어는 반드시 존속해야만 하니까. 애초에, 선택의 여지 따위는 없었다는 거다. 그럼에도 홍유리는 저울의 추를 수십 번 내리고 다시 올리기를 반복했다. …역시 그럴 수는 없다. 그건 자신의 선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여명에까지 영향을 미칠 테니까. 그러니까, 애초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끔 반드시 성공시켜야만 한다.

이제 그리 머지 않은 길. 홍유리는 늑대의 등 위에서 조용히 숨을 골랐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스퀘어를 찾을 수 있었다.

"…이제 다 도착했네."

"와…"

고개를 들어 올린 백소율이 놀랍다는 듯 감탄했다. 인류 최후의 보루이자 역병과 질병을 틀어막고 있는, 마법사들의 성지. 아직 수십 킬로미터는 떨어져 있음에도 거대한 부유섬의 존재는 똑똑히 보인다.

'스퀘어.'

인류가 만들어 낸 기적의 장소.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섬을 띄워 올린 건 기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으리라.

"어떻게 저런 걸…"

"지탱하고 있는 거야."

"지탱한다고요?"

백소율이 이해하지 못한 듯 의아해하자 홍유리는 말을 이었다.

"스퀘어에 살아가는 모든 마법사의 마력으로."

그게 부유섬의 동력이었다. 그 때문에 스퀘어에 거주하는 마법사의 숫자는 늘 수천에 이를 정도로 많다.

"하지만 그래도…"

"알아. 미친 짓인 거."

홍유리는 자조하는 것처럼 웃었다.

"그래도 그렇게라도 해야 해."

지상에서라면 순식간에 전멸할 테니까. 부유하고 있는 섬에서 마법을 사용하는 것. 홍유리가 말한 것처럼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질병과 역병은 막을 수 없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렇게 하는 이상, 질병과 역병은 어떻게든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여태 그랬던 것처럼.

따라서, 스퀘어는 존속해야만 한다.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털어낸 홍유리는 백소율의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사실 그렇게 힘든 것도 아니거든?"

마력을 흡수한다고는 했지만, 그렇게 소모하는 양은 자연적으로 회복하는 것보다도 적다― 그 말을 하는 홍유리가 어쩐지 자조하는 것처럼 보여 아주 짧은 순간, 늑대의 눈에 알게 모르게 이채가 스쳤다.

"아무튼 그래서 좋은 점도 있지만…"

섬 위에 자리한 모든 생명의 마력을 앗아가기 때문에 풀 한 포기 자라나지 않는다. 그래서 벌레 같은 것도 없다는 말에 백소율은 어색하게 웃었다.

'가장 높은 하늘 광장(Empyrean Square)…'

늑대는 가만히 스퀘어를 올려다봤다. 바로 저기에 환영의 나비가 있다. 그리고 환영의 나비뿐만 아니라 그녀 또한 있으리라.

…사실 오르는 방법은 간단하다.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발판을 밟고 오를 수 있을 터. 하지만 그래서는 혼자 올라야만 한다.

은신을 가진 자신이 아니고서야 결국 숨어있어봤자 들키고 말 테니까. 페리까지 생각한다면 잠자코 기다리는 게 정답이다.

홍유리가 말했던 것처럼 마력을 흡수하고 그로 인해 지탱되는 섬이기에 자급자족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일주일에 딱 하루. 지상에 가깝게 내려선 부유섬이 물자를 보급하는 날이 있고, 그날이 스퀘어의 마법사들이 지상을 밟을 수 있고 스퀘어로 올라설 수 있는 유일한 날이라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늑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계로 돌아갈 건가?"

"가야지. 그런데…"

홍유리는 슬쩍 백소율을 뒤돌아봤다. 여전히 그 시선은 늑대에게 향해있었고, 그에 홍유리는 긴 한숨을 쉬었다.

"…그래 뭐. 어차피 갈 거라면 미리 보여 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

그렇게 말한 그녀는 따라오라며 테헤란을 넘어 부유섬이 있는 자리에서 한참을 더 걸었다.

***

도시 한 구석에서 들키지 않게 현계로 돌아왔을 때, 늑대는 긴 숨을 뱉었다.

'냄새…'

아직 거리는 떨어져 있지만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코를 찌르는 악취와 거기에 섞인 피 냄새까지…

"쯧… 제법 밀렸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홍유리는 혀를 찼다. 아직 10km는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그녀가 스퀘어를 떠나기 전 경계선은 이란의 국경에 가까웠으니까. 10년도 되지 않았는데 수백km가 밀렸다는 뜻이다. 이마저도 스퀘어가 막지 않았더라면 겨우 여기서 끝났을 리 없다.

"―――!"

순간, 백소율은 저도 모르게 입을 가렸다. 끝없이 걷는 기나긴 행렬과 널브러진 부상자… 거기에 거리 곳곳에 죽음 또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거울과 같다고 하나 환수들이 살아가는 환계에선 전혀 예상치 못했던 광경.

"아…"

늑대의 촉수를 홍유리가 가볍게 쳐냈다.

"싸고돌지 마. 네가 무슨 얘 보모야?"

그 적나라한 말에 늑대는 잠깐 고민했지만, 그 말이 옳다고 여겼는지 이내 촉수를 거뒀다.

"어차피 스퀘어에서 지내는 동안엔 한 번쯤은 볼 수밖에 없는데. 그때도 네가 싸고돌 거야?"

"……."

"시체가 뭐? 참혹하고 보기 싫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깟 게 뭐 어쨌는데?"

이딴 건 아무것도 아니라며 홍유리는 저 먼 곳을 턱짓했다.

"진짜는 저기 있는데."

저 멀리서부터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폭음이 들려왔다. ―적어도 늑대의 눈에는 끔찍한 지옥도가 보이고 있었다. 총기에서부터 시작해 수류탄… 대포와 전차, 폭격기를 비롯해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것들을 막고 있다.

그에 늑대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소설로 읽어 알고 있었다. 유럽이 왜 멸망했고 전쟁의 신전이 왜 탄생했는지…

'전혀 달라.'

읽어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얼마나 피를 흘린 건지 붉게 물든 땅과 화약으로 인해 회색 연기가 이곳저곳에 피어오른다.

또 붉은 땅을 흐느적거리는 검고 붉은 파도가 밀려온다.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다. 검은 곰팡이가 잔뜩 피어오른 듯 전신을 뒤덮고, 붉은 피를 흥건하게 덮어쓴 엉망진창의 무리.

그것들 대부분은 인간이었고, 종종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도 있었다. 심지어는 몬스터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그것들을 막기 위해 인류는 발버둥 치고 있다. 수십 개의 국기와 저마다 다른 복장의 군인들. 이따금 헌터로 추정되는 이들까지도 그것들을 막아서고 있다.

그러다가 결국 접촉하면 마찬가지로 그것들― 변이체가 되어버린다.

그래. 놈들이 질병과 역병이라 불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감염시키고, 퍼뜨리고, 변질시키니까.

"……."

정작 우스운 건 놈들은 여기에 없다는 거다. 저들은 단지 감염되고 변질한, 질병과 역병의 여파에 불과하다. 인류가 쓰러뜨리지 못한 괴물은 저것들이 아니라는 거다.

그런데도 만만치 않다. 수십 발의 총탄이 적중하고 나서야 가까스로 쓰러지고, 거대한 대포에 짓뭉개져 살점이 되더라도 꿈틀거린다.

적어도, 그 장면은 여기 있는 누구도 볼 수 없을 거다.

거리도 거리였지만, 건물들과 세워놓은 장벽에 가리고 있었으니까. 늑대처럼 투시와 뛰어난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면 높은 곳에 올라가지라도 않는 한, 볼 수 있을 리가 없다.

보이진 않더라도 폭음만은 들을 수 있을 터… 하늘을 수놓은 전투기와 끝도 없이 치솟는 연기. 어렴풋하게나마 상상한 백소율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전쟁의 신전. 스퀘어. 클랜… 그런 게 괜히 있겠어? 이게 진짜 인류가 처한 상황이야."

그리고는 손을 들어 스퀘어를 가리켰다.

"대충 알아듣겠지?"

―힘에는 마땅한 책임이 따른다거나 그런 개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고 홍유리는 말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거야. 그러니까 발버둥 칠 수밖에 없다고."

각자의 이유로 마법을 배우기 위해 스퀘어로 오는 이들은 널렸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외면하고 만다. 홍유리는 애써 무표정을 연기했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녀가 자랑스러워한 스퀘어는 그런 게 아니다. 외면하는 이들의 진실을 깨달았을 때, 그 모습에 얼마나 많은 회의감을, 자괴감을 느꼈던가. ―그래서 스퀘어를 뛰쳐나왔다. 으스러지라 쥔 주먹이 그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네가 왜 마법을 배우고 싶어 하는진 알겠는데…"

물론 그들이 나쁘다고 할 생각은 없다. 적어도 인류를 배신하지 않는 한, 마법사들은 작든 크든 간에 인류에 기여하고 있는 셈이니까.

'하지만.'

제멋대로인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들 모두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종종 해왔다. 그러다가 홍유리는 자조했다. 이유는 있다지만, 정작 그런 자신이야말로 스퀘어의 마법사로 활동하지 않고 헌터로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그래.'

백소율의 선택이, 동기가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늑대― 알파를 도울 수 있다면 그 또한 분명 인류를 위한 길일 테니까.

그러니까 진짜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다.

"원래 다들 모르면 객기는 부려. 네가 스퀘어에 있는 동안에는 계속 보게 될지도 모르는 모습이야."

그런데 너는 이제 알게 됐다. 그런데도 마법을 배우고 싶냐고 묻고 있었다. 각오를 시험하는 말이었지만, 홍유리는 스퀘어의 많은 이들이 이 모습을 보고도 외면한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이제는 뒤에서 보이는 부유섬의 모습에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스퀘어가 필요하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스퀘어에 살아가는 마법사의 대부분은 섬을 띄우는 마력의 공급원이나 다름없다. 안전한 섬 위에서 연구하거나 마법을 익힐 뿐. 아까 그녀가 자조했던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한심하지만, 정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들은 적다. 가장 높은 하늘이라는 이름답게 최전선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퀘어만큼은 항상 안전했으니까.

말했다시피 원한다면 마법을 배우는 동안 이런 광경 따위는 보지 않을 수 있다. 얼마든지 무시하고 외면할 수 있다.

그런데도 홍유리는 구태여 백소율에게 이 광경을 목도시켰다. 직접 전장을 보여주진 않더라도 그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끔 유도했다. 그 의도는 명백하다. 지금은 모르더라도 스퀘어에 들어가면 알게 되리라. 홍유리는 끝까지 무표정을 유지하며 백소율에게 물었다.

"그래도 배우고 싶어?"

그럴 자신이 있느냐는 말에 폭음 속에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백소율은 떠듬떠듬 입술을 달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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