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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216화 (216/407)

〈 216화 〉 #90 추적 (2)

산간의 지하 깊은 곳. 곳곳에 있는 임시 대피소와 같은 장소에 도착한 꼬리는 숨을 몰아쉬었다.

이미 진작에 멈춘 심장에서 진득하게 고여있는 피가 울컥 흘러나오자 불쾌감이 치솟았다. 사람이라면 이딴 걸 들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니까. 그건 꼬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시 떠올려봐도 지독한 며칠간이었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끈질길 수 있는지 의문일 정도로. 세계 최고의 궁사라는 이름은 허언이 아니었다. 고작 그 하나에게 무려 간부 셋과 자신과 같은 꼬리 수십이 붙었음에도 기어이 간부 하나를 죽였고, 마지막에 꼬리는 십수 명밖에 남지 않았을 정도니까.

항저우에서 광저우까지 이동하는 며칠 밤낮동안 대체 몇 번이나 죽을 뻔했던가. 아슬아슬하게 뺨을 스치고 지나가, 뒤에 있던 머저리의 미간을 정확히 꿰뚫은 화살을 기억한다. 화살보다 날카로웠던 궁수의 눈을 기억한다…….

그래도 이제 광휘는 없다. 자신의 손에 쥐어진 이것이 그의 심장이었으니까.

물론 이 심장에 의미는 없다. 이걸 받은 이유는 미끼이기 때문에. 자신이 미끼라는 건 알고 있다. 그래도 괜찮다. 자신의 역할은 내버려진 고기가 아니라 쫓아온 추적자들을 묻어버리는 거였으니까.

광휘와 연락이 두절된 이상 고원은 무조건 쫓아올 터. 그 개인의 명성도 있었지만, 창선의 아들이자 고원의 차기 수장이었으니. 버린다는 선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까지 쫓아올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지만 쫓아오면 지하를 폭파시키고 빠져나가면 된다.

그래. 고작 그것뿐. 조그마한 바람이 불어오자 꼬리는 이제 좀 살 것 같다고 느꼈다. 애초에 여기까지 쫓아올 수 있을 리가 없다. 광휘가 있다면 모르되 광휘 본인이 죽었는데 어떻게 올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의 조직이었지만 신중함이 과하다고 꼬리는 키득거렸다.

불어온 바람에 땀이 식으며 한결 긴장이 풀리고 몸이 느슨해진다. 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며 꼬리는 작은 위화감을 느꼈다. 여기는 지하. 그런데 어떻게 바람이 부는 걸까? 환풍기…가 있기는 한데 그게 여기까지 닿는다고?

의문은 곧 해결됐다.

어느샌가 자신의 몸이 딱딱히 굳어 있었으니까.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의 등 뒤에 무언가가 있다― 그건 분명하지만, 목이 돌아가지 않는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자신을 속박하고 있는 것 같다고 꼬리는 그렇게 느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아까부터 불어온 바람이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으니까. 마른침을 삼키고 싶은데 그것마저 용납하지 않는다.

무언가 있다는 건 분명하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거센 바람이 시끄럽게 몰아치는데도 공기는 딱딱하게 굳어 내려앉은 것만 같아 숨을 쉬는 게 어렵다. 목을 붙잡았던 손길이 조여드는 것 같다.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두려움과 미지의 공포.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낮은 울음소리가 들려왔을 때, 꼬리는 처음으로 그 존재를 자각할 수 있었다. 빙 돌아서 그것이 자신에게 모습을 드러내자 꼬리의 뇌리에 스친 생각은.

어째서 이런 불합리한 존재가 있는 것인가. 좀 더 시간이 지나 마지막에 그가 떠올린 것은 죽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

뒤늦게 여명이 도착했을 때, 그들의 앞을 가로막듯 나타난 늑대가 아공간으로부터 그것을 꺼내 내려놓았다. 그것의 정체는 신체 부위. 정강이와 어깨에서부터 팔꿈치까지 이어지는 팔. 그리고 심장까지. 총 세 개의 조각. 그 뜬금없는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바로 알아차린 이는 많지 않았다.

"…죽은 건가?"

늑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강이와 팔꿈치만이라면 모를까 심장까지 적출당한 인간이 살아있을 리 만무하다. 그 함축된 질문과 답을 토대로 아직 눈치채지 못했던 다른 이들도 정답에 도달했다.

광휘는 이미 죽었고 심지어 토막 나 여럿으로 나뉘고 말았다는 사실을. 설마설마해 쉬쉬하던 광휘의 죽음이란 믿기 어려운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세계 최고의 궁수가 죽었다는 사실에 아연해 하던 그들의 귓가로 늑대의 말이 이어졌다.

"전부 미끼다."

세 개의 신체 부위. 그것이 의미하는 그대로 늑대는 세 번이나 도망친 놈들을 뒤쫓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전부 실패. 꼬리 혹은 말단들만이 광휘의 신체 일부를 가지고 숨어 있었을 뿐이다.

단 한 마리만 있으면 나머지 놈들을 추적할 수 있다. 늑대는 그리 생각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신체를 들고 도망친 놈들 전부가 미끼였으니. 수십으로 토막 난 광휘는 전부 시간 벌이에 불과했다는 뜻이다.

꼬리들로부터 알아낼 수 있었던 유일한 정보는 간부는 광휘의 신체 부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그래서 후각으로 추적하는 게 어려웠다. 일반인과 놈들의 냄새가 멋대로 섞여 구분하기 힘들었으니까.

심지어 꼬리의 입을 열어봐도 흩어진 이들의 행선지를 모르고 있었다. 아마 가장 늦게 출발한 것이리라. 한국에서 전부 뿌리 뽑았었으니 이 같은 조치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

대전의 밤, 아니 그 이전부터 놈들과는 몇 번이나 마찰이 있었다. 인제 와서 놈들이 자신의 존재를 모를 리 없다. 그렇게 학습하고 대비한 것이리라.

"그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늑대에게는 여기서 더 쫓을 방법이 남아있지 않다. 탐지의 거리 밖으로 도망친 건 당연하고 눈으로 쫓을 수조차 없다. 유일한 수단인 후각마저 마찬가지. 미끼에 불과한 냄새마저 갈수록 희미해질 테니까. 남은 방법은 합류해 추적하는 것. 더 정확히는 추적의 마안을 가진 홍유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너머, 안색이 좋지 않은 누군가의 얼굴을 본 늑대는 잠깐 생각했으나 지금은 그런 것보다도 놈들을 쫓는 게 훨씬 급하다.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하고 싶은 말은 알았다. 인원을 나누도록 하지."

그 말에 늑대는 강태준을 보았다.

"미끼들도 놔둘 순 없으니까. 전부는 무리더라도 이만큼 거리가 좁혔으면 추적할 수 있을 테지."

어차피 알파가 있는 한 본대를 쫓을 인원을 나눠도 상관없다고 강태준은 그리 판단했다.

그렇게 여명의 본대와 추적조가 다시 나누어졌다.

***

홍유리가 가리키는 대로 달리며 거리는 점점 좁혀져 간다. 광휘의 신체 부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건 달리 말해 냄새로 가려낼 수 있다는 뜻. 추적의 마안과 늑대의 후각이 미끼가 아닌 몸통을 뒤쫓고 있었다.

여태 쫓아 발견한 건 꼬리와 말단이 숨어있는 것에 불과했지만, 거기엔 분명 간부가 있으리라. 고작 꼬리와 말단이 광휘를 죽일 수 있을 리 없으니까.

그게 하나일지 혹은 다수일지는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 만상의 주인 본인이 모습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면야. 미끼와 갈라진 흔적은 점점 또렷해졌고 홍유리가 가리키는 길을 따라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저거야!"

산간 도로의 차량을 가리키는 것에 늑대는 끄덕였고 뻗은 촉수로부터 피어난 가시들이 단숨에 쏘아져 타이어에 적중했다. 뒷바퀴가 터진 차량은 요란하게 회전하며 뒤늦게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회전하며 벽에 처박혔을 뿐이다.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늑대의 눈은 진작부터 그 실체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홍유리가 주문을 영창 하는 가운데, 기다릴 필요 없다고 생각한 늑대가 그림자를 뻗었다.

그것보다 빠르게 폭발이 일어나 지형을 부숴 그림자를 걷어냈다. 그 반응만 보더라도 명실상부한 간부. 주변을 통찰하듯이 본 늑대는 놈 하나로 끝이 아님을 알게 됐다. 혹시나 해 확인했지만, 강훈은 보이지 않는다.

"―――."

주문을 외는 놈. 영창하기 시작하는 놈을 상대로 공허를 일으키려는 순간, 늑대는 자신의 머리를 두드리는 손에 고개를 돌렸다.

"먼저 가."

"……."

"아 쫌. 그냥 가라고."

꼬리까지 두드려오자 늑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자신이 놈을 처리한다면 시간을 걸리지 않을 테지만… 맡기기로 했다.

"그래도 간부다. 조심해라."

대답 대신 돌아온 건 어서 가라는 듯한 턱짓뿐이었다.

***

알파가 떠나가자 홍유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참 걱정도 팔자지. 고작 저런 거에 당할 리가 없는데.

상대가 영창하는 것보다 빠르게 붉은 마력이 솟구쳐 그것을 속박했다. 인간이라기엔 기괴하고 아니라기엔 어정쩡한 잡것. 덕적도에서 상대했던 침묵하는 입에 비하자면 한참이나 격이 떨어진다.

같은 간부라고 했는데 그래도 이렇게 차이가 나는구나.

언뜻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그것의 피부, 아니 도금 아래가 기계인 건 알고 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모습이었지만 원체 해괴한 놈들이니 뭔들 못할까.

키메라인지 기계인지. 그 기분 나쁜 모습에 혀를 찼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듯 감정 없고 고저 없는 목소리가 담담히 영창을 이어나가자 샛노란 동공에 빛이 강해졌다. 어디 해볼 테면 해보라는 듯 오연하게 코웃음 친 홍유리는 기꺼이 놈이 마법을 완성하는 걸 기다려주었다.

"Explozie puternică."

그렇게 남은 주문마저 이어붙여 영창을 완성한 그것으로부터 구현된 마법은―― 없다.

붉은 마력에 짓눌려 단 한줌의 마력도 일어나지 못했으니까. 네버랜드에서 늑대의 흑무가 침묵하는 입을 덮었던 것처럼.

마력이라고 다 같은 마력이 아니다. 양이 다르고 결이 다르고 무엇보다 격이 다르다. 용혈과 대마력을 지닌 지금의 홍유리는 스퀘어 마스터가 아니라면 마법사로서는 이길 수 없다 단언해도 좋다.

간부가 약한 게 아니라 그녀의 수준이 높은 거였다.

같은 마법사라면 서로를 보기만 해도, 마력을 사용하는 모습만 보더라도 격의 차이를 선명히 알 수 있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같잖네."

보란 듯이 마력을 끌어올린 홍유리로부터 간단한 주문의 말이 뱉어짐과 동시에 수십 갈래로 늘어난 진홍의 창이 그것을 겨누었다. 그렇게, 그것의 기능이 정지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홍유리를 뒤로 한 채 달린 늑대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리는 두 기척을 감지했다. 어떻게든 하나라도 살아남으려 애쓰는 모습이었지만 거기에 의미는 없다. 어떻게 하더라도 도망칠 수 있을 리 없으니까.

하나는 꼬리. 하나는 간부. 후각으로 둘의 냄새를 인지한 늑대는 꼬리부터 잘라내기로 했다. 간부는 살려두고 정보를 캐내야 하니까. 따라잡는 데 걸린 시간은 의미 없을 만큼 짧다. 접근하는 걸 알고는 있었는지 꼬리의 허리춤에서 발출된 검이 늑대를 향해 날았다.

공기를 가르고 마력이 담긴 검은 제법 위력적이었지만, 마력과 함께 모습을 감추었다. 믿기 힘들다는 듯 크게 눈을 뜬 꼬리의 눈에 무언가 일렁이는 것이 보이는가 싶었다. 아니, 확실하게 보였다. 그래서 웃음이 나왔다.

그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이미 일대를 뒤덮고 있었으니까. 그 순간, 꼬리는 삶을 포기했다. 이해하기 싫어도 이것이 감히 대적할 수 없는 무언가임을 본능적으로 깨달았으니까.

그렇게 산의 지형 일부와 함께 꼬리는 숨을 거뒀고 늑대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탕아의 간부. 게워내는 위장.

홍유리가 상대하고 있을 뛰지 않는 심장 또한 간부였지만, 기껏해야 꺾인 손가락보다 조금 나은 정도일 뿐이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금쯤 어련히 알아서 잘 처리했을 테니. 중요한 건 남은 한 마리. 광휘를 죽이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해낸 건 분명 놈이리라. 늑대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

여명의 일원들은 셋으로 쪼개졌다. 고작 추적할 궁수 둘을 포함한 강태준과 하연이 지휘하는 1조와 이기준이 지휘하는 2조. 오만하기 그지없는 편성이었지만 거기에 감히 불만을 품는 이는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검성이었으니까. 하늘 아래 가장 검을 잘 쓰는 이가 바로 그였으니까.

"……도착했습니다."

따라서, 자신들만 잘하면 된다. 궁수들의 선도에 따라 미끼가 있는 곳까지 다다랐다. 입구를 발견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알파가 말한 대로라면 분명 이곳은 추적자들, 그러니까 우리를 묻기 위해 준비된 모종의 장치가 있다는 건데……

"다 긴장하십쇼. 지금부터 대기조 진입조 나누겠습니다."

2팀 부팀장, 이기준의 말에 따라 진입조가 된 이은하는 긴장으로 손에 땀을 쥐며 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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