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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200화 (200/407)

〈 200화 〉 #83 본능 (2)

"……."

벌써 사흘이 지났는데 알파가 돌아올 기미는 없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것에 홍유리는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었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닌가하고. 하지만… 아니, 그럴 리 없다. 지금의 알파를 대체 누가 위협할 수 있다고?

"부, 부팀장니이임…"

늘어지는 말꼬리로 힘겹게 올려다보자 홍유리는 아래를 내려다봤다. 바닥에 쓰러진 채 힘겨워하는 이은하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마력을 쥐어 짜내고 있다. 왜냐하면 그럴 수밖에 없게 만들었기 때문에.

"뭐 해? 이제 4분인데."

붉은 마력이 전방위에서 조여들고 있었다. 샛노랗게 갈라진 동공이 자신을 내려다보자 이은하는 주먹을 쥐었다. 어차피 해야 한다는 건 아는데, 알고는 있는데……!

하란다고 다 하면 그게 기계지 사람이야?!

"어쭈. 제대로 안 하지?"

얄미운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조여드는 압박이 강해졌다. 결국 장막 일부가 깨지고 그 사이로 붉은 마력이 스며들어와 숨을 멎게 만든다. 실체 없는 마력일 텐데 수백 킬로는 되는 돌덩이가 자신을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왜? 하기 싫어?"

그 무게에 짓눌려 입만 뻐끔거렸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꼬리가 얄밉다. 차갑게 뇌까리는 목소리에 아득바득 이를 갈며 마지막 남은 마력을 끌어올렸다. 억지로나마 장막의 틈새를 메꾸자 참기 힘든 매스꺼움이 몰려왔다.

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평생 가도 익숙해질 것 같지가 않은 정신 고갈. 마력을 다 써버린다는 건 정말이지 최악의 기분이었다. 일부러 도발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자 그냥 차라리 한 대 때려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했다. 주먹이 된 손이 입을 가린 순간,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5분."

타이머가 울리자 홍유리는 손가락을 튕겼고 붉은 마력을 갈무리했다. 다만 그 말소리를 이은하는 듣지 못했다. 토악질을 참아내는 것만 해도 안간힘을 써야 했으니까.

"아으……"

전신이 쑤셔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운 이은하를 붉은 머리카락이 내려다보았다.

"그게 그렇게 힘들어?"

턱을 괴고 한심하다는 듯 내려다보는 시선에 이은하는 힘겹게 팔을 들어 어깨를 주물렀다. 붉은 마력이 새어 들어와 자신을 짓눌렀던 곳이었다.

"……."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하지는 않았다. 징징거려봤자 봐줄 사람도 아니고……

"하여간에 존나 빠져가지고. 환계에서 굴렀다며."

깎아내리는 듯한 말이 억울하게 느껴졌다. 아니, 그야 열심히 했지만 마력이 없는데 뭐 어떻게 하라고?

"쯧. 50점."

"저 성공하지 않았어요?"

힘겹게 더듬거리며 묻는 말에 홍유리는 가볍게 코웃음 치며 대꾸했다.

"10분은 뻐겼어야지."

그건 진짜 불가능한데…… 하지만 돌아 생각해보면 10초 정도는 더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기는 했다.

"뒤질 각오로 하라는 거야."

혀를 차는 소리가 자신의 무른 군살 같은 군더더기를 지적하는 것만 같았다.

"다음엔 10분. 5분 말고 10분 보고해. 알아들어?"

그 말에 이은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돼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었으니까. 죽을 각오…… 그게 정말 가능한 건지는 차치하고서라도.

***

환계의 테헤란.

아무도 없는 그 폐허에서 검은 늑대가 사라져가고 있었다. 대부분의 신체가 사라지고 머리와 가슴께만이 남아 재생하기를 반복했다.

아지랑이 속에서 자신을 갉아 먹으면서.

그러나 본능이 드러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질병과 싸웠을 때처럼 한계까지 몰아붙이면 가능할 거라 여겼는데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발톱으로 땅을 긁었다.

……67번째 실패. 여전히 본능이 일어날 기미는 없다.

그 이유는 어렴풋하게 알고 있다. 극기가 있어 이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극복했다는 그 증거야말로 무엇보다 큰 걸림돌이 된 셈.

그럼에도 상관없다. 묵묵히 반복할 뿐. 재생된 몸을 아득한 공허가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전신에 두른 아지랑이는 늑대를 서서히 좀먹어갔다. 털과 가죽이 사라지고, 그 아래 근육과 혈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검은 마랑이 붉게 물들어버리고 만다. 드러난 두개골을 비롯한 골격이 피로 범벅이 되는 것도 잠시. 아지랑이는 여전히 멈출 기미가 없다.

그때쯤, 늑대의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고통은 없지만, 생명이 유지될 기관들이 남아있지 않으니까. 거기에 더해 피가 흐를 혈관마저 사라져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 산소를 전달할 수도 없고, 전달받을 곳조차 없다. 머잖아 용혈마저 집어삼킨 공허는 늑대의 숨통을 조였다.

그럼에도 브레이크는 밟지 않는다. 오히려 기세를 더해가는 아지랑이에 맞서 마력을 끌어올린 늑대는 그것마저도 공허의 먹이로 삼았다.

―침잠하는 의식. 고통이 없더라도 정신 고갈의 영향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그러자, 의식이 희미해지는 걸 넘어 스킬과의 연결이 끊어지려하고 있었다.

어느새 남아있는 건 고작 심장과 머리. 그나마도 뇌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관은 소실해있다. 생각하는 속도가 느려지는 중에, 한 줌의 마력만을 남기고 공허를 거두었다.

그 순간, 의식은 끊어졌다.

끝의 끝까지 의식의 끈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던 극기. 그 한계치를 넘어버렸기 때문에.

그렇게 조금 시간이 지났을 때, 늑대의 몸은 다시 완전히 재생했다. 사라진 마력마저 빠르게 돌아오자 풀린 동공으로부터 서서히 빛이 돌아왔다.

다시 깨어난 늑대는 바닥을 긁었다.

68번째― 이번에도 실패했다.

***

"이제 쉴 만큼 쉬었다 이거냐?"

개인 수련실 밖으로 나왔을 때, 하품하며 묻는 거한. 홍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왜요?"

"너보고 팀장 할 생각 있냐던데."

"클랜장님요?"

"그럼 누구겠냐."

그 말에 홍유리는 팍 인상을 썼다.

"왜요. 구진하 있는데."

"임시 인마. 임시."

"……."

"너도 알잖아. 걔도 쉬어야지."

목숨에 지장은 없다. 한쪽 팔이 없어도 세검사라는 이름값은 만만치 않다. 어지간한 헌터보다는 훨씬 낫겠지만, 어지간한 정도로 여명의 팀장직을 수행할 순 없으니까.

손목이 없어져 재생하는 게 두 달 가까이 걸렸다. 하물며 팔 한쪽인 바에야.

"어차피 아무도 군소리 안 할 거다."

"……시발."

"어허. 욕하지 말고."

딴에 근엄한 표정을 짓지만, 평소 이미지 때문인지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다. 빤하게 보니 뒷머리를 벅벅 긁은 강태호는 일단 생각해보라고 하며 지나치다 문득 떠오른 것에 몸을 돌렸다.

"아 맞다. 너 집 산다고 했었냐?"

"꿈도 꾸지 마요."

극렬히 거부하는 듯한 반응에 강태호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것도 잠시. 곧 능글맞게 웃으며 다가오더니 어깨를 두드렸다. 인상을 찌푸리며 쳐내니, 거한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히죽거리며 끄덕였다.

"너 인마, 방음 잘 되는 곳으로 사야겠더라."

"……?"

"형님이랑 나는 들린다고."

"……."

"이야. 대체 어떤 미친놈이 널 데려가겠나 했더니."

귀를 톡톡 건드리는 거한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그가 한 말의 의미를 곱씹어야만 했다. 강태호가 껄껄 웃으며 멀어져가는 순간, 홍유리의 두 눈에 쌍심지가 켜졌고.

"이, 이 씻팔―――!"

그렇게 그날, 여명에서 일어난 하극상으로 강태호는 10바늘 이상을 꿰매야 했다.

***

바닥에 긁힌 무수한 발톱 자국을 보며 오래된 용은 유유히 폐허에 내려앉았다. 머리만 남은 마랑의 빛이 사라진 붉은 눈이 자신을 빤히 보고 있었다.

그에 질렸다는 듯, 오래된 용은 고개를 저었다. 발톱 자국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는 금방 알 수 있었으니.

곧 눈동자에 빛이 돌아오고, 낮은 목소리가 물어왔다.

"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위험했다면 바로 떠났을 걸세."

"……."

"비록 자네를 볼 순 없지만, 우린 같은 눈을 가지고 있으니."

혜견을 말함이었다. 늑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현계와 환계를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는, 거기에 혜견까지 가진 오래된 용이라면 본능이 드러나더라도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을 테니까.

"몇 번째인가?"

그리 묻는 말에 늑대는 깊은숨을 토해냈다.

"243."

오래된 용은 그 의미를 곱씹어보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지만, 그 한번 한번이 죽음의 문턱 앞까지 갔다 돌아온 횟수이리라.

"자네는 역시 괴물이로군."

"알고 있어."

"그런 뜻이 아닐세."

누구도 그처럼 하지는 않는다. 아니, 할 수가 없다.

본능을 가진 짐승은 그에 따라 살아갈 뿐이고, 이성을 가진 생물은 어떻게든 죽음을 피하려 한다. 어떤 숭고한 목적이 있다고 해도 죽을 각오를 가진다는 건 쉽지 않다.

그런데, 늑대는 아무렇지 않게 그걸 반복하고 있다.

거기에 오래된 용은 강한 이질감과 위화감을 느꼈다.

단순히 고통이 없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고통이 없다고 해도 반복되는 고행에 지치고 정신은 마모되기 마련. 그런데도 묵묵히 행할 수 있는 건…… 그가 괴물이기 때문이리라.

영물, 환수, 괴물을 구분 짓는 그런 잣대 따위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어딘가 비틀려있다. 다만 그게 무엇인지는 정확히 짚어 말할 수 없다. 이성? 감정?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

묵묵히 244번째 시도를 하는 늑대를 보며 오래된 용은 고개를 저었다.

……

244번째 실패. 늑대가 테헤란으로 돌아오고 꼬박 열흘이 지난 날이었다.

***

257… 271… 296… 335… 368… 400.

무기질적인 반복. 꼬박 400번째 실패를 맞고도 여전히 유의미한 변화는 없다. 체력 스테이터스 그리고 완화와 재생이 조금 더 성장했을 뿐.

거기서, 늑대는 이대로는 성공할 수 없으리라고 여겼다. 본능이 일어날 기미가 없었으니까. 체력과 마력을 전부 써버리고 죽음의 문 앞에서 생환하기를 400번.

어느새 바닥에는 빼곡한 발톱 자국이 가득했다. 희박한 확률이었다 해도 성공하려면 진작 성공했으리라. 하다못해 그럴 기미라도 있어야 한다. 이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맞으리라.

어렴풋한 기억을 뒤져보던 늑대는 얼마 전에 찾아왔던 오래된 용의 말을 떠올렸다.

'자네는 역시 괴물이로군.'

수도 없이 들었던 말. 새삼 상처가 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기에는 이미 납득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쩐지 그 말을 곱씹어보게 된다.

괴물이라 불리는 건 대체 어디서부터인가 하고서.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다는 건 알겠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통각무효 스킬이 있기 때문이겠지만…….

'왜?'

거기에 언젠가부터 왜라는 질문이 들어찼다.

본능이 대체 뭐길래? 뭐 때문에 이렇게 하고 있었더라? 아, 공허 때문이었지. 멍하니 고개를 들어 올린 늑대는 하늘 대신 떠 있는 에메랄드빛 바다를 보았다.

그걸 보면서 멍하니 기억을 더듬거렸다. 있었던 일들을 거꾸로 떠올려가며 되짚은 늑대는 언젠가부터 자신에게 어떤 것들이 남아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욕망이나 갈망은 있어도…… 욕구가 없다. 수면 식사 배설과 같은 가장 아래에 깔린 생물로서의 원초적인 욕구가 제거돼 있다.

그리고 그런 선택을 했던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 …그래야만 했다. 욕구는 비효율적이니까. 거기에 어떤 의문도 품지 않았다.

식사의 필요성이 사라지고 수면의 욕구가 사라졌다. 식사하지 않으니 배설도 하지 않는다. 그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했다. 효율을 따지고 따져, 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해야만 했다.

"……."

욕구가 사라지자 필연적으로 감정이 옅어졌다. 감정이 있어야 할 자리를 오로지 차오르는 울분이 대신해 마모되고 뒤틀려갔다.

그럼에도 선을 넘진 못했다. 차마 그럴 순 없었다.

사람을 먹었다면 더 효율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 분명함에도.

그랬다가는 깎이고 휘어지다 못해 꺾이고 망가지게 될 거란 걸 알았으니까. 물론, 선을 넘지 않았어도 그때는 분명 찾아오게 됐을 거다.

……페리와 백록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제야 늑대는 자신에게 부족한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굶주림을 모르는 자가 식욕을 알 리 없듯이. 생물로서의 필요와 욕구가 없는 자신이 본능을 끌어 낼 수 있을 리 없다.

사실, 방법은 진작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럴 용기가 없었을 뿐.

늑대는 자신에게 물었다. 할 수 있느냐고. 할 수 있겠느냐고.

스스로 돌아온 대답은, 해야만 한다는 거였다. ……그래. 해야만 한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그 지푸라기를 엮어 밧줄로 만드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그렇게, 늑대는 자신이 가진 것들을 비활성화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신이 버리고 잃었던 것들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돌아온 것의 이름은 통각, 통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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