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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186화 (186/407)

〈 186화 〉 #77 Fallen Square (2)

섬의 기울어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왔다. 마법사들이 마력을 퍼부어 수평을 맞춘 것. 하지만 그렇다고 바뀌는 건 없다.

"……."

결국 부유섬은 추락하고 말리라. 그리고 저 끔찍한 괴물이 고작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졌다고 죽을 리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타오르는 몸으로 지하로 숨어든 괴물은 머잖아 다시 모습을 드러낼 터. 즉, 문제는 두 가지.

"스퀘어에서 무사히 탈출하는 것과…"

"도망치는 거겠죠."

겨울의 주인이 아스터의 말을 받았다.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은 아니다. 마법사들을 부유시키면 되니 섬에서 탈출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부유 마법으로 수십 킬로미터를 날 수 있는 마법사는 손에 꼽는다.

"애초에 스퀘어가 추락하면……"

수 km에 달하는 거대한 섬. 그 질량이 얼마나 될지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다. 속도는 최대한 늦춰 보겠지만, 어지간한 운석 충돌 이상의 여파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일대가 초토화되는 건 당연하리라.

탈출도 쉽지 않은데 여파에 휩쓸리지 않고 질병을 피할 방법… 궁리하는 그들의 귓가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막을 방법은 없나?"

어느새 스퀘어에 올라선 검은 마랑의 모습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웅성거림이 커진 순간, 북풍의 주인이 발을 구르자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부유섬 자체가 손상됐으니까."

마법진만 파손된 거라면 다시 그리면 그만일 테지만, 섬 자체가 너덜너덜해지고 말았다. 마법진을 그릴 곳 자체가 사라졌다는 뜻.

거기에 더해 도시의 색마저 변하고 있다. 환영의 나비가 막고 있지 않았더라면 겹쳐진 공간이 풀려나와 부유섬으로부터 각 스퀘어, 도시가 흘러내리리라.

이런 상황에서 추락은 막을 수 없는 기정사실. 그 전제를 바꿀 순 없다.

확정 짓는 말에 마법사들의 안색이 핼쑥해졌다. 부유섬이 떠오른 이유가 어찌 됐든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의 터전은 스퀘어였으니까…

암담한 상황을 다시 상기한 순간, 누군가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

그러는 중 늑대는 부유섬이 움직이는 방향과 속도를 토대로 추락할 위치를 계산해 눈에 담았다. 마력을 담은 늑대의 눈에는 수백 킬로미터 너머의 광경마저 코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보였다.

추락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20분… 추락한다는 전제를 바꿀 수 없다면 그 조건이라도 바꿔야만 한다.

가능하리라. 스퀘어는 여전히 마력을 흡수하고 있었으니까.

확인해보겠다는 듯 늑대가 마력을 방출하자 놀란 마법사들이 손을 들어 올렸지만 아스터는 고개를 저어 그들을 제지했다.

"잠자코 지켜보게."

방출한 마력에 따라 아주 조금 부유섬이 떠올랐다. 문제는 잠식으로 빼앗은 마력 대부분을 소모했다는 거였지만. 부유섬에 손상이 있었던 만큼 이전보다 효율이 극악하다.

하지만 불가능한 정도는 아니다. 고도를 높이면 당연히 그만큼 시간은 벌 수 있다. 추락 지점을 임의로 정할 수는 있다. ……문제는 그 방향인데.

늑대는 다시 부유섬을 돌아보다가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음을 깨닫고 몸을 돌렸다.

거기엔 조그맣게 뿔이 자라난 붉은 머리 소녀가 앉아 있다. 늑대는 촉수를 뻗어 그녀의 이마를 닦아주었고 그와 함께 누군가 탄성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나?"

담담한 목소리와는 달리 걱정스레 묻는 말에 홍유리의 눈가가 씰룩였다. 척 봐도 알 텐데 왜 묻느냐는 듯한 표정에 늑대는 천천히 끄덕였다.

겉으로 보이는 상처는 없다. 하지만…

[홍유리(변혁 중… 91%)]

[신장 143.8cm] [체중 37.1kg]

[힘 269] [민첩 279] [체력 355] [마력 689]

[보유 스킬]

[추적의 마안(B)] [대마력(B)] [용혈(C)] [마력 강화(C)] [마력 집중(C)] [뛰어난 마력 재생(C)] [직감(E)] [안목(E)] [미약한 독 내성(F)]

용종이 되어가며 그녀의 스테이터스는 급격한 상승을 맞이하고 있다. 그런 단순한 수치로 보자면 변혁은 긍정적인 변화가 맞다.

드라코 페일(Draco Pale). 혜견으로 엿본 그녀가 변하게 될 종족. 옅은 용의 피를 가진 용인… 뿔이 자라나며 변혁은 맞이했지만, 아직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지금 그대로라도 용족이라 부르기에 손색없으나 아직은 막을 수 있다.

늑대는 잠깐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 어딘가에 그녀 또한 있을 터. 그 때문에 드러내고 싶진 않았지만, 어차피 방법은 이것뿐이다.

아공간을 열어젖힌 늑대가 어느 플라스크를 꺼낸 순간, 안목 있는 몇몇 이들이 탄성을 질렀다.

무엇인지 알아서가 아니라 무엇인지 알 수조차 없어서. 지금의 늑대로서도 이것의 정체를 엿보기 힘들 만큼이나 복잡하다.

―모조 엘릭서. 신의 피를 모방한 마도와 연금의 극의. 미증유의 힘이 담긴, 가치로 환산할 수조차 없는 그것을 늑대는 망설임 없이 내밀었다.

"마셔라."

이윽고 그것의 마개를 열었을 때, 홍유리는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이게 뭐지? 모르겠다. 그런데 보기만 해도 보통 물건이 아님은 명백해 보인다.

"이거, 마시면……"

"아직 돌아올 수 있다."

그 말에 침을 삼켰다. 그러니까, 이걸 마시면 전부 다 끝난다고? 저도 모르게 그것을 받아든 홍유리는 플라스크 안을 엿보았다.

……볼 수 없다. 안목이나 감정 같은 스킬이 아니라 그냥 육안으로 확인하는 게 불가능하다.

너무나도 복잡한 그것에 뇌가 이해를 거부하고 있다. 아득한 정보량을 머리가 따라가지 못한다. 도대체 이게 뭐길래? 황망한 표정으로 올려다보자 늑대는 고개만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라."

믿으라는 듯한 말에 홍유리는.

"……."

고민하고 망설이다가, 결국 플라스크의 마개를 닫았다. 그 눈동자를 보던 늑대는 곧 한숨을 쉬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알 것 같아서.

"지금이 아니면 돌아올 수 없다. 그래도 괜찮나?"

"……필요하잖아."

"……."

그건 고집스러운 말이었다. 주변 사람들마저 홍유리가 변했단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시선이 집중되었다. 늑대는 조용히 그녀의 앞을 가렸다.

마랑의 뒤에서 홍유리는 이를 갈았다.

변혁과 대마력은 안에서 섞여버리고 말았다. 하나가 사라지면 나머지 하나도 같이 사라지게 된다. 용의 힘과 대마력을 동시에 잃는다면 여기서 도움이 되지 못하리란 걸 누구보다 그녀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

―차라리 용인지 나발인지가 됐으면 됐지. 짐 덩이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어서.

"그니까, 닥치고 약속이나 지켜."

강요하는 말에 늑대는 잠깐 눈을 감았다가 끄덕였다.

약속의 내용은 모조 엘릭서를 주겠다는 게 아니라 어떻게 변하든 도와주겠다는 거였으니. 홍유리뿐만 아니라 달밤에도 약속했던 말. 어길 생각은 추호도 없다.

새로운 방법을 강구하거나 혹은…

문득 그 옆에서 떨고 있는 모습에 늑대는 시선을 돌렸다. 당장에라도 기절할 것처럼, 포식자 앞의 소동물처럼 벌벌 떨고 있는 도로시.

그러나 이전처럼 쓰러지진 않았다. 그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단순히 붉은 눈이 혼절하려는 의식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아서.

"쓰러지지 마라."

낮은 목소리에 도로시는 떨면서 침을 삼켰다. 그녀뿐만 아니라 겁먹은 마법사들은 많다. 다른 이라면 괜찮다. 그러나 도로시만큼은 쓰러져선 안 된다. 그녀 정도의 마법사라면 곧 있을 질병과의 싸움에서 어떻게든 도움이 될 테니.

턱을 달달 떨면서 이빨을 부딪치던 도로시는 아스터가 자신의 어깨를 짚자 그에 안도했는지 힘겹게나마,

"……네, 네!"

바닥에 눈을 깔고 들릴 듯 말듯 모기만 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에 기시감을 느낀 늑대는 고개를 돌렸다가 누군가의 뭘 꼬라보느냐는 듯한 시선에 쓰게 웃었다. 얼마 전까지는 비슷했던 사람이 있지 않았나 싶어서.

아주 잠깐 가장 높은 곳을 잠깐 보던 늑대는 한데 모인 스퀘어 마스터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방향은 바꿀 수 있나?"

"조금이라면…"

촉수로 먼 곳을 가리킨 늑대는 어느 호수를 가리켰다. 호수지만 메말라 물은 없는 곳. 즉, 건호였다. 충격은 있겠지만 그냥 맨땅에 들이받는 것보단 나으리라.

"나막 호…"

테헤란의 근처이며 바로 옆은 국립 공원. 새삼 남은 사람이 있을 리 없다. 피해는 그나마 최소화할 수 있을 터.

"가능할 것 같네. 아니, 가능하네."

답이 돌아오자 늑대는 끄덕였다. 방향을 돌릴 수 있고 고도를 높일 수 있다면 착륙 지점을 임의로 조정하는 건 어렵지 않다.

이제 남은 문제는 충격의 여파에서 벗어나는 것과 질병에게서 살아남는 것…… 늑대의 눈에는 여전히 수십 수백 킬로미터 너머의 광경이 똑똑히 보이고 있었다. 무리 지어 날아오는 요정용들의 모습 또한.

―오래된 용을 불렀던 홍유리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는 거다.

"뀨우우우~!"

늑대는 페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방법은 이것 하나뿐이었으니까.

충격의 여파를 피해서 환계로 이동한다. 물론 거울과 같은 세계인 환계에서도 부유섬이 추락하는 건 같겠지만 적어도 질병이란 괴물은 존재하지 않을 테니. 부유섬 자체를 환계로 옮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섬을 옮길 수 있을 리 없다. 그게 영 아쉬웠다.

"……."

그래도 준비는 완료된 셈. 스퀘어 마스터들이나 후계자들 또한 함께할 테니 마법사들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다. 요정용들이 도착하는 순간, 그들을 환계로 옮기면 될 뿐인 간단한 일. 나막 호로 이동함에 따라 저 멀리 보이는 요정용들과의 거리도 좁혀질 터. 광장에 마법사들을 미리 불러 모아놓는 것 외에 할 일은 없다는 뜻이다.

이 같은 설명이 끝나자, 고도를 높이기 위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마력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저 아래, 땅은 들썩이고 있다.

***

이 부유섬에서 스퀘어 마스터의 명을 거부할 자는 존재치 않는다. 짧은 시간 동안 더 나은 방법을 물색해봐도 떠오르지 않음에 그들은 늑대의 방법을 채택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마법사들이 광장 중앙에 모여들었고 대부분 마력을 방출한 이들부터 오래된 용과 함께 환계로 이동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추락하는 와중에 고도를 높여가기를 반복하며 시간은 점차 흘러 밤이 되었다.

그렇게 하나둘 마법사들이 환계로 넘어가기 시작하자 필연적으로―

"……!"

달려와 자신을 와락 껴안는 손길에 놀라 하던 홍유리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더니 이내 어색하게나마 팔을 둘렀다.

"…왜 호들갑 떨고 지랄이야?"

그 말에 끌어안은 팔에 더 힘을 준다. 늑대 또한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걸어오는 아넬라를 보곤 촉수를 흔들었다.

"스승은 너였나?"

늑대가 묻는 말에 아넬라는 능청스레 어깨를 으쓱거렸다.

"왜요? 불만인가요?"

늑대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지만 아넬라는 자조하듯 웃었다.

"설마요~ 어디까지나 전 기초만 가르쳐 주는 거예요. 그분이 걸음마부터 가르쳐 줄 사람은 아니니까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늑대는 끄덕이기만 했다. 재회의 기쁨을 나누며 얼싸안은 둘. 홍유리의 어깨 너머로 백소율과 시선을 마주쳤을 땐, 그 눈에 담긴 거라곤 여전한 믿음이었다.

변해버린 홍유리의 모습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

말을 나누지도 않았다. 행동을 취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늑대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숨을 집어삼키는 것뿐이었다.

"뀨~!"

불만스레 귀를 잡아당기는 울음소리와 함께 머리를 흔든 늑대는 상념에서 벗어났다. 그런 생각보다도 지금은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먼저였으니까.

백소율이 환계로 떠나는 걸 끝까지 지켜본 늑대는 부유섬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나막 호는 이제 멀지 않은 곳까지 다가와 있다. 이제 추락까지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으리라. 여전히 대지가 들썩이는 와중, 고도는 점점 낮아져간다.

"준비해라."

마침내 요정용들이 날아와 합류했다. 셀 수 없는 요정용들이 어깨에 올라타 기다리는 순간, 늑대의 말에 마법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망가져 가는 부유섬의 잔해가 서서히 떨어지는 가운데,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환계로 모습을 감춘 순간, 마력의 공급이 끊어진 부유섬이 낙하하는 속도는 급격히 빨라져 나막 호에 추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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