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화 〉 #77 Fallen Square
아득한 아래에서 늑대는 상공을 올려다봤다. 부유섬을 향해 질병이 뛰어올랐을 때, 진홍의 마법진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는 잘 알고 있다. 결국, 결정한 모양. 아니 어쩌면 강요해버렸는지도 모른다. 스퀘어에 소식을 알리라고 말했을 때부터 이미 마력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니까.
따라서, 책임은 자신의 것.
물론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모조 엘릭서가 지닌 가능성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허나 그럼에도 사용해야만 한다. ―약속했으니까. 어떻게 변하든 반드시 도와주겠다고.
더 볼 것도 없이 늑대는 하늘을 달리기 시작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금색의 새가 날았으나 눈 깜짝할 사이 먹혀버리고 만다.
당연한 일. 대마법으로 질병을 죽이기란 난해한 일이었으니. 한계의 한계까지 밀어붙인 다음에야 길은 열리게 될 터. 질병의 턱이 금빛의 새를 씹어 삼켰고 깃털이 엉망으로 흩어지는 순간, 이미 놈과 스퀘어는 거의 같은 높이에 있었다.
부유섬이 흔들리며 황급히 고도를 바꾸려는 순간, 방아쇠를 당긴 누군가에 의해 흑점이 폭발했다.
***
"―――아."
주문을 외움과 동시에 깨져나갔다.
사람으로서의 자신이 남지 않게 변혁하여, 새로운 길로 나아가고 만다.
저번과는 다르다. 징조로 들려오던 속삭임 따위는 없다. 그런 수준은 진작에 지났다. 망막의 수분이 증발하는 것처럼 뜨겁다. 시야가 붉게 물들자 떨리는 손으로 눈을 덮었다.
그런데도 이글거려 뜨거웠다. 손가락 사이로 수증기가 새어 흘러나오자 정말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그래. 알파는 두 번째는 없다고 말했었다. 사람으로서의 자신은 여기까지. 한 걸음 더 나아간 곳에 있는 건 용이 되고 만 자신이었다.
"호, 홍유리……?"
당황한 듯한 부름에 고개를 들어 올리자 뒷걸음질 치는 도로시가 보였다. 그 반응에 그냥 이유 없이 웃음이 나왔다. 아마도 나와 있는 거겠지. 갈라진 동공이라던가 돋아난 비늘이나 뿔… 아무튼 그런 것들.
너무나도 선명해진 눈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 재앙은 여전히 굳건한 채 그대로였다.
대마법이 정면에서 직격했는데도 의미는 없었던 거다. 시간 벌이조차 되지 않았다. 그저 폭발로 인해 연기가 피어올랐을 뿐. 저 끔찍하리만치 단단한 비늘에 쌓여있는 한 놈은 죽지 않는다. 냉정하게 말해 자신의 마법 따위는 그저 연막탄에 불과했다는 뜻.
아까와는 달리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대마력이 없는 자신의 마법 따위가 도로시의 대마법보다 유효한 피해를 줄 리 만무했으니까. 설령 용종이 되었다 해도 극적인 변화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자신 따위가 변혁한다 해서 새삼 질병에게 닿을 리 없으니까. ……그래. 겨우 그 정도였던 거다.
"홍유리! 홍유리! 정신 차려!"
어깨를 마구 흔드는 손길에 홍유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울렁거려서 토할 것 같은데…… 씨발, 왜 흔들고 지랄이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도로시는 놀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두려움은 없다. 흔드는 손을 신경질적으로 쳐냈을 때, 있어야 할 것들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보았던 일이 벌어지지 않았단 걸 깨달았다. 착란. 그건 현실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지금 자신의 눈에 비치는 건…
"――――――!"
괴로워하는 재앙의 모습이었으니까.
여태 보았던 것은 현실이 아니었다. 질병이 소리 지르고 있었으니까. 고통에 몸부림치며 몸을 비트는 질병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대체 어떻게?
머리가 따라가지 않았다. 멍하니 손을 들여다보았을 때, 홍유리는 여태까지와는 다른 무언가를 느꼈다. 그것은 비늘과 손톱이 자라났던 자신의 손… 아니, 아니었다. 붉게 물든 시야는 여전했지만, 비늘이 돋거나 손톱이 자라지는 않았다.
그러나 안은 전혀 다르다. 무엇보다 이 용솟음치는 마력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으니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
"아……"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외마디 소리가 흘러나왔다.
……닿았다. 닿았어. 닿은 거야……! 드디어, 마침내…!
평생 염원하고 바라왔던 것. 대마력을 가진 마법사는 셀 수 있는 정도밖에 안 된다. 거기에 자신이 포함되었다는 성취감. 늑대와 함께 환계에서 보낸 날은 의미 없지 않았다는 무엇보다 큰 증거이기도 했다.
허나 찾아온 것은 기쁨만이 아니다. 마땅히 찾아와야 할 것 또한 찾아오고야 말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외부에서 받아들인 용혈은 그녀의 안에서 일어나던 대마력과 엉망진창으로 섞여버렸으니까. 하나가 찾아왔다면 나머지 하나가 따라붙는 건 당연한 일. 피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필연적인 일이었다.
변혁은 순식간.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렸을 때, 홍유리는 홀린 듯 그 피를 핥았다.
마력이 서려 있는 피… 두말할 것 없이 용혈이었다.
비늘과 손톱은 없다. 그러나 이마에 돋아난 것. 그 뿔을 만졌을 때, 홍유리는 자신이 용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 덕에 불가능했던 일을 가능케 했다. 환계의 마력을 받아들이고, 대마력에 닿아 용혈까지 가지게 되었으니까.
가까스로 질병에게 피해를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와서 마침내 놈에게 고통을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끓어오르는 마력과 고동치는 심장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만 같아서 꿀꺽, 침을 삼켰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황홀과 상념은 부유섬이 흔들림과 함께 깨어졌다.
"――――――!"
추락하던 재앙을 무수한 촉수가 끌어 올리고 있었으니까. 떨어지는 질병이 검은 가지로 하여금 자신을 지탱하자 그 무게에 부유섬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단단히 깊게 박힌 촉수들에 홍유리는 이를 악물었다. 휙 고개를 돌렸을 때, 뒤늦게 도착한 자신의 스승 또한 낭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법은 완성되었다. 당장이라도 사용할 수 있겠지만, 이대로 사용했다가는 질병과 함께 부유섬 또한 추락하고 말리라. 스퀘어의 끝은 곧 인류의 끝… 어떻게든 검은 숲을 없애야만 한다. 대마법처럼 광범위한 마법으로는 부유섬마저 휘말리고 말리라. 좀 더 확실한 다른 방법이……?
하지만 그 방법을 궁리할 필요는 없었다. 홍유리는 허탈하게 웃었다. 방금까지 가득했던 불안이 씻겨나갔다는 듯이.
"……늦잖아."
검은 불꽃이 창공에 일어나기 시작했으니까.
***
스퀘어가 흔들리자 마법사들이 건물 밖으로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지진이 일어날 리 없는 부유섬이 흔들렸다는 건 무언가 이변이 일어났다는 뜻이었으므로.
"……!"
섬 전체가 기울어짐에 따라 물건이 와르르 쏟아지고 탁상과 의자가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Plutitoare."
부유의 마법. 간단한 주문의 말과 함께 옅디옅은 자색 마력이 흘러나와 떨어지는 물건들을 지탱했다.
"벌써 기초는 다진 모양이네요."
그 말에 백소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밖은 괜찮을까요?"
"그럴 리가요."
"뭔가 도울 방법은…"
"지금 다 뛰쳐나가는데 내가 하나 장담할까요? 저 사람들 나가봤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건 소율 양도 마찬가지고요."
"……."
"그냥, 얌전히 기다리세요."
반론은 받지 않겠다는 듯 엄격한 말투에 백소율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납득하지 못한,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정말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는 걸까. 저번처럼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하여. 그에 돌아오는 대답은.
"그 대신, 우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니까요."
백소율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시선은 여전히 창밖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
자유자재로 창공을 누비는 검은 마랑의 뒤를 따라 잔상처럼 검은 불꽃이 일어난다. 겁화― 그 끝을 알 수 없는 불꽃이 늑대의 뜻에 따라 촉수를 불태워간다.
부유섬에 깊게 박힌 가지에서 새로운 가지가 뻗어 나왔지만 한계는 있다. 이미 상당량이 부유섬에 단단히 박혀 있었으니까. 그 정도로 늑대를 잡기란 요원한 일. 그걸 늑대와 질병 서로가 알고 있다.
질병은 늑대를 쫓는 걸 포기하고 최소한의 저항만을. 늑대는 질병을 떨어뜨리기 위해 최대한의 겁화를 일으켰다.
촉수가 불타오르기 시작하자 자신을 끌어올리고 있던 질병이 고통에 신음했다. 발악이 거세졌음에도 검은 가지와 놈의 무식한 힘이 자신의 무게를 온전히 지탱한 채 견뎌내고 있다.
그러나, 겁화는 불꽃. 갈수록 번져가는 법. 검은 불이 뻗은 가지를 따라 역류하기 시작하자 질병은 더더욱 몸을 비틀었고 그에 따라 부유섬이 더 크게 흔들리고 건물들이 부서지기까지 하고 있다.
"마력! 마력을 방출해라!"
누군가의 외침에 부유섬은 더 높게 떠올랐으나 늑대는 이걸로 끝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끊어내야 한다.
결국 부유섬은 대지를 띄운 것에 불과하다. 마력의 통제하에 있다고 하나 지신의 영향 아래 있다는 뜻이니 질병에게서 벗어날 순 없다.
따라서 그럴 시간을, 여유를 주지 않고 몰아붙여야 한다.
촉수를 끊어내며 계속해 달렸을 때, 늑대는 질병의 커다란 동체 위에 올라탔다. 잠식과 연결된 검은 불꽃은 거꾸로 타오르는 도화선처럼 마침내 그것에 닿았다.
"――――――!"
부유섬이 뒤집힐 것처럼, 한계치에 이른 바이킹처럼 흔들리며 마법사들이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기울어진 부유섬. 수준 있는 마법사들은 부유하거나 마력으로 자신을 지탱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건물을 붙잡고 견디는 게 고작이었다.
그리고 그 건물마저 무너지기 시작한다. 무게 중심이 아래로 지탱되게끔 설계되어있으니까. 그 누구도 이런 사태를 상정하고 건물을 짓지 않는다.
문제는 그걸로 끝이 아니다. 불타오른 촉수로부터 가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으니까. 거기에 더해 부유섬 자체가 미친 듯 흔들리고 있었으니까.
지신과 가시. 더 없는 위협이었지만, 늑대는 알고 있었다. 그게 마지막 발악이라는 것을. 꽃이 핀 다음에 지는 것처럼 놈에게 다음은 없다.
이어진 촉수는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만 같았고 대부분 불타 사라졌다. 그런데도 놈은 지독한 집념으로 견디고 있다. 이번이 아니라면 추락시킬 수 없을 거라고. 그런 기회가 돌아오지 않을 것을 놈 또한 잘 알고 있다.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된다.
그렇게 집념을 가진 두 짐승이 서로를 노려보았고, 검은 마랑을 향해 불이 모여들고 있었다. 피어오른 가시가 마침내 쏘아졌을 때, 늑대로부터 무수한 촉수와 그림자가 생겨나더니 가시를 쳐내고 없애고 먹어 치웠다.
전부를 없애진 못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Iată moartea ta…!"
남은 가시들은 새하얀 폭발과 함께 사라졌으니까.
―다소 용으로 변하고 만 그녀가 손을 뻗고 있었다. 가시는 침범하지 못했고 부유섬이 기울고 흔들리는 와중에도 구름같이 모여든 마력이 그녀를 띄우고 있다.
붉은 눈동자가 자신에게 밀하고 있다. 끝내라고. 떨어지게 만들라고.
"―――!"
그렇게, 두 짐승은 서로를 마주보며 울부짖었다.
두 짐승의 울부짖음이 시끄럽게 울려 퍼진 순간, 끝없는 검은 장막이 시야를 가렸다. 이미 촉수는 모두 끊어진 뒤였다.
마지막 발악과 같이 몸을 튕긴 질병의 커다란 턱이 그림자를 집어삼키고 그 위까지 뛰어올라 부유섬의 바닥을 씹어 삼키려는 순간, 미리 준비해 구현한 마법이 재앙을 향해 퍼부어져 대지를 병들게 하는 자는 다시 지상으로 추락했다.
***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오기는 아직 이르다. 부유섬의 상태는 최악. 건물은 무너지고 여전히 기울어진 채인 데다가 촉수에 꿰뚫려 군데군데 구멍이 나고 말았다. 그 말인즉 부유섬 전체에 새겨져 있던 마법들 또한 엉망이 되었다는 뜻. 거기에 더해 색이 제멋대로 어그러져간다. 붉었다가 노랗게 변하고 푸른 색을 띄는가하면 보라색으로 물든다. 부유의 마법뿐만 아니라 겹쳐진 각 스퀘어의 공간마저 풀려나오기 시작했다는 것.
겁화와 마법의 폭격에 당한 질병은 깊은 지하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물러난 게 아니다. 저 아래에서 상처를 추스르며 입을 벌리고 있으리라. ―놈은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부유섬은 곧 추락하고 말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