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9화 〉 #100.5 백소율
[주의! 눈살 찌푸리실 수 있는 수간 성애 요소가 있는 씬입니다]
[#.5 파트는 읽지 않으셔도 무방한 파트들입니다. 본편 스토리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으니 싫어하시는 분들은 뒤로 가기나 다음 화를 눌러주세요!]
***
쿵쿵 뛰어대는 심장이 두근대서 터질 것만 같다.
흘러내리는 온수에 몸을 맡기고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었다. 기대와 상반되는 두려움이 남아있다. ……너무 서둘렀을까? 혹시 헤프게 보이진 않았을까?
이런저런 고민은 있지만 무엇보다도 방법을 모른다. 자기가 바란 주제에 아무것도 모르는 걸 싫어하진 않을까. 그래도 오늘만큼은 꼭 같이 있고 싶었다…….
게다가 선생님에게 이미 선수를 뺏겨버렸으니까. 이렇게라도 뒤쫓아 가야만 한다.
손잡이를 잡은 채 망설이던 백소율은 아주 조금 문을 열었다. 겨우 욕실 문 하나를 두고 그가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이제까지 붙어있던 게 부끄러워진다.
그래도…
샤워를 끝내고 용기를 내 문을 열었을 때, 백소율의 시선에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알파의 모습이었다. 겨우 수건 한 장으로 몸을 가린 백소율은 터질 것만 같은 심장을 애써 억눌렀다.
"……."
같은 침대에 앉아 있으니 평소와는 다르게 그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다. 생각과는 달리 뻣뻣이 굳은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자기 몸이 아닌 것처럼.
"……!"
이 앞에 하게 될 일을 생각하자면 눈앞이 핑핑 돈다. 가파른 숨이 과호흡을 부르기 직전, 어깨에 닿은 촉수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
"……?"
"꼭 해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
겁먹었다고 생각한 걸까? 백소율은 머리를 흔들어 부정했다.
"그런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 이 순간이 오기만을 늘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그를 생각하며 혼자 위로한 적도 있었을 정도로. 한참이나 눈을 마주한 알파가 낮게 말했다.
"……알겠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모습이 변해가자 백소율은 동그랗게 눈을 떴다. 그건 단 한 번도 보인 적 없던 모습. 종종 모습을 바꾸는 건 보았지만…
"……!"
사람의 형상을 취한 건 처음이었다. 자유자재로 변할 수 있단 건 알았지만 설마…
정리되지 않은 머리카락. 선이 굵은 외모가 이전의 야성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침을 삼킨 백소율은 그 모습에 어떤 의문을 느꼈다.
손이 어깨에 닿자, 의문점을 입 밖으로 꺼내어 말했다.
"혹시… 선생님과는 그렇게 하신 건가요?"
***
백소율의 눈동자에 어떤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했느냐― 늑대, 아니 알파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실수라도 한 걸까? 아니, 그녀의 두 눈에 담긴 감정을 실망이 아니라 기대였다.
……왜? 모르겠다.
"혹시, 그 모습으로 하신 건가요?"
부끄러움을 애써 누른 백소율이 좀 더 확실하게 물어오자 알파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그래도 늑대의 모습으로 몸을 겹치는 건 실례였으니까.
"여태… 계속이요?"
눈동자에 담긴 기대가 목소리에도 번지자 알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자, 눈에 띄게 화색을 띤 백소율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신경 써주실 필요 없어요. 전, 선생님이랑 다르니까요."
의도적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숨을 불어넣으며 속삭여왔다.
"그렇게 이기적이지 않아요."
조용한 방 안에 그녀의 목소리만이 울려 퍼지자 알파는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 눈에 담긴 것은 여전한 열망. 그게 의미하는 건 명백했다.
"사람이건 아니건 중요하지 않아요."
스르르 풀려나가는 하얀 수건 너머로 실루엣만 보이던 그녀의 나신이 드러나자 알파는 말을 잃었다.
"그런 이유로 당신을 사랑하는 게 아니니까요."
하얀 수건보다 더 하얗게,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언제나처럼 자신을 끌어안아가는 손길에 알파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은은한 비누 향 속에서 그녀의 체온을 느끼며, 알파는 다시 늑대로 되돌아왔다.
"사랑해요…… 사랑해 주세요."
그녀가 그러기를 바라고 있었으니까.
***
검은 늑대의 모습으로 되돌아오자 백소율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벌렸다. 평소에 취하던 작고 귀여운 강아지와는 다르다. 그렇다고 테헤란에서 보았던 그의 커다란 본신을 드러낸 건 아니다.
그것은 검고 커다란 늑대의 모습이나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아니, 지금과는 달랐다.
붉은 눈동자가 자신을 보자 백소율은 숨을 삼켰다. 이것마저 배려라는 걸 알 수 있었으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을 구해줬던 그때 그 모습. 그림자를 다루는 늑대의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아……"
깊은 곳에 고이 간직해두었던 그 감정이 흘러나와 자신을 적셨다.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모습에 그 때로 되돌아간 것만 같았다.
"백소율."
"……네."
긴장이 역력한 표정으로 한 박자 늦게 돌아온 대답에 알파, 아니 늑대는 잠깐 뜸 들이듯 생각했다.
……정말 이게 옳은가 하고서.
사람의 형상이 아니라 늑대의 모습으로 그녀를 사랑하는 게 옳은 걸까. 하지만 누구보다도 그녀가 바라고 있다.
백소율은 자신이 어떤 모습이건 상관없이 사랑한다고 했다. 사랑해달라고 했다.
그렇다면, 자신도 마찬가지여야만 한다. 그녀의 마음에 보답해야만 한다. 윤리적인 문제나 그 외의 것들을 전부 잊어버리고 늑대는 지금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미 감정에 맡기기로 했으니까.
중요한 건 그녀를 안고 싶은가 아닌가. 그 대답은 당연히 후자였다.
"괴로울지도 모른다."
"상관없어요."
"아플지도 몰라."
"괜찮아요."
"참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녀의 입술이 코 끝에 닿아 말을 끊었다. 금방 떼어진 입술 위로 그녀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사랑해요."
진심이 담긴 한 마디에 늑대는 남은 망설임을 집어던졌다.
***
망설임을 던졌다고 해도 배려가 사라진 건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대로 그녀와 하나 될 순 없다.
그러기 위한 준비, 전희가 필요하다. 촉수를 뻗은 늑대는 침대에 걸터앉은 백소율의 어깨를 잡고 조심스레 눕혀주었다.
"……."
서로 시선을 마주한다.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그녀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늑대는 아래로 눈을 내렸다.
처음으로 보는 그녀의 나신. 길게 늘어뜨린 검은 머리카락 때문에 백옥처럼 새하얀 피부가 더 부각돼 보인다. 얇은 허리는 잡기만 해도 부서질 것 같다.
특히 늘 두꺼운 옷에 가려져 있던, 생각보다 자기주장이 강한 가슴. 시선을 빼앗긴 늑대는 그 끝부분을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지만, 금세 모습을 감추었다.
"그, 그렇게 보시면…"
새하얀 손으로 가리고 있다. 홍조 띤 얼굴이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돌린다. 아까 자신에게 속삭이던 모습은 어딜 갔는지 안절부절하지 못하자 늑대는 촉수로 백소율의 뺨을 쓰다듬었다.
"걱정하지 마라."
수십 개 촉수가 그녀의 나신에 닿자 짧은 탄성이 터져 나온다. 놀란 것처럼 입을 틀어막은 백소율의 눈이 휘둥그레 떠지자 늑대는 막지 않고 하얀 나신을 이곳저곳 더듬었다.
"……!"
억눌린 신음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오자 스스로 놀랐는지 눈동자가 이리저리 방황한다. 갈팡질팡하던 백소율에게 길을 알려주듯 들리는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참지 않아도 된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붕붕- 고개 젓는 백소율을 보고 늑대는 어떤 생각이 들었다. 늘 원해왔던 건 그녀였다. 그런 만큼 이번엔 알게 해주고 싶었다. 그녀만이 아니라 자신도 그녀를 원하고 있음을.
부드러운 피부를 타고 촉수를 이리저리 움직인다. 약한 전기라도 통하는 듯 그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조금씩 이성의 끈이 풀려가며 늑대는 깊은 곳에 생겨나는 욕망이 솟구침을 느꼈다.
……원한다. 좀 더 그녀를 원한다.
가슴을 가린 손을 촉수가 붙잡았다. 떨리는 눈동자가 불안한 듯 마주 해오다가, 서서히 그 손이 떼어졌다.
그러자, 늑대는 다시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갈증을 느꼈다.
목이 타는 게 아니다. 좀 더 추상적인 것이 타오르고 있다. 얼른 하나가 되고 싶다고 감정이 소리 지른다.
드러난 쇄골을 타고 내려간 손길이 가슴에 닿자 늑대는 이루 말 못 할 감정을 느꼈다. 짜릿한 감각이 전신을 휘감아 뜨겁게 달구어간다…… 고작 모습이 변했을 뿐인데 사람의 형상보다도 갈망을 참는 게 어렵다.
그 첨단을 희롱하며 늑대는 어딘가에 피가 쏠리는 것을 느꼈다.
"……읏."
약한 신음이 흘러나오자 놀랐다는 듯 다시 입을 가리려 하는 손을 붙잡았다. 그러자, 어찌할지 모르는 것처럼 눈동자가 방황한다. 입술을 깨물어 밀려드는 쾌락을 참으려던 백소율은 그것마저 하지 못했다.
어느새 늑대의 촉수가 입안으로 들어와 있었으니까. 그러지 말라고 애원하는 촉촉이 젖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늑대는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사랑한다고. 혀를 내민 늑대는 백소율의 귀를 핥았다.
"…아, 아…!"
소리가 전부 사라진 것만 같다. 까끌까끌한 혀가 집요하게 귓속을 파고들어 핥자 백소율은 몸을 떨었다.
입 안과 가슴을 희롱당하며 처음 느껴보는 감각을 애써 참아야만 했다. 혼자 했을 때와는 전혀 달라서, 밀려드는 파도에 어디론가 떠내려갈 것만 같았다.
그런 그녀를 보며 늑대는 분홍색 첨단을 매만졌다. 누구도 손댄 적 없는 나신을 더듬으며 그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고. 물들이고 말리라 맹세했다.
쾌락에 젖은 눈동자 끝으로 고인 눈물을 핥은 늑대는 더 많은 촉수를 뻗어 그녀를 희롱했다.
부드럽고 새하얀 피부. 부서질 것처럼 얇은 허리. 황홀에 물들어가는 얼굴.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 기다란 손가락과 수줍게 드러난 가슴. 이 모든 게 자신의 것이라고. 누구에게도 주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늑대는 그녀의 허리를 쓸어내렸다.
허리 라인을 타고 내려간 촉수는 땀에 젖은 피부를 타고 올라와 다리와 골반 사이의 경계에 머물렀다.
"아…"
탄성을 지르는 백소율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간다. 아까의 탄성은 누가 들어도 아쉬워하는 목소리였으니까.
점점 내려가는 촉수에 몸이 뻣뻣해지다가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게 밀려드는 쾌감. 입안으로 들어온 촉수가 곳곳을 희롱하고 있었다.
잇몸과 이빨, 입천장을 가리지 않고 곳곳을 누빈다. 부드럽게 쓰다듬는 촉수가 여태 상상해본 적도 없는 결이 다른 쾌감을 안겨다 준다. 마침내 그것이 혀를 희롱하자 백소율의 눈동자는 완전히 풀려버리고 말았다.
***
"하아… 하아…"
숨이 거칠어진다. 날숨이 촉수에 닿아 젖게 만든다. 입안이 엉망진창 녹아내려 전혀 다르게 된 것만 같았다. 아까 속삭이던 사랑한다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안팎으로 희롱당하던 백소율은 그가 자신을 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 또한 마찬가지로.
잇몸을 훑던 촉수를 혀로 붙잡았다. 잠깐 놀란 듯 멈춘 촉수는 자신에게 호응하듯 서로를 탐했다. 타액에 젖으며 미끄러지면서도 놓지 않는다.
그러자, 백소율은 알 수 있었다.
이건 분명히 키스라고. 그와 마음이 통하고 있는 거라고. 가슴을 비롯해 이곳저곳을 셀 수 없는 촉수에 희롱당하며 몰려드는 쾌감은 자신이 그를 사랑하는 만큼 더해졌다.
이상해질 것만 같은 기분에 뇌가 황홀로 물들어간다. 좀 더 원한다. 그 감정을 알리듯 백소율은 갈 곳 잃은 손으로 그의 목을 둘렀다.
검은 털이 만져진다. 양손을 뻗어 안은 그의 목. 머리가 가까워오자 백소율은 그의 품에 고개를 파묻었다. 언제나처럼 느껴지는 안심감. 두근거리는 고동소리를 느끼다가, 어느샌가 그의 손길이 자신의 비부에 닿아있음에 동그랗게 눈을 떴다.
"…사랑한다."
"사랑해요…"
그러나, 속삭이는 말에 부끄러움은 사라졌다. 자신의 손과는 전혀 다른 손길이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자 억누르지도 못한 신음을 내질렀다.
그 신음을 입안의 촉수가 희롱해 삼켰다. 아래 위로 전신을 그에게 맡긴 백소율은 더 큰 열락에 젖어가기 시작했다…….
***
좁은 틈새로 파고든 촉수가 누구도 탐한 적 없는 그녀의 안을 파고들었다. 달아오른 내부에 녹아버릴 것처럼 뜨겁다. 촉수를 빼냈을 때, 늑대는 그것이 흠뻑 젖었음을 알았다.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베개로 얼굴을 가린 백소율. 머리칼을 쓰다듬자 조금씩 베개가 내려왔고 젖은 눈동자만 간신히 보이게 됐다. 그렇게 눈을 마주친 그대로 그녀에게 물었다.
"아플 거다."
"……네."
"꼭 참지 않아도…"
백소율은 격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싫어요. ……사랑하니까요."
흠뻑 젖어있는 눈동자가 이미 준비가 끝났다고 말하고 있다. 늑대는 긴 숨을 내쉬었다. 한숨이 아니라 격정으로 달아오른 뜨거운 숨결이 얼굴에 닿자 백소율은 미소 지었다.
서로가 서로를 원하고 있다면 말은 필요 없으니까.
뻣뻣하게 선 늑대는 앞발로 침대에 누운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두르고 전신을 희롱하던 촉수는 백소율을 받쳐주었다.
이미 피가 쏠려 한계까지 부풀어오른 자신의 것이 더없이 커져 그녀의 피부에 닿았다. 굳게 닫힌, 그러나 촉촉이 젖어있는 틈새와.
"……!"
놀라 고개 든 백소율은 그것을 보았다.
자신을 원하고 원해서 붉게 달아오른 늑대의 그것을. 자칫하면 자신의 손목보다 굵은 게 아닐까 싶은 그것을 보자 두려움이 밀려왔다.
가빠지는 숨. 백소율은 머릿속으로 상상해봤으나, 자신의 틈새로 저게 들어온다는 걸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꽃잎처럼 맞물린 틈새를 비집고 그가 자신의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침내, 하나가 되어간다.
***
넣을 수 있을까. 이대로라면 무리일 것 같다. 아무리 젖어있어도 한계가 있다. 틈새에 자신의 것을 비비던 늑대는 크기를 조절하려다 자신의 끝부분이 멋대로 파고들자 놀라고 말았다.
아니, 자신이 파고든 게 아니다. 수줍게 열린 틈새가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얼른 들어와달라고 끌어당기고 있었다. 조금씩 미끄러지듯 삼켜져간다. 움직이지 않아도 그녀의 안이 자신을 당기고 있다.
"……!"
사정없이 조여들던 홍유리의 그것과는 달리 부드럽게 감싸며 당긴다. 젖은 액체가 기름을 붓듯 부추기고 있었다. 순식간에 사정감이 차오른다.
하지만 그걸 제지라도 하듯이 더 좁아져간다. 흥분을 이기지 못한 늑대는 허리를 밀어 넣었고 그러자 좁아진 틈새가 더 깊은 곳까지 자신을 안내했다.
"……읏!"
아까와는 다른 신음- 열락이 아닌 고통에 젖은 억눌린 소리에 늑대는 번쩍 정신 차렸다. 얼굴을 가린 베개를 치우자, 눈꼬리 끝에 눈물이 맺힌 그녀가 애써 웃고 있었다.
"괜찮아요."
웃으면서, 배려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사과해야 한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말문을 잃은 자신을 반대로 위로하는 것처럼 그녀의 가녀린 손가락이 코끝을 쓰다듬었다.
"괜찮아요……"
참지 말라고 했다…… 그런 주제에 흥분에 겨워 아픈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 사랑한다고 말했으면서 배려하지 못했다.
참게 만들어버렸단 사실에 늑대는 이를 악물었다.
처음이었다. 무서웠을 거고 두려웠을 거다. 그런데도 자신을 배려하고 오히려 위로하고 있다.
물밀듯 밀려오는 후회와 죄책감이 열락을 씻어내렸다.
"나는…"
좀 더 배려할 수 있었을 거다. 그런데 혼자 조급해져 아픈 경험을 시키고 말았다. 그 죄책감이 좀먹어간다. 여전히 틈새에 들어가 있는 자신의 것에 붉은 선혈이 묻어 나온다.
"괜찮아요…"
오히려, 백소율은 파과의 고통을 참으며 자신에게 팔을 둘렀다. 그렇게 끌어안은 채 얼마나 지났을까. 이어진 그대로 열기가 다소 식어버렸다. 역시 무리였다고 생각한 늑대는 그녀의 틈새에서 빠져나오려 했으나, 코끝에 닿은 입술의 감촉에 굳어버렸다.
"미안해요. 놀라게 했나요?"
"……."
"이제 괜찮아요…"
늘 그랬듯 자신을 쓰다듬는 손. 그날 이후, 늘 자신만을 바라보던 눈동자. 또한, 늘 사랑을 속삭이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계속해 주세요."
부드러우면서도 반론은 받지 않겠다는 듯 단호한 말. 아직 거친 숨을 뱉으며 백소율은 자신의 아랫배로 손을 옮겼다.
맞지 않는 크기에 볼록해진 아랫배. 그 너머로 그녀의 손길이 마치 자신을 이끄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서요."
재촉하는 목소리에 늑대는 작게 끄덕였다. 또 실수를 범할 순 없다. 천천히 그녀의 안에서 움직이며 더 깊은 곳을 탐해나갔다.
누구도 닿은 적 없고 누구도 닿을 일 없는 오로지 자신만의 것. 아픔 섞인 소리가 달아올라 녹아갈 때까지 늑대는 천천히 그녀의 안을 왕복했다.
탐하고, 탐하며 늑대는 다시 격정이 치솟는 걸 느꼈다. 고작 그 사이에 밀려났던 열락과 흥분이 다시 샘솟아 올랐다.
미끄러지며 살과 살이 부딪친다. 끌어안은 손에 촉수를 뻗은 늑대는 백소율의 전신을 안팎으로 탐하고 원했다.
입안을, 가슴을, 허리를, 쇄골을, 다리를, 골반을, 엉덩이를 매만진다. 수십 개의 손. 그토록 원했던 알파에게 힘껏 안긴 채 백소율은 황홀 속에 녹아들어갔다.
그런 그녀를 보며 늑대는 새삼 그녀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에 지지 않겠다는 듯 격해지는 움직임이 쾌락의 파도를 불러왔다.
격해지는 감정과 쾌락이 서로를 부르고 드높인다. 순환의 고리에서 늑대는 마침내 그 순간이 찾아오고 있음을 느꼈다.
커다란 침대가 쉴 새 없이 삐걱이고 들썩인다.
동작이 커지고 그녀의 안이 계속해 끌어당겼다. 여기가 아니라고 더 깊이 다가와달라고. 결국 뿌리 끝을 조금 남기고 파고들어 그녀의 끝을 두드렸다.
쿵쿵, 들어올 수 없는 곳을 두드리자 서서히 열려가기 시작한다. 늑대는 허리를 흔들었고 백소율은 달뜬 숨과 신음을 내뱉었다.
하염없이 서로를 원하고 원하며 열락과 쾌감에 고통 따위는 진작 잊히고 만다. 그리고 마침내,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열려선 안 되는 곳이 반기며 완전히 들어가지 않았던 늑대의 것을 뿌리까지 완전히 집어삼켰다.
침대 시트를 찢어버릴 것처럼 움켜쥔 백소율은 더 이상 신음을 참지 않았다. 격정에 젖은 그녀의 목소리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온다.
열락의 도가니. 그 속에서 늑대는 차오른 감정을 애써 억눌렀다. 하다못해 빼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말라는 것처럼 그녀의 안이 붙들어 놓아주질 않았다.
무엇보다도- 사정을 위해 지금까지보다 부풀어 오른 자신의 것이 백소율의 아랫배를 터뜨릴 기세로 가득 차 있었다. 억지로 빼내는 것보다도 그 순간은 빠르게 찾아오고 말았다.
"……!"
"―――!"
둘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 너머로 나아가고 말았다. 본능에 의해 터져 나온 정이 그녀의 가장 깊숙한 곳을 새하얗게 물들였다.
주륵- 이미 가득 차 있던 애액을 밀어내고, 투명한 것과 하얀 것이 섞인 액체가 그녀의 비부로부터 흘러나왔다. 틈새 사이로 맺힌 액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몇 번이나 사정하며 정을 토해낸다.
그럼에도 휴식의 순간은 찾아오지 않는다. 어느샌가 자신의 것이 움직이고 있다― 아니, 자신만이 아니라 그녀 또한 원하고 있었다.
아름답게 뻗은 다리가 자신의 허리를 감쌌다. 하나가 된 그대로 늑대와 백소율은 서로를 고정한 채, 씨를 토하고 받으면서도 조금씩 움직여갔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그리 시키고 있었다. 질벽이 따뜻하게 감싸오며 녹여대자 말과 이성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앗, 앗, 앗…… 아읏!"
경험한 적 없는 게 자신을 물들여간다. 그런데도 두려움보단 기쁨이 앞선다. 감정을 확인하고 사랑을 나누며 백소율은 깊은 황홀감을 느꼈다.
그 황홀의 작은 부분에는 저열한 감정도 깔려있었다. 선생님은 하지 못한 걸 자신이 먼저 했노라고. 그 저열한 감정이, 승부욕이 정신적 쾌감을 한층 더 고조시켰다.
아랫배를 더듬으며 자신의 안에 가득 들어찬 그의 것을 쓰다듬었다.
"아아……"
너무나 소중하다는 듯이, 백소율의 눈이 감정에 젖어갔다.
더 이상, 이성은 남아있지 않다.
본능에 맡긴 채 몸을 섞는다. 여기에 있는 건 그저 수컷과 암컷. 서로를 원하는 두 짐승이었다.
***
밤의 연회는 날이 밝아올 때까지 계속됐다. 젖은 신음과 후끈한 열기가 방 안을 가득 채운다. 이미 지쳐 녹초가 된 백소율은 그럼에도 늑대를 거부하지 않았다.
허용량을 넘은 쾌락이, 찾아온 황홀이 머리를 이상하게 만들어갔다. 원하고 탐하고 몸을 섞고 있음에도 갈망은 오히려 커져만 간다.
"하, 하읏…!"
입안을 유린하는 촉수. 가슴을 희롱하는 손길. 그 첨단을 핥는 까끌까끌한 혀에 백소율은 녹아내린 그대로 또 한 번의 절정을 맞이했다.
"하아… 하…"
이번이 몇 번째더라? 20번 이후로는 세지 않았다…… 중독될 것만 같은 감각에 쾌락에 젖은 백소율은 머리가 멍해지는 걸 느꼈다.
서서히 자신이 멀어져 가는 기분. 너무 과한 쾌락에 마비된 이성이 가라앉다 못해 침몰하기 시작한다. 침대 시트는 이미 찢어져 엉망으로 너덜거리고 있었다. 침대 위만이 아니라 흐를 대로 흐른 정액과 애액이 멋대로 섞여 물들였다. 바닥까지 토해낸 아직 증발하지 않은 정이 있었던 일을 추측하게 만든다.
방 안은 후끈해질 대로 후끈해져 있다. 하염없이 사랑을 나눈 결과, 백소율은 조금씩 밝아오는 햇살을 보며 늑대를 끌어안았다.
그렇게 얼굴을 묻고 몸을 맡긴 채,
"……사랑, 해요."
마지막으로 사랑을 속삭인 백소율은 그 품 속에서 새근새근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