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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176화 (176/407)

〈 176화 〉 #73 변혁 (2)

저택으로 돌아왔을 땐 다소 뜬금없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웬 젊은 남자. 옐로우 스퀘어의 마스터인 북풍의 주인. 대체 왜 그가 여기에 와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낮에 역병을 쓰러뜨리고 스퀘어 마스터들과 말을 나눴을 때 잠깐 보았을 뿐 일면식도 없다. 뭔가 풀리지 않은 궁금증이라도 있었던 걸까? 뒤늦게 의문이라도 생겼나? 아니면 내가 아니라 홍유리를 기다리고 있었나?

그는 기다렸다는 듯 내게 시선을 주었다.

"…그런 모습도 가능했나?"

강아지 모습임에도 바로 알아챈 모양. 곁에 홍유리와 페리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북풍의 주인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늦은 시간에 멋대로 찾아와 미안하지만 내겐 정말 중요한 일이니 양해해주게.…그러니까, 홍유리였나? 사과하지."

"…괜찮습니다."

스퀘어 마스터가 괜히 스퀘어 마스터는 아닌 모양. 다른 사람이었다면 쏘아붙였을 텐데 참고 넘어가는 모습이었다. 곧 있으면 자정일 만큼 어두컴컴했지만, 어차피 수면도 필요 없는 몸이라 밤낮은 상관없다.

"나가서 이야기하겠나?"

…거기에 잘 생각해보면 그가 왜 찾아왔는지에 대해 짚이는 구석이 있어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같았으면 따라왔을 테지만, 부정을 잔뜩 먹어 식곤증에 시달리는 페리를 두고 저택 바깥으로 나왔다. 밤바람을 맞으며 잠깐 걸었더니 인적 드문 곳에서 북풍의 주인이 말했다.

"묻는다고는 했지만, 거의 확신하고 있으니 그냥 답만 해다오."

"……."

"난 제법 오랫동안 스승님을 찾아다녔거든."

물론 알고 있다. 북풍의 주인이 다른 스퀘어 마스터와는 달리 젊은 이유이기도 하다. 아스터나 환영의 나비와는 달리 후계자였던 이가 스퀘어 마스터의 자리를 이어받은 경우. 스퀘어 마스터의 자리가 교체된, 처음 있는 일이기도 하다.

즉, 스승님이란 전대 옐로우 스퀘어 마스터를 말하는 것. 그리고 나는 그를 알고 있다. 내가 죽였으니까.

"얼마 전, 네버랜드 공략대 일을 듣고 거의 확신했지."

2구획에 드리운 암운. 대마법은 흉내 낼 수 있으나 같을 순 없다. 하지만 그걸 굳이 흉내 낼 이유도 없을뿐더러 애초에 대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는 손에 꼽는 정도밖에 없으니까.

"변절자. 그게 스승님이었던 거겠지?"

그가 말하는 것은 침묵하는 입. 굳이 내게 찾아와 물었다는 건 이미 네버랜드에서 있었던 일은 전부 알고 있다는 뜻이리라.

침묵하는 입과 싸웠던 게 누구인지까지.

본래 침묵하는 입은 모조 엘릭서를 마시고 불사에 가까운 괴물이 되고 만다. 생전의 온전한 힘을 되찾은 그가 얼마나 까다로운 적이 되었는지. 어떤 참상을 일으켰는지 떠올리면 거기서 쓰러뜨릴 수 있었던 건 정말 다행이라 생각한다.

놈은 두말할 것 없는 쓰레기. 반드시 죽였어야 할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는 북풍의 주인 또한 알고 있을 터. 굳이 말을 꺼낼 필요는 없다.

그는 다만 스승의 죽음을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리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걸 대답으로 여긴 북풍의 주인은 등 돌린 채 한숨 쉬었다.

"…고맙다."

감사 인사는 어째서일까? 그의 악행을 저지해줘서? 스승이 죽었단 걸 이제라도 알게 돼서? 지금 그가 어떤 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그의 스승이 돌아올 일은 없다.

천둥 노인이었던 그는 침묵하는 입이 되어 죽었으니까.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북풍의 주인은 천천히 멀어져갔다.

늑대는 그가 사라질 때까지 그 뒤를 지켜보고 있었다.

***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 짧은 사이에 잠든 페리를 안고 있는 백소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금방 오셨네요?"

걸은 시간이 더 길었을 만큼 나눈 말은 적다. 하지만 그렇다고 의미가 없었느냐 하면 그렇진 않았다. 내가 아니라 북풍의 주인에게 있어서는 말이다.

…어쩌면 스승을 죽인 내게 덤벼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갔다 오는 사이 홍유리도 방에 들어간 건지 보이지 않았고 백소율이 컵을 건넸다. 향이 좋은 커피. 평소에 홍유리가 마시던 커피였다.

"……."

컵째로 받아 홀짝이다가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음에 먼저 물었다.

"할 말이라도 있나?"

아침에 잤었다고는 해도 이 시간까지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것과 평소와 달리 초조해 보이는 그녀의 태도를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백소율이 조심스레 물어왔다.

"……선생님은 괜찮으실까요?"

이야기를 같이 들었던 만큼 홍유리가 겪고 있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란 건 알고 있을 테니까. 목 뒤에 난 붉은 비늘을 보고 백소율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괜찮다고 답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순 없었다.

어떻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그냥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생각은 없다는 것. 나름 떠오른 방법이 있기는 하다.

변혁이란 외부 요인에 의한 긍정적인 변화. 그녀가 변혁하는 이유가 용혈 때문이라면 그에 대항할 만한 힘을 기르면 된다. 더 쉽게 말해 대마력을 각성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는 동안 다른 방법도 찾아보겠지만 당장 떠오르는 건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이것저것 가릴 여유는 없다.

생각하고 있는 걸 말해주자 백소율은 퍽 안심한 얼굴이 되어 웃었다.

"다행이네요."

홍유리라면 분명 대마력을 획득할 수 있을 거라 믿는 걸까? 그 믿음의 근원이 어디서 나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가슴을 쓸어내리는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요즘 따라 느끼는 거였지만… 종종 그녀에게 시선을 뺏기고 말아서.

…….

서로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어떤 말도 오가지 않았다. 그 때문에 들리는 거라곤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소리와 잠든 페리의 색색거리는 숨소리뿐.

그런데도 자리가 불편하거나 어색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하염없이 페리를 쓰다듬는 그녀의 손길. 잠꼬대라도 하는지 페리는 자면서 하품했다. 조심스레 쓰다듬으면서도 입술을 달싹이고 있다.

무언가 고민하는 듯한 모습… 나는 또 한 번 그녀에게 같은 말을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나?"

다 마신 컵 손잡이를 잡고 있던 손이 떨린다. 놀란 듯 보는 눈망울과 마주쳤지만 그렇게 티를 내는데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티 많이 났나요?"

눈을 돌리며 하는 말에 살짝 끄덕여 주었더니 이내 백소율이 말하기 시작했다.

"……그거 아세요?"

집 안인데도 입김이 흘러나온다. 어쩌면 커피를 마셨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저, 이틀 후에 퍼플 스퀘어로 가게 됐어요."

이미 들어 알고 있는 사실. 멀뚱멀뚱 쳐다보다 다시 끄덕이니 백소율은 입을 벌렸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그러더니 마치 답답하다는 듯 조금 높아진 목소리가 들렸다. 마치 투정이라도 하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나요?"

고개만 갸웃거리는 늑대가 야속하다는 듯 백소율은 입술만 삐죽였다. 왜 이렇게 몰라주는 걸까 싶어서. 이제 이틀 후면 몇 년 동안 보지 못할지도 모르는데… 여기까지 말했는데 굳이 더 말해야 할까? 답답한 마음에 커피를 마시려다가 이미 빈 잔임을 깨달았다.

그날, 여명 옥상에서도 그랬었는데 또 이렇게 넘어가는 걸까……?

사실 말할 생각도 없었다. 물론 아쉬웠지만 지금 알파가 필요한 건 자신보다 선생님일 테니까. 종족이 바뀔지도 모르는데 대체 얼마나 불안해하고 있을까?

그래서 말할 수 없었다. 알파가 곁에 있어 줘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선생님이란 걸 잘 알고 있어서. 마지막 이틀이라고 해도 차마 욕심낼 수 없었다.

그래서 말하지 않으려 했다. 괜히 곤란하게 만들 뿐 일 테니까. 하지만 먼저 말을 걸어줬으면 이 정도는 알아줘도 되지 않을까? 그 답답함에 참았던 숨을 뱉었다.

모르는 척하는 걸까 아니면 정말 모르는 걸까? 그게 아니면 혹시 내가 싫은 건 아닐까…….

이럴 때마다 페리가 부러워진다. 페리만큼은 여태 그랬고 앞으로도 쭉 함께일 테니까. 그뿐만 아니라 선생님 또한 마찬가지로 원한다면 알파와 함께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내가 못 하는 일을 선생님은 할 수 있으니까. 나는 도움이 되지 못하더라도 선생님은 다를 테니까. 그게 퍽 부러웠다. 쭉 곁에 있는 게 나였으면 해서. 그래서 스퀘어로 가는 건데 마지막에서조차…….

답답함과 부러움이 제멋대로 섞여 자신도 알 수 없는 감정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뇌를 거치지 않은 말들이 입술 사이로 삐져나왔다.

"……이제 새해도 밝았고. 좋은 일도 있었고……"

아무 의미 없는 말을 한참이나 횡설수설 중얼거렸다. 칭얼거리는 자신을 숨기고 싶어 테이블 위로 몸을 엎드렸다. …누구보다 머리가 복잡한 건 알파일 테니까.

그가 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어서. 함께할 수 없다면 괜히 발목이라도 잡지 말아야 할 테니까…….

테이블에서 일어나려던 백소율은 자신을 쓰다듬는 손길에 멈춰 몸을 맡겼다. 손길이 닿을 때마다 마음 한 켠이 따스해지는 것만 같은데…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백소율은 두 눈마저 감고 그저 이 순간을 음미했다.

"고맙다."

"……."

"네가 없었으면 죽었을 테니까."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백소율이 없었다면 역병과 싸우긴커녕 그 전에 마법 세례에 죽고 말았을 거다.

그녀가 밝혀준 광명과도 같은 밝고 새하얀 빛…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게 없었다면 마법의 폭격 속에서 나오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으리라.

역병을 쓰러뜨릴 수 있었던 건, 거기까지 할 수 있었던 건 혼자 힘으로 이뤄낸 게 아니다. 마법사들과 환수들 그리고 백소율의 도움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백소율이 정말로 듣고 싶은 말은 고맙다는 인사도 미안하다는 말도 아니리라. 알고 있다. 잘 알고 있지만 차마 그 말만큼은 할 수 없다.

나는 언젠가 떠날 테니까. 여기는 내 세계가 아니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사람이 아니니까. 어쩌면 백소율은 그런 것 따윈 상관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르는 내가 그녀의 감정을 받을 순 없다.

……이유는 수도 없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무엇 하나 말하지 못했다. 그저 모르는 척 이렇게 시간이 흘러 그녀의 감정이 사그라지기만을 기다릴 뿐. 나 또한 그녀에게 끌리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으니까. 그렇게 그 밤은 아무 일 없이 조용히 흘러갔다.

***

아침이 되어 홍유리가 방 밖으로 나왔을 때, 늑대는 어제 백소율에게 했던 말 그대로 그녀에게 말했다. 눈을 비비는 것과 영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보아하니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던 모양. 당장 할 수 있는 건 생각하는 것밖에 없었을 테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뭐라도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으리라.

"그러니까… 대마력을 얻으라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홍유리에게 늑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마력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그게 만만…?"

그 말을 하다가 홍유리는 이를 갈았다. 정작 눈앞에 있는 늑대는 이미 대마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애초에 그게 안 되니 용혈을 삼킨 게 아니었나. 그런데 용혈을 억누르기 위해 대마력을 얻으라는 건 주객전도였다. 사람 놀리냐는 듯한 시선에도 늑대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

"해보기 전까진 모르는 법이다."

그런 늑대와 마주한 선홍색 눈에는 짜증이 담겨 있었다. 노력하지 않았을 리 없다. 평생 노력하고도 닿지 못한 걸 참 쉽게도 지껄이고 있어 홍유리는 보이지 않게 주먹을 쥐었다.

여전히 그 시선에 흔들림은 없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생각이냐고 묻는 것 같은 눈이었다.

……맞는 말이다.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때. 지금은 잠깐 멈춘 듯하지만, 용혈로 인한 변혁은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 가만히 방법만 찾고 있을 순 없다.

사실, 밤새 생각을 못 한 건 아니었지만… 새삼 대마력에 손이 닿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서 외면하고 있었다.

밤새 포기했던 게 다시 들이 밀어졌음에도 차마 못 하겠다고 할 수가 없었다. 너무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게 자존심 상해서. 마법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단순하고 멍청한 이유였지만 그 분함이야말로 독불장군에 고집불통인 그녀를 지탱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걸 늑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이어진 말을 들었을 때, 홍유리의 이마에 혈관이 돋워졌다.

"물론 힘들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지."

"……도로시 A 다니엘라였나? 가장 최근에 대마력을 얻은 건 그녀였을 테니 한 번쯤 물어보는 것도 좋겠지."

그 뻔하디 빤한 말에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와 아득바득 이를 갈며 하는 대답에 늑대는 속으로 웃었다.

"씹, 그딴 거 필요 없거든? 얻으면 되는 거잖아! 대마력!"

성질 긁는 게, 도발하는 게 유난히 잘 통한다 싶어서. 함께 지내는 동안 이 적발 소녀를 다루는 법을 늑대는 진작에 통달해 있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홍유리는 구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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