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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212화 (212/407)

〈 212화 〉 #88 보름 뒤

"잡으라고 등신들아!"

관악산을 뛰어다니며 홍유리는 무전기에 대고 소리쳤다. 그 호통 소리에 전파음 너머 발소리가 커진다. 나란히 달리면서도 늑대는 옆을 가리켰다.

끄덕인 홍유리가 달리면서 수인을 맺기 시작하자 늑대는 탐지를 넓게 펼쳤다. 그리곤 감각에 걸리는 무수한 것 중 작고 왜소한 것들은 전부 가려냈다.

지금 쫓고 있는 놈을 제외하면 남은 기척은 3마리. 홍유리의 옆을 달리던 늑대의 눈이 관악산의 풍경을 꿰뚫고 머나먼 곳을 바라보았다.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이은하의 입술이 달싹이고 있었다.

"Explosion!"

적절한 타이밍에 이어진 영창. 산비탈에 폭발을 일으켜 작은 산사태를 만들어내자 쫓고 있던 큰 엄니 멧돼지가 휩쓸려 넘어졌고 헌터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길목에서 빠르게 벗어났다.

마치 바위가 굴러 떨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육중한 무게에 땅이 흔들리고 요란한 흙먼지가 일었다. 족히 수 미터는 떨어졌음에도 큰 엄니 멧돼지는 투레질하듯 머리를 흔들더니 금세 일어나 자세를 낮췄다. 억지로라도 빠져나가려는 기세였으나 딱 거기까지 보고 늑대는 고개를 돌렸다. 이미 포위당한 상태. 도망칠 수 있을 리 없으니까.

홍유리의 눈이 더 붉게 변해 있었다. 흔적을 읽는 추적의 마안이 빛을 발하고 수인으로 맺은 마법을 던진다. 그렇게 불타는 창이 날아가는 도중, 작게 중얼거린 말에 십 수배로 숫자를 불린다.

열댓 개의 창. 그것들이 하나도 빗나가지 않고 제각기 다른 급소에 적중해 도망치던 아울 베어의 깃털이 불타올랐다. 놈이 쓰러지기 직전 손가락을 튕기자 마법의 불꽃이 깔끔히 사라졌다.

달리는 그대로 홍유리는 무전기에 대고 소리쳤다.

"처리했어! 나머지는!"

[잡을 수 있어요!]

[쫓고 있는데 도로변으로!]

"어딘데! 못 잡아?!"

일단 해보겠다는 말에 홍유리는 혀를 차며 늑대를 바라보았다.

"보험만 해줘."

늑대는 고개를 끄덕이고 비가시화를 사용해 달리기 시작했다. 금방 거리를 좁혔을 땐 양손이 이상하리만치 커다란, 집채만 한 원숭이가 난폭하게 나무를 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헌터들이 힘겹게 쫓고 있다. 당장 처리할 수도 있겠지만 부탁받은 일은 어디까지나 보험. 저들이 완전히 놓친 뒤에 움직이는 게 역할이었으니까.

난폭하게 나무를 타는 도중 투창과 사격이 이어졌으나, 쉽게 맞지는 않았다. 애초에 경화를 가진 만큼 피해를 주는 게 어렵기도 했고.

순간, 초감각이 가능성을 열어젖히고 미래를 읽었다.

그 미래가 반영된 것처럼 나무에서 떨어지기 직전, 도약을 준비하며 굽혀진 무릎이 탄력을 받아 높게 뛰어오른다. 쏘아낸 창이 발바닥에 박혔으나 아무렇지 않다는 듯 뽑아내며 십수 미터를 날듯이 뛰었다.

경화와 탄력을 주로 사용하는 싸움법. 모습도 스타일도 전혀 다르지만 마치 과거 슬라임이었던 시절의 자신을 보는 듯하다.

늑대는 자신이 직접 나서는 대신 하품하던 페리를 촉수로 툭툭 건드렸다. 귀찮다는 듯 앙탈 부리더니 몇 번 간지럽혀주자 "뀨앙!" 참지 못하고 점멸을 사용했다.

"……?!"

갑자기 나타난 페리에게 당황하는 것도 잠시. 페리가 긴 꼬리로 헌터의 팔목을 감듯이 두르자, 이내 헌터의 모습이 사라졌다.

분명 뒤에서 쫓고 있었는데 어느샌가 자신의 등 뒤에 있다는 사실에 침 삼킨 헌터는 몸을 돌리며 창을 휘둘렀다. 놈의 덩치에 비하자면 이쑤시개만 한 창이었지만, 마력이 담겨 있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팔목으로 막아내려던 원숭이는 그게 실수였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미증유의 힘이 담긴 일격에 견디지 못해 팔목 뼈가 부러진다. 괜히 페리가 데려간 게 아니라는 소리.

그렇게 공중에서 저지당해 떨어진 순간, 헌터는 휘두른 창을 어깨 뒤로 보내며 팽팽하게 당겼다. 그렇게 추락하는 놈을 추격하듯 쏘아진 창은 명치 어림을 정확히 꿰뚫었고 떨어지는 속도를 가속시켰다.

몇 개인가 뻗어있던 나뭇가지를 전부 부수고 땅에 꽂힌 녀석은 부르르 떨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창은 마치 말뚝처럼 놈을 꿰뚫고 지면에 박혀있었다.

한 박자 늦게 도착한 다른 헌터들이 도착한 순간, 그렇게 상황은 종결되었다. 돌아온 페리의 턱 아래를 긁어준 늑대는 비탈 아래를 내려다보았고 거기엔 마침 관광버스 한 대가 지나가고 있었다.

***

이은하가 있던 쪽에서 쫓고 있던 마지막 녀석까지 마무리했다는 무전이 돌아왔다. 자연 발생한 한 마리와 산중에 열려 던전의 존재를 늦게 알아챈 탓에 탈출한 세 마리. 관악산에서 벌어진 소동은 그렇게 일단락됐다.

"쪼개지 마. 아직 안 끝났으니까."

[……]

홍유리의 으름장에 무전 너머 3팀의 팀원들이 움찔거렸다. 아울 베어를 제외한 나머지 세 마리는 던전에서 탈출한 것. 던전을 클리어하기 전까진 끝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선 입구를 지키기 위해 배치해둔 인원들과 합류해야 한다.

이윽고 3팀 인원들이 정렬하자 홍유리는 그 면면을 둘러보았다. 탈출한 몬스터 수준으로 미루어보건대 그리 쉬운 던전은 아니리라.

잠깐 생각하던 홍유리는 인원을 차출하기 시작했다.

***

그렇게 저녁 시간이 되어 클랜원들이 퇴근할 시간이 되어서야 간신히 돌아올 수 있었다. 간신히라고 말은 했지만, 딱히 위험한 순간 없이 쫓느라고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존나 피곤하네……"

뻐근하다며 기지개 켜는 홍유리의 양 어깨를 촉수로 주물러주었다. 뭉친 근육을 풀어주니 기분 좋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진짜 내일 출근하면 다 뒤졌어어어."

소파에 누워 투덜거리는 말에 늑대는 픽 웃었다.

차라리 직접 나섰다면 모를까 던전에서는 어지간하면 나서지 않았으니까. 속 터진다고 답답해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용케 팀장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너랑 나랑 얘까지 없었으면 어쩔 뻔했는지. 등신들."

마지막에 본 관광버스를 떠올린 늑대는 차마 부정할 수 없어 끄덕였다.

"그래도 걔는 많이 컸어."

이은하를 말하는 것이리라. 환계의 던전을 다녔다는 짬밥 때문인지 많이 성장했으니까. 조만간 백록과 맞먹을 정도로 성장할지도 모른다. 그거 하나만큼은 마음에 든다고 홍유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손길을 음미하며 눈을 감은 홍유리의 꼬리가 마치 햇볕을 즐기는 고양이처럼 길게 늘어져 살랑거렸다. 정성스레 주물러주며 늑대는 가만 생각했다.

"뀨우웅."

페리 또한 늑대를 따라 하다가 홱 몸을 돌린 홍유리에게 붙잡혀 소파 위를 뒹굴었다. 까르르 웃는 소리가 집 안에 울려 퍼진다. 그렇게 둘이서 한참을 뒹굴다 기운이 빠졌는지 껴안은 그대로 천장을 보고 누웠다.

"연락은 왔어?"

묻는 말에 늑대는 고개를 저었다. 고원으로부터 아직 연락은 오지 않았다. 광휘가 언제까지 수사할지는 모르겠지만… 조만간 외국으로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래도 머지않아 올 거라 생각한다."

"……그래."

한숨 쉰 홍유리가 페리를 가만 쓰다듬었다. 용과 용종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빨리 친해질 수 있었던 모양. 홍유리는 이제 변혁했다는 사실 자체에 의문을 품지 않는 듯했다.

"이제 괜찮아졌나 보군."

그 붉고 작은 날갯죽지를 천천히 쓰다듬어주니 홍유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 많이 지났잖아. 좆같은 새끼들도 많았는데."

홍유리는 키득거리며 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시선은 둘째 치고서도 피를 뽑아볼 수 없겠느냐부터 온갖 개소리를 들었다는 말에 늑대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어차피 다 조졌는데 뭘."

"……."

"아 쫌."

투덜거리는 듯 표정 풀라는 것에 늑대는 끄덕였다.

변혁하고 시간이 많이 지났다. 어느덧 백소율의 졸업식으로부터 보름이란 시간이 흘렀으니 거의 두 달 가까이 된 셈이다.

졸업식… 살벌했던 그 날의 일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백소율은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게 맞으리라.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더 정확히는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다.

환영의 나비에게 마법을 배우는 것만 해도 빠듯할 텐데 거기서 무언가 할 수 있을 리 없을 테니까.

"걔 생각하는 거야?"

꿰뚫어 본 것처럼 묻자 늑대는 숨기지 않고 순순히 끄덕였다.

"어차피 앞가림은 할 텐데."

뭘 걱정하느냐는 듯한 말에 늑대는 끄덕이긴 했지만, 속으로는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적어도 자신만큼은 알고 있었으니까.

원작에서 마녀가 됐던 그녀가 어떠했는지를. 그 때문에라도 고원의 연락이 오는 게 기다려졌다. 약간의 불안이 남아 있었으니까. 놈들을 다 정리하지 않으면 안심할 수 없다.

물론 백소율이 정말 자기 의지로 마녀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잃어버린 자들로부터 흘러들어온 기억을 봐버린 이상, 마냥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렇게 걱정되면 가보든가."

"……괜히 악화될 것 같으니까."

애써 마음을 접어가고 있는데 괜히 자신이 나섰다간 일을 그르칠지도 모른다. 마지막에 본 게 비록 좋지 않았다지만…… 지금은 어떻게 됐을지 모르니까. 그런 생각을 말해주자 홍유리는 같잖다는 듯 코웃음 쳤다.

"걔가 널 포기해? 지랄하고 있네."

"……."

"마지막에 독기 품은 거 못 봤어? 너 오면 좋다고 달려들걸? 며칠 굶은 암사자마냥."

그 재밌는 비유에 늑대는 피식 웃어버렸다. 백소율의 그런 모습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으니까.

"안 믿네?"

"그럼 애초에 가보라는 말을 안 했을 테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보름이 지나는 동안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고 홍유리는 그렇게 말했다. 그 생각 덕분에 안심할 수 있었다고 덧붙이면서.

"어차피 네가 당할 리가 없을 것 같아서."

"……?"

"걔가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을 거 아냐."

"……."

"술. 독. 마력. 마법에다가 싸우는 건 말도 안 되고 뭔 개지랄을 해도 안 통할 텐데."

실소하며 하는 말에 잠깐 벙쪄있던 늑대는 이내 수긍했다. 하지만 설마 그럴 리야 있겠는가.

어차피 이미 거절해버린 이상 백소율을 받아들일 생각은…… 없다. 그게 서로에게 올바른 결말일 테니까.

"걔가 포기했든 아니든 넌 상관없잖아. 틀려?"

늑대는 머리를 주억였다.

"그니까, 걱정되면 보고 와."

"아니, 괜찮다."

그래도 굳이 만나러 갈 필요는 없다고 늑대는 그리 생각했다. 걱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서로에게 필요한 건 시간일 테니까.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면 웃으면서 볼 수 있는 날이 돌아오기만을 바랄 뿐.

"기특하기는."

배시시 웃으며 다가오려는 얼굴 사이에 날개가 끼어들어 막았다. 그런 페리의 철벽같은 수비에 잠깐 벙쪘던 홍유리는 어이없다는 듯 실소했다.

"이게 진짜."

다시 엎치락뒤치락 한참을 구르다 지친 페리의 눈이 빙그르르 돌자 홍유리는 피식 웃었다.

그래 뭐. 기회는 준다. 주는데… 이래저래 핑계 대면서 오지도 못할 거라면 애초에 꿈도 꾸지 말았어야지.

독기를 품어도, 포기하지 않아도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가만 앉아서 바쁘다고 변명할 뿐이라면. 알파의 발목만 붙잡을 거라면 없는 게 더 낫다.

결국 여기까지인 거라고 홍유리는 코웃음 치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날까지는.

***

다음날, 출근한 홍유리는 어쩐지 모를 소란과 웅성거리는 클랜원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왜 아침부터 쑥덕대고 지랄이야?"

모여있지 말고 꺼지라고 말한 순간, 마침 핸드폰이 울렸다. 그게 클랜장인 강태준의 번호임을 확인한 홍유리는 고개를 모로 꺾었다.

[홍유리. 출근했나?]

"네. 클랜장님."

[그래. 소식은 들었나?]

"소식요?"

[환영의 나비께서 여명에 머무르고 싶으시다던데. 곧 도착할 테니 안내 부탁해도 되겠나?]

"……환영의 나비께서요?"

[그래. 하연은 면식이 없으니 네가 동행해주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차마 거절할 수 없어 알겠다고 답한 홍유리는 잠깐 그 이유를 곱씹어보았다. 환영의 나비가 여명에 온다― 그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니다.

그녀의 아들인 아가일이 죽은 곳은 대전이었으나, 그 무덤이 있는 곳은 여명에서 머지않은 묘지였으니까.

다만, 환영의 나비에게 배우고 있는 게 누구였는지 생각이 미치자 홍유리는 어이없이 실소했다.

설마 이걸 기다린 걸까. 지난 보름간 순순히 포기한 게 아니라 칼을 갈고 있었단 걸까. 분명 환영의 나비가 여명에 갈 거라고 확신하면서.

"당돌하네……?"

실소한 홍유리는 말없이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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