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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189화 (189/407)

〈 189화 〉 #78. vs 질병 (3)

홍유리의 대마법. 그 흑점을 나선으로 비틀어 빚어낸 듯한 검은 창이 대기를 갈랐다. 그녀의 손끝을 따라 투창하듯 나아간 그것이 몇 갈래의 촉수와 파편을 일직선으로 꿰뚫으며 무자비하게 틀어박혔다.

까드드- 까드드득――!

마침내 닿은 나선창이 용린과 마찰하는 순간, 늑대는 아쉽다고 생각했다. 역류한 겁화가 불태운 곳이라면 제대로 된 피해를 줄 수 있었을 텐데 하고서.

그러나 잠시 후, 그 눈에 서린 것은 이채.

변혁을 겪으며 변해버린 대마법. 그녀가 쏘아낸 나선창이 멈추지 않고 회전하고 있었으니까. 그리하여 질병이 뒤늦게 이변을 깨달은 순간, 나선창은 기어이 용린마저 꿰뚫고 말았다.

"……!"

"――――――!"

두 짐승이 놀라는 가운데, 아직 여력이 남아 그 안으로 파고드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튼 질병이 이리저리 몸을 쳐박기 시작했다.

파편을 붙이고 촉수를 휘둘러도 나선창은 끈질기게 파고 든다. 어떻게든 벗어나려 발악하고 있지만 쉽지 않으리라. 이윽고 놈에게서 거대한 마력의 폭풍이 터져나왔을 때, 나선창은 흩어져 사라졌지만, 늑대는 놀람을 금치 못했다.

그건 스퀘어 마스터들조차 이뤄내지 못한 위업. 단 한번의 마법으로 용린을 부숴버린 것이었으니까. 광범위한 마법을 한 점에 집중시켜 회전시킴으로써 위력을 극대화한 것. 그건 대마법을 변형시킨 것이나 다름 없다. 순수하게 감탄하는 한편 묘한 위화감을 품었다. 나선창이 어딘가 겁화와 닮아 있다고 느꼈으니까.

"……어때?"

재는 듯이 말하는 모습에 늑대는 순순히 끄덕였다.

"놀랐다. 대단하군."

"……흥."

솔직한 칭찬에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 얼굴엔 홍조가 떠올라 있다. 그렇게 고통에 신음하는 괴물에게 이어진 것은 기회를 노리던 마법사들의 폭격.

질병이 발악하며 몸을 비틂에 따라 검은 가지들이 무자비하게 휘둘러졌고 그에 홍유리는 눈을 부릅떴다. 늑대의 촉수가 홍유리의 머리를 눌러 눕히자 검은 가지는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아찔함에 꿀꺽 침을 삼킨 홍유리는 늑대의 털을 꽉 붙잡았고 둘은 바람을 두른 채 창공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홍유리는 안심할 수 있었다. 몸속에 흐르는 피가 그의 것이기 때문일까? 이런 와중에도…

상념을 걷어내듯 현상이, 마법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비바람을 몰고온 폭풍과 그 전부를 얼린 차디찬 한기. 종국에는 거대한 화마가 전부 불살랐다.

그러는 와중, 검은 가지들은 늑대에게 닿지 못하고 있었다. 무자비하지만 무작정인 공격을 피하지 못할 리 없으니까. 유유히 검은 숲을 빠져나오자 오래된 용이 기다렸다는 듯 반기고 있었다.

그에 늑대는 고개를 끄덕이곤 홍유리를 인도했다. 다시 용의 등 위에 올라탄 그녀에게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충분했다."

"……."

"그러니까, 이제 내려오지 마라."

"……!"

걱정어린 말. 그게 마치 귓가에 속삭이는 것만 같아 부르르 떨던 홍유리는 금세 머리를 흔들었지만, 얼굴은 한껏 상기돼 붉어져있었다.

―대마법의 폭격이 끝난 후 놈이 다시 모습을 드러났을 땐, 땅은 깊게 파여 있었다.

마법이 오는 것을 느끼고 곧바로 지하 깊숙한 곳으로 숨어든 것이리라. 지상은 처참히 초토화됐지만 결국, 제대로 된 피해를 입히긴 어려웠으리라.

결국 놈을 쓰러뜨릴 수 있는 건 폭발과 같은 마법이 아니라 계속해 물어뜯을 수 있는 이빨과 발톱이라는 뜻. 죽지 않고 도사린 놈의 비늘이 땅속에서 마찰하는 듯 하더니 늑대가 선 자리를 아래에서부터 꿰뚫고 나왔다.

산이 올라오는 듯한 착각을 주는 거대한 꼬리가 뒤쫓아온다. 아슬아슬히 놓쳤음을 깨닫고 머리는 지하에 숨은 채 꼬리는 강하게 땅을 쳤다.

아니, 아니었다. 땅을 친 게 아니라 반대편의 것이 움직이자 자연스레 따라온 것. 거대한 턱이 집어삼키기 위해 벌어져있었다. 꼬리의 충격으로 치솟은 파편과 다가오는 커다란 턱.

늑대는 그 순간, 흑무를 불러일으켰다. 대마법에 의해 검은 숲, 촉수들은 파괴되어 사라졌으니까. 금세 다시 자라나겠지만 지금이라면 흑무를 사용할 수 있다.

은은한 검은 안개속으로 괴물의 머리가 사라진 순간, 늑대 또한 몸을 돌려 안개 속으로 달렸다. 서로를 향해 달리는 두 짐승. 안개 속에 흐려진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나 먼저 뛰쳐나온 건 질병이었다.

다물어져있는 턱. 이미 그 머리 위엔 늑대가 올라타 있었다. 늑대는 여기가 종착점이 아니라는 듯, 이제 시작이라는 듯이 멈추지 않고 달렸다.

발바닥에서 발목까지 타오르는 검은 불길이 걸음걸음을 뒤따라 질병을 검게 그을려갔다. 비늘 하나하나가 곤두서고 재생되어가던 상처마저 다시 불타오른다. 하지만 비늘이 없는 곳에 늑대의 발길이 닿았을 때 괴물은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이빨을 드러낸 늑대는 기어이 꼬리 끝까지 달려 비늘을 물어뜯고 파헤치기 시작했다. 꼬리는 휘어지듯 움직이며 단번에 늑대를 휘감았으나 잔상이었다.

지친 놈의 속도는 떨어져있다. 반대로 잠식을 가진 늑대는 체력과 마력 면에서 지치지 않는다. 덕분에 속도의 차이가 다소 좁혀졌다. 이미 상공의 마법사들은 두 번째 마법을 준비하고 있으리라.

고통 속에 허우적거리던 질병은 땅속으로 꺼지듯 몸을 감췄고 늑대는 그 직전에 뛰어 올랐다. 공허를 발한 늑대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파편 전부를 먹어 치우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깊은 지하에서 불을 꺼뜨리고 재앙은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리라.

땅이 들썩거림과 함께 우두둑거리며 무언가가 부러지고 깎이고 맞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에 늑대는 직감했다. 머지 않았노라고. 또한 이제 진짜 시작이라고. 이윽고 다시 모습을 드러낸 대지를 병들게 하는 자는 모순적이게도 그 가호를 받기라도 하는 듯 갑주를 두르고 있었으니까.

***

"홍유리 너…"

"유리야…"

마법을 퍼부은 마법사들의 시선이 집중됐지만 홍유리는 뚱한 눈으로 "왜요?"라고 답할 뿐이었다.

눈길을 끄는 이유를 모를 리 없다. 완전히 변혁이 끝나기 전에도 뿔이 자랐을 정도니까. 지금은 뿔은 물론이고 꼬리와 날기에는 불충분한 작은 날개가 자라났음을 알고 있었다. 날개와 비늘, 뿔과 꼬리는 용의 상징과도 같은 것. 인간을 벗어났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한 점이라면 비늘이 자라난 건 목 뒤의 역린 하나뿐이라는 점일까. 그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파오기엔 충분했지만, 그나마 인류와 비슷한 모습으로 남은 게 다행이었다. 분명 대마력의 영향이리라.

"……."

"……."

빤히 보는 시선과 묘한 정적을 겨울의 주인의 말이 깨뜨렸다.

"…그래요. 마법이나 준비하죠."

그 말에 마법사들은 다시금 영창을 이어갔지만, 홍유리는 몰랐다. 마법사들이 쳐다본 이유는 꼬리와 날개 때문이 아니라 꼬리가 흔들리고 있어서라는 걸. 마치 강아지의 그것처럼.

***

대지의 갑주― 새로이 모습을 드러낸 놈은 깨진 비늘 대신 대지를 두르고 있었다. 아니, 모습을 드러냈다기보단 드러났다고 하는 게 맞으리라. 숨어있던 지형째로 수십 미터나 되는 바닥이 들려 부서졌으니까.

지신의 힘을 최대한으로 발해 두른 대지의 갑주. 원래부터 바위가 뭉친 듯한 비늘을 두르고 있었기에 겉으로 보이는 외형 자체는 그리 변하지 않았지만, 덩치가 두 배 이상 커져있었다.

다행한 점이라면 자신의 몸이 아닌 지신으로 만든 갑주이기에 스킬과 스테이터스의 보정을 받지 못한다는 것. 몰아붙인 건 사실이다. 놈에게도 뒤는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신중해져야 한다. 상처입은 짐승은 그만큼 위협적이니까. 그리고 원한다면 언제든 도망칠 수 있을 테니까. 기회는 분명 오겠지만 한번 뿐이리라.

늑대는 자신에게 속삭이며 집중을 더했다. 용혈이 끓어 피가 뜨거워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글거리는 대기와 들썩이는 대지 위에 오롯이 선 두 짐승.

이미 온전한 땅이 남아나질 않을 만큼 나막 호와 카비르 국립공원의 고도는 낮아져있다. 놈은 그만큼의 대지를 휘두르고 있다는 뜻. 휘몰아치는 파편은 기존의 것보다 수십배는 거대해 파편이라는 말이 무안할 정도였다. 제아무리 공허라한들 그런 무식한 질량의 대지를 순식간에 먹어치우기란 불가능하다.

파편에 직격당한다면 목숨은 장담하지 못하리라.

어차피 용린은 부서질대로 부서졌으니 피하는 데 집중하는 게 맞다. 하지만 동시에 놈이 도망치지 못하게끔 시선을 끌어야한다. 즉, 너무 거리를 벌려서도 안 된다는 뜻… 쉽지 않은 일. 늑대는 조용히 침을 삼켰다.

뚝뚝 침이 떨어지는 가운데, 질병 또한 섣불리 달려들지 못했다. 늑대가 신중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처 입은 짐승, 질병 또한 신중해질 수밖에 없으니까.

거기서 먼저 움직인 것은 늑대였다. 갑주 속에서 놈이 회복할 틈을 주어선 안 되니까. 달리는 늑대를 견제하기 위해 갑주를 뚫고 촉수가 뻗어나와 넘실거렸다.

검은 숲이 눈앞에 도사리자 은은하게 깔려있던 안개가 단번에 흩어져 사라졌고 그림자 또한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럼에도 뚫어야한다.

질병 또한 지금 시간이 필요한 건 자신인 걸 알기에 늑대를 접근하게 두지 않았다.

나아가는 마랑과 물러서는 재앙. 뒤바뀐 구도가 사투의 흐름이 변하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영창하는 마법사들이 감탄을 금치 못할 때, 늑대의 붉은 눈이 빛을 뿌렸다.

대지의 파편― 무수한 파편 속에서 늑대는 촉수와 그림자로 자르고 갈랐다. 작은 파편은 공허로 먹어 치우거나 폭풍으로 흩날렸다. 그럴 틈조차 없을 땐 기꺼이 몸으로 받아냈다. 수십 미터를 나아가거나 나가떨어지기도 하며 늑대는 멈추지 않았다.

검은 가지― 예측으로 보았으나 피할 수 없는 건 기꺼이 감수했다. 앞다리가 부러지고 가죽이 찢어져 엉망이 되어간다. 전신에 성한 곳이 없을 정도였지만, 그럴 때마다 변이로 새로이 몸을 만들어냈다.

공중에 흩뿌려진 피가 깊게 파인 땅을 흠뻑 적셨다. 끓어오른 용혈과 거기에 담긴 마력이 증발한 물처럼, 수증기처럼 피어오른다. 그럼에도 늑대는 물러서지 않았다.

바로 그 너머에 길이 있을 테니까.

숲속을 빠져나오는 건 쉽지 않았다. 아니, 불가능했다. 질병이 자신보다 빠른 이상 계속 물러나기만 해도 늑대에겐 잡을 수단이 없으니까.

―혼자였다면 그랬다는 뜻이다.

"Zid de vânt-"

폭풍을 터뜨린 늑대의 뒤로 또 한번의 바람이 생겨 그를 밀어냈다. 이윽고 한번 더 영창하는 마법은 늑대를 흉내내듯, 바람을 터뜨렸다.

"Arunca în aer!"

그 말소리를 늑대는 듣지 못했다. 소리가 전해지는 것보다 그 자신이 나아가는 게 훨씬 더 빨랐으니까. 음속은 진작에 뛰어넘어 있었다. 쏘아진 화살처럼 공기를 찢은 늑대가 쇄도해간다. 그 뒤를 촉수들이 꿰뚫었으나 잔상일 뿐이었다.

거리가 좁혀진 순간, 질병은 고민해야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한껏 입을 벌리고 포효하며 입을 벌렸을 뿐.

"――――――!"

천지를 울리는 괴물의 포효. 늑대를 뒤쫓는 대지의 파편과 무수한 촉수. 갑주를 두른 질병의 꼬리와 정면에선 한계까지 벌어진 턱.

피할 곳도, 숨을 곳도 없다. 그리하여 늑대는 계속해 나아갔다.

그렇게, 기어이 질병은 게걸스레 늑대를 집어삼켰다.

그 목울대가 꿀꺽 넘어갔을 때, 마법사들의 표정은 암담히 변했다. 설령 대마법을 준비했다 하더라도 마랑이 죽어버린다면 질병이 맞을 리 없으니.

지금이라도 발출해야한다――― 그런 생각에 손을 들었을 때, 홍유리는 그들을 제지했다.

"기다려요."

확신이 담긴 말. 거기에 이르러서도 홍유리는 늑대가 죽을 리 없다고 믿었다. 그리 멍청하지 않다고 분명 무슨 방법이 있었을 거라고.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질병이 몸을 비틀었다. 다시 한 번 벌어진 입, 목구멍 너머에 보인 건 누구도 꿰뚫어 볼 수 없는 칠흑과도 같은 어둠 아니, 불꽃이었다.

허나 늑대는 이미 거기에 있지 않았다. 타오르는 겁화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괴물의 뒷목, 나선창이 비늘을 꿰뚫은 그곳에 있었으니.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공허. 기어이 질병의 안에서 게걸스레 먹어치우고 빠져나와있었다.

하지만 그 상태는 좋지 않다. 대지를 병들게 하는 자, 질병의 체액은 지독한 산을 띄고 있었으니까.

변이했던 몸이 녹아내리고 찢어발겨져 걸레짝이 되어버린 상황에조차 늑대는 포기하지 않았다. 검은 숲이 다시 다가오는 가운데, 언제라도 모조 엘릭서를 마실 수 있게 준비하며 숨을 가다듬었다.

용린을 재생하며 질병은 위를 올려다보았다. 거친 숨과 대지의 갑주마저 상당히 부서져있다. 체력과 마력이 바닥을 드러내는 중 높은 창공, 닿지 않는 곳의 마법사들을 노려보다가 다시 고개를 노려 붉은 눈을 마주했다.

시선을 교환한 순간, 두 짐승은 직감했다.

마법은 완성되어 있고 서로의 틈이 드러나는 순간, 싸움은 끝을 고하리라고. 마침내 끝이 다가오고야 말았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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