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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195화 (195/407)

〈 195화 〉 #81 잃어버린 자들

망설일 건 없다. 늑대는 그 길로 곧장 단세혁의 무덤을 찾았다.

여전한 납골당. 비가시화를 사용한 늑대는 단세혁의 유골 앞에 섰지만, 시스템은 응답하지 않았다. 그건 마치 지금 자신과 대화할 생각은 없다는 듯이.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는 듯한 느낌이었다.

"……."

그게 의미하는 바를 알 것 같아 늑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시스템을 만나기 위해선 이 납골당이 중요했던 게 아니라…

'양보하는 건 여기까지야. 다음부턴 없을 거란 걸 명심해.'

만상의 주인이 경고처럼 남겼던 말. 즉, 하지 않는 게 아니라 할 수 없다는 뜻이리라.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해 알고 있을 또 다른 이를 만나러 갈 뿐. 시스템이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만한 곳으로 자리를 옮길 뿐이다.

***

【그래서 찾아온 거니?】

"답이 없었으니까요."

늑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전한 암흑으로 가득 찬 세계― 또한, 혜견으로도 여전히 그녀의 실체는 보이지 않는다. 별을 빚은 듯한 여성은 눈코입이 없는 형상밖에 없는 얼굴로 웃었다.

【그랬니?】

쓰다듬으려는 듯 손이 뻗어왔지만,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그만한 도움을 받아왔으니까. 그리고 이번에도. 만상의 주인의 손이 닿지 않을만한 곳. 자신이 알고 있는 곳 중에 이곳보다 더 나은 장소는 없다.

흑린을 제외한, 유일하게 호의를 보이는 초월자였으니까.

처음으로 시스템. 단세혁과 대화하고 난 이후, 늑대는 여왕에게 어떤 질문을 던졌었다.

'그러니 알려주십시오. 당신들에 대해서.'

역병과 질병이라는 재앙을 쓰러뜨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존재들. 여기까지 왔는데도 일말의 승산조차 점칠 수 없는 존재들. 원작 속에서는 전혀 언급조차 없었던 초월자들의 정체에 대해서.

거기에 여왕은 웃으며 답했었다.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거기에 늑대는 담담히 답했었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그리하여 얻은 답은.

'도망자.'

여왕은 자조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종말에 의해서 세계를 잃어버린 자들. 아니, 그들로부터 신으로 칭송받던 이들. 이 세계와 단세혁이 있었던 평행 세계가 아니라 지구처럼 그러나 지구와는 다른 또 다른 세계에서 신이라 불리었던 존재.

'……그래서였어.'

그래서, 여왕은 자조하듯이 말했으리라.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럼 신입니까?'

'그런 존재는 없단다. 오직 진리만이 있을 뿐.'

오래전에 물었던 선문답과도 같은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멸망 혹은 종말을 맞이한 건 이 세계만이 아니라는 걸. 끝을 맞이한 세계로부터 도망쳐 여기에 이르렀다는 것을. 그리하여, 신이라 불리었던 그녀는 신이 없다고 말한 것이리라. 그렇게 단정 지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결코 자신이 신이어서는 안 된다고. 그럴 자격은 없다고.

누군가는 그녀를 비난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자신의 몫이 아니다.

비록 단세혁과 업이라 불리는 이들과는 조금 다르다지만 그녀 또한 잃어버린 자들 중 하나라는 것.

그리고 그건 분명…… 어렴풋한 진실을 깨달은 늑대는 한탄하며 말했다.

"이제 나와."

네가 바라는 대로 여기까지 왔으니까. 적어도 여기라면 만상의 주인의 손은 닿지 않을 테니까.

[……]

***

여왕이 있었던 곳과 한없이 비슷한 공간.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나오라고 말했더니 데려오고 앉았으니까.

거기에 시스템의 자아, 단세혁이 있었다.

예전처럼 반짝이는 빛이었던 채로. 이 공간에 가득 만연해있는 업이라는 존재들의 중심에 서 있었다.

[죄송합니다]

대뜸 사과부터 하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는 아직 그녀를 온전히 믿을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지금도 당신에게 전부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숨기고 있는 것이 있노라 시인하는 말에 늑대는 실소했다.

"마지막 희망이라고 말했던 것 치고는."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그에 단세혁은 변명하듯 말했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말씀드릴 수 있을 때가 오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라는 뜻. 그에 잠깐 주변을 둘러보았다. 형언할 수 없는 것― 업이라 불리는 잃어버린 자들의 말로. 자아조차 없이 그저 존재하고 있을 뿐인 이들을.

다만, 여전히 그녀가 말했던 진리에 대해서는 의문이었다. 그저 막연한 섭리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불리는 존재가 따로 있는 것인지.

넘쳐흐를 듯한 의문 속에서 늑대는 가만히 생각을 정리했다.

잃어버린 자들. 그 존재를 알고 있던 초월자. 여왕과 흑린 그리고…

"……만상의 주인."

[그렇습니다]

시스템의 긍정에 나는 침묵했다.

그 말이 뜻하는 바가 명확했으니까.

만상의 주인은 이번 세계에만 있었던 게 아니라는 뜻. 원작, 단세혁이 있었던 평행 세계의 그녀와 이 세계의 그녀는 동일 인물이라는 것.

평행 세계의 동일 인물이 아니라, 평행 세계에서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고 있는 본인. 그건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원작 속의 일을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할 말을 잊어버렸다.

어렴풋이 예상했던 것이 사실이더라도 예상이 확신으로 변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었으니까.

잠깐의 침묵을 보내고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심지어 한 번도 아니었겠지."

[……]

이전, 단세혁은 이 세계가 마지막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자신이 마지막 희망이라고. 기대를 걸고 있다고 그리 말했었다.

그래. 마지막.

거울과도 같은 평행 세계. 조금의 오차는 있더라도 근본은 같은 세계 속 끝을 맞이하지 않은 마지막 세계. 그 말이 뜻하는 건 이 세계와 원작의 평행 세계 말고도 더 많은 평행 세계가 있었다는 뜻이다.

이미 멸망한 세계의 주민들의 말로가 '세계를 잃어버린 자들'이었으니까.

거기까지 추론했을 때, 시스템은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 듯 진실을 토해냈다.

[그 모든 세계에 그녀가 있었습니다]

그 말에 이젠 몇 번째일지도 모를 실소가 터져 나왔다.

평행 세계 중 하나를 소설로 읽어 알고 있는 나와는 달리 셀 수조차 없는 평행 세계를 직접 겪고 경험했다는 뜻이니까.

내가 모르는 무수한 것들을 분명 그녀는 알고 있으리라.

그 모순적인,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에 내가 보지 못했던 이유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 나름의 합당한 이유와 논리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대의를 위해 행동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야만 했던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쩌라고?

늑대는 이를 드러냈다.

거기에 무슨 이유가 있건 상관없다.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그녀가 한 행동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

백소율을 마녀로 만들었다. 환영의 나비와 아넬라를 비롯한 가족을 엉망으로 망쳤다. 이단의 탕아들이라는 조직을 설립해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저질렀다. 재앙을 막을 힘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고 방관했다.

이유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도 알게 됐다. 하지만 설령 그래야만 했던 이유가 있을지라도 타협은 없다.

그러지 않겠다.

흔들리지 않기로 했으니까. 자신이 보고 믿는 것. 옳다고 여긴 것을 행할 뿐. 그게 틀렸다면 바로잡으면 될 뿐이니까. 만상의 주인만이 아니라 앞길을 막는 것들 전부를.

――물어뜯고 먹어 치워서라도.

***

늑대로부터 그러한 의지가 퍼져나가자 단세혁, 시스템은 잠깐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의문은 있으나 의심은 없다.

두려움은 있어도 물러서지 않는다.

시련 앞에서 좌절해도 기어코 나아간다.

처음에는 그렇게나 나약했던, 그저 불씨에 불과했던 이가 여기에 이르러 이렇게나 달라졌다. 작은 불씨가 번져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좌절해 무너지려 할 때, 그를 지탱해야 했던 얼마 전의 일이 꿈결처럼 흐리게 느껴진다.

이미 멸망의 그림자는 상당히 옅어져 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종말은 다가오고 있다.

멸망을 막은 이들은 있었으나, 그 누구도 종말을 막진 못했다. 자신의 세계가 그랬던 것처럼.

같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마지막 남은 이 세계가 멸망하지 않기를, 종말이 찾아오지 않기를 시스템이라 불리는 잃어버린 자들은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고작 불씨에 불과했던 희망은 이렇게나 크게 타오르고 있다는 그 사실에 새삼스러운 감회를 느꼈다.

흔들리지 않는 검은 마랑의 눈동자.

그 붉은 눈을 보았을 때, 시스템은 납득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결국 멸망과 종말을 막는 건 자신이 아니라 그였으니까.

그러나, 아직은 한참이나 멀다.

멀고도 멀어서 닿지 않는다.

그걸 누구보다 그 자신이 잘 알고 있을 텐데도 나아가려 한다.

안일했다.

그는 쓰러지지 않고 멈추지 않는다. 자신이 말하지 않더라도 결국엔 진실을 파헤치고 들춰내고 말리라.

어느샌가 잃어버린 자들이 성화와도 같은 그 불꽃에 이끌려 눈을 뜨고 있었다.

[……]

이미 오래전에 자신과 타인의 경계마저 희미해져 자아를 잃어버린 그들이 자신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무한하게 느껴지는 시간과 속삭임 속에서 단세혁은 깊은숨을 흘렸다.

그래. 그렇다면 차라리…

[…알겠습니다]

이 앞에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더한 절망과 좌절이리라. 이제껏 겪은 것과는 비교되지 않을 시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꺾이지 않으리라.

여태 그래왔고 앞으로도 분명히.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가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돕는 것뿐이다.

***

【이야기는 끝난 모양이구나】

다시 돌아왔을 때, 비슷한 공간에서 여왕이 기다리고 있었다. 늑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는 것은 얻었다.

진화에 대한 실마리는 얻었다. 아니, 원한다면 당장에라도 진화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종말에 대한 진실 일부까지도.

잠깐 눈을 감아 생각을 정리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새삼, 여왕에게 받은 게 많다는 걸 실감했다. 그 인사에 여왕은 입이 있을 곳을 가리고 웃었다.

[―――] - 진화 가능

그래. 당장에라도 진화는 할 수 있다.

다만 그 진화는 지난번과는 다르다. 순수한 업. 그들로부터 비롯된 것만이 아니라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섞여 나아가게 될 길이었으니.

[업 55.38%] [극기 50]

균형은 맞춰져 있다. 그리고 시스템은 말했다.

앞으로의 길은 자신이 개척해 나아가는 길이 될 거라고.

거기엔 누구도 끼어들 수 없다고.

음영랑과 모독자의 길을 보여주었던 여왕도. 여태 길을 제시해왔던 시스템 본인조차도.

하지만 그러기 전에 오직 지금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을 끝마쳐야만 한다.

[공허 ― 격의 상승 1/3]

아주 잠깐 다다랐던, 이성이 아닌 본능으로 다다랐던 공허를 온전히 다루기 위해서.

***

여왕에게 감사 인사를 남긴 늑대는 그 길로 곧바로 여명으로 돌아왔다.

페리를 맡긴 홍유리의 방에 돌아왔을 때, 그녀는 골머리를 쓰고 무언가를 휘갈기고 있었다. 널린 종이 중 하나를 집어 든 늑대는 그걸 말없이 읽어내렸다.

거기엔 그녀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적혀 있었다. 신분증이나 사진 같은 것들… 하기야 종족이 바뀌고 뿔이나 날개가 자랐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리라.

그 종이 뭉치 사이에서 늑대는 무언가를 읽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집?"

"어."

돌아보지도 않고 홍유리는 지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짜증 나잖아. 자꾸 야리는 거."

"어차피 익숙해질 텐데."

"내가 왜?"

"…여기서 살던 거 아니었나?"

"출근하기 귀찮아서."

정말 그녀다운 이유라고 생각한 늑대는 다시 서류를 찬찬히 읽어나갔다.

100평 이상. 방음 잘 될 것. 인적 드뭄…

그러다 고개를 흔들었다. 수도권에 원하기엔 다소 과한 사욕이 들어간 조건이었지만 최상위 헌터인 만큼 돈 따위는 썩어 넘칠만큼 있을 터. 애초에 화산각룡의 뿔을 넘긴 대가만 해도 천문학적인 금액일 테니까.

"뀨!"

돌아온 자신을 보고 일어난 페리가 반겨주었다. 어디 갔었냐는 듯 뺨을 비비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어차피 집을 구하건 말건 그건 그녀가 알아서 할 일일 테니까.

"잠깐 어딜 좀 갔다 와야 할 것 같다."

그 말에 휘갈기던 펜이 멈추고, 돌아본 홍유리가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까닥였다.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그러니까…"

"어, 알았어."

그 시원스러운 답변에 늑대는 눈을 끔뻑이다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약속도 있었던 만큼 어쩌면 붙잡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서.

자의식 과잉이었나 싶어 무안함을 느끼고 있을 때, 늑대는 그게 착각이라는 걸 깨달았다.

"뭐."

당연하다는 듯, 홍유리가 짐을 싸기 시작했으니까.

"안 갈 거야?"

오히려 자신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는 시선에 늑대는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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