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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217화 (217/407)

〈 217화 〉 #91 게워내는 위장

꼬리를 잘라낸 늑대는 남은 간부, 게워내는 위장을 향해 달렸다. 거리는 제법 벌어져 있지만, 그 정도로 놓칠 리 없다. 이미 늑대의 코는 게워내는 위장의 냄새를 인식했고 수 킬로미터를 격해 그 모습을 똑똑히 보고 있었으니까.

[게워내는 위장(키메라)]

인간이 아닌 키메라. 비쩍 마른 뼈에 가죽이 붙은 볼품 없는 사람의 형상이 놀라운 속도로 산을 달리고 있다. 마치 도시 전설에서 나올 법한 창백한 사람의 형상이었다.

다만, 탕아의 간부라는 이름답게 그런 외형과는 달리는 속도는 상당했다. 따라잡는 데 몇 분이나 걸렸을 정도로.

하지만 그건 반대로 말해 놈의 입장에서는 고작 몇 분 만에 따라잡혔다는 뜻이다.

"……."

게워내는 위장은 난폭한 바람과 함께 나타난 늑대의 탈을 쓴 괴물을 보고 침음했다. 눈앞의 이것을 이길 확률이 한없이 0에 가깝단 걸 알고 있었으니까. 아니, 이기기는커녕 살아남는 걸 고민해야 한다.

문제는 스톡이 얼마 없다는 것. 광휘와 싸우며 여유를 둘 수가 없었으니까. 급하게라도 채워 넣은 게 이 정도였지.

게워내는 위장은 살아남기 위해 안에 든 것을 모두 토해내기로 했다. 조금만 더 다가오면 전부 쏟아내고 거리를 벌리면 된다. 시간을 벌 수만 있다면, 유동인구가 많은 대로변으로 이동한다면 어떻게 도망칠 수도 있으리라. 마랑은 인류를 보호한다 들었으니.

괴물이 다가오자 게워내는 위장의 안에 든 것들이 꾸물거리며 출렁거렸다. 잔뜩 숨을 들이쉬자 비쩍 마른 창백한 남자의 배가 마치 올챙이나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누가 봐도 정상은 아니지만, 괴물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가왔다.

그 오만이 발목을 붙잡게 되리라. 한 발 더 다가오면 전부 뱉어낸다. 게워내는 위장은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들이켠 공기가 압축된 가스가 돼 배 속에 있는 걸 전부 토해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토사물. 그다음에는 동물과 사람이 혼재해 섞여 있는 끔찍한 것들. 그리고 마침내 그 이름 에 걸맞게 위장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들. 진작부터 위장 안을 까멓게 채우고 있는 부정의 무리를 투시로 보고 있던 늑대는 피하는 대신 검은 불꽃을 일으켰다. 처형자를 시작으로 이미 여러 번 보았던 스킬이기에 당황은 없다.

피와 살덩이 그리고 부정의 무리는 검은 불꽃을 지나지 못한 채 남김없이 불살라졌다. 그러나 겨우 이 정도로 끝날 거라면 광휘가 당하는 일은 없었을 터. 그 너머가 놈이 가진 진짜였다.

"―――!"

극한까지 농축된 시체 독. 뱃속에 집어넣은 시체를 녹이고 부패시켜 시간에 따라 위장 안에서 한계까지 농축한 독이야말로 놈이 가진 진가라 할 수 있었다. 다만, 그 양이 소설 속 묘사와는 달리 턱없이 적다.

아마도 광휘와 싸우며 쌓아놓은 저장량을 거의 다 써버린 것이리라. 물론 양이 많았다고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테지만.

시야를 가리는 눈속임과 다름없다. 그저 시간 벌이에 불과해 겁화에 모조리 타들어 가 증기만이 끓어오른다. 줄행랑을 치는 게워내는 위장을 늑대의 붉은 눈이 직시한 순간, 딱딱히 굳어버렸다.

아니, 그게 아니다. 이미 미리부터 쫓고 있던 그림자가 놈의 발목을 끊고 엉망으로 만든 것. 무릎 아래가 여러 번 잘려 나가 팔로 땅을 기는 꼴사나운 신세를 면치 못한다. 그런 게워내는 위장의 등을 날카로운 발톱이 찔렀다.

늑대의 발이 등판을 꿰뚫자, 게워내는 위장은 몸을 비틀었다. 그러나 발이 떼어지기는커녕 가죽만 찢겨 등판에서부터 갈비뼈와 척추가 처참히 드러났을 뿐.

"……!"

최후의 발악으로 인간에게는 있을 수 없는 각도로 목을 비틀어 올려진 발에 입을 가져다 대려 했다.

그 시도를 늑대는 막지 않았다.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선 놈을 무력화시켜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공포로 찍어누르는 게 제일이란 걸 그간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으니까. 놈이 할 수 있는 모든 시도가 쓸모없는 발악에 불과하다는 걸 느끼게 해줘야 한다.

입가에 조금 남았던 독은 공허에 사라지고 발목을 씹은 이빨은 경화한 가죽을 뚫지 못하고 부서지고 말았다. 놈이 믿었던 건 독만이 아니라 그 자신이 가지고 있던 또 다른 스킬인 악식이었으리라.

그러나 통하지 않는다. 한참이나 격이 높은 동일한 스킬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아연히 올려다보는 놈의 눈동자에 어떠한 감정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그에무우르…"

어눌한 말은 주문 같은 게 아니다. 입안이 부서져 괴물이라는 단어를 발음하지 못했을 뿐. 곧 놈의 동공이 풀리고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심장은 멈췄고 호흡하지 않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림자를 뽑아낸 늑대는 비쩍 마른 놈의 옆구리를 꿰뚫고 숨겨져 있는 것을 뽑아내려 했고, 그러자 죽은 척하는 걸 그만두고 몸을 뒤집어 발버둥 쳤다.

당연히 그런 발악이 통할 리 없다. 올려둔 발을 내리찍자 척추가 내려앉았다. 이것만 하더라도 어지간해선 죽겠지만 놈은 키메라. 인간이 아니다. 목숨줄이 질기다는 게 이럴 땐 편하다.

갈비뼈를 뭉개버리고 숨겨져 있는 작은 병을 꺼냈다. 모조 엘릭서의 미완성품. 그것이 놈의 보험이었다. 그 보험마저 사라지자 마침내 눈동자에 두려움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검은 불꽃에 둘러싸인 늑대와 그걸 바라보는 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간다. 늑대는 망설이지 않고 놈이 입을 열 때까지 천천히 저미기 시작했다.

417번의 경험을 떠올리면서.

***

마치 고양이처럼 발소리 없이 착지한 헌터들은 몸을 낮추고 주변을 경계했다. 제법 사용하지 않았는지 먼지가 쌓여있기는 했지만, 잘 정돈돼 있다.

뛰어난 궁수이자 진입조의 조장인 이기준의 지시에 따라 열댓명의 헌터는 진형을 유지한 채 조심스레 길을 걸었다.

던전과는 또 다른 미지. 어디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무작위로 생성된 던전과는 달리 인간이 만들었을 이 아지트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이상,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무게중심을 앞으로 한 채, 바닥을 쓴 이기준의 눈에 꼬리의 흔적이 보였다. 쌓인 먼지가 발자국 모양으로 흩어져있다. 거기에 언뜻 묻은 흙 알갱이까지 보이니 확실하다. 분명 얼마 되지 않은 것. 끄덕인 그가 수신호를 보내자 헌터들이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빠르게 걷는 속도로 나아가면서도 사주경계가 이루어지고 이기준은 몇 개인가 있던 트랩을 신속히 해제해갔다. 벽에서 힘없이 화살이나 창이 떨어지고 깊은 구덩이와 부비트랩이 드러난다. 뛰어난 궁수는 일행을 선도할 수 있단 걸 증명하는 셈.

처음으로 고위 헌터들만 모인 수준 높은 팀을 겪으며 이은하는 부담을 느꼈다. 과연 자신이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클랜장님은 그렇다 치고, 1팀에는 환영의 나비님이 계시니 괜찮을 테지만… 만약 여기서 자신이 실수한다면 하는 부담감.

이윽고 건물 내부의 몇몇을 포착한 이기준이 수신호를 보냈다. 궁수들의 시위가 조용히 당겨짐과 동시에 전사들이 칼을 들어 올리며 기척을 죽이고 나아갔다.

침입이 발각되면 적은 모종의 조치를 할 터. 들키지 않는 건 헌터, 사냥꾼의 소양이었으니.

침묵 속에서 빛살처럼 날아든 화살이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정확히 머리를 꿰뚫었다. 후두부에서 미간을 관통한 화살을 본 이은하는 소리 지를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사람이 죽는 걸 보는 게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건…… 심호흡하며 자신을 다스린 이은하는 백록의 말을 떠올렸다.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자. 앞을 읽고 움직이면 괜찮다고. 환계에서 배운 것들을 떠올리며 이은하는 팀원들과 발을 맞췄다.

머잖아 더 깊숙한 곳에서 말단과 꼬리가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아마 여기가 아지트의 끝인 모양. 알파의 말대로라면 아지트를 폭파할 수 있는 장치가 있다고 했다.

주의해야 할 건 바로 그것. 이기준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이은하는 꼴깍 침을 삼켰다. 그가 입모양으로 묻고 있다. 버튼을 누르지 못하게 할 수 있겠느냐고.

잠깐 불안이 엄습했지만,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해야만 한다는 걸 자각하고 이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면 차라리 오지 않는 게 나았을 테니까. 침착하게 생각해 보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야.

각오를 다진 순간, 이기준이 시위를 놓았다. 소리보다 빠른 화살이 순식간에 꼬리의 머리를 꿰뚫었다. 자신이 나설 것도 없이 즉사했다고 생각한 이은하는 그게 오산이었음을 알게 됐다. 도대체 무슨 집념인지 모르겠지만, 기어이 손이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Distort!"

다행인 건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영창을 외워버렸다는 점. 꿈틀거리던 손가락이 왜곡된 공간에 휘말려 있을 수 없는 방향으로 수십 바퀴나 비틀렸고 곧 그 자리에 누워 쓰러졌다. 확인사살할 때까지 움직이지 않은 걸로 보아 아마 죽기 전 반사적인 반응이 아니었을까. 그 무시무시한 집념에 손이 다 떨리는 것 같았다.

아슬아슬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손가락이 버튼을 눌렀을 테니까. 이은하가 가슴을 쓸어내린 것과는 달리 클랜원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전등이 흔들리며 빛이 꺼졌다가 밝혀진다.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몇 번이나 울려 퍼진다. 머리가 상황을 따라가지 못했다. 분명, 분명 막았는데? 실수 안 했는데…?

"한 놈 더 있다!"

그 의문은 곧 해소됐다. 급히 뛰어가는 발소리가 있었으니까. 애초에 폭파 장치도 하나가 아니었다는 뜻. 미친 듯이 흔들리는 지하에서 이기준이 급히 소리쳤다.

"달려!"

***

간부, 뛰지 않는 심장을 처리한 홍유리가 늑대를 찾으러 갔을 땐 페리가 마중나와 있었다. 가지 말라고 만류하는 페리에게 기시감을 느낀 홍유리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지금 페리는 알파가 아니라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안 보는 게 낫다는 뜻이리라.

머잖아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저편에서 늑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은 모습에 혹시나 하는 불안마저 씻겨나갔다.

"끝났어?"

늑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는 충분히 캐냈다. 다만…… 그게 사실이라면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살려뒀나?"

"엉. …아마도?"

스스로 확신하지 못한 듯 애매한 대답. 그녀 다운 모습에 늑대는 픽 웃어버렸다.

"근데 기계 아냐? 의미 있어?"

기계가 고문 같은 걸 한다고 불겠느냐는 말에 늑대는 고개를 주억였다.

"괜찮다. 완전히 기계는 아니니까."

완전한 기계라면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리 없으니까. 개조 키메라, 뛰지 않는 심장. 생전에 마법사였던 이를 키메라화하고 개조했을 뿐.

물론 그래도 가능하다는 확신은 없지만 같은 간부라면 어느 정도 정보는 쥐고 있을 터. 게워내는 위장이 죽기 전에 토해낸 정보와 대조해봐야만 한다.

광휘가 마지막으로 알아낸 정보― 놈들이 무리해서라도 그를 처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정말 사실인지를.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면 여기서 시간을 지체할 순 없다. 결국 놈들도 미끼에 불과하다는 뜻이었으니.

***

안쪽에서부터 연쇄적으로 폭발하는 가운데, 뛰어봤자 늦을 거란 걸 깨닫고 여명의 클랜원들이 이를 악물었다. 그 순간, 기적처럼 이어지는 영창.

"Le, Levitation!"

달리고 있던 여명의 클랜원들의 몸이 두둥실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냐는 반문이 돌아오기 전에 이은하는 급하게 소리쳤다.

"스크롤! 스크롤요!"

마력이 담긴 말에 홀린 듯 파우치를 열어 블링크 스크롤을 찢은 클랜원들의 머리가 어느새 높은 천장에 부딪쳐있었다. 폭발이 코앞까지 닥쳐왔다. 화끈한 열기에 눈을 부릅 뜬 순간, 빛무리에 휩싸인 그들의 모습이 꺼지듯 사라졌다.

…….

다음 순간, 여명의 전원은 발아래가 울리는 것에 침을 삼켰다. 아지트 바닥에서는 거리가 닿지 않았지만, 천장에서라면 스크롤의 거리가 닿았던 것. 위급한 순간에서 떠올린 기지가 목숨을 구했다 할 수 있으리라.

"……!"

물론 피해가 없는 건 아니다. 다행히도 사망자는 없는 모양이었지만 심한 화상을 입은 이들이 있었으니까. 애초에 죽지 않은 게 기적이겠지만…

"잘 했다."

"…하지만."

"상심하지 마. 못 찾은 건 네가 아니라 내 잘못이니까. 아마 은신이라도 있었나 보지. 거, 괜찮슴까?"

심한 화상에도 불구하고 클랜원은 일그러지게 웃었다.

"존나 따뜻하네요."

그럴 리 없을 텐데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그 태도에 되려 멍해진 건 이은하였다.

"아무튼 잘했다고. 저거 봐."

은신을 가졌을 거라던 탕아의 조직원이 우택의 발아래 깔려 끙끙대고 있었다. 진입조와 대기조를 나눈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는 뜻. 곧 탕아의 품 속에서 잘린 손가락들이 튀어나오자 이은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십중팔구는 광휘의 것이리라. ……아이러니하게도 잘린 손가락을 보고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상황 종료!"

일단은. 이다음은 놈을 신문하고 나서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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