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화 〉 #60 Empyrean Square (4)
돌아온 두 사람. 밝은 표정의 백소율과 대조되는 무표정한…
'다쳤나?'
표정만이 아니라 상처를 입었음이 분명하다. 어지간해선 들키지 않겠지만, 늑대의 혜견은 감히 속일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
가만히 지켜보는 동안 홍유리는 혀를 차곤 2층으로 향했다.
"무슨 일 있었나?"
늑대의 물음에 화들짝 놀란 백소율이 이내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 거기 계셨어요?"
비가시화는 사용하지 않더라도 늑대의 은신은 그 자신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 있다는 걸 알고 있어도 찾기 쉽지 않다.
"그래."
"도로시라는 분과 조금 마찰이 있었어요."
"도로시?"
곰곰이 생각하던 늑대는 금세 그 이름의 주인이 누군지 떠올렸다.
"레드 스퀘어 후계자…?"
"알고 계셨어요?"
놀란 듯, 백소율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도 그럴 것이 스퀘어에 대한 정보는 베일에 싸여 거의 드러나지 않으니까. 아마 스퀘어에 대해 제대로 아는 건 헌터 중에서도 극히 일부가 아닐까. 적어도 학생인 그녀가 알 만한 정보는 아니다.
반대로 백소율 또한 납득했다. 비록 알파가 여명 소속은 아니었지만, 왠지 그는 전부 알고 있어도 이상할 것 같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강했으니까. 대체 얼마나 강한지는 지레짐작할 수밖에 없지만… 아마 스퀘어 마스터들과도 싸울 수 있지 않을까…?
백소율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레드 스퀘어 후계자의 이름을 떠올린 늑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알 것 같아서.
'도로시 A 다니엘라. 그리고 홍유리.'
알고 있는 대로라면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쟁 했었을 터.
마법사의 격은 익힌 마법과 가진 마력에 따라 정해진다.
아마 밀린 건 홍유리… 부상을 보건대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다. 밝은 표정의 백소율은 모르고 있는 듯하지만 아직 학생일 뿐인 그녀가 알아채는 게 더 무리일 거다.
'그래서였나?'
표정이 굳었던 건. 여태 경쟁해왔던, 어쩌면 아래라 여겨왔던 상대에게 밀렸을 테니까. 그 강렬한 자존심에 스크레치가 새겨지는 건 당연했을 거다.
'바보는 아니니까 섣불리 일을 벌이진 않겠지만.'
지금은 홍유리를 걱정할 게 아니라 환영의 나비, 아멜리아 모레스트와 접촉할 방법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레드 스퀘어가 아니라 퍼플 스퀘어로 들키지 않고 잠입할 방법을.
***
그렇게 별다른 일 없이 밤이 되었을 때, 부유섬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신기하네요."
"뀨~?"
페리 또한 백소율에게 안긴 채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집중하지 않으면 모를 정도다.
고도를 높이고 있다는 건 알겠는데, 흔들림이 거의 없으니까. 부유섬 위에 도시를 건설한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마치 엘리베이터처럼 부드럽게 상승하더니 아주 약간의 반동과 함께 높은 상공에 떠올라 멈췄다.
"뀨뀨~!!"
놀란 건지 재밌는 건지 페리가 날개를 펄럭였고 그 몸부림에 백소율은 페리를 놓치곤 아쉽다는 듯 탄식했다.
"아…"
"뭐 하는 거야?"
찌릿거리는 시선. 2층 계단에서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홍유리가 내려오고 있었다.
"가서 연습이나 해."
날카로운 시선에 끄덕인 백소율이 눈인사와 함께 나를 내려놓고 계단을 올라갔다. 도착하고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하기사 자기가 하는 만큼 몰아붙이는 거라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지만.
"…조금 할 말이 있는데."
답지 않게 망설이는 그녀. 나도 마주 끄덕였다. 할 말이 있는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용혈, 혹시 더 남아 있어?"
***
"그래서 용혈이 필요하다고?"
"어."
그녀의 시선이 돌아간 순간, 페리는 몸을 떨며 내 뒤로 숨었다. 몸을 줄이고 있는 터라 온전히 숨을 수는 없었지만.
"남은 용혈은 없다. 그리고 페리도 용혈이 나오진 않는다."
분명 용이지만, 아직 어린 페리는 그 피에 담긴 힘을 제대로 깨우지 못했다. 좀 더 성장한 뒤면 몰라도 지금 페리의 피에 의미는 없다.
"……그딴 생각 안 했거든?"
눈에 욕심이 번뜩이고 있는데 안 하기는 무슨… 아무튼, 홍유리의 말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용의 피를 마셔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용혈을 각성해 보겠다는…
"하지만 그런 거라면…"
좀 더 노력해서 대마력을 각성하는 게 낫지 않으냐― 그 말만큼은 가까스로 삼킬 수 있었다. 홍유리는 이 정신 나간 세계에서 수십 년을 노력해왔다.
평행 세계의 그녀가 대마력을 각성할 수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세계에 머무른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내가 함부로 지껄일 말은 아니다.
그건 그녀의 삶 자체를 비웃는 것일 테니까. 긴 한숨을 쉰 홍유리가 지끈거린다는 듯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부족한 마력은 스퀘어를 지탱하는 데 사용한 게 아니라 아까까지 죽을 둥 살 둥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여태 내가 해왔던 일들을 깎아내린 생각은 없지만 스킬 포인트로 대마력을 획득한 나와, 대마력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발버둥 쳤음에도 끝내 닿지 못한 그녀.
그 심정은 감히 짐작할 수 있는 게 아니리라.
"―알았다."
"그래 없다고… 뭐?"
눈살을 찌푸리며 홍유리가 되물어오는 말에 담담히 대답했다.
"주겠다는 말이다."
"무슨 개소리야? 아깐 없……!"
순간, 홍유리가 눈을 부릅 뜨고 달려들었다.
"미친!"
그림자를 일으켜 발목을 그었기 때문에. 깜짝 놀란 홍유리는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강아지처럼 내 상처를 감싸고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물어왔다. 오히려, 그 격한 반응이 의외였다.
"갑자기 왜 지랄이야?! 미쳤어?"
소리 높여 묻는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필요한 거 아니었나?"
"…뭐?"
손으로 상처를 막던 홍유리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뒤늦게 내가 재생 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달은 모양.
"……그럼 설마 이게?"
"그래. 용혈이다."
"……."
어이없어하는 홍유리는 붉게 물든 자신의 손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용혈까지…"
사실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 않을까. 함께 싸웠으니만큼 화산각룡을 통째로 먹어 치운 게 나라는 건 잘 알고 있을 텐데.
목울대를 넘긴 홍유리는 잠깐 고민하더니 혀를 내밀어 피를 핥았다.
"―――!"
순간, 부르르 몸을 떠는 그녀를 보고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용혈을 각성하기는 했지만, 독과 관련된 스킬은 가지고 있지 않다. 애초에 그녀 또한 독 내성이 있는 만큼 어지간해선 무리가 없을 텐데… 스킬이 아니라면 혹시 먹어치우는 자의 피에 무언가가 있는 걸까?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홍유리는 곧 내 피를 병에 담기 시작하더니 무언가 여운이 느껴지는, 달뜬 숨을 뱉었다.
"원한다면 피는 주겠다."
용혈이란 게 얼마나 가치 있는 건지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어차피 재생하는 이상, 상관 없다. 용혈을 줌으로써 그녀의 수준을 높일 수 있다면 오히려 환영이었으니까.
'…백소율이나 이은하에게도 가능한가?'
아마 가능할 것 같다. 가지고 있던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홍유리는 고개만 끄덕였다.
"본론으로 넘어가지. 환영의 나비에 대한 정보를 원한다. 퍼플 스퀘어로 접근하고 싶은데, 뭔가 방법이 있나?"
"……없는 건 아냐."
힘겨운 듯, 홍유리는 상기된 목소리로 떠듬떠듬 말을 이었다.
"생각해둔 게… 있으니까."
***
홍유리가 말한 방법… 그건 다음날이 되어서야 알 수 있었다. 아침이 되었을 때, 어제의 침울함은 다 날려버린 것처럼 활기차 보이는 모습으로 홍유리가 내려왔다.
"선생님, 오셨어요?"
홍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졸린 눈을 비비며 페리와 함께 뛰놀고 있는 사이에 식사를 마친 둘… 그리고 마침 홍유리가 생각해 둔 방법이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
노크 소리에 문을 열었을 때, 그 너머에 있는 건.
"설마 부를 거라곤 생각도 못 했네요."
퍼플 스퀘어 마스터의 딸, 아넬라 모레스트였다.
'확실히.'
스퀘어 마스터의 혈족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터. 백소율과 홍유리가 그녀와 잠깐 인사를 나눴고, 홍유리는 페리와 함께 백소율을 2층으로 보냈다. 지금부터 할 얘기는 백소율이 알 필요 없는 이야기였으니까. 그녀가 계단을 오르는 동안, 아넬라의 시선은 아래에 있는 내게 향했다.
"강아지를 데려오셨네요?"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그럴 사람이 아닐 텐데 하는 말이 표정으로 드러나 있다.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거린 아넬라가 쓰다듬으려는 손을 가볍게 피했다.
"……?"
우연일 거라 생각한 건지 다시 쓰다듬으려 하기에 손을 쳐내자 아넬라는 동그랗게 눈을 떴다. 뻗은 손을 쳐낸 건 다름 아닌 촉수였으니까. 기겁한 아넬라가 마력을 일으키려하자 홍유리는 손가락을 튕겼다.
씻은 듯 마력이 사라졌을 때, 아넬라는 황망한 듯 침을 삼켰다.
"이, 이건…"
그제야 내가 그냥 강아지는 아니라고 깨달은 모양. 시선이 마주친 순간, 엉덩방아를 찧은 그대로 뒷걸음질치는 모습에 실소하고 말았다.
"설마…?"
아넬라와는 잠깐이지만 마주친 적이 있다. 그때와는 모습도 많이 변했지만, 촉수를 사용한다는 것과 검은 털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금방 답을 유추해낸 모양. 잠깐 본신으로 돌아갈까 하는 고민도 했었지만, 아무래도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알파?"
확신은 아닌 듯, 미심쩍게 묻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긍정이 떨어지자 아넬라는 침을 삼켰다.
"이건 도대체 무슨…"
"뭐, 그렇게 됐어. 아무튼, 도와줬으면 하는 게 있는데."
뻔뻔한 어투로 홍유리는 말을 이었다.
뒤늦게 들은 거였지만, 여명과 아넬라는 협력하는 중이었다. 대전의 밤. 아가일 모레스트의 사건을 뒤로하고 탕아들의 존재를 깨달은 이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뒤로 진전은 없었고 서로 간의 교류 또한 자연스레 끊어졌다.
왜냐하면, 그네들이 찾겠다는 탕아들은 그 잔당까지 뿌리 뽑은 뒤였으니까. 적어도 한국 땅에 놈들이 더 남아있을 리는 없다.
"도와달라고요…?
눈살을 찌푸리며 아넬라가 묻자 나와 홍유리는 자초지종을 설명해갔다.
이야기가 끝났을 때, 아넬라는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어머님께서 그런…"
―물론 그 전부를 말하진 않았다. 차마 자식의 앞에서 부모를 죽이겠다고 말할 순 없었으니까. 그녀가 탕아들에 합류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겠다는 말에 아넬라는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었다.
"……."
하지만 마법사는 바보가 아니다. 어설프게 숨긴 의도 따위야 뻔하디 뻔했다.
정말 어머니가 배신자였을 경우, 선택은 한 가지 뿐이었으니까. 천장을 보고 고개를 꺾은 아넬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가족애는 없다. 이미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진 가족은 서로를 위하지 않게 됐으니까.
아가일이, 동생이 죽었다는 말에도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단지 '그러니?'라고 되물었을 뿐…
조금이라도 좋았다.
마법사답지 않게 분노하는, 화를 내는 모습이라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으셨고 그때, 아넬라는 깨달았다.
어머니께서 아가일을 데려오라 말씀하신 건 오로지 그 재능 때문이었다고.
스퀘어의 후계자 중에서도 역대 최고로 꼽히던 아가일의 재능 때문에…!
강하게 쥔 주먹. 아까 깨물었던 손톱이 파고들어 피가 흘러나왔다.
그래도, 그래도다.
만약에 어머니가 배신자였고 그분을 죽여야 한다면 나는 정말 혼자가 되고 말 텐데…
그렇게 한참을 망설이고 고민한 끝에 도달한 답은.
"저는……"
차마 그럴 순 없다… 그리 말하려는 순간, 알파와 눈을 마주친 아넬라는 헛숨을 들이켰다.
동생을 죽인 괴물의 붉은 눈에서 자연스레 그를 보냈을 때가 투영되는 듯 보였다.
…그래. 아가일을 잃었을 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떠오르는 그의 얼굴에 아넬라는 질끈 눈을 감았다.
…팔을 잃었다고 들었다.
그가 그렇게까지 지키려 하는 것을 내가, 내가 망칠 수는 없다. 그래. 어머니가 변절자라면 마땅히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시게끔 해야만 한다……. 사각지대의 아지트, 그 사육장의 풍경을 보고 말았으니까. 어머니를. 어머니마저 그런 악행을 벌이게 두는 것만은……!
까드득- 이를 악문 아넬라는 흐릿한 마음을 억누르고 감정을 죽인 채, 씹어뱉듯 말했다.
"……협력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