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화 〉 #83 본능 (5)
길게 이어진 흔적을 쫓아 가던 중에 서럽게 울고 있는 요정용 한 마리를 보고 홍유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페리?"
"―――!"
덩치는 커졌는데 여전한 울음소리. 자신을 보자마자 날아와 꺼이꺼이. 대체 얼마나 울었는지 눈 밑이 검다. 그에 한숨이 나왔다.
페리가 혼자서 울고 있다는 건 분명 알파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뜻일 테니까. 등을 쓸어 달래줘도 울음이 그칠 기미가 없다. 서럽게 울며 매달려 있을 뿐.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환계로 보내줘."
그 말에 페리는 도리도리 고개 저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듯이. 그러지 말라는 듯이. 어지간해서는 멱살 잡고라도 시켰을 테지만. 페리에게만은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왜냐하면, 정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지금 떨어져 울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알파가 페리를 달래주지 않을 리 없으니까.
"부팀장님…"
이은하의 부름에 있지도 않은 엄지손톱을 물어뜯었다. ……아무리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것도 못 보고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돌아갈 수는 없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상상할 수 있더라도 확인해야만 한다.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보내줘."
도리도리. 저어지는 고개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 답답함이, 여태 차오른 감정이라는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봐야지 어떻게든 할 거 아냐!"
답답함에 소리 지른 순간, 아차 싶었다. 사슴처럼 동그랗게 떠진 눈이 덜덜 떨리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페리가 떨기 시작하자 홍유리는 이마를 짚었다.
실수했다. 애를 달래도 모자랄 판에 성을 내고 말았으니까. 환계로 이어지는 길은 그렇게 사라졌다.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 생각은 틀렸다. 페리의 꼬리가 이은하에게 닿은 순간, 둘은 다른 세계에 있었으니까.
"아……"
외마디 탄성이 흘렀다. 환계에 와서가 아니라 그 반대. 여기가 환계라는 걸 도무지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
온통 붉다. 검붉은 풍경이었다.
그래서 고개를 들어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에메랄드빛으로 반짝이는 바다를 보고 나서야 여기가 환계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럼 알파는 어딨지? 여기는 대체 왜 이런 거고? 의문에 답하듯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이은하의 손가락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다른 손으로는 벌벌 떨면서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마치 못 볼 걸 봤다는 듯이.
"부팀장님……"
망설이며 들어 올린 손가락이 가리킨 방향― 마찬가지로 검고 붉었지만,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마치 굼벵이처럼 느린 그것이 땅을 기고 있었다.
꿈틀거리는 것. 그 정체를 깨달았을 때, 아연함에 말을 잃었다.
"―――."
끓는 듯한 낮은 소리. 그러나 성대가 없기 때문인지 원래의 소리는 아니었다. 사지를 모두 잃고 척추마저 드러나있는 처참한 꼴이었다.
털과 가죽에 이르러서는 있는 부분이 더 적었다. 그 외에는 온통 붉게 물들어 있을 뿐……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던 홍유리는 저도 모르게 콧잔등을 문질렀다.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찌를 듯 진동하고 있었으니까. 그게 눌어붙은 피 냄새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아, 아……"
머리를 싸맨 이은하가 뒷걸음질 치다가 엉덩방아를 찧었을 때, 검붉은 것에 머리를 처박고 있던 그것이 홱 고개를 돌렸다.
어긋난 끓는 소리. 페리가 우는 가운데, 둘은 멍하니 늑대를 바라보았다. 한쪽 눈은 엉망이 돼 있고 나머지 한쪽은… 흘러내릴 것이 전부 흘러 비어 있었다.
"……."
입에 물고 있던 것― 분명 자신의 것이었을 고깃덩이가 부서져 달그락거리는 아래턱에 씹히지 않고 떨어져 굴렀다. 피와 섞인 침이 뚝뚝 흘러내렸다. 반쯤 잘린 혀가 간신히 삐져나와 입맛을 다신다.
그렇게, 그것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
"―――!"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도망치듯 현계로 돌아와 속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구역질과 토악질이 치밀어 올랐다.
미쳤다. 미쳤다고 밖에 할 수 없다. 광기, 혼돈, 비정상. 온갖 것들을 멋대로 섞어놓은 듯한 상식 밖의 아득함. 폐에 핏물이 들어 찬 것처럼 숨이 턱턱 막혀왔다.
그 일대가 검붉었던 이유. 지천에 가득한 붉은 것은 알파의 피요, 검은 것은 몸이었던 것들. 그런 것들이 셀 수도 없을 만큼 굴러다니고 있었다.
제정신, 제정신이 아니야……! 미쳐있다. 절대, 정상이 아니다. 사람에게 가능한 짓거리가 아니다. 대체 뭘 해야 저렇게 되는건데…?!
그 눈동자를 기억한다. 평생이 가더라도 트라우마로 남을 것만 같은 끔찍한 모습을. 거기에 자신이 아는 알파는 없다. 있는 거라고는 이지를 상실한 채 넝마가 된 몸으로 자신이었던 것들을 포식하는 괴물. 채워질 리 없는 구멍 난 위장에 고깃덩이를 밀어 넣을 뿐인 한낱 짐승.
막연한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참상.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이빨이 달달 떨려 부딪쳤다. 과한 호흡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간신히 숨이 돌아왔다. 멍한 머리가 생각하는 걸 거부했다. 발가락 끝에 찬바람이 닿아 고개를 내려다보니 신발코가 사라져 있었다. 돌아오는 게 한순간만 늦었더라면 이 정도로는 끝나지 않았으리라.
"하…"
그에 바람 빠진 웃음을 흘렸다.
옆에선 눈물 범벅이 된 얼굴이 자신의 어깨를 짚고 있었다. …잘 들리지 않는다. 잠깐 집중했을 때, 가까스로 소리치는 말이 들려왔다.
"아, 아니죠? 네?! 아니잖아요!"
한참을 게워내고 창백한 얼굴로. 제발 부정해달라 어깨를 흔들고 있었다. 홍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럴 리 없다며 울먹이면서 제발 아니라고 해 달라고 떼쓰는 그녀 또한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알파를, 알파였던 것을 찾아서 가리킨 건 다름 아닌 이은하였으니까.
"……."
사라진 신발코… 그래서 부정할 수가 없었다. 보이지 않는 아지랑이는 분명 알파의 능력이었으니. 심지어 자신만큼은 보지 않았던가. 이성 잃은 채 재앙의 괴물을 먹어치웠던 짐승의 모습을.
오래된 용이 옳았다. 오지 말았어야 했다.
자신을 가린 그림자― 고개를 들어보니 커다란 용이 자신을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 만족했느냐는 듯. 그래서 허탈하게 웃었다.
――본능을 깨우러 간다고 했었다. 알파는 자신이 이렇게 되리란 걸 알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그래서 오지 말라고 했던 거구나. 그래서 한사코 만류하며 기다리라고 했던 거였다.
마지막까지 또 배려 받았다. 정작 자신은 저렇게 되리란 걸 알면서도…
어느샌가 페리의 울음이 그쳐 있었다. 울보인 주제에 자신과 이은하를 달래고 있었다. 마치 보여줘서 미안하다는 듯. 그래서는 안 됐다는 듯이.
다시, 또 웃어버렸다. 그 눈동자에 담긴 게 두려움이 아니라서. 홍유리는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자괴감이 느껴졌다. 환멸이 일었다.
마지막까지 배려 받은 주제에 그 광경을 참상이라고 끔찍함을 느끼고 있는 자신에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대체 뭘 알고 있었단 말인가?
아무것도 몰랐다. 겉만 보고 있었을 뿐이다. 이래서야 스퀘어의 겁쟁이들과 뭐가 달랐다고?
―――아니. 아무것도 다르지 않다. 똑같다. 결국 따지고 보면 자신도 스퀘어에서 도망친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자신에게 그럴싸한 이유는 이제 돌아보면 말도 안 되는 핑계에 불과했다.
실력을 기르겠다? 그래서 도로시한테 뒤처졌나?
재앙을 쓰러뜨릴 방법? …자신이 아니라 알파가 한 일이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다르지 않다. 무엇 하나 알지 못했다.
알파가 사선 위를 태연하게 걸을 수 있었던 건 늘 더한 사선에 있었기 때문이었단 것을. 그런 주제에 늘 아무렇지도 않게 있었다. 태연하게 티 내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해야만 재앙을 쓰러뜨릴 수 있던 거였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홍유리는 그냥 차라리 오지 않았던 게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맞은편에서 이은하가 엉엉 우는 꼴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도 그러고 싶었으니까. 그 심정이 백 번 이해됐으니까.
비참함을 느끼다 세 번째로 웃어버렸다.
아, 보여주고 싶지 않던 거구나.
괴물과 싸우는 괴물이, 괴물이 아닐 리 없으니까.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거다…….
"……."
언젠가부터 손이 떨리고 있었다. 아니, 저도 모르게 훌쩍이고 있었다. 뺨을 타고 계속해 흐르는 눈물을 그저 닦아내고만 있었다.
닦아도 닦아도 계속, 끝도 없이 흘러내렸다.
아, 정말이지……
그걸 전부 알면서도 오지 말 걸 그랬다고. 그렇게 생각해버린 자신에게 물씬 환멸이 들었다.
***
둥둥, 떠다니는 것만 같다.
고행 끝에 끊어진 의식. 깊게 침잠해 가라앉은 자의식 속에서 늑대는 안식을 느끼고 있었다.
고통도, 굶주림도, 갈증마저도 없다. 오죽하면 여기가 천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이제 좀 쉴 수 있겠구나 싶었다. 돌아보면 어떻게 견뎌냈는지 의문인 나날들. 잠깐 정도는 괜찮을 거다. 괜찮을 거야…….
그렇게, 가라앉은 의식은 더 깊게 빠져들어갔다.
….
…….
……….
안식의 바다. 심해처럼 깊은 곳에서 잠들어있던 늑대는 별안간 들려오는 소리에 감았던 눈을 떴다.
―――.
침묵하는 바닷속에 빠진 듯한 작은 소리가 물결을 일으키고 있었다. 귀에 닿지도 않을 만큼 미약하고 덧없다. 그런데도…… 차마 무시할 수 없었다.
왜일까? 언젠가 들어본 것 같은 소리였다.
무언가 우는 듯 서럽게 흐느끼는 소리.
하지만 그 소리마저 금세 아무래도 좋아졌다. 더 깊은 바닷속으로 잠기자 들리지 않게 됐으니까…… 조금만. 조금만 더.
………….
…………….
……………….
제법 시간이 흐른 것 같다. 감각은 없었어도 어쩐지 그렇게 느껴졌다. 깨어나야 할 텐데 안식에 젖어 그러기가 싫었다.
그냥, 다 귀찮아졌다. 이대로 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자꾸 거슬리는 소리가 귀를 시끄럽게 한다.
더 깊게 침잠해 들리지 않았을 뿐이지 그 소리가 계속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울면서 바라고 있었다. 깨어나라고. 정신 차리라고.
……어떻게?
진작에 고막은 멀어버렸을 텐데.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재잘거리는 소음. 무시하고 싶은데― 어쩐지 그럴 수가 없었다.
……대체 왜?
그런 소리가 한참이나 이어지다가 늑대는 문득, 여기가 어딘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무얼 하고 있었는가 생각했다.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을 땐, 차갑게 얼어붙은 검은 바닷속이었다. 작은 빛조차 닿지 않는 심연이었다…….
***
"잠자코 기다리게."
이은하가 통역해 알린 오래된 용의 말이었다.
"그가 돌아오기만을. 어차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테니."
그 말에 홍유리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분하다. 분한데… 그게 사실이었다.
사지가 잘리고 눈은 거의 멀어버렸다.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 없다. 평소의 감각은 어디에도 없고 그저 한 마리 짐승으로 전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엎어진 채로 빈속을 토해내는 이은하. 자신의 사라진 신발코를 다시 봤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단 걸 깨달았다. 그 정체 모를 힘을 가지고 있단 것만으로도 거리를 두고 있는 게 고작일 테니까…….
"뀨우우……"
페리가 울고 있었던 건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리라.
어지간한 마법은 닿지도 않을 테고, 마법이 닿아봤자 알파를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럴 수도 없지만 만약 상처를 치유해 줬다간 짐승에게 먹혀버릴 테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선택할 방법 따위는 없다. 오래된 용의 말마따나 잠자코 기다릴 수밖에 없다. 알파가 돌아오기만을.
"……."
그러면, 그렇다면 하다못해……
***
얼마나 깊은 곳까지 와버렸는지 부상해도 부상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는 다시 부상할 수 있겠지만 그게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장담할 수 없다.
마지막 기억. 뭘 하고 있었는지 떠올랐다.
본능을 깨우려 자신을 몰아붙였었다. 이성이 약해지고 약해져 끊어지기만을 바랐었다.
……성공했다. 고통과 허기와 갈증을 넘어 고행 끝에 마침내 도달했으니. 하지만 다소 과했을지도 모른다. 이전과는 달리 너무 깊게 잠겨버렸으니까.
의식이 부상해야 하는데 과연 지금 떠오르고 있기는 한 건지 의문이었다. 방향을 구분할 수 없다. 위치를 알 수가 없다. 이정표가 될 만한 무엇 하나 없다.
시간을 들인다면 분명 언젠가는 벗어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지금. 지금이어야만 한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
무언가가, 그 작은 소리가 계속 자신을 부르고 있었으니까.
올라가야 한다.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
약속했으니까. 곁에 있어 주겠다고.
―――언제까지 여기서 쉬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암흑을 더듬으며, 소리를 이정표 삼아 보이지 않는 심연을 걸었다. 어쩌면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너무 깊게 가라앉아 돌아가는 게 불가능해졌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
계속 가야만 한다. 걷지 않을 수는 없다.
확신 없는 외길을 소리가 들려오는 대로 하염없이 걸었다.
어느새 들려오는 목소리는 하나가 아니게 됐다.
수많은 목소리가 자신을 이끌고 있었다.
이리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한참을 달리고 달렸다.
처음의 목적 따위는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깨닫지 못해도 좋다. 모른 채 있어도 상관없다.
흑린이 비웃었던 것처럼 어쩌면 알량한 것일지도 모른다.
분명, 자신을 부르는 이 소리에 비하자면.
그러니 나가야만 한다. 벗어나야만 한다. 날 부르고 있으니까.
그러나 달리고 달려도 끝은 오지 않았다.
빠져나갈 수 없다고. 좌절과 절망이 가로막는 듯했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멈춘 것만 같은 시간 속에서도 계속해 부르는 목소리만을 따라 달렸다.
……그렇게 길을 따라 어느샌가 굶주림이 발목을 잡고 끌어당겼다. 갈증이 목을 조여왔다. 바늘에 찔리는 듯한 온갖 아픔이 느껴졌다.
그래도 발을 멈추지 않았다.
또 달리고 달렸다. 많은 것들이 앞을 가로막았지만, 늑대는 멈추지 않았다.
앞을 가로막는 것보다도 멈춰야한다는 게 더 두렵게 느껴졌으니까.
그렇게 달리고 달리던 와중에 어느샌가 자신을 가로막고 붙잡던 것들이 하나 둘 사라지더니, 하나도 남지 않게 됐다.
……이제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다.
이제 어둡지 않았으니까…… 조금씩 빛이 비치는 듯한 그 길목을 달리던 늑대의 발걸음이 느려져갔다. 천천히 느려지더니 멈추고야 말았다.
그 길에 자신이 있었으니까.
자신… 아니, 자신의 내면에 짓눌러져 있던 본능이란 이름의 괴물이.
"――――――!"
그것이 커다란 아지랑이를 두른 채 끔찍한 짐승의 형상으로 자신에게 울부짖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