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화 〉 #73 변혁 (5)
갑작스레 닥친 이변에 늑대의 털이 곤두섰다. 바닥났을 터인 홍유리의 마력이 점점 거세지고 있어서. 아니, 그건 더 깊은 곳의 마력을 억지로 퍼 올리고 있는 것.
그에 늑대의 눈이 빛을 발했다.
심층의 마력을 끌어다 쓰는 건 대마력의 전조였으니. 허나 동시에 그녀의 목 뒤에 돋아난 비늘이 더 붉게 물드는 것에는 이를 악물어야 했다.
대마력만이 아니다. 변혁 또한 진행되고 있다. 아니, 반대였다. 변혁이 일어남으로써 대마력의 진전 또한 가속하고 있다. 생물 종의 정점에 자리한 용이 되어가며 대마력을 얻기 용이하게 변하고 있는 것.
진홍으로 물든 그녀의 눈 속 동공이 세로로 길게 찢어지자 늑대의 표정이 변했다. 그에 백소율은 침을 삼켰고, 부정을 삼키고 있던 페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멈춰야 한다 생각하면서도 늑대는 망설였다. 명백하게 변혁이 더 빠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대마력도 완성에 가까워져 가고 있다.
이대로 두어야 하는가 아니면 말려야 하는가?
마력의 사용이 변혁의 방아쇠가 될 걸 알면서도 나아가야 했다. 아니, 정말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 보험은 물론 가지고 있다.
'모조 엘릭서를 사용해서라도…'
모방한 신의 피라면 용혈 따위는 단숨에 짓누를 수 있을 터. 하지만 변혁으로 인한 용화가 완전히 진행된 뒤라면 늦는다. 고민하던 늑대는 더 생각하지 않고 일단 달리기 시작했다.
***
시야가 서서히 변해가고 있다.
분명 같은 풍경임에도 전혀 다르게 보인다. 흐릿한 안개를 꿰뚫고 좀 더 선명하게. 좀 더 뚜렷하게. 그런데도 붉게 물들어간다.
강한 힘에 붙들려 숨이 막히는 데도 거기에 할애할 정신이 없다. 서서히 변해가는, 변혁을 맞으며 자신의 안쪽이 흔들리고 소리치고 있었으니까.
…좀 더. 조금만 더.
속삭이는 목소리는 뇌리와 귓가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마력을 사용하라고 재촉한다.
목 뒤에 딱 하나 돋아난 붉은 비늘이 유난히 뜨거웠다. 이마를 뚫고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견갑골 사이에 무언가 자라나는 것 같아서―!
그녀 자신도 알 수 있을 만큼 변해가고 있었다.
바득바득 이를 갈아도 뇌리에 속삭이는 목소리가 시끄럽다. 어지럽고 현기증이 느껴진다. 그냥, 그냥 전부 놓아버리고 싶었다. 그 심정과 고통에 홍유리는 질끈 눈을 감았다.
목을 조여오는 손아귀에 힘겹게나마 괴물의 손목을 붙잡았지만 이미 바닥을 드러낸 그녀의 체력으로는 저항할 수조차 없었다.
…체력은 그랬다. 그런 와중에 이상하게도 마력은 남아 있다.
하지만 검은 안개가 둘린 와중에 무얼 할 수 있다고?
체념한 그녀의 눈이 감아지는 와중에 세로로 길게 쪼개진 홍유리의 동공을 보았던 괴물은 지금 그녀를 죽여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알 수 없는 열기가 안개를 불태우기 시작했으니까.
끈질기다. 단번에 분질러버릴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아직 숨이 붙어 있다. 마치 그런 생물인 것처럼.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그런 불안이 엄습한다. 그런데 도무지 죽질 않는다. 초조함에 붙잡은 목을 흔들고 손아귀에 힘을 주어도 얇은 목은 꺾이지 않는다.
포기해야하나 생각했을 때, 검은 안개가 거두어지자 괴물은 미친 듯 광소했다. 이제 총애는 거두어졌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이 암컷을 죽이는 건 전혀 어렵지 않다―!
괴물로 변한 요술사의 빈 눈구멍에서 빛이 번뜩였다. 알 수 없는 주문의 말을 뱉은 그 순간, 안개가 파도처럼 모여들어 홍유리를 덮치기 시작했다.
눈을 뜬 그녀에게서 힘겨운 외마디 탄성이 뱉어지자 괴물은 홍유리가 포기했다고 죽음을 받아들인 거라고 여겼다.
그게 착각이었다.
"―――!"
붉은 눈동자가 떠졌을 때, 괴물이 된 요술사는 비명을 질렀다. 단숨에 소녀의 목을 분질러버리려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목을 붙잡은 손아귀에서부터 어깨까지 자신의 팔이 불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뒤이어 두 눈이 부릅떠졌다. 목을 붙잡고 있던 팔이 뽑혀 나갔으니까. 언젠가부터 나타난 몇 갈래의 붉은 사슬이 자신의 어깨를 강제로 뽑아낸 것.
허공에서 자신의 팔이 사슬에 묶인 채 불살라지는 것을 보며 괴물은 자신이 착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검은 안개는 총애 같은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 그녀를 억누르는 족쇄에 불과했던 것.
그런데 이 와중에 자신은 하나 남은 팔마저 부러져있다. 더 싸울 상태가 아니란 걸 깨달은 괴물이 기겁하며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괴물의 팔이 붙잡고 있던 그녀는 자연스레 떨어졌고 목을 부여잡았다. 그런데도 멀쩡하다. 경추는 부러지지 않았다. 진작 꺾였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어째서? 어느 순간부터 속삭이던 목소리가 소리치고 있었다. 재촉하는 목소리는 강요에서 명령으로 변해 있었다.
사용해. 나아가. 받아들여―!
시끄럽게 징징 울리는 목소리. 굳이 그 소리가 아니더라도 홍유리는 본능적으로 딱 한 번만 마력을 사용하면 방아쇠가 당겨질 거란 걸 알았다. 아니, 방아쇠는 이미 당겨져 있었다…….
왜냐하면, 이미 자신은 변해 있었으니까.
강렬한 유혹. 아찔한 전능감. 엉망이었던 몸 상태는 여태 없었을 만큼 최고조에 다다랐다. 흥분으로 인해 숨이 거칠어진다.
이게 바로 네가 원한 게 아니냐는 목소리에 홍유리는 꼴깍 침을 삼켰다.
맞다. 도로시 그 싸가지 없는 년의 콧대를 눌러주려고. 그뿐만 아니라 질병을 토벌하는 데도 도움이 되리라. 알파가 무리하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류의 오랜 숙원을 이루기 위한 도움이 될 게 분명하다. 이성을 잃는다거나 괴물이 된다거나… 누가 그렇다고 확언한 것도 아니다. 변혁이란 게 긍정적 변화라면 확실하지도 않은 데 겁먹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던 홍유리는 멍하니 움직이지 못했다.
어느새 자신의 팔에 비늘이 돋아나 있었으니까. 몬스터의 그것과 같이 길게 자라난 칼날 같은 손톱과 완전히 바뀌어버린 시야… 이마에서부터 흘러내린 한 줄기 피가 뺨을 타고 내리자 홍유리는 실소했다.
몸속을 타고 흐르는 피가 뜨겁게 달구어진다. 계속 속삭이고 소리치던 목소리의 정체. 그건 다른 누군가가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자신이 중얼거리고 있었음을 깨달았으니까.
"나아가. 해버려. 받아들여…"
그 사실을 깨닫고 홍유리는 흠칫거리며 입을 가렸다. 한때는 알파의 몸속에 흐르던 용의 피가 이젠 자신의 혈관을 타고 달리고 있다는 사실. 그게 의미하는 바를 지금 깨달았다.
"아……"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끊어졌다. 어긋난 것만 같았다.
상식? 윤리관? 도덕관념? 뭐가 어떻게 변한 건지 모르겠지만 무언가 변했다. 확실하게 변했다.
혼란과 함께 찾아온 두통에 손으로 얼굴을 덮었을 때, 이마에 뿔이 튀어나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피가 흘러내린 이유는 그것 때문이었다.
괴물이 되어가는 자신. 마찬가지로 괴물로 둔갑한 요술사. ……도대체 뭐가 다르다고?
그 순간, 아찔한 황홀과도 같은 전능감이 찾아왔다.
그래. 변혁. 인간의 탈을 벗고 용의 피를 뒤집어쓰는 세례. 생물종의 높은 곳으로 도약할 수 있는 더 없는 기회. 용솟음치는 마력에 그녀의 입에서 입김이 새어 나왔다. 끓는 피가 무언가를 계속 요구하고 있다. 아직이라고. 좀 더 사용하라고.
그 강렬한 유혹에 기꺼이 응하려 했다. 전신의 마력을 쏟아내며 울부짖고 싶었다.
그러지 못한 건 어느샌가 붉은 눈동자가 저 편에서 보이고 있어서. 까드득, 입술을 짓씹고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개고생을 한 이유가 대체 뭐였는데…!
이게, 이게 싫어서 그랬던 건데…!
여기서 포기했다간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 늘 포기하지 않던 붉은 눈은 여기까지 와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똑바로, 정면에서 내게 오고 있다. 그런데, 그런데 나만 꼴사납게 포기할 순 없다. 거센 바람이 안개를 모조리 날려버리는 와중, 홍유리의 내면에서 또 다른 무언가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바로 그 무언가가 변혁을 붙잡고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엉망진창으로 섞여가는 와중에 의식의 끈은 점차 얇고 촘촘해지다 결국, 끊어지고 말았다.
***
뒷걸음질 치던 괴물은 자신의 등이 나무에 닿았음을 깨달았다. 더 물러날 곳은 없고 그럴 수도 없다. 하지만 바닥에 쓰러진 암컷― 괴물이 쓰러진 이상 신경쓸 필요는 없다.
홀린 듯 멍하니 다가간 괴물― 요술사는 어느새 자신의 둔갑이 풀렸음을 깨달았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그마저도 부러진 팔로 천천히 다가간 요술사는 멍하니 발을 들어 올렸다. 이대로 머리를 짓밟기만 하면 끝난다. 하지만 요술사는 움직이지 못했다.
등 뒤에서 낮은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이미 자신이 죽어 있음을 깨달았으니까.
드리워진 죽음 앞에서 그는 겸허히 삶을 포기했다.
그렇게 요술사는 그림자 속에 집어삼켜지고 말았다.
***
"……선생님?!"
백소율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어간다. 입을 가리고 눈을 크게 뜬 그녀의 눈에 비치는 모습은 그렇게나 이질적이었으니까.
분명 쓰러져서 의식은 없다. 그런데도 붉은 마력이 새어 나오고 있다. 마력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허나 백소율이 놀란 건 그런 게 아니라 홍유리의 외형 때문이었다.
엎어져 쓰러진 그녀의 목뒤, 붉은 비늘이 도드라져있다. 그뿐만 아니라 손톱은 길게 뻗어 나와있고 손가락은 변형해있다. 이마를 뚫고 나온 뿔은 점점 길어지고 견갑골을 뚫고 무언가 튀어나와있었다. 그게 날개라는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인간이라면 퇴화되어야 했을 꼬리까지.
비늘과 날개. 뿔과 꼬리. 변혁은 이미 끝난 상태라고 해도 좋다. 그에 백소율이 불안한 눈빛으로 물어왔다.
"선생님은 대체…"
흑무를 불러일으킨 늑대는 홍유리를 덮었다. 새어 나오는 붉은 마력을 집어삼킨 검은 안개가 사라진 순간, 그녀는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와있었다.
짧은 시간이나마 홍유리는 분명 용이 됐었다. 늑대가 가진 혜견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으니까.
[홍유리(―)] → [홍유리(변혁 중)]
하지만 변혁과 함께 찾아온 대마력이 그 의지에 따라 들끓는 용의 피를 식히고 다시 그녀를 끌어내렸다. 돌아올 수 있어 다행이지만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
"……."
잠깐 가라앉았지만 머잖아 변혁은 다시 진행될 거다.
용이 된 아주 짧은 순간, 홍유리는 분명 대마력에 닿았다. 하지만 변혁을 끌어내림과 동시에 스킬로 발현되기 직전이었던 대마력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한 점은 예상했던 대로 대마력이 있다면 용혈에 다소 저항할 수 있을 거라는 점.
그리고 암담한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혁을 완전히 막기란 불가능하다는 것… 그녀가 들이킨 용혈은 자신의 것. 그 피에도 대마력은 잔존하고 있었으니까.
"뀨우우~?"
고개를 갸웃거리는 페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결국 변혁이 찾아오는 건 기정사실. 완연한 인간으로 남을 순 없다는 뜻이다. …모조 엘릭서를 마시게 하지 않는 이상에야. 쓰러진 홍유리를 감싼 백소율을 업은 늑대는 던전이 붕괴해 돌아온 환계를 유유히 거닐었다.
남은 선택은 두 가지. 모조 엘릭서를 마시게 해 용혈을 강제로 억누르거나 대마력을 먼저 발현시켜 사람에 한없이 가까운 용종이 되거나. 다만, 후자의 경우엔 실패했을 경우… 정말 용이 되는 걸 각오해야만 한다.
이번 같은 요행은 두 번 다시 기대하기 어려울 테니까.
일단, 그녀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환영의 나비가 변혁을 누를 방법을 찾았기를 바라며.
***
깊은 땅속에서 숨죽이던 그것이 눈을 떴다.
부서진 비늘이 다시 돋아나고 잃어버린 피는 돌아오고 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힘에 잠식당한 상처만큼은 쉽게 재생하지 않는다. 그 붉은 눈을 가진 마랑을 떠올린 그것의 몸이 꿈뜰거렸다.
역병을 퍼뜨리는 쥐가 죽었다는 사실은 아무 감흥도 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다음으로 노리는 것이 자신이란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놈의 눈동자에선 그런 기색이 느껴졌으니까. 건방지고 또 같잖다. 주제도 모르는 버러지는 기어코 자신에게 송곳니를 드러내리라.
그때, 놈을 먹어 치우리라. 건방진 인간들도 먹어 치우고 깨닫게 해주리라. 이제 남은 시간은 아주 조금. 상처가 재생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대지를 병들게 하는 자― 질병은 깊은 땅 속에서 숨죽인 채 다가올 그 때만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