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화 〉 #73 변혁 (3)
늑대가 대마력을 얻는 방법에 대해 아는 거라곤 간절히 바라고 원하고 노력한 끝에 어느 순간 갑작스레 찾아와 깨닫는 거란 것밖에는 없다.
거기엔 기약도 없고 약속도 없다. 그저 어둠 속을 손끝으로 더듬어 가는 것과도 같은 홀로 걷는 길.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끝은 절대 가까이에 있지 않다는 것. B등급 스킬은 그렇게 간단히 손에 넣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 때문에 늑대는 대마력을 얻는 방법을 알고 있음에도 과감히 포기하고 스킬 포인트를 사용했다.
그렇게 닿기엔 멀어도 너무 먼 길이었으니까. 재능 있는 마법사들이 수십 년을 노력해도 얻지 못하는데 얻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여기고.
사실 그런 자신이 홍유리에게 왈가왈부할 자격은 없다.
아마 홍유리가 알았더라면 속에 열불이 나 때려치우겠다고 뒹굴지 않았을까? 그 모습을 생각하니 새삼 웃음이 나왔다.
"…뭘 혼자 쳐 쪼개고 있어?"
이상한 놈 다 보겠다는 듯한 시선에 늑대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잠깐 둘러보던 홍유리는 잠깐 주변을 둘러보았다. 왜 여기에 온 건지는 짐작이 간다. 하지만…
"마력을 쓰면…"
대마력을 얻기 위해 수련하려면 필연적으로 마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홍유리가 느꼈던 징조는 속삭임. 마력을 더 사용하라는 갈망과도 같은 유혹이었다. 그렇다면 분명 마력을 사용하는 게 방아쇠가 되리라. 괜히 변혁을 앞당기는 꼴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서고 있다. 말꼬리는 흐렸지만,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을 알아들은 늑대는 고개를 주억였다. 사실이었으니까.
늑대와 함께 도착한 곳은 환계. 물론 환계의 농도 짙은 마력은 마법사한테 더 없는 원천이 되리라는 건 잘 알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도움은 되겠지만… 문제는 여기가 던전이라는 점. 정확히는 바로 그 입구였다.
늑대가 대답 대신 던전 안을 향해 고개를 까닥였고 그러자 홍유리는 코웃음 쳤다. 그럴 거라 예상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더 맥빠져서.
"그러니까 클리어하라고? 던전을?"
"그래."
그러니까, 원작의 주인공이자 지금은 시스템의 자아가 된 단세혁이 했던 것. 원래 대마력을 얻으려 했던 건 아니지만 의도치 않게 대마력을 얻었던 방법… 사실 그런 건 없다.
단세혁은 대마력을 위한 수련은 따로 하지 않았으니까. 그저 한결같이 던전을 클리어하고 또 클리어 한 게 전부. 그 와중에 자연스레 대마력을 발현했을 뿐이다. 실전이야말로 최고의 수련이라는 뜻.
물론 그럴 수 있었던 건 단세혁의 재능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기 때문이겠지만, 홍유리는 더 오랜 시간을 대마력을 얻기 위해 노력해왔을 테니 크게 다르진 않을 거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물론 그 길이 어디에 있는진 모른다. 허나 대마력까지 이르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라 믿는다. 아니, 그렇게 만들 생각이었다.
먼저 대마력은 마법사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랬다면 화산각룡을 비롯한 몬스터들이 대마력을 가지고 있는 일은 없었으리라. 좀 더 쉽게 말하자면 마법사건 검사건 간에 결국 구르다 보면 얻을 수 있다는 뜻. 하물며 환계라면 마력을 회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마저 단축할 수 있을 테니까.
"여기서부터는 시간 싸움이다."
용혈에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건 이미 다른 이들에게 맡겨 두었다. 하지만 거기에 기대를 걸진 않았다. 그런 방법이 있었다면 홍유리가 진작 알고 있었을 테니. 게다가 변혁은 잠깐 멈췄을 뿐이지 언제 다시 진행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기다리는 것보단 확신이 없더라도 나아가는 게 차라리 낫다.
"……."
그 의도를 읽은 홍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반박할 수는 있다. 하지만… 몬스터이기에 가능한 사고. 남들과는 동떨어진 사고방식. 그게 여태 알파가 살아온 방법이었으리라. 그렇게 자신을 몰아붙이고 채찍질한 끝에 지금의 알파가 있는 것일 테니까.
그 투쟁의 연속과도 같은 삶은 떠올리기만 해도 암담해진다. 분명 대마력을 얻은 것도 절대 쉽지는 않았으리라…… 진중한 선홍색 눈동자가 자신을 비추자 늑대는 양심에 찔려 백소율에게 시선을 돌렸다.
"……위험할 수도 있다."
"네."
망설임 없는 대답에 늑대는 입맛을 다셨다. 사실 위험할 리 없지만, 홍유리를 배려하기 위해 기다리게 하고 싶었을 뿐이다. 애초에 던전 자체의 수준이 높지 않다. 아까 홍유리가 코웃음 쳤던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맘만 먹으면 던전 클리어까지 1시간도 걸리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중요한 건 던전 클리어가 아니라 대마력을 얻는 것이었으니까. 쉬운 길이 있더라도 쉬운 길로 가서는 안 된다. 기껏 찾은 던전이 그렇게 빨리 끝나서야 의미가 없다.
이깟 게 정말 도움이 되겠냐는 듯한 의심과 귀찮음이 반반씩 섞인 눈빛으로 홍유리는 속는 셈 치고 해보겠다는 듯 혀를 차더니, 결국 던전 안으로 들어갔고 그렇게 시작된 건 그녀가 여태 겪어온 중 가장 무식한 나날들이었다.
***
"……!"
주먹을 뻗던 홍유리는 생각을 바꿔 바로 바닥을 굴렀고 그 판단이 맞는다는 듯이 그녀의 등 뒤로 섬뜩한 발톱이 허공을 긁었다. 구른 덕에 진흙이 잔뜩 묻었지만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은 없다.
기다렸다는 듯 달려드는 놈을 향해 홍유리는 손을 뻗었으나 안타깝게도 짧았다. 러닝 랩터의 우월종인 하이 랩터의 긴 꼬리가 홍유리의 손이 닿기 전에 스치고 만 것.
아슬아슬하게 직격당하진 않았으나 덕분에 지면에 얼굴을 처박아야 했다.
홍유리는 분하다는 듯 손을 그러모았고 단번에 몸을 일으켰다. 바로 뒤에 그녀를 쫓은 하이 랩터의 커다란 아가리가 벌어져 있었을 때, 한 걸음 물러나 피한 홍유리는 스텝을 밟듯 앞으로 나가 턱이 닫힘과 동시에 아래턱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고사리처럼 작은 손이었으나 발이 땅에서 떨어질 정도로 격렬한 일격. 거리를 벌리기 직전, 홍유리는 손에 쥐고 있던 것을 그대로 냅다 던졌다.
그 정체는 진흙. 아까 넘어졌을 때 손에 쥔 것. 눈이 가려진 하이 랩터는 괴로운 비명을 질렀고 홍유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내부에서 소용돌이치는 마력이 단번에 아래로 집중된다. 숨을 헐떡이면서도 발끝에 모인 마력을 터뜨려 추진력을 받는 모습에 늑대는 작게 감탄했고 백소율은 그 기지에 외마디 탄성을 터뜨렸다.
어지간한 헌터들을 한참 웃도는 몸놀림. 마법사임에도 불구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괜히 그녀가 이은하를 그렇게 잡아먹을 듯 굴린 게 아니다. 정말 자기 눈에 차지 않았을 뿐이었으니.
진흙에 가려졌던 하이 랩터의 시야가 돌아왔을 땐, 놈은 꾸륵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에 도망쳤나? 생각했을 땐 이미 늦어있었다.
홍유리가 품속에 파고들어 있었으니까. 자신의 작은 체구마저 이용하고 있다. 발끝에 담긴 마력을 다시 한번 이용해 추진력을 받으며 뛰어오른 홍유리는 닿기 직전, 주먹에 담긴 마력마저 터뜨렸다.
딱 하나 아쉬운 건 그녀의 조그마한 몸. 조금만 팔이 길었다면 좋았을 테지만 그게 영 아쉬웠다.
하이 랩터가 물러나는 것보다 주먹이 닿는 게 더 빨랐지만 팔이 짧아 완전히 힘을 전하지 못했다. 턱 끝을 치긴 쳤지만, 그 정도로 쓰러지진 않는다.
기어이 견뎌낸 하이 랩터는 아직 동작이 끝나지 않은 홍유리를 노리고 턱을 벌린 채 달려들었으나 그러지 말아야 했다. 높게 뻗었던 팔이 되돌아오며 그 팔꿈치에 정수리를 가격당했으니까.
수읽기에서 홍유리가 한참이나 앞서고 있다는 증거. 쓰러진 하이 랩터는 곧바로 일어나려다 홍유리의 뒷발꿈치에 몇 번이나 머리를 짓밟혀 일어나지 못하게 됐다.
"……!"
숨을 헐떡이는 홍유리. 그녀와 비등한 승부를 벌인 하이 랩터가 얼마나 강한 몬스터냐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백소율이라도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였지만 그런 몬스터에게 왜 그녀가 고전하고 있는지 묻는다면…
"이, 이 씨발…!"
분이 풀리지 않은 듯 발길질하며 하이 랩터를 짓밟은 홍유리는 씩씩거리다 홱 고개를 돌렸다. 그 신경질적인 눈빛에 페리는 깜짝 놀라 늑대에게 숨어들었고 백소율은 마력을 흡수하는 시늉을 하며 딴청 피웠다.
"이딴 게. 진짜. 도움이. 되기는 해?"
늑대가 망설임 없이 끄덕이자 홍유리는 이를 갈면서도 더 뭐라 하지 못했다. 묻은 진흙을 털어내며 씩씩거리는 그녀의 주변에 검은 안개가 옅게 일렁이고 있었다.
즉, 흑무에 둘러싸여 있다는 뜻. 그게 그녀가 고전한 이유였다. 조절은 하고 있다지만 항상 일정량의 마력을 방출하지 않으면 검은 안개에 집어 삼켜지고 만다.
덕분에 마법사인 그녀는 지금 마법은커녕 마력 한 줌 밖으로 내보낼 수 없는 상태. 따라서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곤 신체를 강화하는 정도밖에 없다.
지속적으로 마력을 소모하면서 마법도 마력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 그건 마법사에게 있어 절대적인 페널티. 물고기의 아가미를 찢고 날짐승의 날개를 꺾은 것이나 다름없는 일. 이제 막 싸우기 시작한 거라면 그나마 나았겠지만, 숲의 중심부까지 진행하며 상당히 지쳐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숨을 헐떡거리는 홍유리를 담담한 시선과 걱정 섞인 눈이 교차하듯 지켜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홍유리에겐 그것이 자신을 재촉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시발…"
갑자기 검은 안개를 둘렀을 땐 무슨 개짓거리인가 싶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건 쌍욕이 나올 만큼 힘들다고. 정말 죽을 것 같으면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징조는 있나?"
낮은 저음에 홍유리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속삭임은 들려오지 않는다. 마력이 절반 정도 남아서 그런 걸까? 그래서 아직까진 괜찮은 모양인데… 어쩐지 욱신거리는 듯한 느낌에 홍유리는 목 뒤를 짚었다.
여전히 달린 붉은 비늘이 뜨겁게 달아올라 있음에 얼굴을 찌푸리면서.
"뀨우…"
"선생님…"
걱정하는 백소율에게 홍유리는 던전의 가짜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 쉬었다. 괜히 이게 무슨 고생인가 싶어서. 자초한 건 자신이었지만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돌아가서 뜯어말릴 텐데… 괜히 그 망할 싸가지 때문에… 나중에 꼭 묵사발을 내놓고 말리라. 홍유리는 다짐하듯 주먹을 쥐었다.
"……넌 용혈 마시지 마."
그나마 백소율이 마시는 걸 말려서 천만다행. 자신만 해도 이러한데 백소율은 어땠을까? 이를 갈며 숨을 가다듬은 홍유리는 다시금 분기해 일어났다. 언제까지 쉬고 있을 순 없다.
흑무에 마력이 먹힌다는 건 맘 놓고 쉴 수도 없다는 뜻이니까. 마력과 체력을 적절히 분배해야 한다. 숨을 고른 홍유리는 발걸음을 재촉했고 숲의 최심부를 향해 더 나아갔다. 어느새 그녀가 쓰러뜨린 하이 랩터의 사체는 깔끔히 사라진 뒤였다.
***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고 일어난 도로시가 오한에 떨자 소파에 몸을 뉘고 있던 아스터는 몸을 일으켰다.
"으. 머리야…"
술이라곤 평생 입에 댄 적도 없는 아이가 숙취라도 느낀 것처럼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 모습에 아스터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수염을 쓸었다.
"인제 일어났느냐?"
도로시가 눈을 끔뻑이며 고개를 돌리자 아스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 스승님?"
"종일 자더구나. 혹시 탈이라도 날까 데려왔단다."
거하게 기절했지 않나. 덕분에 혼자 무안함을 겪진 않아도 됐지만 스승 된 그가 제자를 걱정하지 않을 순 없다. 도통 깨어나지 않아 걱정했거늘 무사히 일어나 다행이었다.
"몸은 좀 괜찮으냐?"
"…네?"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혼란스러운 모양이구나."
물을 내밀자 도로시는 감사하다며 벌컥벌컥 들이켰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이상하리만치 상쾌하다.
그리고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머릿속에 지우개가 들어가기라도 한 것처럼 깔끔하게. 마지막에 그러니까… 분명 홍유리랑 나비의 성까지 들어갔던 건 기억이 나는데……?
문제는 그다음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거였다. 분명 나비의 성에서 무슨 일이 있었으니까 이런 걸 텐데…
떠오르지 않는 기억에 혼란스러워하던 도로시는 스승이 묻는 말에 더한 혼란을 겪었다.
"그나저나… 용혈은 어디서 얻었느냐?"
"……용혈이요?"
스승이 병을 내밀자 도로시는 눈살을 찌푸렸다. 붉고 붉은 피… 조그마한 병이었지만 그게 용혈이라는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아니, 어쩐지 그렇게 느껴졌다. 의심할 여지조차 없을 만큼.
"귀품이더구나. 대마력까지 가지고 있는 용이라니… 스퀘어에서도 보기 드물 정도였어. 잘 간직하고 있거라."
그 말에 도로시는 의아해했다. …귀품의 용혈? 자신이 용혈 같은 걸 가지고 있었던가? 고개를 갸웃거린 도로시는 되물었고.
"이게… 제 거라고요?"
그 물음에 스승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이야기가 맞물리지 않음에 두 사제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의문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