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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166화 (166/407)

〈 166화 〉 #68 유인 (3)

거신을 드러낸 재앙. 질병이 지상으로 올라오자 그나마 유일하게 웃돌던 속도마저 뒤처지게 되고 말았다. 또한 놈이 지하에 몸을 파묻고 있었던 것만큼 고도를 높여야 했다.

촉수와 가시가 쏘아졌을 때, 늑대는 어지럽게 몸을 흔들었다. 미세하고 작은 최소한의 동작. 셀 수 없는 촉수를 피하기 위한 몸부림. 제아무리 공허라 한들 압도적인 힘으로 휘둘러지고 여러 스킬의 보호를 받는 질병의 촉수를 순식간에 먹어 치우기란 무리. 따라서 피할 수밖에 없다.

빠져나오는 것마저 쉽지 않다. 촉수만 해도 그러한데 질병의 촉수에서 뻗은 새로운 촉수. 거기서 다시 촉수가 뻗어오자 늑대는 마른침을 삼키며 주변을 훑었다.

하나의 촉수가 아니라 모든 촉수가 전부. 줄기에서 가지가 뻗고 또 뻗은 듯한 모습. 그리고 그 끝에 피어오른 검은 가시.

마치 검은 나무를 보는 것 같다. 벼락이라도 맞은 듯 새까맣게 불타버린 나무. 그런 것들이 세기 힘들 만큼 피어올라 일대를 덮었다.

그 사이에서 늑대는 자신이 기묘한 숲속에 갇힌 듯한 착각을 느꼈다. 검은 안개가 없었더라면 압도적인 마력에 찌부러졌을 테지만, 질병의 마력을 막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마력에 한해서 질병보다 환영의 나비가 더 위에 있다. 자색 마력조차 갉아먹은 흑무가 밀릴 리 없다. 아니, 여태 흑무가 막아내지 못한 마력은 만상의 주인이 발한 검은 마력뿐이었으니까.

허나, 어디까지나 마력일 뿐. 아직 검은 숲에서 벗어난 건 아니다. 움직이기 시작한 촉수들과 거기서 뻗은 무수한 가시들이 발사되자 발 디딜 틈은커녕 움직이는 것조차 버겁게 되고 말았다.

발사된 가시는 공허로 먹어 치울 수 있더라도 촉수는 그게 불가능하다. 결국, 숲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상 어디로 도망치더라도 따라잡혀 촉수에 붙잡혀 꿰뚫려 죽고 말리라.

질병은 짐승의 감으로 확신했다. 여기서 마랑을 죽이는 데 성공했노라고. 기다란 몸을 비틀고 마력까지 폭발 시켜 검은 숲이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물들어갔다.

그 어디에서도 늑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 질병은 늑대가 죽었다고 판단했다. 촉수와 가시에 찢어 발겨지고 마력에 흔적도 남지 않은 거라고.

그리 확신해 촉수를 거둬들인 게 질병의 실수였다.

아니, 그걸 실수라 부르기는 힘들다. 그저 질병에겐 늑대를 찾을 눈이 없었고, 그 자신이 너무 강해 벌어진 불상사에 가까웠으니까.

늑대는 숨죽이고 있었을 뿐. 힘과 체력 그리고 마력과 속도에서조차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이상, 늑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숨어드는 것.

스킬에 의해 보호받는 질병의 촉수는 과할 정도로 단단했고 서로 부딪치더라도 부서지지 않았으니까.

마력은 흑무로 막을 수 있다. 검은 숲을 빠져나올 수 없다면 질병 스스로가 숲을 거둬들이게 하는 방법뿐. 질병을 속이는 것이야말로 늑대에게 있어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리하여 검은 숲이 사라지자 늑대는 자신의 모습을 감춘 채 숨을 골랐다.

은신을 사용한다면 도망치는 건 어렵지 않겠지만 어디까지나 목표는 유인. 잠깐 고민하던 늑대는 가지고 있는 스킬 포인트를 소모하기로 했다.

네버랜드에서부터 언제 등급이 상승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던 스킬. 하지만 여태까지 지독하게도 등급이 오르지 않았던 스킬을 늑대는 강제로 다음 단계로 발돋움시켰다.

[질풍(D) Lv.1을 획득했습니다]

[질풍(D) Lv.1이 돌풍(C) Lv.9에 통합되었습니다]

그 선택에 따라 남은 숙련도마저 완전히 충족하여.

[돌풍(C) Lv.9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돌풍(C) Lv.10이 최대 레벨에 도달했습니다. 돌풍(C) Lv.10 → 폭풍(B) Lv.1]

[남은 스킬 포인트 33]

늑대의 바람은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갔다. 한 걸음 더 나아간 바람은 여태까지의 출력을 훨씬 뛰어넘었다.

공기가, 대기의 흐름이 순식간에 뒤바뀌어 늑대에게 모여들기 시작하자 질병 또한 그 흐름을 감지했다.

땅을 갉아 먹는 벌레는 늑대가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를 용납지 못하겠다는 듯 울부짖으며 기다란 몸을 뻗어 달려들었다. 그건 마치 용이 오르는 듯한 용오름.

제아무리 강한 바람이더라도 재앙을 막기란 요원하다. 그러기에는 질병이 가진 힘이 너무 막대했으니. 지금의 늑대로서는 어쩔 도리도 없는 게 사실이었다.

몸을 일으킨 괴물로부터 뻗은 촉수가 공기를 찢어발기고 다가온다.

거기에 맞서 늑대 또한 마찬가지로 촉수를 뻗었다. 마력을 잔뜩 머금은 가시가 발출됐고 거기에 폭풍을 터뜨린다. 그만한 바람이 일거에 해방된 위력.

그럼에도 부족한 힘. 그것에 경화가 더해지자 늑대는 가시에 공허를 더했다. 비실체의 힘에 잠식을 적용할 수 있는데 실체를 가진 가시에 적용할 수 없을 리 없으니까.

재앙의 촉수, B등급 마수를 기어코 꿰뚫어냈으나 그 때문에 힘을 다한 가시는 질병의 비늘을 뚫진 못했다. 설령 그게 가능했다한들 이 끔찍한 괴물이 고작 그 정도에 물러설 리 없다. 그랬다면 놈은 진작에 토벌되었으리라.

애초에 시선을 끌 생각일 뿐 여기서 질병을 쓰러뜨리는 게 아니다. 들어 올린 놈의 입이, 촉수가 뻗어오자 탄력으로 벗어났고. 지신에 의해 들어 올려진 파편이 늑대를 뒤쫓았다.

―공허는 그 파편 전부를 먹어 치웠고 거리가 벌려진 순간, 마랑은 폭풍을 둘렀다.

그렇다 해도 질병보다 빠를 순 없겠지만 격차는 상당히 줄어들었다.

뻗었던 질병의 거신이 가라앉아 피어오른 흙먼지를 모두 흩어버리고 폭풍을 두른 마랑은 창공을 활보했다.

***

"저걸 유인하다니…"

아스터는 어이없이 실소했다. 미쳤다고밖에 할 수 없다. 마치 줄타기를 하는 듯 아슬아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랑은 계속해서 어떻게든 빠져나오고 있다. 인간이 아니라 두려움을 모르는 괴물이기에 가능한 발상이리라. 용기를 넘어 무모함의 영역에서 마랑은 헤엄치고 있다.

그러나 결코 늪에 빠지진 않는다. 촉수와 가시. 파편과 바위. 그 모든 걸 기어코 피해내고 있었으니까.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정교한 움직임. 약간의 오차만으로 촉수에 붙잡힐 게 분명한데 그 조금을 착각하지 않는 게 놀랍다.

그건 수 싸움에서 마랑이 셀 수 없을 만큼 질병의 위에 있다는 뜻. 마치 수십 번 돌려본 비디오의 내용을 손에 보일 듯 아는 것처럼 마랑은 질병이 어떻게 움직일지를 전부 읽고 있었다. 미래에서 겪기라도 한 것처럼, 불규칙하고 파괴적인 질병의 움직임을 전부.

한 번의 실수가 파멸로 이어진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마랑은 망설이지 않는다.

수인과 영창이 맺어지는 중, 마랑의 존재를 눈치챈 건 아스터만이 아니었다. 익숙한 기운에 고개 돌린 홍유리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 막 마법을 사용했지만 망설일 여유는 없다. 마력이 조금 부족하지만, 홍유리는 파우치를 열어 포션을 들이켰다.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끓어오르는 것만 같아서.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변혁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마력 중독― 잘 알고 있는 그 감각. 원래라면 여기서 멈춰야 했겠지만, 거기에 섞인 무언가가 홍유리를 보채고 있었다.

마법을 사용하라고. 멈추지 말라고. 내면의 속삭임에 이끌리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그런 속삭임이 아니더라도 마법은 사용해야만 한다. 촉수와 파편을 피하는 것에도 결국 한계가 찾아올 테니까. 언제 늑대가 붙잡히더라도 이상할 것 없다. 그리고 그 때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찾아오리라. 그러기 전에 조금의 틈을 벌어줘야 한다.

"너, 방향 바꿔. 저기로 쏠 거야."

이미 영창하고 있던 백소율의 턱을 붙잡아 돌렸다.

어차피 보이지 않을 거다. 백소율의 눈으로는 늑대의 움직임을 잔상으로조차 볼 수 없을 테니까. 추적의 마안을 가지고서도 늑대의 움직임을 쫓는 게 고작. 백소율이 볼 수 있는 거라고는 질병이라는 재앙의 괴물의 모습일뿐.

하지만 그걸로 충분하다. 괜한 동요를 불러일으키는 것보다 낫다. 질병의 모습에 놀람을 가진 듯하지만 따지고 보면 더 거대한 화산각룡의 사체도 보았던만큼 금세 평정을 되찾은 백소율이 영창을 이어나가자 홍유리 또한 입술을 달싹였다.

"Alb pur Stelele sunt sa explodeze."

백소율이 2절을 완창했을 때 영창하기 시작했으나 끝에 다다른 속도는 같다. 마지막 소절에 이르러 공명하듯 얽혀 목소리가 커졌다. 홍유리의 전매특허나 다름없는 3절의 마법이 옆에서 주문을 외는 백소율의 목소리가 겹쳤다.

"Iată moartea ta―!"

미세한 차이. 홍유리의 목소리가 기어이 백소율을 앞서 이끌었고 마침내 마지막 영창을 완성했을 때, 둘의 마법이 구현되어 지상에 내려앉았다.

새하얀 빛이 두 겹으로 겹쳐 동시에 폭발했다. 고작 3절의 마법에 어떻게 될 괴물은 아니었으나 시야를 가리고 폭음을 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늑대에게 짧은 시간을 벌어준 두 사람의 마법. 그 시간은 늑대가 궁지에서 벗어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검은 숲에서 벗어난 마랑이 하늘을 향해 창공을 달리자 새하얀 그믐달에 비친 늑대의 모습을 본 마법사들은 영창하면서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새까만 검은 안개를 두른 채, 달빛에 비친 검은 마랑으로부터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일렁이는 아지랑이. 안개와 함께 마랑을 한층 신비롭게 만들더니 꺼지듯 모습을 감추었다.

모습은 사라졌으나 잔상처럼 뒤따르는 검은 안개가 언뜻 늑대의 형상을 만들었다.

질병에게는 늑대를 찾을 능력이 없다. 홍유리와 백소율의 마법으로 번 약간의 시간은 늑대에게 반격의 시간을 가져다주었다.

더 정확히는 질병의 분노를 일으킬만한 시간을.

질병은 고민하고 있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저곳, 역병의 무리가 마법의 폭격에 당하고 있는 것처럼 자신 또한 부유섬의 공격을 받으리란 걸 잘 알고 있다.

각인된 본능은 질병을 망설이게 했다. 이대로 늑대를 쫓았다간 또 마법에 당하고 말 테니까. 그리하여 멀어지려던 질병은 고통에 몸부림치듯 몸을 비틀었다.

무언가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자신을 물어뜯었기 때문에. 마력의 갑주조차 씹어 삼키고 용린을 비롯한 스킬들마저 뚫어내 기어코 닿았다.

마랑의 이빨이 땅을 먹어 치우는 벌레에게.

대단한 피해는 아니다. 재생까지 가지고 있는 이상 수초 안에 회복할 수 있는 정도. 하지만 그 고통은 질병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하늘에 뜬 부유섬이 아니라 네발 달린 짐승의 이빨이 닿았다는 사실에 질병은 더할 나위 없는 분노를 느꼈다.

생물로서의 격이 높다고는 하나 지성이 없는 이상, 그 이상의 사고는 질병에겐 불가능하다.

결국 늑대를 뒤쫓은 벌레의 머리 위로 부유섬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진작에 화마가 됐던 귀화는 질병의 몸에 들러붙어 이글거렸으나 거대한 발버둥에 불길이 꺼져갔다.

대지가 부서지는 몸부림이었으나, 거기에 휘말리는 건 역병의 무리. 휩쓸린 무리가 비틀리는 중에 진작부터 폭격을 받고 있던 그것― 역병의 등을 뒤덮은 고름이 터져 녹색 연기가 흘러나와 스멀스멀 뒤덮어가는 중, 마법은 계속 영창되고 있었다.

빠져나가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지만, 촉수와 파편 그리고 질병과 마법의 폭격까지 피하느라 여유를 가지지 못했기에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때문에 폭풍을 불러일으키는 게 잠깐 늦고 말았다.

고름을 터뜨린 역병. 오염을 상징하는 녹색 안개가 닿자 늑대의 발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완화가 있음에도. 재생 하고 있어도 도무지 그 속도를 따라잡질 못한다. 이대로라면 한 줌 핏물이 되고 말리라는 생각에 늑대는 각오를 다지고 공허로 하여금 녹아내린 다리를 자신의 다리를 집어 삼켰다. ―물론 재생은 할 수 있겠지만 시간이 필요하다.

문제는 바로 그 시간.

역병과 질병이라는 재앙과 같은 두 괴물에 둘러싸인 채 늑대는 이를 악물었다.

유인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국, 여기서 빠져나가지 못하면 자기 무덤을 판 꼴이 될 테니까.

역병과 질병. 죽지 않는 군세. 안개를 두른 마랑의 머리 위로 무수한 마법이 쏟아져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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