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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208화 (208/407)

〈 208화 〉 #85 일상 (2)

팀장과 부팀장이 한 번에 바뀌었다는 사실에도 변함없이 일 혹은 수련은 계속됐지만, 분위기가 어수선한 건 어쩔 수 없는 모양――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

홍유리는 그 자신이 공언한 것을 팀장이 되자마자 훌륭히 지키고 있었으니까. 너넨 이제 다 뒤졌다는 그 말을.

"어때? 내가 팀장이니까 존나 감동스럽지?"

"……."

"아~ 대답을 안 해? 그래. 개겨 봐. 3분 추가."

후끈한 열기와 고통스런 신음 속에 뒤늦게 대답이 돌아왔지만, 홍유리는 코웃음 쳤다.

"늦었어. 2분 추가. 왜? 열심히 해봐. 혹시 알아? 굼벵이도 구르다 보면 좀 나아질지."

아득바득 이를 가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누구 하나 반항하지 않는다. 어차피 그래봤자 소용없을 거란 걸 잘 아니까. 그렇게 팀원들은 시간이 끝나기만을 바라며 침묵 속에 머리를 박았다. 아니, 자세히 보면 그 머리가 아슬아슬하게 떠 있었다.

사람에게 가능한 동작이 아니다. 뛰어난 헌터이기에 할 수 있는 거의 묘기에 가까운 동작. 고작 발끝만으로 체중을 지탱하고 있다는 뜻. 대신 그만큼 효과는 확실하다. 어지간한 헌터들조차 오래 견디지 못하니까.

"너네 여태 존나 놀았잖아."

"―――!"

"아니야? 아니면 아니라고 하든지."

"……."

"아 잠깐만. 생각해보니 또 빡치네. 이 씹새끼들이 내가 뺑이칠 때 그 따위로 쉬고 있었다 이거지? 존나 괘씸해서 안 되겠다. 5분 더 추가."

놀았을 리 없다. 정말 그렇게 나태하다면 여명에 남아있을 리 없으니까. 그들 나름의 노력은 해왔다는 뜻. 그게 일이건 수련이건 간에.

다만, 그건 홍유리가 알 바는 아니었다. 어제 일과 맞물려 그라데이션처럼 차오른 짜증. 반쯤 아니 9할 정도는 분풀이였으니까.

수련을 빙자한 분풀이가 이어지자, 이은하는 누군가 자신의 발치를 툭툭 건드리는 걸 느꼈다.

어찌어찌 눈을 떠보니 헌터가 당장에라도 죽을 것만 같은 얼굴로 어떻게 좀 말려보라고 소리 없이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은하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다.

그동안 홍유리의 밑에서 구르던 만큼 잘 알고 있었다. 저 이유 모를 언짢음이 풀리지 않으면, 근본적인 원인이 해소되지 않으면 정말 죽기 직전까지 구르게 될 거라고.

아직은 충분히 견딜만한 정도였지만, 머잖아 자신도 저 헌터처럼 죽상이 되고 말리라. 뾰족한 수가 없나 생각해봤자 그런 게 있을 리 없다.

그런 게 있으면 진작에 써먹고 있었지…… 포기하라고 고개를 흔드는 이은하를 본 헌터들이 절망하기 시작했을 때, 홍유리는 혀를 찼다.

팀장직을 수행하는 것도 귀찮고 팀원이라는 것들이 수련이랍시고 같잖은 짓이나 하는 것도 열 받은 이유이기는 했지만, 이은하가 예상했던 대로 그 전부터 도화선에 불이 붙어 있었다.

당장 어젯밤에 있었던 일 때문에.

'개새끼……'

말했다. 말했었다. 용기 내서 말했다. 맘에 드는 방이 없으면 같이 써도 된다고. 그 한 마디를 꺼내는 게 얼마나 힘겨웠던가. 얼마나 용기를 쥐어 짜내야 했던가.

병신이 아닌 이상 그 말이 뜻하는 건 뻔하다. 수치를 꾹 누르고 말했지만… 알파는 거절했다. 페리와 함께 지내야 한다고. 혼자 둘 수는 없다고.

"……."

홍유리의 입에서 긴 한숨이 새어 나오자 자세가 흐트러졌던 팀원들이 제발저리며 움찔하며 정자세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열 받은 이유는 그게 아니다. 그건 참을 수 있다. 알파에게 페리가 어떤 의미인지 모르지 않으니까.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쪽팔려도, 아쉬워도 납득하고 받아들였다. 그래. 그런데……

'씨발, 왜 안 오는데?'

거기까지 말했으니 신호는 충분히 준 거라 생각한다. 설렘과 두근거림으로 기다린 건 딱 새벽 3시까지. 페리는 진작 잠들었을 텐데도 도무지 찾아올 생각을 하질 않아 거기에 오기가 생기고 말았다. 언제까지 안 오나 두고 보자고 해서.

그러다 결국 이렇게 뜬 눈으로 출근하고 말았다. 바로 그게 이은하와는 다른 의미로 밤잠을 설친 이유고 열 받은 이유였다. 기분이 더럽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람이 어떤 심정으로 말했는데……!

아니, 꼭 그런 게 아니더라도 하다못해 잘 자라는 한 마디 정도는 하러 올 수도 있는 거 아냐? 아니면 뭐 나만 매달리고 아쉽나? 아침까지 달렸던 게 대체 누군데…!

불퉁한 시선들이 느껴졌지만, 홍유리는 대범하게 무시했다. 변혁하고 나서 처음엔 시선 자체가 꺼려졌지만, 그게 익숙해지고 나니 오히려 전보다 뻔뻔해졌다. 생물종 꼭대기에 위치한 용종이 됐다는 이유 때문이리라.

힘들어하는 팀원들을 샛노란 동공이 훑어보았다. 분풀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고? 어차피 굴릴 생각이었다. 그게 쪼끔 더 심해졌을 뿐이지.

홍유리는 팀장으로 취임한 그 날, 팀원들이 전부 쓰러질 때까지 그만두지 않았고, 그렇게 새로운 전설이 하나 더 기록되려 하고 있었다.

***

후들거리는 다리로 벽을 짚으며 기진맥진 옥상에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늑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차, 찾았다!"

마치 광명이라도 본 것처럼 기뻐하는 이은하의 모습. 그 소리에 늑대와 대화하고 있던 강태준 또한 시선을 돌렸고 이은하는 헛숨을 들이켰다.

"남은 이야기는 다음에 하지. 생각해보도록."

강태준이 일어나자 이은하는 어버버 거리다가 황급히 허리를 꺾었고 그는 말없이 옆을 지나쳤다. 그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뻣뻣이 굳었던 이은하는 불안한 생각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혹시 뭔가 실수한 게 아닌가 하고서. 마른침을 삼키고 있다가 자신의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늑대를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깜짝 놀랐네…"

클랜장님이 왜 여기에 있담. 후들거리는 다리에 긴장이 풀리자 이은하는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외마디 탄성. 일어나보려 해도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무슨 일 있나?"

담담히 묻는 목소리에 위아래로 고개를 흔드는 것이 어지간히 심각해 보인다.

"뀨우?"

이은하는 결국 일어나려는 시도를 포기하곤 자기 다리를 주물렀다. 그 앞까지 다가간 늑대 또한 촉수를 뻗어 경련하는 그녀의 다리를 마사지했고, 페리도 흉내 내려는지 꾹꾹 눌러댄다.

"아."

거기에 당혹감을 느낄 기력도 없어 이은하는 순순히 눈을 감고 차가운 손길이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감촉을 음미했다.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닌 것 같다. 전문적인 마사지같은 걸 받아본 적은 없지만 아마 이런 게 아닐까.

그러다 멍하니 생각했다. 부팀장님은 어쩌면 이런 걸 매일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이은하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부럽기도 하고…… 꼴깍, 목울대가 넘어갔다

"무슨 일 있나?"

늑대가 묻자 당황해 어버버 거리던 이은하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혼자 고개를 흔들다가 또 그게 아니라며 퍼뜩 정신 차리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

있다는 건지 없다는 건지. 정신 없는 그 모습에 늑대는 가만 실소했다. 곧 이은하가 떠듬떠듬 입술을 뗐다.

"그게…"

이윽고 들은 설명은 홍유리의 분노를 잠재울 방법이 있느냐는 것. 그리고 홍유리가 화가 난 이유에 짐작 가는 게 있냐는 거였다. 이대로라면 오후에는 정말 죽을 거라며 울상짓고 있었다.

"……."

짐작가는 이유. 물론 있어 늑대는 뻗었던 촉수로 머리를 긁적였다. 새로이 얻은 마정을 시험해보느라고 새벽에 환계에 있었다가 까먹고 말았으니까. 잠깐 할 생각이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시간이 훨씬 지나버리고 말았다.

……본의 아니게 폐 끼치고 말았다. 알고 있으면 제발 좀 살려달라는 말에 늑대는 고개를 숙였다. 미안함의 사과가 아니라, 옥상에서 투시로 내려다보기 위해서. 그러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듯 팔짱 낀 채로 무언가 벼르고 있다는 듯 손가락을 두드리는 홍유리의 모습이 보였다.

"…알았다."

뒤늦게라도 깨달아 다행이었다. 이은하가 말하기 전까진 솔직히 까먹고 있었으니까. 늑대는 페리를 잠깐 맡겨놓고는 아래층을 향했다.

***

기진맥진해 바닥에 누운 팀원들은 몸을 일으키려다 그게 자신인 것을 보고 안심해 다시 드러누웠다. 아직 견딜만한 몇몇이 의아한 시선을 보내는 가운데, 그러거나 말거나 참상의 중앙을 당당히 걸은 늑대는 팀장실의 방문을 열었다.

"……."

자신을 빤히 쳐다보면서도 꾹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 눈동자가 왜 왔느냐고 무언으로 압박하고 있었다.

팔짱을 낀 거로도 모자라 다리를 꼬는 것이 자신은 먼저 말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 같았다. 그래도 몸을 돌리고 있는 건 일단 들어는 보겠다는 뜻일 터.

"팀장이 됐…"

게슴츠레 눈 사이를 좁히는 걸 보고 늑대는 이게 정답이 아님을 깨달았다. 하지만 뭐라고 말해야 할까? 실망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주제에 까먹고 있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없다.

새로 얻은 스킬인 마정의 효과가 제법 만족스러워서. 이 정도면 어지간한 스퀘어 마스터들과 마력만으로 겨뤄봄직하겠다 여겨졌을 정도니까.

아무튼, 거기에 파고들다가 잊어버렸다. 늑대는 그 점을 말하며 순순히 사과했고 고개 숙이는 모습을 보곤 홍유리는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 찾아오나 벼르고 있었는데 그래도 아주 잊어버리지는 않은 모양. 사실 그것만으로 기분이 풀렸다. 이렇게 찾아왔다는 것만 해도 굳이 말로 하지 않은 관계가 정립됐단거나 마찬가지니까.

이미 그것만으로 기분은 풀려 있었지만, 자세를 풀진 않았다. 그래도 여기서 풀어지는 건 너무 가벼워 보이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알파에게 그렇게 느껴지는 게 싫어서. 또 그래야 다음에 같은 실수도 안 할 테고… 홍유리는 속으로 헛기침했다.

그렇게 빤한 시선이 계속 유지되자 늑대는 잠깐 궁리하다가,

"점심은 먹었나?"

"……아직."

"같이 가겠나?"

그 뻔히 보이는 서투른 말에 홍유리는 픽 웃으며 으름장을 놓았다. 처음이니까 봐주는 거라고. 다음에는 국물도 없을 줄 알라면서.

그날 오후, 3팀의 팀원들은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

그렇게 시간은 흘러 저녁이 되어갈 때, 여명의 옥상에서 늑대는 아침에 강태준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냄새를 맡았다는데.'

'……냄새?'

'탕아들. 고원의 광휘가 찾은 것 같다더군. 확실치는 않아. 아직 좀 더 알아봐야 할 거다.'

한국에서는 자신이 직접 뿌리 뽑았다. 그건 분명한 사실. 하지만,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이 좁은 땅덩어리 말고 다른 나라에서는 더 바글바글하게 널려있을 테니.

놈들을 박멸하기 위해서는 혼자선 역부족이다. 힘이 부족한 게 아니라 일일이 놈들을 찾는 게 무리라는 뜻. 물론 정말 시간을 쓴다면 마냥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정말 주의해야 하는 건 탕아들이 아니었으니까.

냉정한 말이었지만, 그렇게 찾아다닐 시간은 없다. 한시라도 빨리 성장해야 하니까. 만상의 주인이 언제까지 잠자코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그녀는 분명 말했으니까. 양보하는 건 여기까지라고. 다음은 없다고.

……그건 재앙을 뜻하는 말이리라. 자색의 흑호 혹은 바다의 재앙을 막으려 한다면 직접 막겠다는 뜻일 터.

어째서 재앙을 보호하려는 듯한 행동을 하는 건진 모른다. 어렴풋한 짐작은 하고 있지만, 확신은 아니다. 그녀 나름의 이유가 있을 테지만, 이해할 생각은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일단, 자색의 흑호는 움직이지 않고 있지만…… 결국 놈이 움직이면 막을 수 있는 건 자신밖에는 없을 테니까. 그걸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놈을 보고선 확신했다.

놈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일일이 탕아들을 찾으러 다닐 시간은 없다. 적어도 지금처럼 그 낌새라도 알아채 알려줄 사람이 필요하다.

충분히 가능하다. 지금까지 일련의 사건으로 탕아들이라는 변절자의 존재가 알려지고 그들을 규탄하는 목소리는 커져 있었다. 물론 탕아들만 있는 것도 아니다. 사각지대 같은 배신자들도 있을 테고, 늑대 자신이 모르는 조직들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

역병과 질병이 사라져 더 없는 평화와 호황을 누리는 인류. 그렇게 안심하는 틈을 타 무슨 수작질을 벌일지 모른다. 늘 바깥으로 향했던 인류의 경계심이 안으로 향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었고.

'생각 있으면 광휘와 만나게 해주겠다.'

슬슬, 더 신경 쓰이지 않게끔 놈들을 청소할 때가 되기도 했다는 뜻이다.

저번에 쓰러뜨리지 못했던 강훈을 비롯해 정리해 둘 필요가 있으리라. 늑대의 눈이 조금 떨어진 곳, 칠영웅의 수장인 창선이 있을 고원을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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