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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246화 (246/407)

〈 246화 〉 #103 재앙 (3)

무르만스크 공항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많은 헌터들이 도착해 있었다. 한국을 제외하곤 대부분 환계 붕괴로 인한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텐데도. 그만큼 창선의 존재가 크고 탕아들이 증오스러운 것이리라.

"……존나 북적거리네."

그딴 건 관심 없다는 듯 시큰둥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눈을 빛내며 신기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와……!"

비행기에서 내리고 본 풍경이 어지간히 신기했던 모양. 그렇게 이국적이진 않은 것 같은데. 하기야 홍유리의 경우에는 고작 며칠 만에 무르만스크로 돌아온 거였으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일단 더 이동해야 한다. 집결지가 무르만스크일 뿐이지 고원이 실종된 도시는 여기가 아니니까. 세베로모르스크까지 아직은 좀 더 시간이 걸린다.

"하연. 도착했다. 거기는?"

[이상 없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강태준은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세간에 고원의 실종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자리를 비웠다고는 알고 있으니 거기에 더해 여명마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또 침공하면 어쩔 거냐고 불안해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있었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이미 놈들은 괴멸 상태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기껏해야 강훈과 간부 한둘 정도나 살아있을까. 아니, 홍유리의 증언대로라면 강훈 또한 이 근처에 있을 터.

아무리 여명과 고원이 빠졌다고 한들 간부 하나둘에 당할 만큼 호락호락하진 않다. 만약을 대비한다고 해봤자 겨우 그 정도. 여기까지 와서 아직 놈들에게 여력이 남아있지는 않을 테니까.

"……."

둘러본 강태준은 외투를 여몄다.

사실 창선을 비롯한 고원의 헌터들이 살아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럼에도 와야만 했던 건 강훈을 쫓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정말 만에 하나, 기적이라 불릴 만한 확률로나마 목숨이라도 붙어있다면 하는 어렴풋한 기대일 뿐이다.

"불참자 있습니까?"

수색대를 꾸린 게 강태준인 만큼 그가 수색대의 장을 맡는 건 당연한 일. 검성의 물음에 미리부터 인원 체크를 끝내놓은 2팀장 이기준이 브리핑을 시작했다.

미리부터 알고 있던 내용이기에 잠깐 한눈판 채 둘러보던 늑대는 헌터들의 면면을 둘러보았다.

"……."

"……!"

반대로 그들 또한 자신을 보았고.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은 늑대는 그들 중에 익숙한 면면을 볼 수 있었다.

레드 스퀘어와 인디고 스퀘어의 각 마스터와 후계자들. 순간, 눈을 마주친 금발 소녀가 화들짝 놀라며 스승의 뒤로 몸을 감춰 부르르 떨자 늑대는 잠깐 떠올렸다.

'도로시 A…'

아무튼 그런 이름이었는데 까먹어버렸다. 떠오를 것도 같은데 어렴풋해 기억나지 않는다. 다가온 홍유리가 발끝으로 툭툭 건드리자 늑대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왜 그러고 있어?"

그사이에 브리핑이 끝난 걸까? 아무것도 아니라며 머릴 흔들자 당연하다는 듯 자신을 들어 올렸고 늑대는 감상에 빠졌다.

부르르 떠는 도로시. 얼마 전까진 홍유리가 자신을 보기만 해도 지린 채로 기절하던 때가 있었는데……

"……."

그때가 좋은 건 아니지만, 종종 떠올려보면 재밌기는 하다. 물론 사람 앞일은 모르는 거라지만…

"왜 자꾸 그렇게 봐?"

늑대는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싱겁다는 듯 웃은 홍유리가 안아 올렸을 때,

"부팀장님!"

다가온 이은하는 홍유리의 시선을 받자마자 우물쭈물하다가 헛바람을 들이키곤 말을 고쳤다.

"아, 아니 팀장님…"

"뭐. 왜?"

가벼운 되물음에도 잔뜩 긴장한 이은하의 모습이 뱀 앞의 개구리를 보는 듯했다. 얼마나 굴렀으면 저럴까. 쭈그리가 된 그녀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결심한 듯 두 손을 내밀었다.

"무거우시죠?! 제가 안을게요!"

허리까지 숙이며 두 손을 내미는 우스운 동작에 늑대는 슬그머니 홍유리를 올려다봤고 그만 좀 괴롭히라는 무언의 시선이 전해졌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홍유리는 모로 고개를 꺾었다.

"갑자기 왜?"

"그, 그냥 그러고 싶어서요…?"

말꼬리를 흐리는 게 되레 수상해 보인다. 게슴츠레 눈 뜬 홍유리가 지그시 보는가 싶더니 머리를 주억였다.

"그래. 그럼."

간단한 승낙의 말에 늑대를 넘겨받은 이은하는 화색을 띠었다. 희희낙락 좋아하는 모습에 실소한 늑대와 함께 페리마저 옮겨붙었다.

기다란 목도리처럼 몸을 늘어뜨린 페리와 자신을 안은 이은하가 부르르 떨었다. 하기사, 여긴 아직 그럴 만한 날씨이기는 하다.

세베로모르스크까지 차를 타면 금방이겠지만, 궁수들과 홍유리가 앞장 서 흔적을 되짚고 있었다. 곧 발자취를 발견하자 그 뒤를 따라 수색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가는 길에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곧 도착한 폐허가 된 도시에서 늑대는 코를 찌르는 짠 내와 비린내를 맡았다. 이곳으로 곧장 달려온 이들도 있었는지 미리부터 수색 중인 이들도 있었다.

"앗."

이은하의 품 안에서 내려온 늑대는 가볍게 착지해 주변을 둘러보며 혜견으로 폐허에서 정보를 읽어냈다. 그러자 늑대는 지면이 조금 낮아져 있단 걸 깨달았다. 사진으로는 알기 힘들었는데 부서진 걸 제외하고도 지면 자체가 눌려있다.

그만한 힘 혹은 중량에 압박당한 것이리라. 화산각룡도 거대했지만 그 아래가 부글부글 끓는 용암. 쉽게 말해 대지가 얇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지 지면 자체에 흔적을 남긴 건 발자국 정도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존재라는 말이 새삼스레 실감 난다. 거기에 더해 인류가 바다를 포기하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이었으니까.

제법 오랫동안 수색을 개시했음에도 이렇다 할 흔적은 찾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도시가 통째로 쓸려나갔는데 뭔가가 남을 리 없으니. 남은 흔적을 발견한다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

그렇게 하루 내내 허탕을 치고서 임시 캠프를 설치했다. 두꺼운 천막에 겨울옷을 입긴 했지만, 그래도 칼처럼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막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나마 헌터들이라 얼어 죽을 일은 없겠지만.

"다른 수색대도 발견한 건 없다고 합니다."

고원뿐만 아니라 탕아의 흔적도 마찬가지. 상황을 전달받은 걸 마지막으로 당일 수색이 완전히 종료됐다.

"……으으으."

D형 텐트 구석에서 발열도시락을 까먹던 이은하가 기침했다. 영하 10도에 가까운 날씨였으니 충분히 이해가 간다. 어차피 무르만스크까지 고작 10km 남짓이니 돌아갔다와도 문제는 없을 텐데 만약을 대비한 건지 이렇게 있었다.

"핫 팩이라도 가져왔으면…"

이은하가 덜덜거리는 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홍유리가 쏘아붙였다.

"떨지 좀 말지?"

그러자 이빨을 부딪치던 이은하가 물었다.

"아, 안 추우세요?"

"엄살떨…!"

엄살떨지 말라던 홍유리가 크게 기침하자 이은하는 어색하게 웃었다.

"뭐, 쪼끔… 춥긴 하네."

코를 훌쩍이며 손을 뻗자 늑대는 순순히 그녀에게 안겼다. 이제 한결 낫다는 듯한 표정에 이은하는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와… 치사해!"

"뭐가."

"엄청 따뜻하잖아요! 알파는!"

"그런데."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이은하가 어버버거리자 홍유리는 코웃음 쳤다.

"꼬우면 뺏어보든가."

"그……!"

이은하는 차마 그러겠다 말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홍유리의 꼬리 끝이 마치 전갈의 그것처럼 어디 말만 해보라는 듯 자신을 노리고 있었으니까.

울상이 된 이은하가 구석에서 쪼그려 눕자 늑대는 홍유리를 툭툭 건드리고는 내려와 몸을 변형시켰다. 본신을 드러낸 건 아니지만, 제법 큰 늑대의 모습으로 변한 것. 그 모습이 반가웠는지 누구보다 먼저 달려든 페리가 부비적거렸다.

"뀨유웅!"

원래라면 비좁았겠지만, D형 텐트 자체가 6인용이라 무리는 없다. 그러자 눈에 띄게 화색을 띤 이은하가 와락 등을 끌어안았다.

"……!"

안 그래도 밤이 돼 기온이 내려가고 바람도 쌩쌩 불던 차에 동아줄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털에 고개를 파묻고 부비적거리며 만끽하던 이은하는 추위가 좀 가셨는지 그제야 살겠다는 표정이 됐다.

"얼씨구. 지랄 났네."

그래도 막지는 않았다. 실소한 홍유리는 늑대와 서로 끌어안았고 그렇게 밤이 깊어져 갔다.

***

수색대의 아침은 빠르게 찾아왔다. 날이 다 밝지도 않은 새벽 5시 반.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수색에 임하게 됐다.

"뭐 보이는 거 없어?"

늑대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고원을 찾거나 탕아들을 쫓을만한 정보는 보이지 않는다. 해일에 휩쓸린 이상 그건 홍유리 또한 마찬가지이리라.

일대를 쥐잡듯 뒤졌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게 예상했던 답을 알리는 것만 같다.

그렇게 무난하게 하루가 더 흘렀을 때,

"배를 띄워보죠."

"미쳤소?"

수색대의 장이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의 발언에 곧장 미쳤냐는 반문이 돌아왔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이 초토화된 이유가 바다의 재앙 때문인데 만에 하나 놈이 돌아온다면? 배에 타고 있던 인원은 말할 것도 없이 몰살이다.

"그냥 무작정 띄우자는 건 아니에요. 인근 해역만 수색하고 곧바로 뱃머리를 돌릴 테니까요. 아니면 이대로 흐지부지 끝나는 걸 원하세요?"

당당한 말에 침음했다. 그녀의 옆에는 겨울의 주인이 서 있었는데 아마 러시아 수색대의 장이 아닌가 싶었다.

고원에게 진 빚이라도 있는 걸까. 자국의 일이 아닌데도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가만히 보고 있던 늑대는 강태준에게 시선을 옮겼다.

"문제는 바다의 재앙만이 아닐 텐데요."

그 말이 맞다. 사실 바다의 재앙이 나타날 확률은 희박하다고 봐도 좋다. 오대양을 자유로이 누비는 놈이 아직 여기 있으리라곤 생각하기 어려우니까. 차라리 더한 문제는 그 외의 몬스터. 해양 몬스터들이 있다는 점. 바닷속에 몸을 감춘 놈들을 쓰러뜨리기도 쉽지 않은 데다가 배를 가라앉히기만 해도 답이 없다.

침몰해 망망대해에 빠지면 제아무리 헌터들이라 한들 살아남기 어렵다.

"그것도 생각이 있어요. 사실 근처에 있거든요."

"……?"

"이 사태가 터지고 나서 발트해에 정박시켜둔 구축함이요."

"50년 동안 쓰지 않았단 소리 아닙니까?"

"정확히는 48년이네요. 바다의 재앙을 피해 숨겨둔 거니."

그 말에 수색대의 장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구축함 정도 되는 선박이라면 어지간한 몬스터는 문제가 되지 않을 거다. 하지만.

"허가나 절차는 둘째 칩시다. 노후화, 기술자, 정비… 그리고 무엇보다 몬스터에게 부서지지 않았을 거란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애초에 다룰 만한 선원들은 있습니까?"

"그건 저희가 알아서 할 문제겠죠. 협력을 바라는 건 아니니까요."

순간, 러시아 대표가 자신을 보자 늑대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강태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회의가 과열되며 흐지부지 끝난 다음에 천막 밖으로 나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강태준이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

"노골적인 시선이더군."

늑대는 끄덕였다. 숨긴다고 숨겼겠지만, 힐끔힐끔 쳐다봤으니까. 뭔가 바라는 거라도 있는 것이리라.

자신에게 바랄만한 거라곤 기껏해야 무력일 테고……

추측밖에 못 하지만 아마 러시아 땅에 처치 곤란한 몬스터가 나타난 게 아닐까. 겨울의 주인조차 쓰러뜨리지 못했을… 최소한 화산각룡과 엇비슷한 수준의 몬스터가.

"그렇게 생각하면 우습군."

강태준은 실소했다. 정말 그 이유라면 단단히 잘못 짚은 것. 고원이나 창선을 구하는 것으로 빚을 지우려 하는 건 불가능하다. 아니, 어쩌면 알파가 여명과 함께하니 소속돼 있다고 여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 일에 발 벗고 나서면 도움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럴 가능성이 가장 크리라.

어차피 손해 볼 건 없다. 굳이 그런 게 아니더라도 몬스터가 있다면 알파는 기꺼이 찾아갈 테니. 그 과정에서 득을 취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리라.

"아, 돌아가면 완성될 것 같더군."

"……?"

"네가 바랐던 집 말이다. 제법 괜찮더군."

벌써 완성이라는 말에 조금 놀란 늑대는 이내 끄덕였다. 어찌 됐건 수색이 계속될 거라면 나쁘지 않으리라. 차라리 몬스터가 접근한다면 러시아의 구축함에 함께 타는 것도 괜찮을지 모른다.

늑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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