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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149화 (149/407)

〈 149화 〉 #61 나비의 성

아넬라에게 확답을 들은 뒤, 시간은 좀 더 흘러 백소율은 약속했던 대로 레드 스퀘어 마스터와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

학생 신분의 그녀가 이미 3절을 익히고 있다는 말에 실소한 그는 백소율에게 이런저런 적성 검사를 시행했고 결과, 그녀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한다.

"잘 생각해. 이건 존나 드문 일이니까."

으름장을 놓은 홍유리는 턱을 괸 채, 포크로 백소율을 가리켰다.

"이례적인 일이라고. 알아들어? 스퀘어를 선택해서 들어갈 수 있다는 거 자체가 특례야."

"…네. 알고 있어요."

선택권― 원래대로라면 가장 적성에 맞는 스퀘어로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재능을 따라가더라도 성공하는 건 극소수. 한데 선택권이 주어졌다는 건 백소율의 재능과 적성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방증이리라. 과연 마녀의 이름은 헛것이 아니었던 모양.

"불을 다루는 레드, 번개를 다루는 옐로우."

거기에 물과 얼음의 인디고, 환상을 다루는 퍼플까지. 각 계파가 그녀에게 러브콜을 보낸 셈.

'네 가지…'

하지만 다섯 스퀘어 전부는 아니다. 물론 그 계파가 오퍼를 보내지 않았단 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애초에 계파라고 불리기도 힘든 것이, 스퀘어 마스터밖에 존재하지 않는 기이한 구조였으니까. 세간에는 그 스퀘어의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을 만큼이나. 게다가…

"전 가능하면…"

백소율은 스승의 얼굴을 보았지만, 홍유리는 고개를 저었다.

"네가 선택하는 거야. 두 번 다시 찾아오지도 않을 기회고."

"하지만 제가 다른 곳으로 가면 선생님과는…"

그 말에, 홍유리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장난쳐? 여기가 네 소꿉장난하는 곳인 줄 알아?"

"……."

"너 여기 들어오기 전에 뭐라고 했어?"

―그래도 배우고 싶다. 그 말을 상기시킨 홍유리가 한껏 눈살을 찌푸렸다.

"결정은 네가 하는 거야. 돌이킬 수도 없고. 알아들어?"

"……네."

"더 생각해. 먹고 자고 쌀 동안에도 머리통 굴려."

끄덕인 백소율이 인사하고 2층으로 올라가자 홍유리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아직 시간은 남아있다. 아넬라가 무언가의 정보를 가져오기만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 뿐. 마찬가지로 식사를 마친 홍유리는 싱크대에 식기를 밀어 넣곤, 커피를 가져와 마시기 시작했다.

"쯧. 언제 철드는지…"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었고 따가운 시선이 돌아왔다. 마찬가지로 커피를 타 마시고 있을 때, 문득 그녀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손. 거의 다 나은 모양이군."

테이블 위로 올려진 그녀의 손은 인제 거의 다 나은 것처럼 보였다. 마디가 짧다거나 손톱이 자라지 않은 등 완전한 형태는 아니었지만, 멀리서 언뜻 보거나 장갑을 끼고 있으면 모를 정도는 되었다.

"시간 많이 지났잖아."

"뀨우우우~"

그 말에 새삼스러움을 느꼈다. 그때 당시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만, 이렇게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게 됐다는 사실이 말이다.

물론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도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묵은 감정은 나름 잘 털어냈다고 생각한다. 마음속에 남았던 응어리는 사라졌고 이젠 서로 간의 거리낌 없이 대화할 수 있을 만큼 관계도 회복됐으니까. 아무튼, 좋은 일이라는 뜻이다. 끄덕인 늑대는 홍유리에게 물었다.

"용혈은 어떻게 됐지?"

"……아직 멀었어."

그 대답에 늑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준 용혈. 고작 그 정도 양으로 용혈을 깨우칠 수 있을 거로 생각하진 않았으니까. 그랬으면 오히려 조금 억울했을지도 모른다.

늑대가 그렇게 생각하는 반면, 홍유리는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용혈… 늑대의 핏속에 가득한 마력에는 황홀감조차 느끼고 말지만, 여전히 실마리는 잡히지 않는다. 그렇다고 방법을 물어봤자…

'애초에 소용없을 테고.'

무식하게 먹어 치워서 용혈을 각성한 알파와 자신은 한참이나 다르다.

알파처럼 무작정 용혈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뜻이다. 용이란 생물로서 인간보다도 아득히 높은 곳에 있는 격이 다른 존재. 종의 끝. 정점에 있는 용의 피를 함부로 받아들였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으니까. 그 때문에 양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그래. 그건 맞는데…

'답답해 죽겠네.'

스퀘어에서 지낸 며칠간, 홍유리는 수련을 계속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오리무중. 길은 멀고 보이지 않는다. 용혈만이 아니라, 계속 쫓아온 대마력조차도 멀게만 느껴진다. 평생을 바라왔는데도 닿지 않아 결국 옆길로 새고 있다는 사실에 홍유리는 자조했다.

'그런데…'

자신조차 이러할진대. 일개 슬라임에 불과했다던 알파는 대체 어떻게 대마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괴물과 인간의 차이? 아니면 단순히 재능의 차이? 어쩌면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사실 나는 거기에 없고…

쓸데없는 생각이라며 홍유리는 마구 고개를 흔들었다. 설령 그렇다 한들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 뒤처지는 걸 용납하는 성격이 아니었으니까. 할 수 있든 없든 간에 결국, 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다시 마음을 굳힌 홍유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밀어 넣었다. 이러고 있는 시간조차 아깝게 느껴져서.

그리고 그 순간, 알파의 모습이 보이지 않음에 홍유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보이지 않는 알파 대신 애꿎은 문이 거세게 열려 벽에 부딪혔고 거기엔 웬 마법사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어이없다는 듯 눈을 끔뻑이던 홍유리의 이마에 서서히 혈관이 도드라졌다.

"…씨발?"

그래… 물론 경황없이 급하게 달려온 데에는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터. 아니, 없더라도 만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그걸 고려해 줄 정도로 그녀의 성격은 온화하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녀의 입이 열리는 것보다 빠르게 마법사가 소리쳤다는 점일까?

"여, 역병입니다! 도움을 청하러 왔습니다!"

"……뭐?"

***

역병이 출현했다는 말에 누가 동요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질병과 역병. 놈들로 인한 여파만 해도 틀어막기 버거운데 직접 모습을 드러냈음에야… 그나마 다행인 건 나타난 건 역병 하나 뿐이라는 점일까.

"왔느냐."

아스터의 말에 홍유리는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둘러본 홀. 언뜻 보면 많은 마법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틀려먹었다.

'하여간…'

홍유리는 속으로 한숨 쉬었다. 역시 이번에도… 일견 많은 이들이 온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나, 도움도 되지 않을 수준 이하의 마법사들을 제외하고서도 집합한 건 반수도 되지 않는다. 그래. 예나 지금이나 변한 건 없다는 뜻이다.

"도와준다니 고맙구나. 오는 도중에 들었는진 모르겠지만, 전선이 많이 밀렸다."

그 말에 홍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파라면 어떻게 틀어막았을지 모르겠지만, 역병이 나타났는데 전선이 유지되는 게 더 이상한 거였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코앞까지 전진해왔다는 말에는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지만.

"물론 알고 있겠지만 우린 내려가지 않는다."

"……대피는 끝났어요?"

테헤란에 남은 사람들이 모두 피난했느냐는 질문에 아스터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하지만… 사실상 끝났다고 해도 문제는 없겠지."

"그럼…"

"그래."

여전히 변하지 않았단 사실에 홍유리는 실소하고 말았다. 그래.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다. 한 두 번 해왔던 일이 아니었으니까. 지상에 있는 병사들은 시간 벌이. 아직 도시에 남아 있는 이들은 거동이 불편해 움직이기 힘든, 미끼에 불과하다는 사실까지도.

―내려가지 않는다. 그 판단은 냉혹한 동시에 정확하다. 또한, 새삼스럽지도 않다. 매번 그래왔으니까. 마법사인 그들이 역병을 멈출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미끼를 물러 테헤란으로 진입한 역병과 그 여파를 향해 마법을 퍼붓는 것뿐이니까.

그래. 스퀘어는 여태 그런 식으로 시간을 벌어왔다.

그리고 그게, 아직 인류가 멸망하지 않을 수 있던 이유였다.

"곧 부유섬의 고도를 낮춘다. 우리 말고도 다른 스퀘어에서도 폭격을 시작할 테니, 어서 가자꾸나."

아스터를 뒤따라 마법사들이 줄지어 이동하는 가운데, 주먹을 그러쥔 홍유리는 어째서인지 심장의 고동 소리가 조금 커졌음을 느꼈다. 오랜만이라 긴장한 걸까 아니면 또 이 짓거리를 해야 하는 게 싫어서?

저도 모르게 가슴에 손을 얹었을 때, 듣기 싫은 목소리가 그녀를 향해 비아냥거려왔다.

"하, 그래도 꽁무니 빼지 않고 왔네?"

도로시 A… 이름도 떠오르지 않는 싸가지를 향해 홍유리가 코웃음 쳤다.

"너나 잘해. 이 미친년아."

"너… 위계질서라는 걸 좀 배울 필요가 있겠어. 뭣하면 내가 가르쳐줘도 좋은데?"

"지랄. 내가 아직 스퀘어 소속인 줄 아네."

"……."

차마 그 말에는 반박하지 못하겠는지 도로시의 입이 다물어졌다. 평소에도 저렇게 주둥이 좀 다물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도로시를 무시하고 지나쳐 아스터의 뒤를 따랐다. 물론 스퀘어를 떠나기 전에 반드시 저 싸가지의 콧대는 찍어눌러 놓을 셈이었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었으니까. 홍유리는 다가올 나중을 기약했다.

***

역병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늑대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다. ―놈들이 출현한 이상, 스퀘어가 거기에 대비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거기엔 환영의 나비 또한 포함되어 있으리라.

기회가 오지 않았다면 잠자코 아넬라를 기다렸을 테지만,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절호의 기회가 왔는데 가지 않을 순 없다.

가장 높은 하늘 광장― 그 중심에서 탐지를 사용한 늑대는 가만히 때를 기다렸다. 홍유리의 저택 내부에서도 줄타기하듯 몇 번인가 시험해봤었지만, 역시 늑대의 존재를 눈치챌 수 있는 마법사는 없다.

오가는 이들의 숫자는 점차 늘어났고 사태의 심각성 때문인지 발걸음은 급해 보인다. 그리고 누군가가 마력을 일으킬 때, 마침내 늑대는 몸을 일으켰다.

옅은 자색 마력이 퍼지고, 물들어가는 도시의 모습에 마법사를 뒤따라 마침내 퍼플 스퀘어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때까지도 여전히 마법사는 늑대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고.

'됐어.'

남은 문제는 들키지 않고 환영의 나비의 방에 잠입하는 것. 탐지와 후각을 사용한 늑대는 아넬라 모레스트의 냄새가 남은 장소를 하나하나 찾았고, 마침내 환영의 나비의 저택이라 여겨지는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보라색으로 덧칠된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회색으로 느껴지는 그런 공허한 성. 그렇게밖에 느껴지지 않는 나비의 성 앞에서 늑대는 조용히 숨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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