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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152화 (152/407)

〈 152화 〉 #62 환영의 나비

…상태가 좋지 않은 아넬라를 업고 늑대는 가능한 한 성에서 멀어지기 위해 달렸다.

환영의 나비는 벌써 배신한 걸까? 아넬라가 묶여서 갇혀있던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아니, 배신하지 않았다고 믿고 싶은 거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면 역시…

아넬라의 상태로 보건대 상당히 오래 방치한 모양. 어쩌면 부탁하고 난 직후일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의문인 건 왜 죽이지 않았느냐다.

아넬라가 무언가 낌새를 알아채서 입막음을 위해 가뒀다면 죽이는 게 가장 확실하다. 그녀에게 있어 아넬라의 존재를 숨기는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일 테니까.

배신한 거라면 죽이지 않을 이유가 없을 테고, 배신하지 않았다면 가두어둘 이유가 있을까? 그나마 떠오른 가능성은 회유였지만… 굳이?

아넬라가 뛰어난 마법사임은 사실이다. 하지만 환영의 나비의 딸이라는 걸 감안하면. 하물며 여기가 스퀘어임을 생각하면 아넬라정도 되는 마법사는 얼마든지 있을 거다.

굳이 그녀를 회유할 필요는 없다는 거다.

그럼 내가 모르는 무언가의 이유가 있는 걸까?

그리고 피로 쓰인 소환진은 대체 무얼 의미하고 있을까? 어떤 존재를 불러오려 했던 걸까?

…어느새 기력을 소진한 건지 아넬라는 정신을 잃었다. 이제 광장까지는 정말 조금이나 늑대는 눈살을 찌푸렸다.

'벌써?'

아니, 어렵지 않았을 거다. 은신은 혼자만 사용할 수 있는 거였으니까. 아넬라의 잔향을 쫓았다면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늑대라도 텔레포트 스크롤보다 빠를 수는 없는 법이었으니.

이미 성을 나온 나비는 광장의 중심에 서 있었다.

더 숨어있을 곳은 없고 그럴 의미도 없다.

사방에 퍼진 수천 마리의 나비. 그것들이 날아다니는 도시에서 혼자라면 모를까 아넬라를 데리고 숨을 수 있을 리 없다.

'…할 수밖에 없어.'

늑대는 마음을 굳게 다졌다. 그러지 않으면 환영에 집어 삼켜질지도 모르니까.

방심은 금물. 지금 상대해야 하는 건 환영의 주인, 뭇 마법사들의 정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데도 어떤 예감이 든다.

"……?"

늑대가 모습을 드러내자 환영의 나비는 눈살을 찌푸렸다. 예상했던 것과 다른 무언가를 본 것처럼. 스퀘어에서 몬스터를 보았단 사실이 의외인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아멜리아 모레스트."

늑대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환영의 나비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다가 떠오른 것이 있는지 차갑게 뇌까린다.

"그래. 네가 아가일을 죽였다는 마랑이었어."

말 하는 몬스터가 달리 있을 리 없다. 환영의 나비는 손을 휘저었고 넓게 퍼진 나비들이 모여들어 도시의 건물과 지붕에 내려앉아 늑대를 주시했다.

그 속에서 붉은 안광은 모든 자색을 꿰뚫고 환영의 나비 본인과 시선을 마주했다.

"―묻겠다. 배신했나?"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손가락을 까닥거리는 동작에 수십 마리 나비가 늑대를 향해 덮쳐들었다. 허나, 그것들은 다가오지도 못한 채 무언가에 삼켜지고 말았다.

성의 벽을 먹어 치운 게 저 힘이라는 걸 직관적으로 깨달은 환영의 나비는 손가락을 튕겼고 늑대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까 공허가 삼킨 만큼의 나비가 새로 생겨나 도시를 수놓았으니까.

자색 나비― 알고 있다. 저것 하나하나가 고차원적인 마법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따라서 단 한 마리도 접근하게 두어선 안 된다.

검은 안개가 퍼진 순간,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늑대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

영창에 따라 자색 소용돌이가 휘몰아친다. 그녀에게서 시작된 마력의 파동이 순식간에 퍼져나가 도시 전체를 물들이고 공명시켰다.

그래. 상황이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 대화로 풀어나가는 건 불가능하다. 명백한 살의를 띄는 환영의 나비, 그 눈이 요요한 자색으로 물든 순간, 늑대의 눈이 저 너머를 꿰뚫어 보았다.

광장까지 거리는 얼마 되지 않는다. 탈출하는 게 마냥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오히려 퍼플 스퀘어였기에 아직 들키지 않은 것일 테니까. 다른 스퀘어 마스터, 특히 그녀가 오게 되면 끝이다.

늑대는 다시 뒤를 돌아봤고, 여전히 쓰러져있는 아넬라의 모습에 이를 악물었다.

…불리하다. 애초에 퍼플 스퀘어 자체가 환영의 나비의 안방이나 다름없는 장소다. 하물며 아넬라를 지키면서 싸워야 한다면 더더욱.

***

"……."

묘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녀가 오고 만 것이라 여겼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모습을 드러낸 건 늑대의 형상을 한 괴물이었으니까. 그래. 알고 있다. 아가일을 죽였다는 마랑. 물론 알고 있는 바였다.

알파라고 했던가. 놈이 불러일으킨 알 수 없는 힘이 나비를 모두 집어삼켰다. 어지간해선 같은 결과가 반복되고 말리라.

놈을 쓰러뜨리는 게 절대 쉽지 않으리란 걸 직감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가능한 한 빨리 끝내야만 한다.

이제 소환진조차 사라지고 말았으니 그녀를 억제할 방법이 없어진 셈이니까.

그 사실에 입술을 깨물었다.

모든 것이 수포가 되려 한다.

난데없이 나타난 늑대가 모조리, 전부 헤집어 놓고 말았다.

이제, 그녀의 섬은 가라앉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녀가 눈치채기 전에 다시 그리면 되니까.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아넬라를 숨긴다.

그러기 위해선 최대한 빨리 늑대를 죽일 필요가 있다. 늑대를 읽고 감정한 순간, 그녀는 아득한 무언가의 편린을 엿보고 말았다.

알 수 없는 무수한 존재들이 자신을 끌어내리는 것만 같다. 마랑의 전신을 덮은 기이한 문양들이 은은히 빛나고 있다.

가지고 있는 스킬, 상위 감정 따위로는 절대 읽을 수 없다.

정신이 어긋나는 듯한 압박 속에서 기어이 한 걸음 더 나아갔고 결국, 별다른 소득 없이 튕겨 나왔다.

두 눈이 타오르는 것처럼 뜨겁다. 수분이 모두 증발해 타버릴 것 같은 고통속에서도 그녀는 꼿꼿이 서 한 점의 흐림 없이 눈을 떴다.

육체가 아닌 정신의 문제. 참아내면 될 뿐. 그에 따라 흐릿한 시야는 서서히 돌아온다.

그녀가 알 수 있었던 거라고는 저 마랑은 먹어 치우는 자라는 전혀 알 수 없는 괴물이라는 것과.

비참하게 스러진 무수한 이들이 그 뒤에 들러붙어 있다는 것뿐이었다.

마치 마랑이 마지막 희망이라도 된다는 것처럼.

불길한 마랑을 상대로 환영의 나비는 이를 악물었다.

이제 그녀는 마랑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을 거라 도무지 확신할 수 없게 됐으니까.

단지, 그녀가 오기 전까지 필사적으로 마랑을 죽여야 할 뿐.

지독한 독기와 약간의 광기를 담고 환영의 나비가 끝 모를 마력을 일으켰다.

***

"……!"

마력을 쏟아부은 홍유리는 이마의 땀을 닦았다. 본래라면 지쳐 쓰러졌을 텐데도 아직 여유가 남아 있다.

용혈을 받아들여 마력량이 늘어난 걸까? 아니, 그런 게 아니다. 분명 그것도 있겠지만, 그건 미세한 차이일 뿐이다.

무언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좀 더, 좀 더 마법을 사용하고 싶다…!

마력을 사용하는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다는 마력 중독. 그 강한 충동을 억누른 것은 누군가의 허밍이었다.

'어떤 미친년이―'

누가 여기서 콧노래를 흥얼거린단 말인가? 와짝 표정을 일그러뜨린 홍유리는 홱 고개를 돌려 허밍 소리의 주인을 찾았고 그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마른침을 삼켜야만 했다.

일견, 어려 보이는 소녀일 뿐이다.

하지만 부르르 떨리는 몸은 그 생각이 터무니없다고 말하고 있다. 쳐다보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는 압도적인 격의 차이. 분명 마력엔 아직 여유가 있었는데도 보기만 해도 정신이 갉아 먹히는 것만 같다.

알고, 알고 있다.

딱 한 번뿐이지만 먼발치에서나마 본 적 있었으니까.

불가해― 만상의 주인.

다섯 스퀘어를 통틀어 가장 높은 곳에 살아가는 마법의 시조이자 두말할 것 없는 지고의 마법사. 그녀가 없었다면 인류에게 마법이라는 기적은 내려지지 않았으리라.

시선을 눈치챈 걸까? 그녀의 고개가 돌아가더니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자신을 담았을 때, 홍유리는 딱딱하게 굳어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 의외라는 듯한, 일견 천진난만하게 느껴지는 눈동자에서 읽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곧, 그녀가 손을 입가에 가져다 대고 비밀로 하라는 듯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검지를 세웠고 거기에 홍유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뿐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돌아가자 홍유리는 창백한 안색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가장 높은 지붕에 앉은 그녀는 두 손으로 턱을 괸 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마치 기다리던 무언가를 즐겁게 관망하듯이.

***

그림자는 집요하게 뻗어 나갔다. 수많은 갈래로 나뉜 가시는 그 이상으로 많은 나비를 마구 찢어발겼다. 날갯짓하는 나비는 자색 바람에 실려 흩날렸고, 늑대는 아넬라를 들어 옮겼다.

―공허를 둘러 아넬라에게 돔처럼 두른 늑대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역시 아넬라를 지키면서 싸우는 건 힘들다. 시간을 끌면 결국 마력이 바닥나는 건 그녀일 테지만, 그 전에 다른 스퀘어 마스터가 찾아오고 말리라.

서로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녀 또한 서두르는 듯 극해 보인다. 오히려 이렇게 싸워주는 게 고맙게 느껴질 정도로. 속전속결. 아넬라를 지키기 위해 늑대는 기꺼이 자신의 가장 커다란 무기인 공허를 포기했다. 대신, 환영의 나비를 물어뜯을 뿐.

그러기 위해 늑대는 혜견을 사용해 그녀를 엿보았다.

[아멜리아 모레스트(인간)]

[신장 174.4cm] [체중 54.9kg]

[힘 316] [민첩 340] [체력 372] [마력 793]

[보유 스킬]

[구현화(A)] [환상 지배(B)] [환영의 마안(B)] [대마력(B)] [지혜의 샘(B)] [마력 갑주(B)] [마력 집중(C)] [마력 감지(C)] [상위 감정(C)] [독 내성(D)]

순간, 말을 잃었다. 역시 마법사로서 극의에 달해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새삼 지금부터 상대해야 하는 게 인류의 꼭대기. 최후의 보루인 스퀘어의 마스터임을 실감하고 만다.

하물며 공허를 사용하지 않고, 이 자색 도시에서 싸워야만 한다. 그것도 다른 스퀘어 마스터가 오기 전까지 가능한 한 빨리.

이렇게 불리한 조건도 없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예감, 아니 확신이 있었다.

다른 스퀘어 마스터라면 모를까 그녀에게만큼은 절대 질 것 같지 않다는 강한 확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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