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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184화 (184/407)

〈 184화 〉 #76 대지를 병들게 하는 자 (3)

질병을 추월한 늑대는 이제 스퀘어까지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선택해야만 한다.

이대로라면 놈이 스퀘어까지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기껏해야 2 ,3분.

놈이 의도적으로 자신을 무시하고 있는 이상, 그러지 못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답은 저 아래로 개미굴처럼 복잡하게 이어진 터널 안에 있으리라.

―아니, 생각하지 말자.

홍유리를 믿는 수밖에 없다. 이 정도 거리에, 나름 소란도 피웠으니 스퀘어에서도 눈치챘을 거라고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 무저갱과 같은 깊은 지하, 갈라진 땅속으로 늑대는 기꺼이 몸을 던졌다.

***

쿠구구―!

땅을 파고 나아가는 동물들은 종종 있지만, 땅을 쳐부수고 나아가는 괴물은 둘도 없으리라. 인류는 그 괴물을 경외와 두려움을 담아 대지를 병들게 하는 자, 질병이라 불렀다.

그것이 움직이자 날개 없는 모든 것들이 혼비백산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만으로 지진을 연상케 하는 괴물. 땅 아래에서 그에게 대적할 수 있는 존재가 있을 리 없다.

여태껏 그랬고 앞으로도 분명 그러하리라. 그 누구도 거기에 의심을, 의문을 품지 않았다.

"―――!"

―한데 그것은 감히 자신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겁 없게도 자신을 죽이겠다고 자신의 영역으로 발을 들였다. 눈앞에 검은 불꽃이 넘실거리자 질병은 괴성을 질렀다. 무저갱 속에 울려 퍼지는 소리는 심연의 부름처럼 지하 속 모든 생물을 벌벌 떨게 했고 그것만으로 죽음을 선사했다.

이 깊은 지하에서 자신에게 항거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그런데도 저 불꽃만큼은 그에 이견을 표하듯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다.

평소 같았으면 멈추지 않았을 테지만, 이미 겁화에 불타오른 질병은 저것이 자신에게 닿을 수 있는, 죽음으로 향하는 일말의 가능성이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넘실거리는 검은 불길 사이로 몸을 던졌다가는 자신이라 한들 살아남기 힘들 거라고 본능이 맹렬한 경고를 보내온다.

허나 불길을 넘어설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질병은 여기서 물러나지 않기로 했다.

그리하여, 지각이 변동하기 시작한다.

땅이 무너져 내려 타오르는 불꽃을 덮어버린다. 그렇게 된 이상, 제아무리 겁화라 한들 타오르지 못한 채 꺼지고 말았다.

그것을 질병과 늑대 모두가 알았다.

겁화는 무너진 땅속에 꺼지고 말았으나, 그건 반대로 말하자면 시간을 벌기도 했다는 뜻. 터널이 무너진 이상, 질병 또한 여태까지의 속도로 나아갈 수는 없게 됐으니까.

미리 뚫어놓은 터널을 지나는 것과 땅을 뚫고 가는 것에는 그만한 차이가 있다. 처음부터 목표했던 시간 벌이로는 충분하다.

그래도 놈이 셈난, 스퀘어까지 도착하는 건 오래 걸리지 않으리라. 조금 떨어진 곳에서 터널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자 늑대는 박차를 가해 달렸다.

뒤따라 무너지는 터널에 압사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

스퀘어가 떠오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겠지만 홍유리는 초조한 듯 손톱을 깨물었다. 대피령이 내려짐과 동시에 몰려드는 셈난의 주민들. 스퀘어의 보급을 위해 지상에 있던 몇몇 마법사들과 함께 그들을 무시해야만 한다.

아우성치는 군중들을 무시하고 부유섬은 떠오르리라. 계단을 기어오르는 군중들의 함성과 아우성. 우리를 버리는 거냐는 원망 섞인 말에 홍유리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어디까지나 저들을 살리기 위한 선택이었으니까. 스퀘어만 멀어진다면 분명 질병이 여기까지 올 리 없을 테니. 이래야만 한다. 아니, 이럴 수밖에 없다. 없지만, 이런 상황에 설득하는 건 불가능하리라.

쿠구구…

"……아?"

누군가의 외마디 소리가 신호가 되어 모두의 고개가, 시선이 돌아갔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거리. 대지가 들썩거리자 군중들은 혼비백산으로 도망치며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에는 자신들을 버린 스퀘어에 대한 원망도 섞여 있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가지각색. 좌절하거나 분노하거나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거나.

점점 다가오는 재앙은― 거리를 두고 멈추었다.

어째서? 혹시 포기했을까? …그럴 리 없다. 저 질병이라는 괴물이 얼마나 끔찍하고 집요한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멈춤은 잠깐이었다.

금세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질병. 하지만 발밑으로 전해지던 울림은 멎어 있었다. 드디어 부유섬이 떠오르기 시작했으니까.

알파는 훌륭히 시간을 벌어주었다. 하지만 셈난의 군중들이 도망칠 시간은 역시 부족하다. 아니, 그건 자신들이 벌어야만 한다. 한시라도 빨리 떠올라 셈난에서 멀어지는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여기로 온 게 실수였을까? 아니, 질병이 스퀘어를 쫓는 거라면 어딜 가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으리라.

"Se înroșesc―"

영창을 읊어가며 홍유리는 대마법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퍼뜩 정신 차린 도로시 또한 주문을 읊어갔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고작 이것뿐이었으니까. 그러는 중에도 마력을 방출함에 따라 점점 더 높이 떠오르는 중 마법사들이 안심하는 순간, 일은 벌어졌다.

***

무너지는 터널을 달리던 늑대는 강한 진동을 느꼈다. 그건 분명 질병이 다가오고 있다는 증거. 한 줌의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을 헤치며 계속 나아가는 늑대의 귓가에 천지를 쩌렁쩌렁 울리는 거대한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

격노에 찬 포효의 대상은 분명 자신이리라.

의도적으로 늑대 자신을 무시하던 질병이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유인할 수 있다. 터널의 끝은 이제 멀지 않다. 미리 뚫어놓은 길이 사라진다면 따라잡히는 건 순식간. 지하에서 싸웠다간 잠시도 견딜 수 없으리라.

하지만 빠져나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늑대로부터 검은 무언가가 서서히 퍼져나갔다.

검은 무언가의 정체는 그림자. 이제는 100m를 훌쩍 넘기는 그림자가 길게 펼쳐져 또 다른 하나의 길을 만들었다.

그림자의 길. 그 속에 자신을 숨긴 늑대는 지상을 향해 나아가려 했으나 지각이, 지층 전체가 출렁이기 시작하자 그럴 수 없게 됐다. 지형 자체가 무너지는 이상, 억지로 일으킨 그림자는 흩어질 수밖에 없었으니. 거대한 지진 속에서조차 검은 가시는 마구잡이로 지하를 헤집는다.

늑대를 뒤쫓아 매몰되어가던 지하는 순식간에 붕괴해 무너져 내렸고 늑대는 이를 악물었다.

검은 가지는 지하에서도 그 위력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질병이 가진 힘과 신력이라는 B등급 스킬까지 더해졌으니 당연한 일이리라.

땅이 출렁인다는 걸 지하에서 느끼는 중, 늑대는 어떤 생각을 강하게 품었다.

그것은 늑대 자신. 마랑으로서의 본분. 먹어치우는 자로서 의지가 강해지자 지각이 변동하는 와중에 아지랑이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일어난 아지랑이는 늑대를 덮어 또 하나의 늑대를 만들었다.

그것은 마치 아지랑이의 갑주. 공허를 두른 늑대는 지진으로 무너지는 지하를 헤집고 지상을 향해 나아갔다.

그런데도 그것― 질병과의 거리는 좁혀져만 간다. 지하에서 터널마저 매몰된 이상 아무리 공허를 둘렀다 한들 한계는 있었기에.

먹어 치울 수 없는 게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라 화산각룡을 먹어 치우는 데 시간이 걸렸던 것처럼. 스테이터스와 스킬의 보정을 받는 촉수를 쉽사리 집어삼키지 못했던 것처럼 질과 양에 따라 시간이 필요하다.

지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달리지만, 늑대가 평소 달릴 수 있는 속도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분노에 찬 질병은 이미 뒤를 생각하지 않고 있다. 어떻게든 자신을 죽이기 위해 쫓아오는 끔찍한 괴물.

"――――――!"

무저갱 속에서 울려 퍼지는 괴성과 함께 마침내 놈의 턱이 늑대의 바로 뒤까지 쫓아왔을 때, 늑대는 자신의 위아래로 놈의 위턱과 아래턱이 닫혀오고 있단 걸 알 수 있었다.

지신― 놈이 가진 그 힘에 의해 지층이 움직였고, 늑대는 이를 악물었다. 이제 지상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탈식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상, 마력에는 한계가 찾아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을 수는 없다. 늑대는 자신의 마력 전부를 끌어모았고 동시에 폭풍을 불러일으켰다.

검은 촉수가 또 한 번 새장을 만든 순간, 바람이 늑대와 질병 사이에 자리해 둘을 간지럽혔다.

대기조차 없는 곳에 불어오는 바람. 검은 새장이 좁혀오고 그에 따라 무너지는 지층을 헤치는 늑대를 거대한 턱이 집어삼키기 직전, 끌어모은 마력을 뒷발에 모았다.

―늑대가 가진 마력은 절대 적지 않다.

49레벨에 오르며 이제는 600을 초과하여 대마력까지 보유한 데다 용혈을 가진 늑대의 마력은 능히 스퀘어의 후계자와 자웅을 겨뤄볼 만한 수준이었다. 그런 마력이 무너지는 지층 속에서 문자 그대로 폭발했다.

대지를 병들게 하는 자의 거대한 턱이 맞물려졌지만, 집어삼킬 수 있었던 건 늑대의 하반신뿐이었다.

폭발한 마력은 또 하나의 폭풍이 되었고, 스킬과 마력으로 일어난 두 종류의 폭발은 그저 하염없이 늑대를 밀어냈다. 아니, 밀어낸다기보단 쏘아냈다는 표정이 정확하리라.

상반신만이 남아 쏘아진 늑대가 다음으로 마주한 것은 검은 새장을 연상케 하는 촉수의 다발. 그것들이 늑대를 붙잡기 위해 조여들고 있었다. 좁혀오는 포위망 속에서 다리 잃은 늑대로부터 새로운 다리가 자라났다.

지하를 달리며 마침내 검은 촉수가 드러났을 때, 늑대는 검은 안개를 불러일으켰다. 질병의 촉수는 단숨에 흑무를 찢어발기고 흩어버렸지만 그거면 충분하다.

촉수는 단번에 늑대를 양단했고 사라진 늑대는 잠깐 사라지는가 싶더니 다시 모습을 드러내 달리기 시작했다.

둘린 마력은 그 짧은 순간, 흑무가 갉아먹었고 촉수가 자신을 양단한 순간, 늑대는 얇게 두른 그림자를 쇄도하는 촉수에 둘러 파고들어 반대편으로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한순간이라도 늦거나 빨랐다면. 박자가 어긋났다면 죽었을 테지만, 늑대는 스스로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다.

이제, 새장마저 벗어난 늑대를 막아설 건 남아있지 않다. 마침내 지상에 올라선 늑대는 자신을 반기는 햇살에 안심할 겨를도 없이 달려야만 했다.

지상에 올라왔다지만 질병은 여전히 따라오고 있었으니까. 떠오른 스퀘어는 수십 미터 위에 떠올라 있었으나 늑대는 이를 악물었다.

쿠구구…

황급히 공허와 겁화를 일으켰으나 늦고 만다.

비늘과 지층이 부딪치는 굉음에 군중이 도망치는 순간, 땅속에서 그것이 솟아올랐다.

―늑대를 지나쳐 더 높은 곳으로.

***

재앙이 뛰어올랐을 때, 무수한 파편과 검은 가지가 함께 치솟았다. 수십 미터 상공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 그것을 놈과 오랫동안 싸워왔던 마법사들 또한 질릴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준비하고 있던 마법사들로부터 수많은 마법이 발출되었다. 재앙을 격추하기 위한 셀 수 없는 마법. 하지만 마수(魔手)라는 이름은 괜한 게 아니라는 듯, 구현된 마법들은 산산이 찢기고 말았다. 질병에게 닿을 수 있었던 건 극히 일부에 불과했고 괴물은 겨우 그 정도로 멈추지 않는다.

그것 또한, 알고 있었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도로시의 대마법― 황금으로 찬란히 빛나는 듯한 커다란 새가 날개를 펄럭이며 질병을 향해 나아갔다. 마치 그 자체가 의지를 가진 듯 하강하는 금빛 새는 아까 찢어 발겨져 흩어진 마법과 마력을 받아들이며 그 크기를 불렸다.

대마법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위력으로 단숨에 대기가 일그러지고 날갯짓하는 곳마다 주홍색 불꽃이 일렁인다. 점점 기세를 더해가는 금시조의 모습에 마법사들은 주먹을 쥐었고 도로시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어쩌면 격추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 희망이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질병이 어째서 재앙이라 불리는지 알려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희망은 더한 절망에 물들었다.

거대한 턱은 금시조를 씹어 삼켰고 그러고도 멈추지 않았다.

"……!"

턱 안에서 폭발이 일어나 연기가 퍼져 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질병은 뛰어오르고 있다. 대마법이었던 금시조의 금빛 깃털이 흩날리며 떨어지는 순간, 또 다른 마법사가 눈을 떴다.

그 눈동자는 진홍. 그 속에서 세로로 찢어진 동공이 빛을 발했다.

목 뒤가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한다.

알파는 말했었다. 마력을 사용하면 변혁이 시작될 거라고. 그때는 돌이킬 수 없을 거라고. 그러니, 선택해야 할 거라고.

사람으로 남을 것인지 혹은 용이 될 것인지.

분명 그에게는 무언가 방법이 있었던 것이리라. 단순한 자신감을 넘어 확신에 차 있는 흔들리지 않는 붉은 눈동자는 홍유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인간이 아니었던 삶 따위는 잠시도 살아본 적 없었으니까. 하지만 스퀘어의 부유에 마법사들의 신경이 집중된 순간, 할 수 있는 건 자신뿐이다.

격추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다만 시간을 벌 수 있다면. 스퀘어 마스터들의 마법이 준비될 때까지 짧은 시간을.

망설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걱정하지 마라.'

'어떻게 변하든 도와줄 테니. 어떻게 해서든.'

―그는 약속을 지킬 테니까. 아니, 지키게 만들 테니까.

'…안 지키면 죽여버릴 거야.'

어떻게든 반드시. 그리하여 남은 망설임조차 떨쳐낸 홍유리는 기어코 방아쇠를 당겼다.

"Arzând în abis și transformându-se în cenuș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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