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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248화 (248/407)

〈 248화 〉 #103 재앙 (5)

"너 진짜로 갈 거야?"

따라 나온 홍유리가 묻자 늑대는 가볍게 끄덕였다.

"그럼 같이 가."

"안 된다."

"뭐. 왜?"

"이번엔 너무 위험하니까."

"……."

같은 이유로 페리도 데려가지 않을 생각이다. 환계가 없어진 지금 제아무리 환수라도 안전하지 않을 테니까.

"언제는 안 위험했고?"

고집 피우는 말에 늑대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번에는 다르다. 망망대해를 찾아야 하는데 놈이 나타난다면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다. 수십 수백 미터의 상공? 어림도 없다. 놈을 일격에 쓰러뜨릴 수 있는 마법이라도 있지 않은 한에야.

그리고 그런 건 불가능하다.

"기다려다오."

강경한 의지를 담아 늑대는 홍유리를 쳐다보았다. 반론은 듣지 않겠다는 어조에 홍유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 자신도 알고 있으리라.

역병과 질병이라면 모를까, 바다의 재앙을 상대로 나설 자리는 없다는 것을. 망망대해의 한가운데 안전한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준비가 다소 부족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다의 재앙과 무조건 싸우겠다는 게 아니다. 놈을 쓰러뜨리는 건 좀 더 나중이어도 된다.

지금 중요한 건 강태준을 구하는 거였으니까.

"……."

분한 듯 홍유리는 주먹을 쥐고 있었다. 그녀 또한 알고 있으리라. 자신이 나설 자리가 아니고 억지로 따라와봤자 아무 도움도 되지 않으리란 걸.

문득, 백소율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남겨지는 건 싫다고 했었다. 그게 비참해서, 그럴 기회가 왔을 때 어떻게든 도울 수 있다면 하고 바랐었다.

그러나 늑대는 이미 그럴 기회가 오지 않을 거란 걸 잘 알고 있었다.

헌터들이 아무리 강해져봤자 그 한계는 명확하다. 역병과 질병조차 쓰러뜨릴 수 없었던 인류, 뛰어나다고 해봤자 그들 중 하나일 뿐이니까.

자색의 흑호를 시작으로 이미 혼자만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게 돼 버렸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다만, 그들에게는 극복할만한 시간이나 힘이 없었을 뿐이지.

그래서, 자신이 여기에 있다.

"……."

아직 그 모든 걸 밝힐 수는 없다. 아니, 스스로 답에 도달한다면 모를까 굳이 밝힐 생각은 없다.

늑대는 촉수를 길게 뻗어 그녀의 붉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

"싸울 생각은 없으니까."

가능하다면이란 단서를 굳이 붙여 말하진 않았다. 살아있다면 반드시 데려올 수 있다. 그러기를 바랄 뿐.

"기다려다오."

한참 동안 말 없던 홍유리는 답답하다는 듯 숨을 토해냈다. 그리고는 미미하게 고개가 끄덕여지자 늑대는 촉수를 거뒀다.

"뒤지지 마."

"안 죽는다."

그렇게 걱정할 것도 없을 텐데. 놈이 얼마나 강하든 간에 도망치는 것만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할 테니까. ……어디까지나 혼자라면 말이다.

납득한 홍유리는 늑대를 들어 올려 이마를 맞췄고, 곧 늑대는 바닷속에 몸을 담갔다.

***

"어떻게 목숨은 건졌군요."

조종사의 말에 강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생각해봐도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풍압에 휩쓸려 추락하던 헬기. 어떻게든 조종간을 놓지 않으려하던 조종사를 데리고 낙하산을 펼쳐 뛰어내린 것. 그 뒤, 다시 뛰어오른 바다의 재앙이 추락하는 헬기를 먹어치웠고.

고개를 돌렸을 때, 완전히 찢어진 낙하산을 보고 한숨이 새어 나왔다. 헬기를 먹어치웠을 때 휩쓸린 바람에 어떻게든 육지에 착륙하는 게 최선이었다.

"……구조가 올까요?"

자신 없다는 듯한 조종사의 말. 틀린 말은 아니었다. 구조하느냐 마느냐 이전에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있었으니까.

사람들이 살지 않는 땅 그린란드는 진작에 몬스터의 영역으로 변해 있었다. 강태준은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얼음으로 가득한 땅. 210만km²가 넘는, 한반도의 10배에 가까운 넓디넓은 섬. 바닷속도 몬스터로 가득한 이상 영화처럼 뗏목이라도 만들어 탈출할 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구조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강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옵니다."

"어떻게 단정 지어 말할 수 있는 겁니까?"

"확신이 있으니까요. Foc."

강태준의 손끝에서 작은 불똥이 튀더니 얼어붙은 나뭇가지를 태우기 시작했다. 아카데미 시절 배웠던 간단한 단문영창. 다신 쓸 일이 없을 거라 여겼는데…

금세 만들어진 모닥불의 온기에 몸을 녹여갔다.

"확신…… 말입니까?"

강태준은 끄덕였다. 이곳, 그린란드까지 능히 구조하러 올 수 있는 존재를 알고 있었으니까. 좀 더 견디고 있다 보면 알파가 오게 되리라……. 강태준은 구태여 말하는 대신 천막을 다듬었다.

***

바다에 진 커다란 그림자. 늑대는 있는 힘껏 망망대해를 달렸다. 스스로도 한계가 어딘지 알 수 없는 정신체의 육신을 한없이 부풀린 채로. 이정표도 없이 그저 한번 봤던 지도를 어렴풋이 떠올리며 직진했다.

거센 물살과 파도조차 수륙양용을 가진 늑대에겐 장해가 되지 못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한껏 펼친 영량이 마치 그물이라도 된다는 듯 몬스터를 끌어당겨 먹어치웠다. 헌터가 있는 각국의 지상과는 달리 과포화 상태인 몬스터들. 바다의 재앙만 아니라면 종종 나가 먹어치울 텐데 그게 영 아쉬웠다.

그러다 후각이 냄새를 맡았다. 단 한 번이라도 맡아봤다면 잊을 리 없다. 여러 냄새에 흐릿해지긴 했으나 분명 강태준의 냄새였다.

곧 다가가자 늑대는 어떤 파편을 보았다. 정확히 어떤 부품의 파편인지는 몰라도 혜견으로 보자 헬기의 것임은 알 수 있었다.

"……."

촉수로 그것을 당겨온 늑대는 작게 한숨 쉬었다.

헬기가 추락한 건 분명한 것 같다.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 육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그린란드에 있으리라.

늑대는 육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목적지까진 그리 멀지 않았다.

***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 러시아의 구축함이 도착했다. 그들의 호언장담대로 노후화를 비롯한 문제들을 어떻게든 해결한 모양. 청소까지 할 시간은 없었는지 외견은 다소 비루해 보였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커다란 배가 정박해오자 놀란 이들이 경탄을 금치 못했다.

"대단하군요."

"용케 무사했군요."

발트해에서 세베로모르스크까지 항해했다는 자신감 때문일까. 선장은 자부심 가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따지고 보면 거의 50년 만에 항해를 성공한 셈. 바다의 재앙을 만나지 않았더라도 절대 쉽지는 않았으리라.

"아슬아슬하기는 했소. 그래도 못 할 정도는 아니더구려."

씩 웃은 그가 러시아의 수색대장과 눈을 마주쳤다.

"그래서 이제 해역만 둘러보면 되는 거요?"

선장의 말에 수색대장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더 급한 일이 생겼어요. 그린란드로 갈 수 있겠나요?"

"그린란드라…"

선장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별수 있나. 시키면 까야지. 까짓거 그럽시다."

별거 아니라는 말투. 보드카를 들고 마시더니 입가를 슥 닦는다. 러시아 어로 말했기에 클랜원에게 통역 받느라 이해하는 게 늦었지만, 홍유리는 푹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지금 그린란드로 가겠다고? 지도로 봐도 2000km 가까이 떨어져 있는데 거기까지 항해하겠다고? 아무리 발트해에서 여기까지 왔다지만 무모한 것에도 정도가 있다.

하물며 가봤자 아무 도움도 안 될 거다. 살아있다면 어련히 알파가 데리고 올까. 발목이나 붙잡지 않으면 다행이리라.

그걸 영어로 말하니 마찬가지로,

"불쌍하네요."

"……?"

"당신네 클랜장이요. 이런 사람들이 클랜원이니 참. 검성께서 클랜은 잘못 만들었나 봐요. 아니면 의외로 인망이 없으신가?"

"……."

"나 참. 불쌍하기도 하시지."

"뚫린 입이라고 제멋대로 나불거리네? 그만 살고 싶어요?"

"어머. 클랜장은 실종됐는데 당신은 쌈박질이라도 할 기세네요? 아, 아니지. 애들 교육을 잘못 한 건 부모 잘못이고, 클랜원이 의리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녜요."

노골적인 비아냥에 홍유리의 표정이 점차 굳어갔다. 되레 의기양양해진 러시아의 수색대장이 쏘아붙였다.

"마랑? 알파? 그게 당신네 클랜원인가요? 저도 알아요. 물론 대단하겠죠. 근데 정말 그걸로 괜찮아요? 그렇게 손 놓고 있어도 되나요?"

"……괜찮다면?"

"머리가 있으면 알아서 생각하세요. 정말, 배알도 없지."

대놓고 비웃자 홍유리의 눈에 쌍심지가 켜졌다. 지랄하네. 누군 가기 싫어서 안 가는 줄 아나…?!

"이…!"

어지간하면 머리채를 쥐어뜯어서라도, 쥐어박아서라도 말릴 테지만 그녀의 말은 자신이 클랜원들에게 했던 말과 비슷하다. 그냥 믿고 가만히 기다릴 거냐고. 자신은 그러지 않겠다고 했지만, 알파에게 설득당했다.

차마 발목을 잡을 순 없었으니까.

"티, 팀장님……?"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불안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이들을 뒤로하고 홍유리는 심호흡하며 숨을 가다듬었다. 상황으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러시아의 수색대를 말리는 게 맞다.

"자, 함께 하고 싶으신 분들이 계시면 탑승하세요. 거절하지 않겠어요. 자리는 넉넉하니까요."

하지만 말한다고 들어 처먹기나 할까. 도대체 왜 저러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수색대장을 설득하는 대신, 홍유리는 그녀의 뒤에 선 겨울의 주인을 보았다.

"알고 계실 텐데요."

그건 다소 건방진 말임과 동시에 일종의 경고였고 겨울의 주인은 담담하게 끄덕였다. 스퀘어에서 알파가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본 그녀가 모를 리 없다.

마랑이 어떤 존재인지. 그가 그렇게 말했다면 가지 않는 게 옳다는 것을. 더욱이 바다의 재앙과 맞닥뜨린다면 제아무리 스퀘어 마스터라 한들 승산은 없다는 것을.

괜히 개죽음을 당하거나 운이 좋아 살아남아도 헛수고를 할 뿐이다.

그걸 모를 리 없을 텐데 어째서?

"……."

겨울의 주인은 끝까지 답하지 않았다. 대신, 짧은 한숨을 내쉬었을 뿐. 그 한숨에 담긴 감정을 어렴풋하게 알 것 같았다.

"자, 출발하죠."

어느새 러시아의 수색대는 배에 올라탄 뒤였고 홍유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기다려."

"……?"

"나도 갈 테니까 기다리라고요."

게슴츠레 눈을 뜬 수색대장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다만, 그녀가 무어라 말하기 전에 겨울의 주인이 귀띔하자 미미하게 끄덕였다.

"뭐 좋아요. 그러죠."

"……."

"팀장님?"

돌발행동에 당황한 듯 쳐다보자 홍유리는 뒤를 돌아보며 작게 말했다.

"저 씹새들이 가는데 우리도 한 명은 가야지."

"……."

"저 씨발 …휴."

당연히 말리고 싶다. 쥐어 패고서라도. 하지만 겨울의 주인이 함께하는 이상 그건 불가능하다. 말을 들어 처먹질 않는다면 하다못해 같이 가기라도 해야 한다. 그럴 리 없을 테지만, 정말 만에 하나라도 클랜장을 찾으면 그래야 체면이라도 설 테니까.

"……수색하면서 기다리고 있어."

"차라리 저희도 가는 게."

고원은 어디까지나 한국의 클랜. 창선에게 은혜를 입은 이들과 그 이름값에 각국이 수색대를 보내긴 했지만, 그 중심은 어디까지나 자신들 여명. 그런데 전부 떠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기다리고 있…"

혼자 가는 게 정답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너 따라와."

"저, 저요?"

뜬금없는 지목에 당황하며 눈을 끔뻑이자 홍유리는 맞다는 듯 끄덕였다.

"왜? 바다 가고 싶다며. 소원 들어주잖아."

"그, 그건 배 타는 게 아니라 바닷속을 보고 싶다는…"

"침몰하면 볼 수 있겠네. 오라고."

반론은 받지 않겠다는 듯, 울상지은 이은하의 뒷덜미를 질질 잡아끌며 홍유리는 한숨을 내뱉었다.

"너넨 기다리고 있어."

"……알겠습니다."

작게 끄덕인 홍유리는 엉망인 구축함을 향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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