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247화 (247/407)

〈 247화 〉 #103 재앙 (4)

그날 이후, 러시아의 수색대는 눈에 띄게 활동이 줄어들었고 발트해에서 오는 구축함을 기다리게 됐다. 말하기 전부터 그럴 생각이었는지 인근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모양.

무르만스크의 아지트를 재조사하기 위해 돌아가는 이들도 있었고 해역을 따르는 이들도 있었다. 여명은 후자에 속했는데 벌써 사흘째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애초에 기대하는 이들도 많지 않았지만.

뒤늦게 헬기가 띄워져 시끄럽게 날기 시작했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늑대는 자신이 할 일을 할 뿐이었고. 인근의 몬스터를 먹어치우며 레벨을 올리는 것. 그리고 혹시나 올지 모를 바다의 재앙을 경계하는 것.

이은하는 바닷가 부두에 앉아 부글부글 피어오르는 공기 방울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신기해?"

뭐 별날 게 있느냐는 홍유리가 턱을 괴고 시큰둥하게 묻자 이은하는 마구 끄덕였다.

"진짜 바다잖아요?"

"근데 뭐."

"팀장님은 들어가 본 적 있으세요?"

까놓고 말해 바다에 몬스터가 있게 된 이후, 심하면 철조망이나 격벽으로 막아놓은 경우도 있기에 이은하는 태어나서부터 바다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비단 그녀뿐만 아니라 인류의 태반이 그랬다. 누가 미쳤다고 몬스터가 도사리는 바닷속에 들어가려 할까.

"뭣 하러?"

그렇기에 홍유리의 별 흥미 없다는 반응은 당연한 것. 틀린 말도 아니라 이은하는 주억거렸다. 그래도 종종 오래된 사진이나 영상으로 바닷속을 보면 한 번쯤은 들어가 보고 싶었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보자면……

마침 검은 털 뭉치가 뛰어오르자 받으려던 이은하는 마치 허공을 밟고 내려선 듯 가뿐히 착지한 모습에 벙찐 얼굴로 알파를 쳐다보았다.

정말이지, 자유자재로 바닷속을 누비는 게 부럽지 않을 수 없다. 한 번쯤 해달라고 부탁이나 해볼까?

"이제 가…?!"

튄 물방울에 너 나 할 것 없이 젖어버리자 홍유리가 쌍심지를 켰다.

"이게 진짜!"

불을 일으켜 태워버리면 됐을 텐데 미처 생각지 못했다. 페리의 꼬리에 얻어맞으며 사과하곤 아까 치웠던 메시지를 떠올렸다.

[해안 은둔자를 섭취했습니다. 경험치와 포만감이 상승합니다]

바위 밑에 움츠러든 거미를 닮은 털이 난 게. 나름 특성과 능력이 있었겠지만, 어지간한 몬스터는 이미 모습만 다를 뿐이지 경험치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뭘 어떻게 하든 위협이 될 리가 없으니까. 어느새 29레벨. 경험치는 제법 획득했지만, 그냥 무료하게만 느껴질뿐. 늑대의 눈이 머나먼 곳을 바라보았다.

자신은 여기에 남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야 했지만, 강태준은 지금쯤 확인하러 갔을 테니까.

***

헬기에 올라탄 강태준은 병을 들어 바라보았다. 푸른 가루가 담긴 조그마한 병. 추측에 불과한 걸 확인하기 위해서. 정말 이걸로 바다의 재앙을 부를 수 있다면 도시 근처에서는 사용할 수 없으니까.

굳이 그린란드까지 온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제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었으니까.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조종사의 말에 강태준은 슬쩍 계기판을 훑었다. 고도 2600m―― 어지간한 산보다 아득히 높다. 심지어 낮은 곳에 있는 구름은 내려다보기까지 하고 있으니까.

"부족합니다."

강태준은 딱 잘라 말했다. 원하는 높이는 4000m. 헬기의 최대 고도에 가깝지만, 뛰어난 헌터인 그는 특수한 장비 없어도 충분히 견딜 수 있는 높이였다. 넓게 펼쳐진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지시에 따라 충분히 고도를 높인 순간, 강태준은 병의 마개를 열었다. 바다를 담은 듯한 푸른 가루를 손바닥 위에 털어놓고 잠시간 고민했다.

고민은 짧았다.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니까.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시작합니다."

강태준이 손바닥을 뒤집자 가루가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의문은 있다. 이게 놈의 비늘 가루라지만 도대체 왜 여기에 이끌리는 걸까. 비늘을 뜯겼다는 굴욕? 복수? 아니면 단순한 호기심? 그것도 아니면 주술적인 무언가일까.

4000m의 고도를 유지하느라 강한 바람에 헬기가 이리저리 흔들리는데도 강태준은 안전장비 하나 없이 묵묵히 서 있었다.

"……."

슬쩍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벌써 2시간가량이 지났는데 나타나지 않는다. 아직 연료는 충분하지만… 양이 부족했던 걸까? 더 뿌릴 필요가 있었을까? 다시 병의 마개를 열려던 순간,

"……!"

거대한 파도가 밀려들고 있었다.

끔찍하리만치 높은 해일은 수십 미터에 이르러 해안에 닿기만 해도 어지간한 도시는 흔적도 남지 않을 재해였다. 그러나 강태준이 놀란 건 고작 재해 따위가 아니었다.

"―――!"

깊디깊은 바닷속에서 들려오는 울부짖음. 울림통이 얼마나 크길래 이곳 4000m 고도의 상공에서도 똑똑히 들려온다. 심지어는 방향을 구분하기도 힘든 그런 소리.

실제로 놈을 본 적은 없다. 그랬다면 살아있지 않았을 테니. 그러나 누구도 놈의 존재를 의심하진 않는다. 그러기에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압도적인 괴물이었으니까. 보고 듣는 이의 심령을 누르고 떨게 만드는 알파와는 결이 다른 생물.

거대하다는 것 하나만으로 사람들은 동경하고 열광한다. 그러나 그것이 상식을 훌쩍 뛰어넘었을 경우, 느껴지는 감정은 아득함일 뿐이다.

하물며 인간의 손을 떠난 괴물인 바에야.

커다란 해일 아래, 재해 따위보다 훨씬 거대한 놈이 거기에 도사리고 있었다. 도시를 부수는 재해? 기껏해야 놈이 움직이며 일어나는 물살에 불과하다.

거기에 강태준은 한 가지 잘못 생각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방심 따위는 하지 않았다. 가능한 한 사진과 영상을 찾아 놈의 크기를 헤아리려 했다. 그리고 4000m 고도라면 안전할 거라 여겼다.

오산이었다.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 거대한 놈이 아직 다 성장한 게 아니었다고. 착각할 여지 없이 여태까지보다, 어렴풋한 추측보다도 훨씬 더 거대하다……!

"더 높이! 당장!"

넋 나간 조종사가 멍하니 있자 그는 마력을 담아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수면, 해일에서 물결이 갈라져 일어난다. 뒤늦게 정신 차린 조종사가 조종간을 힘껏 당겼을 땐 이미 늦어있었다.

"―――――――――!!!"

그것이 해일을 깨부수고 뛰어올랐다. 아니, 몸을 일으켰다. 수천 미터의 고도를 격하고 그 아득한 거신으로 헬기를 삼키려 한다.

말도 안 된다. 고도 4000m는 에베레스트산의 절반 가까운 높이. 절대 생물이 닿을 수 있는 높이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과하고.

"……!"

감히 의심하지 못했다. 그것이 여기까지 닿고 말 것이란 근거 없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순식간에 다가온 그것이 한계까지 턱을 벌렸을 때, 여기서 끝이라고 조종사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미, 미쳤습니까!"

자신의 손을 쳐낸 강태준이 별안간 조종간을 꺾어버렸다. 휙 틀어진 방향을 따라 거대한 턱이 닫혔을 때 아슬아슬하게 벗어날 수는 있었으나.

"……큭!"

단지 솟아올랐을 뿐인데 놈이 뛰어오른 여파에 의해 거센 바람, 폭풍에 휩쓸려 헬기는 수십 바퀴나 회전하며 추락해갔다.

***

얼음이 녹고 햇빛이 비친다. 점점 봄이 되어간다는 증거였다.

나흘째가 되자 수색대의 사람들도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했다. 지쳤다기보다는 무료해져 간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리라. 별 기대 없이 오긴 했어도 정말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면 맥이 빠질 테니까.

그와는 반대로 여명의 분위기는 그리 좋지 않았다.

"……."

2팀장 이기준. 3팀장 홍유리를 비롯해 전원이 회의용 텐트에 모여있었다.

그들의 분위기가 침잠해져 있는 이유.

고원을 찾고 탕아를 척살하기 위해 모인 수색대였지만, 당장 어제부터 클랜장인 강태준과의 연락이 닿질 않아서였다.

"설마…"

물론 클랜원들은 그 사실을 쉽게 믿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강태준, 검성이란 이름이 너무 컸으니까. 무전기의 거리가 닿지 않거나 전파가 통하지 않는 곳이라고 생각할 뿐.

"답답해 죽겠네."

그 어설픈 생각에 홍유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클랜의 수색대 전원에게 바다의 재앙을 부르기 위해 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불안도 품지 않는 게 정상일까. 탕아들이 괴멸에 가까워졌다고 재앙이 차차 쓰러져간다고 안심하고 있는 게 꼴같잖게 느껴진다.

강태호는 쓰러져 아직 깨어나지 않았고 구진하는 한쪽 팔을 잃어 팀장 자리에서 물러나 요양 중. 그들이라고 약해서 쓰러졌겠는가. 검공의 이름값이 낮아서 쓰러졌겠는가.

"왜? 그러다 또 뒷북치고 후회하려고?"

홍유리는 딱 잘라 말했다. 강태준이 실종된 이상, 수색대에서 가장 직급이 높은 건 2팀장 이기준. 그러나 정작 그 이기준을 가르치고 길러낸 건 홍유리였던 만큼 지금 그녀의 말에 토를 달 사람은 남아있지 않다.

"그린란드로 갈 거야."

한심하게 보는 시선에도 클랜원들은 꾹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갈 놈은 가고 남을 거면 남든가. 너희 좆대로 하라고."

늘 그랬듯 독불장군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홍유리는 천막 밖으로 나가려 했고 늑대는 그녀의 뒤를 쳐다보았다.

"……."

강태준의 실종. 헬기를 타고 출발했으니 어지간하면 문제는 없을 텐데. 가루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는데 연락이 끊어진 거라면 바다의 재앙과 관련됐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결과는 성공이라 보는 게 맞을 터…

원래라면 효과를 확인한 뒤, 여분의 가루로 놈을 불러내 확인한 뒤 쓰러뜨릴 수 있다면 쓰러뜨리고 그럴 수 없다면 더 성장하면 된다.

강태준이 가루를 들고 떠나간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정작 그는 실종…… 복잡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늑대는 기어이 말을 꺼냈다.

"기다려라."

"……?"

"강태준을 찾는 건 내가 하겠다."

홍유리를 멈춰 세울 수 있는 사람은 남아있지 않다. 다만, 사람이 아니라면 늑대 자신이 있었다. 입을 연 순간 작은 웅성거림이 있었지만, 소음을 무시하고서 늑대는 말했다.

"강태준은 내가 데려오겠다."

"너."

"살아있다면."

정말 바다의 재앙과 마주해 문제가 생긴 거라면 살아남았을 확률은 희박하다. 하지만 살아있다면 그를 데려올 수 있는 건 분명 자신뿐이다.

또한, 사람이 없는 그린란드의 땅이나 해역이라면 본신을 드러내도 문제는 없으리라. 행동의 제약이 없다면 오히려 편하다. 살아있다면 반대로 그가 자신을 찾아올지도 모른다.

"네가 왜 여기 있는지 알고 있잖아."

홍유리의 말에 늑대는 끄덕였다. 자신의 역할은 보험과도 같다. 혹시 만약에 바다의 재앙이 또다시 나타날 경우 그걸 막는 것.

하지만 강태준의 실종으로 확신은 없지만 높은 확률로 바다의 재앙을 부를 수 있단 걸 알게 됐다.

놈들이 어딘가 숨어 가루를 뿌려 바다의 재앙을 부를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남아있었지만, 솔직히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수색대에 껴 있는 스퀘어 마스터만 둘이었으니까. 거기에 홍유리를 비롯해 스퀘어의 후계자와 뛰어난 헌터들이 포진해있는데 설령 강훈이 모습을 나타내더라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푸른 가루의 존재를 알고 있으니 바다의 재앙이 나타나기 전에 육지 깊은 곳으로 도망치면 그만이다.

알고 있다면 당할 리는 없을 거다. 그러니 굳이 남아있을 필요는 없다.

"내가 가는 게 최선이다."

그렇게 말한 순간, 늑대는 조금 기세를 끌어올렸다. 말에 신빙성을 더하기 위해 혹은 의지를 보이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어라."

그 말을 끝으로 늑대는 천막 밖으로 천천히 빠져나왔다.

***

알파가 떠나간 천막 안은 정적이 내려앉아 있었다.

네버랜드의 싸움 이후, 그들은 알파가 싸우는 모습이나 그 본신을 보지 못했으니까. 늘 강아지 모습으로 지내며 커피나 홀짝거리는 게 몇 달간 이미지로 굳어졌으니.

역병과 질병과의 싸움은 멀리 떨어진 테헤란에서였고 침공이 있었을 때는 환계에서 자색의 흑호와 싸우고 있었으니까. 나름 친밀해진 만큼 네버랜드에서 보았던 마랑의 모습이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알파가 기세를 드러내기 전까진. 살의나 살기를 드러낸 것이 아님에도 새삼 그 실체가 재앙을 쓰러뜨린 마랑이란 걸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천막 안은 한동안 침묵만이 가득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