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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240화 (240/407)

〈 240화 〉 #101 준비 (2)

이래저래 멀리 돌아왔지만, 이제 슬슬 끝이 다가온다.

이란보다 서쪽에 있음에도 북쪽 끝에 있어 역병의 무리에 멸망하지 않은 가장 북서부의 땅인 항구도시 무르만스크. 이 땅에 놈들의 아지트가 있다. 끝이라고 단언할 순 없겠지만, 여태 밝혀진 것 중에선 마지막. 이것만 끝내면 돌아갈 수 있다…….

싸늘한 추위에 옷깃을 여민 홍유리가 숨을 내쉬자 이상할 정도로 추운 날씨에 얼어붙은 입김이 새어 나왔다.

"……."

입안의 침도 어는 듯한 기분. 자신이 이 정도인데 다른 이들은 어떨까. 하나같이 좋은 표정은 아니다. 헌터도 아닌데 이 땅에 살아가는 이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만큼이나.

"날씨 미쳤나 진짜."

3월의 날씨, 영하 16도. 하지만 쌩쌩 부는 찬바람에 실제 체감 온도는 영하 20도를 훌쩍 넘어있고, 수분마저 얼어붙어 서리 낀 바닥은 매 걸음을 조심해야 할 만큼 미끄럽다.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날씨에 홍유리가 투덜거리자 고원의 클랜원들은 어색하게 웃었다.

동감이었으니까. 이제 마지막. 마지막 아지트인데 이 망할 러시아 최북단의 땅에는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다.

"조심하게. 십중팔구 그가 있을 테니."

어디에서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아예 손을 털고 도망친 게 아니라면 마지막 아지트인 이곳에 있으리라.

무슨 수작을 부렸을지 모른다. 놈들이 얼마나 득실거릴지 모른다. 그리고 잠깐의 수색 끝에 마침내 아지트의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창선과 시선을 마주한 홍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릎 꿇은 그녀의 손이 바닥에 닿자, 얼음은 녹아 물이 되고 수증기로 증발해갔다.

순식간에 얼어붙은 땅이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른다. 녹아버린 땅 위에 훈기가 돌아 날씨가 바뀌었음에도 고원의 클랜원들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손바닥을 타고서 그 아래, 넓은 공간으로 침투한 미증유의 마력이 샅샅이 훑기 시작한다.

대마력과 용혈을 가진 지금의 홍유리에게 칠영웅이나 스퀘어 마스터 클래스가 아니라면 대항하는 건 불가능하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면 가능하다는 뜻.

"……!"

자신의 마력이 씻은 듯 사라지자 홍유리는 크게 눈을 떴다.

"있습니다."

강훈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의 놈들에게 그만한 전력이 더 남아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조심스레 아지트의 입구로 전진해 들어간 순간, 설치된 함정들이 눈에 익게끔 보여왔다.

궁수와 안목 스킬을 가진 이들이 선도해 길을 뚫는다.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걸음에 망설임은 없다.

부비트랩을 포함한 온갖 함정에 걸리는 이 없이 빠르게 전진한 결과 채 5분도 걸리지 않아 막다른 길까지 도착했다. 다만, 문제는 여태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것.

"……찾아보게."

이미 몇 번인가 아지트를 급습해 처리한 만큼 놈들이 도망칠 굴을 파두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창선의 말에 따라 이곳저곳을 뒤져봤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

곳곳에 아직 남아있는 온기는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홍유리 자신이 가진 추적의 마안이 놈들의 흔적을 알리고 있다.

아까까지만 해도 분명히 있었다고. 하지만 씻은 듯 사라져 그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게 가능한 방법은 딱 하나.

"스크롤인가."

창선의 중얼거림에 홍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침묵하는 입이 놈들의 간부… 아니, 만상의 주인이 수장인 이상 스크롤 따위야 얼마든지 가지고 있었으리라.

"도망쳤다?"

그 이유는 짐작이 간다. 불리하다고 여기면 충분히 그럴 수 있으니까.

문제는 쫓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점. 홍유리의 손이 벽면을 쓸었다. 아직 남은 온기로 보건대, 아마 아지트에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을 거라 여겨진다.

도망친 게 강훈이라면 이미 늦었다. 스크롤로 도망쳤으니 흔적을 다시 찾는 게 쉽지는 않을 테고, 쫓아봤자 스크롤이 더 있다면 잡는 건 요원하리라.

다만, 그렇다면 어째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을까. 어차피 도망칠 거라면 마력을 걷어낼 필요는 없었다. 마력이 덮기 전에 조용히 스크롤을 사용했다면 아예 모를 수도 있었다. 실제로 입구 근처를 감시하는 카메라도 있었으니까.

홍유리는 이같은 의문점을 일행에게 알렸다.

"자네 말이 맞네."

자식을 잃었음에도 창선은 냉정한 판단을 내렸다. 홍유리의 말이 옳다. 강훈인지 아닌지 확신할 순 없으나 그 행동은 수상하다.

"……일단 빠져나가세. 언제 또 폭파할지 모르니."

여태 그래왔으니까. 스크롤을 가진 한둘만 남아 아지트 내부를 수색하게 하고 남은 인원들은 다시 입구로 빠져나왔다.

"쫓을까요?"

"가능하겠나?"

묻는 말에 홍유리는 솔직히 자신할 수 없었다. 애초에 강훈 정도 되는 이가 마음 먹고 홀로 도망치려고 하면 잡을 방법이 없으니까. 흔적을 쫓는 건 차치하고서라도 쫓는 것보다 도망치는 속도가 훨씬 더 빠르다.

어설프게 포위망을 형성해봤자 각개격파당 할 뿐이리라.

"……계속 쫓거나 돌아가거나 선택은 둘 중 하나겠군."

솔직히 말해 답은 정해져 있다. 변절자들을 뿌리 뽑는 것도 좋지만, 무리해서 반격당할 순 없다. 게다가 이제 더는 놈들의 아지트가 남은 곳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니까.

"이렇게 도망치는 건 오히려 쫓아와 보라고 꼬리를 흔드는 것 같은데… 일단 기다려보세."

정말 기습이라도 준비했을까. 아지트 내부를 수색하던 인원이 밖으로 나온 건 그로부터 10분이 더 지나서였다.

"찾은 건 있나?"

"있습니다. 하지만…"

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면목 없다는 듯 고개 숙이던 클랜원은 푸른 가루를 내밀었다. 이게 도대체 무엇인가― 그렇게 생각하던 창선은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의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이건 마치 거대한 무언가의 비늘을 가루로 만든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러자, 직관적으로 딱 한 번 보았던 어떤 괴물의 모습이 떠올랐으나 그럴 리가 없다며 창선은 애써 무시했다.

"일단… 흔적은 찾아보고 정 안되면 연락해보세."

스퀘어와 신전을 말함이리라. 그 말에 모두가 끄덕였으나 잘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 예상대로 의문의 기척을 쫓는 건 요원했다.

***

페리와 함께 클랜 이곳저곳을 누비다가 오랜만에 이은하를 보았다. 이틀? 사흘? 못 본 사이에 녹초가 돼 힘없이 늘어져 있자 늑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나?"

"피곤해서……"

파닥거리며 날아간 페리가 테이블 위에 엎드린 그녀의 어깨 위로 기다란 몸을 둘렀다. 이제 농담으로라도 가볍다고는 말 못 할 무게에 표정이 조금 변했지만, 애써 참는 모습에 늑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요즘 안 보이는 것 같던데."

따뜻한 커피가 내밀어진다. 어떻게 했나 싶다가 얼핏 닫히는 아공간을 본 이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동전이라도 들고 다니는 것이리라. 호의를 감사히 받으며 종이컵을 당겼다.

"응… 이래저래 바빠서."

"무슨 일이라도 있나?"

"몬스터 때문에 자꾸 밖으로 가게 되네."

분명 환계가 무너져 던전이 붕괴한 영향이리라. 각 클랜이 발 벗고 나서는 모양이지만, 완전히 끝난 건 아닌 모양.

"우린 끝나긴 했는데."

그날 이후, 헌터들이 밤낮으로 움직인 결과 한국은 금세 잦아들었다. 아니, 애초에 한국에 있던 던전은 늑대 자신이 대부분 먹어치웠으니까.

남아있는 던전은 고만고만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거의 정리해놨던 한국이 아니라 외국이라면? 환계의 던전이 고스란히 풀려났으리라.

"그래서 파견이라도 다녀온 건가?"

이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원도 위쪽으로는 난리도 아니라서…"

그 말에 늑대는 끄덕였다. 압록강 너머로 간 적은 거의 없었으니까. 환계에서 보았던 용의 황무지, 서리 계곡, 화산 지대까지 생각해보면 고생하는 게 당연하다.

땅덩이가 좁은 한국이라 이런 거였지 다른 국가들이 얼마나 고생하고 있을지는 상상이 된다.

"……."

그러고 보면 전에 홍유리도 파견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아마 고원을 따라가지 않았다면 몬스터를 잡고 있지 않았을까.

문득,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주구장창 바다에만 들어갔으니까. 인근 해역은 씨가 마르고 있고 흘러들어온 몬스터라 해봤자 고만고만한 수준이라 경험치를 획득하긴 어렵다. 무엇보다, 어차피 바닷속 몬스터는 내버려 둬도 사라지지 않는다. 거기에 더해 이전과는 상황이 달라졌으니까.

강태준의 발표로 인해 자색의 흑호의 죽음과 함께 자신의 존재가 밝혀지지 않았던가. 그럼 굳이 신경 쓸 필요도 없을 터.

"그리고 고마워."

이은하의 감사의 말에 늑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생 만나줬잖아."

이은아라고 했던가. 눈을 반짝거리던 이은하를 빼닮은 모습이 인상에 남아있다.

"괜히 귀찮게 한 거 아냐?"

이것저것 물어오긴 했지만 그리 귀찮지는 않았다. 진짜 모습을 보여달라고 매달리길래 거절하기는 했지만.

"…다행이네."

가슴을 쓸어내리는 게 뭐가 그리 걱정인가 싶었다. 기껏해야 중고등 학생으로 보였는데.

"아무튼, 계속 가는 건가?"

"……아마도?"

갸웃거리며 이은하가 그렇게 답하자 늑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됐군."

기왕 밝혀진 거라면 타국을 돌아다니며 한동안 몬스터를 처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경험치를 올리기 쉬운 것도 오히려 그쪽이리라.

늑대는 혼자 생각에 고개를 주억거렸고, 마침 옥상 문이 열렸다.

"알파."

백소율이 올라오자 늑대는 길게 촉수를 뻗어 그녀를 부축했다.

"고마워요."

"더 자고 있어도 됐는데."

"잤어요."

옅게 웃으며 백소율이 맞은편에 앉자 이은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달라진 것 같은데 정확히 짚질 못하겠어서.

"오랜만이에요. 언니."

"아, 응. 오랜만……?"

먼저 인사하는 걸 어정쩡하게 받은 이은하는 묘한 위화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곤 마치 소외된 것처럼 둘만의 이야기를 꽃피워가는 걸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이상하게 친절한 알파의 태도. 평소보다 좁아진 거리감… 요 이틀간 더 친해질 일이라도 있었나?

"먼저 들어갈게요."

"바래다주겠다."

"괜찮아요. 혼자 갈 수 있어요."

한사코 거절한 백소율이 멀어지며, 자신에게 시선을 보내자 이은하는 다시 갸웃거렸다.

여전히 느껴지는 위화감… 대체 왜? 이유를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의문에 종지부를 찍듯 백소율이 서서히 멀어져가자 이은하는 그제야 알아채곤 휘둥그레 눈을 떴다.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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