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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146화 (146/407)

〈 146화 〉 #60 Empyrean Square (2)

테헤란에서 하루를 보내고 부유섬이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하자, 홍유리를 제외한 나머지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하강하는 부유섬― 피난민들의 긴 행렬조차 그때 만큼은 시선이 집중되었다.

"뀨우우!"

신기하다는 듯, 페리의 꼬리 끝이 프로펠러처럼 회전했고 홍유리는 고개를 까닥였다.

"올라갈 준비 해."

그 말에 홍유리의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었다. 비가시화에 은신까지 사용하고 가능한 한 그림자가 일렁이지 않게끔 노력했지만, 그래도 들키지 않을 거란 보장은 없다.

'자신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스퀘어였으니까. 페리는 내가 사라지자 갈팡질팡하더니 서글피 울기 시작했고 그에 다시 나와 달래주어야만 했다. 잠깐 후에 부유섬이 완전히 내려앉아 도시 상공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을 때, 부유섬으로부터 계단이 내려와 지상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스퀘어에 들어가려는 이가 우리뿐만은 아니었는지 계단 근처에 사람들이 줄지어 모여들었고, 홍유리는 놀랍게도 줄 선 이들 따위는 무시하며 가장 앞선 곳에 팔짱 끼며 기다리는 배짱을 보였다.

새치기 정도가 아니라 자기가 새로 줄을 만들었다는 듯한 태도. 하지만 놀랍게도 사람들의 반응은 화내거나 짜증 내는 게 아니라 부러워하고 있었다.

"진홍…"

심지어는 홍유리를 알아보는 이들도 있었다. 하기야 적발의 소녀라는 특징적인 모습이 눈에 띄기는 하니까. 그렇게 계단 위에서부터 스퀘어의 마법사들이 천천히 내려서더니, 사람들의 면면을 확인하기 시작하다가,

"…억."

홍유리에게 시선이 닿은 순간, 숨을 들이키며 못 볼 걸 봤다는 듯 애써 외면하는 마법사를 향해 코웃음치며 뇌까린다.

"이게 미…"

미쳤냐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태도를 바꾼 그가 황급히 고개 돌렸고.

"진홍 님! 방문 환영합니다! 먼저 올라가시죠!"

"절차는?"

"일행분만 부탁드리겠습니다. 근데 거기 용은…?"

"뭐."

"아, 아닙니다."

정말 놀랍게도 홍유리는 아주 유창한 영어로 대화하고 있었다. 마법사가 멍청할 리 없지만, 조금 놀랍다. 서슬 퍼런 시선에 상심한 마법사를 달래주듯 토닥이는 페리의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하여간…'

그 성질머리는 스퀘어에서도 널리 알려졌던 모양. 백소율이 자신의 신분을 알렸고, 가장 먼저 무난히 입장한 홍유리는 태연하게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괜찮을까요? 다른 분들도 계시는데…"

"어차피 다 쭉정이들이니까 냅둬."

그 적나라한 말에 나는 그림자 속에서 실소했고, 소리가 들렸는지 홍유리가 노려보았다.

"가장 앞에 있던 분은 아는 분인가요?"

"아니. 몰라."

"그런 것 치고는…"

절차도 무시하고 들어오게 해 주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홍유리는 태연하게 답했다.

"지가 날 아니까 그랬겠지."

과연 그녀다운 대답에 감탄이 나왔다. 그렇게 계단을 다 올랐을 즈음, 저 아래서 이제 계단을 오르는 이들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도착한 부유섬― 가장 높은 하늘 광장의 모습에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기이한 모습의 도시가 그대로 자리하고 있는 듯 했으니까.

그리고 순간, 부유섬이 높게 떠올라 이어진 계단이 바닥에서 떨어졌고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야. 너…"

눈살을 찌푸린 홍유리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조용하고 빠르게 말했다.

"망할. 이딴 건 몰랐는데… 일단 조절해."

그 말에 마력을 흡수하는 힘에 저항했고, 다시 부유섬이 출렁이며 내려앉았다. 어쩐지 제법 많은 양을 가져간다 싶었더니 정상이 아니었던 모양.

그 소란에 마법사들이 뛰쳐나오고, 눈을 부라리는 홍유리의 모습에 찔끔거리며 돌아갔다. 덕분에 들킬지 모를 위기는 간신히 넘겼지만, 조금 안타깝기는 했다.

'사실 그렇게 성격이 나쁜 것만도 아닌데…'

"뭐해? 안 따라오고."

재촉하는 목소리에 그녀를 따라 부유도시를 거닐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 가지 않았을 때, 홍유리는 드넓은 광장의 중앙에서 자신의 마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래. 이런 게 있었지.'

늑대는 자연스레 광장을 통찰했고, 그에 따라 알 수 있었다.

[통찰(D) Lv.9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통찰(D) Lv.9 → 통찰(D) Lv.10]

[통찰(D) Lv.10이 최대 레벨에 도달했습니다. 통찰(D) Lv.10 → 혜견(C) Lv.1]

선홍색 마력이 퍼져나가자, 기이한 도시는 점차 붉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니, 그녀의 마력에 따라 숨겨진 공간이 드러나고 있었다. 늑대가 통찰해 볼 수 있었던 공간은 넷― 적색과 남색. 그리고 황색과 자색으로 물든 서로 다른 도시가 겹쳐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건 언뜻 보면 환계와도 흡사하지만, 같은 공간에 충돌하지 않고 겹쳐있는 그 모습이 새삼 신비롭게 느껴졌다.

완전히 드러난 붉은 도시― 그 광장의 중앙에서 홍유리는 이제 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탐지를 사용하면 겹쳐진 기척을 느낄 수 있었지만, 적어도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이렇게 공간이 겹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여기가 홍유리가 소속된 곳. 불을 다루는 레드 스퀘어라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네가 나중에 어디로 갈지는 자유겠지만…"

꼭 레드 스퀘어일 필요는 없다고 말한 홍유리는 백소율과 담담히 시선을 마주했다.

"일단은 여기서 지내."

―마침내 스퀘어에 입성한 순간이었다.

***

저택의 문이 열리고 넓고 깔끔한 내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탐지로 느껴봐도 건물 내부의 기척은 없다. 레드 스퀘어의 제법 큰 건물 하나가 그녀의 것이라는 소리. 역시 헌터가 아니라 마법사로서도 상당한 모양이었다.

"좋을 대로 써. 어차피 아무도 없으니까."

그 말을 한 홍유리는 곧바로 배낭을 팽개쳐 두고 잠깐 갔다 올 테니 기다리고 있으라 말했다. 어쩐지 조금 비장한 표정으로 저택의 문을 나서자 그림자 속에서 빠져나왔다.

'그래도 들키진 않는 모양인데.'

스퀘어라서 혹시나 했는데. 이젠 광휘가 직접 오더라도 날 찾는 건 쉽지 않을 거로 생각한다. 은신은 유지한 채 비가시화를 해제했지만, 백소율은 여전히 날 찾지 못하고 있었다.

방도 안내받지 못하고 멋대로 쓰라는 말에 고민하는 듯,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그야 남의 집에 와서 멋대로 쓰라고 들으면…

물론 홍유리는 정말 편하게 있으라고 한 말일 테지만, 입장상의 차이도 있으니 사양하게 되는 건 당연할 거다.

비가시화를 해제하고 모습을 드러냈지만, 백소율은 여전히 날 발견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대로 홍유리와 동행한 거라 여기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다시 강아지의 모습으로 돌아간 채, 백소율의 어깨를 톡톡 건드리자 화들짝 놀라 돌아본다.

"아― 계셨네요."

안심했다는 듯, 가슴을 쓸어내린 백소율이 나를 들어 올렸다.

"차라리 그렇게 강아지 모습으로 있으면 되지 않나요? 어차피 선생님 집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나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언제 누가 찾아올지 모르는 데다가 마법사라는 족속을 상대로 방심은 금물. 미리부터 대비해야 하니까. 은신은 혹시 모를 보험이다.

괜한 방심으로 일을 틀어지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일이라고 해봐야 백소율은 내가 뭘 하러 스퀘어에 왔는지 전혀 모르고 있을 테지만.

"뀨뀨!"

저택 내부에 호기심을 보인 페리가 얼른 둘러보자며 날아올랐고 우리는 그 뒤를 따랐다.

"여기는…"

주방에 창고. 화장실과 샤워실까지 따로 있는 데다가 쓸데없이 방이 많다. 냉장고 안은 마지막으로 떠날 때 정리하지 않았던 건지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

황급히 냉장고 문을 닫고 다른 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한 바퀴 둘러보고 대충 건물의 구조를 알게 됐다. 3층까지 있는 건물이었지만, 3층으로 향하는 길은 쇠창살로 막혀있었다. 마음먹으면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겠지만, 그건 예의가 아닐 터. 2층의 적당한 방에 짐을 푼 백소율이 조금 지쳤는지 방에 앉아 긴 숨을 내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갑자기 그런 광경을 봤었으니까.

아직 학생인 그녀에게는 이를지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참상을 직접 본 건 아니었다는 점일까? 그랬다면 그녀의 대답은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배우고 싶어요.'

아니, 그런 말로 그녀의 각오를 폄하해선 안 된다. 결연한 눈으로 했던 그 말은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니까.

'…….'

조금, 생각이 깊어졌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알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뀨, 뀨?!"

순간, 저택의 문을 뻥 차고 들어오는 큰 소리에 놀란 페리가 날아올랐고 백소율이 몸을 일으켰다. 시선을 돌려 투시를 사용하자 1층에서 주변을 쓱 둘러보는 홍유리. 저택을 둘러본 게 오래 걸리진 않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돌아온 모양이었다.

"오신 모양이네요."

나가보자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백소율은 당연하다는 듯 나를 끌어안았다. 그에 페리가 날아들었지만, 백소율은 페리마저 끌어안는 대범함을 보였다.

"뀨…?"

당황한 듯 발버둥 치지만, 안타깝게도 페리의 힘으로 탈출하는 건 무리. 금세 포기하고 함께 안긴 채로 방문을 나섰다.

그 사이, 2층으로 올라온 홍유리는 다소 어이없다는 표정이 되더니 실소했다.

"사육사?"

우리가 나온 방을 슬쩍 본 그녀가 머리를 주억였다.

"방은 뭐 편하게 써도 상관없는데. 너는?"

"어디든 상관없다."

어차피 휴식이 필요한 몸도 아니었으니까. 홍유리는 잠깐 턱에 손을 가져다 대더니,

"…네 방은 따로 준비할 테니까 기다려."

상관없다고 말하자 우리도 네가 안 보인다고 불편하다고 말하는 것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서 준비해주겠다는데 굳이 사양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러자 끌어안는 팔의 힘이 강해져 페리가 숨 막힌다는 듯 몸을 비틀자 그제야 깨달은 듯 힘을 풀었다.

"미, 미안…"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보는 것이 이제 미운털이 제대로 박힌 게 아닌가 싶다.

"뀨뀨! 뀨뀨뀨~!!"

날아오른 페리가 내게 이르는 것처럼 울자, 가만 보고 있던 홍유리가 코웃음 쳤다.

"아주 잘들 놀고 앉았네. 됐으니까, 넌 갈아입고 나와."

"네. 그러면…"

"말은 해 뒀으니까. 영감탱이가 잠깐 보고 싶다니까 따라 와."

긴장한 표정으로 백소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영감탱이… 그 말에 나는 속으로 실소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지금 만나러 가는 건 십중팔구는 레드 스퀘어의 마스터일 테니까.

긴장한 듯 목울대를 넘긴 백소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가고 싶은 맘이 없지는 않았지만, 스퀘어 마스터를 상대로 100% 숨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는 이상, 얌전히 기다리는 게 맞을 테니까.

곧 준비를 마친 백소율이 홍유리를 따라 저택 밖으로 나가자 나는 길게 하품했고, 홍유리가 방을 준비해주기 전까지 임시로 사용할 방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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