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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187화 (187/407)

〈 187화 〉 #78 vs 질병

페리와 함께 환계로 돌아온 늑대는 부유섬이 추락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떠오르지 못하는 마법사들은 다른 마법사의 도움을 받거나 오래된 용을 타 높은 공중에서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속도는 최대한 낮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토화되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지역이 파괴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정도로 끝나진 않는다. 밖으로도 충격과 함께 흙먼지를 동반한 폭풍이 치솟아 마법사들을 덮치려 할 때, 늑대가 일으킨 폭풍이 맞바람이 되어 막아섰다. 그럼에도 다소 밀려나 견디는 게 고작이었다.

파괴, 초토화. 부유섬의 추락으로 인한 여파는 대마법으로조차 만들어낼 수 없는 아득한 파멸의 산물이었다. 이렇게 먼 거리에서조차 늑대는 눈에는 셈난 시의 창문이 와르르 깨져나가는 게 똑똑히 보였으니까.

―약 160km. 나막 호와 셈난 시 사이의 거리. 시간이 흘러 밤이 된 만큼 주민들은 대피했겠지만, 마냥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위력적이다.

또, 거기서 끝이 아니라 공간 마법마저 완전히 부서져 겹쳐진 좌표에 엉킨 건물이 홍수처럼 흘러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앞선 부유섬의 추락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 또한 무시할 순 없다.

"아……"

그들의 터전. 인류 최후의 보루인 스퀘어가 추락하고야 말았다. 마법사들의 보고이자 보루. 그 가치는 감히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저만한 것을 다시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이 필요할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심지어 그 상징성을 떠올리자면…?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비비는 마법사들의 심정이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마침내 땅에 내려섰을 때, 마법사들은 멍하니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괜찮나?"

"……."

그건 홍유리도 마찬가지. 각오했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격은 컸으리라. 그나마 충격이 덜한 건 이제 갓 스퀘어에 들어온 백소율 정도였을까. 눈이 마주친 순간, 늑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어."

한참이 지나서 멍하게, 얼떨떨하게나마 홍유리가 답했지만 목소리에 얼이 빠져있다. 그에 늑대는 한숨을 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물론 환계인만큼 질병이 있을 리 없다.

부유섬은 추락했지만, 늑대는 꼭 그걸 나쁘게만 보지 않았다.

……기대가 있었으니까.

물론 질병 또한 추락한다는 걸 알고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긴 했지만, 고작 그 정도로 충격에서 벗어날 순 없었을 터. 충돌의 여파에서 마냥 자유로울 순 없으리라.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마법사들의 표정이 조금씩 상기되기 시작했다.

설령 스퀘어가 무너졌더라도 질병을 죽일 수만 있다면 하는… 하지만 그건 희망적인 관측일 뿐. 정면에서 직격했다면 모르되 그 여파만으로 놈이 죽었을 거라 생각하긴 어려웠으니까. 그러나 덕분에 몰아붙인 것 또한 사실. 적어도 가능성은 열렸다는 뜻이다.

"뀨… 뀨웃!"

폭음에 놀라 숨어 있었던 페리가 털 사이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자 안심하라는 듯 쓰다듬어주었다. 그런 손길과는 달리 늑대의 안에선 어떤 생각이 부풀어갔다.

지금 할 수밖에 없다고.

스퀘어가 추락한 이상 이제 인류가 질병에 대적할 방법은 정말로 사라졌다는 뜻이니까. 따라서, 지금 여기서 쓰러뜨려야만 한다. 두 번 다시 기회는 돌아오지 않는다. 놈을 쓰러뜨리지 못하면 자신은 성장할 수 없으니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테니까.

[Lv.50 달성 조건 : 대지를 병들게 하는 자를 쓰러뜨릴 것]

그건 누구보다 자신이 바라왔던 것. 각오를 다진 늑대는

걱정스레 바라보는 누군가의 눈빛과, 경외와 기대 어린 시선들을 뒤로한 채 현계로 돌아왔다.

―다시 한번 사선을 넘을 때였다.

***

깊은 밤중에 울려 퍼진 소리. 돌아온 늑대는 탐지를 펼쳤다.

……느껴지는 건 없다.

하지만 느껴지지 않는다고 없다는 뜻은 아니다.

"……."

탐지로는 느낄 수 없는 거리에 그것은 있었다. 무너진 스퀘어의 잔해 속에 괴물이 꿈틀거리고 있었으니까.

…살아있을 거라 예상했으나 생각보다 멀쩡해 보인다. 겁화에 불타올랐을 비늘이 그사이 다시 재생되었기 때문이리라.

허나 눈에 띄는 상처는 없더라도 지쳐있단 건 알 수 있다. 그 숨은 알게 모르게 거칠어져 있었으니.

쿠르르- 천둥이 무너지는 듯 잔해가 흘러내림에도 놈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아니, 알아채지 못한 거다. 그저 무너진 도시를 뒤지는 데 혈안이 되어 있을 뿐. 체력이 떨어진 만큼 놈의 감은 그만큼 무뎌져 있다.

눈치채기는커녕 마법사들이 사라졌다는 걸 의뭉스레 여기고 있을 터. 환계의 존재를 모르는 이상 당연한 반응이었다.

검게 물든 밤하늘 아래 마법사들은 미리 보류해두었던 마법의 마지막 영창을 외며 구현하고 있었다. 스퀘어 마스터와 그 후계자 혹은 홍유리와 같이 질병과 싸울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을 갖춘 이들이 오래된 용의 등에 올라탄 채로.

"―――?"

그걸 이제야 눈치챈 것인지 질병이 고개를 들었을 땐, 마법은 완성되어 있었다.

***

지상에 부유섬이 내려앉았을 때, 질병은 최대한으로 저항했다. 자신이 가진 대지를 지배하는 힘. 지신을 사용해서.

늑대가 충돌의 여파로 불어오는 폭풍에 맞바람을 일으킨 것처럼 질병 또한 땅속 깊이 전해지는 충격에 반해 맞지진을 일으킨 것이다.

규모가 다른 발상. 재앙이라고 불리는 괴물이기에 가능했던 행동. 오직 질병만이 가능한 일이리라.

지하 깊숙한 곳까지 지층이 끊어지고 삐걱거렸지만, 그 덕에 피해는 생각보다 적었다.

대마법의 세례가 퍼부어진 순간, 질병은 깊숙한 아래로 파고들어 몸을 숨겼다. 뒤늦게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짧은 시간 동안 비할 데 없는 육신과 괴력이 그럴 시간을 벌어주었다.

―모든 마법의 전제.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거기에 더해 부서진 도시의 잔해와 대지의 파편이 일어나 거대한 벽을 만들어 대마법의 위력을 죽였다. 상식을 한참이나 벗어난 능력. 여태 인류가 재앙을 쓰러뜨릴 수 없던 이유이기도 했다.

부유섬과 도시의 잔해만이 얼어붙고 타오르고 부서지며 참담한 모습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쿠르르- 땅이 울리자 늑대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 소리는 무너진 터널 대신 새로운 길을 뚫으며 질병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었으니. 탐지에 뻗어오는 것들이 느껴지자 재빨리 몸을 날렸다.

뻗어온 가지가 꿈틀거리며 자라나기 시작한다. 그것들이 땅을 더듬으며 자신을 찾고 있었다. 늑대는 검은 숲속을 뛰어다니며 가지를 물어뜯고 찢어발겼다.

촉수와 촉수가 맞닿은 순간, 늑대의 촉수는 잠시도 견디지 못했으나 우위를 점한 건 늑대였다. 늑대의 잠식은 질병의 그것보다 아득한 곳에 있었으니까. 허나 그렇다 해도 놈에게 있어 이 정도는 가려운 정도밖에 되지 않으리라.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놈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한 싸움은 성립조차 하지 않는다. 땅속에 숨어있는 본신을 두고 촉수와 싸워봤자 아무 의미도 없다. 따라서, 놈의 본신을 드러내게 해야만 한다.

검은 가지에서 새로운 가지가 뻗어 늑대를 쫓았다. 대지의 파편이 일어나 길을 막았지만, 늑대는 그 전부를 어렵지 않게 피해냈다.

왜냐하면, 익숙했으니까.

벌써 두 번이나 싸운 탓에. 질병이라는 재앙과 맞서 두 번 싸워 두 번 다 살아남았단 전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그것도 지긋지긋하다.

세 번째는 살아남는 걸론 성에 차지 않는다. 각오했고 또 결심했으니까. 바로 여기, 여기서 놈을 죽인다. 먹어 치우고 말겠다…!

의지를 다진 늑대로부터 공허와 겁화가 일어나자 창공의 마법사들이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

대마법의 폭격이 막혔을 때, 마법사들은 침음했다.

"……."

새삼스레 착각하고 있던 한 가지를 깨달았다. 아니,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부유섬 위에서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 질병을 상대로 마법을 퍼부었을 때조차 쓰러뜨릴 수 없었다. 하물며 지신과 촉수로 싸우는 이상 더더욱.

그리고 검은 가지에서 촉수가 피어오르자 마법사들은 눈을 부릅떴다. 오래된 용이 비행하더라도 그 전부를 피하기란 역부족이리라. 주문을 보류하고 새로운 마법을… 하지만 그럴 피할 필요는 없었다. 오래된 용이 환계로 이동함에 따라 쏘아진 가시는 전부 무위로 돌아갔으니까.

그러나 고작 그것만으로 오싹함을 느꼈다. 발출한 가시는 어떻게든 막거나 피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만약 고도가 조금만 더 낮았더라면?

"……."

저 검은 촉수가 눈앞에서 휘둘러진다 생각하면 그저 암담해질 뿐이다. 그것을 마랑은 아무렇지 않게 피하며 견디고 있다.

새삼 이것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임을 깨달은 그들의 목울대가 넘어갔다. 그리고 산통을 깨듯이 긴장이 보이지 않는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씨발. 그만 좀 떨지?"

영창하다말고 신경질적으로 고개 돌린 홍유리의 말에 도로시는 부들부들 떨었다.

"아, 안 떨었거든!"

"지랄. 떨지 말고 영창이나 하라고. 등신 같은 게 진짜."

"유리야."

아스터의 제지에 눈살을 찌푸린 홍유리는 더 말하는 대신 그 한심한 꼴에 혀만 차고 말았다. 심정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인류가 죽네 마네하는 위기 앞에서 벌벌 떨고 있으니 꼴같잖아서.

그 태도에 억울함이 치솟았는지 도로시가 울먹이자 홍유리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염병. 가지가지도 하네."

붉은 마력을 일으켜 오래된 용의 등에서 일어나 부유한 홍유리는 또 한번의 마법을 준비했다.

***

…오래된 용이 있는 이상 위를 신경쓸 필요는 없으리라. 아니, 사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촉수는 휘둘러지기만 하는 게 아니라 가시를 쏘아내고 파편을 던지기까지하며 자신을 쉴새 없이 몰아붙이고 있었으니까.

그것들을 밟고 피하고 막아내며 늑대는 저항을 이어갔다. 불길을 일으켜도 검은 촉수를 거꾸로 타고 겁화가 타오르는 일은 없다.

땅속이었으니까. 대지를 불태울 순 있어도 깊은 곳까지 쉽사리 파고들진 못한다. 그만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 촉수만 하더라도 쉽지 않은데 발아래 진동도 신경 쓰인다.

역시 끝은 최대한 빨리 보아야만 한다.

검은 불꽃은 화마가 되어 그 크기를 불렸다. 다가오는 촉수를 턱을 벌려 물어뜯은 늑대는 그 힘에 밀려 높은 곳까지 떠올랐다. 크게 뜬 선홍색 눈동자와 잠깐 마주쳤으나 늑대는 그대로 몸을 회전했다.

곧바로 몸을 바로잡은 늑대는 높은 곳에서 자신의 발아래 바람을 터뜨렸다. 터진 폭풍은 추진력이 되었고 늑대의 뒤로 검은 장막이 눈을 가렸다.

곧 장막은 그대로 부풀어 낙하산처럼 움직이는가 싶더니 늑대를 감쌌다. 한 박자 늦게 수십 가닥의 촉수가 낭창거리며 꿰뚫었을 때, 이미 늑대는 사라진 뒤였다.

―비가시화. 잠깐 자신의 모습을 숨긴 늑대가 다시 드러난 곳은 더 어두컴컴한 곳. 불살라져 사라진 촉수가 뻗어 나온 구멍으로 그림자를 타고 순식간에 스며든 것이다.

거기에 놈은 도사리고 있었다. 여전히 굳건한 모습인 채. 예상했던 대로 아침의 상처 따위는 진작에 나아 있었다. 하지만 거친 숨결만은 놈이 정상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망설일 것 없다. 먹어 치우겠다는 의지가 커진 순간, 늑대가 자리한 공간이 서서히 넓어져 갔다.

질병이 그랬듯 늑대 또한 대지를 먹어 치워가고 있었다. 일어난 공허는 한없이 커지더니 마침내 질병에게 닿았고 그 순간, 놈이 꿈틀거렸다.

고작 이걸로 끝낼 생각은 없다. 겁화까지 일으킨 늑대가 지하 깊숙한 곳에서 날뛰자 질병은 몸을 비틀며 괴로워했다. 여기까지 와서 질병은 역병이 그랬듯,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떠올리고야 말았다. 오만한 짐승의 감이 스스로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렇게, 본능은 괴물에게 속삭였다.

그 가능성을 없앨 방법은 눈앞의 검은 짐승을 먹어치우는 것 뿐이라고――!

한껏 몸을 비틂에 따라 대지가 들썩이고 지신의 힘이 발해지자 늑대는 곧바로 지상을 향해 뛰어올랐다.

저번과는 달리 질병은 뒤쫓지 않는다. 쉽사리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공기는 불온해져 간다.

자신을 쫓던 검은 가지들이 멈추는가 싶더니 이내, 바닥을 짚었다.

―그것이 전조가 되었다.

늑대는 가만히 숨을 가다듬었다. 아니, 가다듬으려 했지만 고조되는 긴장에 그러지 못했다.

느껴지는 살의가 오롯이 자신에게 향하자 공기가 떨려왔다. 검은 가지로부터 더 많은 가지가 뻗어 나와 주변을 움켜쥐었다. 바닥을 짚은 가지들은 마치 무언가를 끌어내려는 듯 힘을 주더니, 대지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늑대는 검은 숲이 자신에게 손짓하는 것만 같은 착각을 느꼈다. 오직 자신을 죽이기 위해 뻗어오는 수많은 마수― 그 하나하나가 살의를 담고 있다.

끄드득― 쿠르르――!

언젠가 들어보았던 기괴한 소음. 바위로 빚어낸 것만 같은 비늘이 땅 속에서 마찰하는 소리. 마침내, 그것이 한없이 높게 치솟아갔다. 다시 없을 거목이 자라는 듯한 광경을 수만 배 빠르게 보여주는 듯, 거신이 지상에 현현하자 늑대는 재빨리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아까까지 바닥을 짚고 있던 검은 가지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어지럽게 자신을 쫓아온다. 그에 그치지 않고 재앙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괴물 또한 한없이 높게 솟아오르더니 몸을 비틀어 자신에게로 쇄도해왔다.

마법사들도 용들도 전부 상관없다.

어느새 시야는 온통 검게 물들어있었다.

지금 이 순간, 늑대의 붉은 눈에 비치는 거라고는―

―자신을 죽이기 위해 쇄도하는 괴물의 모습뿐이었으니까.

"―――――!"

대기를 찢어발기고 뻗고 솟은 촉수와 울부짖는 괴물의 턱이 한없이 벌려지며 물어뜯기 위해 달려든다.

그리하여 대지를 병들게 하는 자, 달리 질병이라 불리는 괴물의 실체를 마주한 늑대의 붉은 눈이 빛을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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