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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201화 (201/407)

〈 201화 〉 #83 본능 (3)

[*다소 잔인한 묘사가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돌아온 감각에 생소함을 느꼈다. 슬라임이 되고 나서 아예 잊어버리고 있던 통각. 그동안 아픔이라는 단어는 진작 잊힌 지 오래였으니까.

그래서 망설여졌다.

이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기실, 고통이 없다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여태 달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으니까.

여태 해왔던 것처럼 묵묵히 할 수 있을까? 홀로 남은 폐허에서 늑대는 잠깐 멈춰 생각했다.

그러기로 했음에도 걸어가는 건 쉽지 않다. 각인된 공포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

그래서, 늑대는 웃어버렸다.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두려움에 미쳐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 두려움이 찾아왔다는 게 반가웠기 때문에. 언젠가부터 잊어버리고 있던 감정이 통각을 통해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걸로 됐다.

문은, 가능성은 열렸다. 400번의 자살에 가까운 고행으로 닿지 못했던 길이 드디어 열렸는데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이제야 출발점에 선 셈이니까.

두려움은 있었지만, 그건 늑대를 휘감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이미 너무나 많은 사선을 지나 자신을 극복했으니까.

이번에도 그러하리라고 늑대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확신하고 턱을 벌렸다.

그렇게, 앞발을 물어뜯었다.

***

무릎을 끌어안은 채 천장을 올려다보던 홍유리가 별안간 고개를 푹 숙이자 우택은 이상하다는 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왜 저러시냐?"

"글쎄요……?"

혼잣말과도 같은 물음에 이은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주 잠깐, 떠오른 생각이 있기는 했지만 설마 하는 마음에 금세 잊어버렸다.

처음 용종이 된 홍유리를 보고 팀원들은 당황했지만, 금세 평정을 되찾았다. 오히려 그 개차반인 성격에 더 어울리는 것 같다는 이유도 있었고 티 내지 말라는 엄포도 있었으니까.

나름 좋은 점도 있다. 본인은 모르는 모양이었지만, 꼬리를 보면 지금 기분을 유추할 수 있다는 것. 문제는 요 며칠 계속 저기압이 이어진다는 점이지만. 그리고 그게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는 것까지.

축 늘어진 꼬리와 숙여진 고개가 그녀의 기분을 알려주고 있었기에 팀원들은 함부로 접근하지 않았다. 괜히 불똥 튀기 싫었으니까.

"근데 선배. 부팀장님이 진짜 팀장이 되실까요?"

"……."

샌드백에 손을 기댄 채로 우택은 생각에 잠겼다.

물론 확률은 높다. 공공연하게 이야기도 퍼져 있다. 팀장인 구진하가 자리를 내려놓게 될 거라는. 그리고 그 뒤를 이을 가장 유력한 후보라고 하면 당연히 부팀장인 홍유리일 터. 아니, 그녀 말고는 없으리라.

사실 말이 좋아 수색팀이지 그녀의 추적의 마안을 빼놓고 보면 특색은 없다. 추적의 마안을 지닌 여명 제일의 마법사. 능력면에서만 보자면 출중하기 그지없지만… 걱정이 앞선다.

숭고한 이유였다지만 종족이 변해 여러 가지로 난처함을 겪고 있으리라. 거기에 지금의 팀장 구진하와 부팀장 홍유리가 오랜 친구였다는 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아무리 개차반 개차반거려도 걱정하지 않을 순 없으리라.

그런 불안정한 상태에서 팀장 자리를 맡을 수 있을까? 그게 팀원들이 가진 불안감의 정체였다.

"……."

그래서인지 아직 팀장님도 자리를 내려놓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부팀장님이 마음을 정해야 할 텐데… 우택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그런 이유가 없는 건 아니지만 실상은 그들이 마냥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좆같네……'

사흘이 지났을 땐 그냥 걱정과 초조함이었지만, 아무 소식도 없이 보름이란 시간이 지나자 손톱은 물어뜯느라 늘 짧아져 있었고,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았다.

개 같은 새끼. 어디 가는지 말도 안 했어.

사실 짐작 가는 곳은 있다. 질병의 사체가 남아있는 곳. 여태 몬스터의 사체를 포식했으니 이번에도 분명 그러하리라. 아직 남아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아무튼, 문제는 가서는 안 된다는 것. 왜냐하면 자신은 졌으니까. 순순히 따르기로 했으니까. 무엇보다 알파는 자신이 찾아오는 걸 반기지 않을 테니까…….

위험하다고 했었다. 기다리라고 했었다.

잠자코 믿고 기다리는 게 맞다. 거기에 페리도 데려가 버린 이상, 환계에 있다면 가봤자 만날 수도 없다.

지푸라기처럼 얇고 거품처럼 덧없다. 가지 않는 게 정답이고 가는 게 오답. 명확한 답이 나와 있는 문제다. 그런 어설픈 지레짐작을 믿고 확인하러 가는 건 우행의 극치. 잘 알고 있다. 마법사인 그녀는 어디까지나 냉철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뭐 언제는 냉철한 판단 같은 걸 내렸다고? 기다려주는 것도 한계가 있지. 안 오면 어떻게든 찾아내서 멱살 잡고 끌고 오면 그만이니까.

그런 생각에 홍유리는 벌떡 몸을 일으켰고, 별안간 눈을 부라려오자 우택과 이은하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부, 부팀장님?"

"구진하 어딨어?"

홀린 듯 가리키는 손가락. 끄덕인 홍유리는 좌중, 3팀의 팀원들을 노려보았다.

"나, 밀린 휴가 쓰고 온다."

"……."

"갔다 오면 내가 팀장이야. 씹새들아."

멍하니 끄덕이는 그들을 뒤로한 채, 홍유리는 문을 박차고 나섰다.

***

바늘로 뇌를 찌르는 듯하다. 생소한 고통이라는 감각은 쉽게 적응할 만한 것이 못 된다. 이제 늑대에게 이전과 같은 확신은 없다. 여태까지처럼 실수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었으니까. 한 걸음 잘못 내디디면 죽을 수도 있다.

여태 그래왔지만, 고통은 그걸 실감시켰다.

물어뜯은 다리에서 피가 흐르고 바닥을 적셨다. 401번째 죽음으로 나아가는 게 쉽지 않다.

스킬과의 연결은 모조리 끊어버렸으니까.

재생하지도 않고 완화되지도 않는다. 통각은 돌아왔고 미래를 보는 듯하던 감각조차도 사라졌다. 언제 자신이 죽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는 뜻이다.

늑대에게 남은 거라곤 그 자신 하나뿐. 그래도, 그래도 그거면 된다. 더 바랄 필요는 없다. 아니, 계속 그러기를 바라고 있었다.

천금의 가치를 지닌 용혈이 아무 의미도 없이 바닥에 스며들어 사라진다. 날카로운 송곳니로 자신의 혈관을 씹어 삼켰다.

근육이 꿈틀거리는 게 생생하다. 비집고 들어온 이빨에 씹혀버리고, 잇몸에 그 감각이 와닿았다. 아찔한 통증이 의식을 흐릿하게 만드는 듯했다.

새삼 늑대는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두려움이 발목을 잡는다. 머리가, 가슴이 하지 말라고 이구동성으로 외치며 비명을 질렀다.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늑대의 이빨은 더 깊은 곳을 씹었다. 뼈와 뼈 사이에 이빨이 박힌 순간, 억지로 머리를 당겼다.

까드드득-

붉게 물든 살점이, 허연 뼈에 가득 묻어 떨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검은 털이 흩날리고 눈이 붉게 충혈돼간다. 거친 숨이 새어 나오고, 머릿속은 새하얗게 물들어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뇌에서 분비된 아드레날린으로도 이 통증을 전부 가리기엔 역부족이다. 질질 흐르는 침이 상처 속으로 파고들어 따끔하게 만들었다. 등줄기가 오싹해진다. 다량의 출혈로 피가 빠져나가며 싸늘하게 체온이 식어간다.

재생이, 완화가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 나약한 생각이 하얗게 물든 뇌리로 파고들더니, 곧 고통에 붉게 물들어 이곳저곳을 엉망진창으로 헤집었다.

그때, 듣기 싫은 소음이 귓가에 파고들었다.

그득- 그드득-

기어이 물어뜯고 당겨서 앞다리 하나를 끊어내는 데 성공했지만 서 있을 수가 없어서.

"――――――!"

참기 힘든 비명이 튀어나왔다. 이미 몇 번이나 겪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지를 잃었다는 상실감이 온전한 형태로 찾아온 건 처음이었다. 고통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여태 아무렇지도 않게 의심없이 나아갔던 길은 실상 이렇게나 힘겨웠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뒤늦게 정신을 차렸을 때, 늑대는 거친 숨을 토해내 몰아쉬었다. 토악질이 밀려온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자신의 것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없는 목소리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속삭여왔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맞는 말이다. 공허를 다루기 위해서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먹어치우는 자의 본능이 남아있을 수도 있다. 이렇게 할 시간에 조금 더 성장하면 되는 게 아닐까. 굳이 고생을 사서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끊어진 다리를 구석으로 던진 늑대는 이를 갈았다. 끊어진 어깨에서 피가 흘러 땅을 적신다. 물 흐르는 듯 핏물 떨어지는 소리를 그저 멍하니 듣고만 있었다.

"―――!"

먹먹해진 귀에 무언가 소리가 들렸으나 무시했다.

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이만 쉬라고?

――개소리.

그렇게 일축했다.

미약해도 좋다. 작더라도 좋다. 거기에 가능성이 있다면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렇게 끌어모은 다음에야 길은 열리는 법이니까.

실패한 것과 멋대로 놓아버린 것에는 그런 차이가 있다.

――――――.

어느샌가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됐다. 아니, 늑대 자신이 마력을 일으켜 고막을 찢어버린 것. 귀에서 피가 흘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묵묵히 이어나갔다.

아직, 아직 멀었다.

한계는 찾아오지 않았다. 본능이 깨어나려면 좀 더 자신을 밀어붙여야만 한다. 자신을 죽이기를 반복하며, 그 한 걸음 앞에서 늑대는 재생과 자신을 연결했다.

그렇게, 다시 바닥을 긁었다.

401번째― 이번에도 실패했다.

[극기 50 → …]

***

"오지 말라고 했거늘…"

오래된 용의 목소리에 페리는 목청껏 울었다. 얼마나 서럽게 우는 지 오래된 용에게 매달려 억울하고 서럽다는 듯 한참을 토로했다.

그에 오래된 용은 늑대를 다시 살폈다.

흥건한 피와 살점이 가득하다. 그것들이 어느새 일대를 물들이고 있었다. 하염없이 소리 지르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코를 찌르는 피 냄새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눈을 돌리고 싶어지는 광경은 그야말로 광기의 도가니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데도……

그 눈에는 아직 빛이 담겨있었다.

미치지 않았다. ……그래. 아직은. 하지만 언제 미치더라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통각을 되새긴 그 행위는 오래된 용의 눈으로도 미쳤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으니까.

그가 먼저 타버리거나 혹은 그 전에 목표를 이루거나.

포기하진 않을 테니. 분명, 둘 중 하나이리라.

***

언젠가부터 생각하는 걸 잊었다.

그냥 멍하니, 계속해 반복하고 있다. 잊혀질 것 같지 않던 고통마저도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돌아온 통각을 자신도 모르게 차단한 걸까?

아니, 스킬과의 연결은 여전히 끊어져 있다.

강렬했던 통증도 점점 익숙해져 견딜만해졌다. 무뎌져서 묵묵히 반복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또 실패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불신에 조금씩 먹혀가고 있었다.

통각, 고통을 느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본능은 깨어나지 않고 있으니까.

어쩌면 이러한 행위조차 인위인지 모른다. 정말 짐승이라면 하지 않을 행위니까. 모순되게도 이성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 것이었으니.

이미 몇 번이나 그만둘까 하는 유혹이 찾아왔다.

어느샌가 진화 가능하다는 문구를 보고 있었다. 그 미혹에 이끌려 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늑대는 눈을 짓뭉갰다.

동공과 망막의 경계가 사라지고 허옇고 붉은 게 이리저리 섞였다. 시신경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그런 게 보였다. 눈물 대신 수정체가 흘러내렸다.

난데 없는 울음소리가 들리면 마력으로 고막을 터뜨렸다. 냄새가 거슬리면 후각세포를 죽이고, 그런 짓을 계속 반복했다.

……417번째. 실패. 아직 본능은 깨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늑대는 웃었다. 성대가 망가져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입꼬리만 끌어올려서 간신히 웃을 수 있었다.

"―――."

드디어 통각의 다음으로 두 번째로 찾아온 게 있었기 때문에. 또한 그토록 바라왔던 것이기도 하다.

두 번째― 굶주림.

착각이라도 좋다. 다만, 이 순간 허기를 느꼈고, 갈증을 느꼈다. 드디어 생물로서 결여를 느끼기 시작했다.

……충분하다.

환계. 오래된 용에게 부탁했던 대로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여태 해온 일의 결과로 널리고 널린 것들이 있었으니까.

자신의 안에서 무언가 술렁이는 것을 느끼며――― 늑대의 입가에서 뚝뚝, 침이 길게 떨어져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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