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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253화 (253/407)

〈 253화 〉 #105 붉은 마랑 (2)

소용돌이치는 바다. 마치 그 속에 거대한 태풍이 있어서 회오리를 만든 것 같았다. 소용돌이에 휘말린 늑대는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벗어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온몸이 칼날처럼 날카로운 수류에 갈기갈기 찢겨간다. 엉망진창으로 난자되는데, 같은 등급의 힘인 공허로 막기가 어려웠다.

격은 동등하다. 하지만 이곳은 놈의 영역. 바다에 있는 한 용운과 해신은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이 심해에서 겁화를 일으킬 순 없기에 한없이 불리하다.

이렇게 될 거라 예상했기에 육지에서 싸우려했다. 하지만 구축함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럴 수밖에 없었다.

광폭화의 영향인지 아니면 피로 물든 것인지 구분할 수조차 없다. 난자돼가던 늑대는 결국 용운에서 벗어나는 게 불가능하다고 깨달았다. 작은 물줄기와 흔들림 하나하나가 놈의 이빨과 마찬가지. 수류만이 아니라 물의 중량에 짓눌려진다.

거기서 자유로울 수 있는 건 그 힘을 다루는 바다의 재앙 레비아탄뿐이다.

즉, 용운만이 자신을 노리는 게 아니라는 것.

한껏 벌린 입으로 자신을 삼키려하고 단단한 꼬리가 바닷속을 밀어쳐 부수려한다.

'벗어나는 게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몸을 맡기는 수밖에 없다. 물의 흐름에 기꺼이 체중을 싣고 소용돌이를 따랐다. 거대한 소용돌이가 자신을 끌어당겨 회전하며 수십 수백 번을 순식간에 회전해 거대한 턱을 피했다. 심해에서 수면까지 순식간에 빨려든 순간, 꼬리가 닥쳐왔다.

지구 최대 최강의 생물인 놈이기에 가능한 터무니없는 짓거리. 꼬리가 용운을 무시하고 자신을 쳐부수려 하자 기다리고 있던 탄력과 폭풍을 발했다.

벗어나는 게 아니라 흐름에 더 몸을 맡기고 수면 위로. 그렇게 늑대는 용운의 끝에서 뛰어올라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럴 수 있었던 건 부족한 신체 능력을 억지로 끌어냈기 때문에. 체력과 마력을 갉아먹으며 근육 섬유를 찢어발기고 피를 가열하면서까지 억지로 끌어올린 신체 능력. 부작용을 가진 A등급 스킬인 광폭화. 그만한 대가를 가져가는 만큼 반대로 억지로 끌어올린 힘은 늑대에게 정면에서 맞설 수 있을 만큼의 힘을 주었다.

용운에서 벗어난 늑대는 발판을 밟고 올라서 태세를 정비했다. 곧 수면을 뚫고 괴물이 올라오리라. 숨을 가다듬으며 놈을 기다렸다.

붉게 물든 몸은 광폭화의 영향인지 피범벅이 되어서인지 알 수 없다. 경화로 가까스로 견뎠지만 찢기고 난자되고 말았다.

잠식에 먹혀가는 걸 잠식으로 밀어내고 새살이 천천히 돋아난다. 검은 털이 생기고 광폭화에 새로이 붉게 물들었다. 찢어진 근육 섬유가 재생한다.

문득 든 생각에 잠깐 고개 돌린 늑대는 눈살을 찌푸렸다.

***

무수한 파도가 무거운 구축함을 밀어낸다.

주저앉은 이들은 이제 살았다고 생각했다. 얼어붙은 채 넋 놓고 있었기에 보지 못한 이들도 많았지만……

"팀장님. 아까 그거…"

"……맞아."

의심할 여지가 없다. 붉게 물들어 있었지만 그건 분명 알파였으니까. 테헤란에서 딱 한 번 보았던 본신을 드러내고서, 우려했던 그대로 바다의 재앙과 맞서고 있다.

하지만 처음 보았던 그대로가 아니다.

계획대로 싸우고 있었을 알파를 방해하고 말았다. 어쩌면 그대로 수월하게 싸워서 이겼을지도 모른다. 아니, 높은 확률로 그랬으리라.

알파의 싸움은 여태까지 늘 그래왔으니까.

하지만 방해해버렸다.

기다려달라고 했을 때 무슨 씹지랄을 하더라도 막았어야 했는데……! 수색대장을 보며 이를 갈던 홍유리는 급히 자신을 당기는 이은하를 보곤 눈살을 찌푸렸다.

"왜 또 지랄이야?"

"저게…"

어느샌가 물살 치던 바다가 요동치고 있었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냐고 한다면 여태까지의 바다가 잠잠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왜냐하면, 갈라졌으니까.

해안 근처의 앞바다가 아니다. 최고 수심이 5600m에 이르는 그린란드해의 깊은 바다가 갈라졌다는 뜻이다. 그것도 터무니없이 큰 소용돌이에 의해!

"……휘말립니다!"

그만큼 물살이 거세지고 주변의 것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하물며 지름이 수 킬로미터는 족히 넘을 유례없는 소용돌이가 기껏 재앙에게서 벗어난 구축함을 억지로 삼키려하고 있었다.

"……!"

배의 후미에서 주문을 외우며 마법사들이 어떻게든 벗어나려 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무거운 배에 어지간한 힘으로는 추진력을 더할 수 없으니까.

"……."

대마법을 영창할 만한 시간은 없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소용돌이는 '바다에서' 사라졌으니까.

거리가 있어 점처럼 보였지만 붉은 점을 보고서 홍유리는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갑판의 난간이 부서지라 강하게 쥐었다.

***

온다……!

바다의 재앙. 놈이 오는 게 느껴진다. 아니, 느끼는 게 아니라 확실하게 그림자가 지는 게 보였다.

한껏 바닷물을 두른 채,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떠오른다. 용오름. 그 말이 이보다 더 어울릴 수 있을까. 그리고 떠오른 순간, 놈의 꼬리가 바다를 들어 올렸다.

정확히는 소용돌이치는 바다, 용운이었다.

해신과 용운이 합쳐진 결과일까. 거기에 놈의 무식한 힘도 한몫했으리라. 있을 수 없는 현실을 목격하고서 늑대는 실소했다.

그만큼 비어버린 바다를 바닷물이 밀려와 가득 채운다. 수심이, 아니 수면이 낮아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건 착각이 아니리라.

제법 높은 곳에 있었는데 순식간에 따라잡혔다.

뱀의 형태를 한 괴수의 공격은 실로 단순하다. 다리도 팔도 없는 녀석들은 몸을 부딪치거나 집어삼키는 두 가지 방법밖에는 없다.

어스 서펜트와 질병. 이미 비슷한 녀석들을 만나봤기에 익숙하다. 아니, 오히려 무수한 촉수로 검은 숲을 만들어내던 질병이 훨씬 까다롭다.

하지만 그게 한없이 커다랗다면.

꼬리 끝에 헤아릴 수 없는 무게의 용운의 철퇴를 들고서 뛰어오른 괴물. 아무리 그래도 이걸 피할 방법은 없다.

"……!"

따라서, 막을 수밖에 없다.

다가오는 턱을 피해 놈이 바닷속에 빠진 순간, 진작부터 준비하고 있던 공허가 마침내 맞물렸다.

…….

그 이후에 의식이 날아갔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무식한 힘에 부딪친 순간 공허를 쳐부수고 뇌의 일부가 부서졌기 때문에. 금세 재생했기에 정신 차렸을 때는 용운의 안에 있었다.

"……."

몸 안에 있는 뇌가 충격에 부서졌을 정도다. 경화를 사용했다 하더라도 상태가 온전할 리 없다.

용운에 휘말려 너덜너덜해진 몸. 끝난 게 이리라 실시간으로 그렇게 돼가고 있다. 아직 휘말린 채로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었으니까.

"……."

이미 갈려버린 이를 까드득 갈아버렸다.

한순간이면 된다. 한 번이라도 좋다. 용운에서 벗어나 놈에게 파고들 순간의 기회가 필요할 뿐이다.

피가 끓어오르며 달구어진 몸이 해수를 증발시켰다. 그만큼 체온이 낮아지며 머리가 차가워졌다. 계속해 자신을 때리고 자르는 용운과 해신 속에서 다시 벗어나야 한다.

기다리지 않았으면 달라졌을까. 아니, 바닷속의 놈은 자신보다 몇 배는 빠르다. 도망칠 수 있을 리 없다. 결과는 같았으리라.

움직이지 않고 준비하는 게 정답이었다.

한껏 입을 벌린 마랑의 입으로부터 검은 불길이 뿜어져 나와 바다를 불태우고 길을 열었다.

길게 이어진 길을 늑대는 의심하지 않고 달렸다. 공허를 두른 채 다시 좁혀져 가는 길을 억지로 뚫으면서.

"―――!"

소용돌이에 휩쓸린 몬스터의 단말마를 들었다. 이미 갈가리찢겨 죽은 게 대부분이었지만 드물게 강한 몬스터들이 가까스로 견디고 있었다. 그마저도 곧 끊길 것 같은 숨이었지만.

까드득-

아슬아슬하게 벗어난 순간, 튀어나왔던 용운이 다시 바닷속에서 하나가 됐다. 난폭한 충격과 함께 가까스로 숨만 붙어있던 몬스터가 모조리 죽어버렸지만.

"――."

이빨을 아득바득 갈면서 늑대는 숨을 가다듬었다. 놈이 잠수하면서 수면을 쳐부수고 수천 미터까지 해수가 치솟았다.

폐가 들썩이면서 세포 하나하나가 긴장한다.

때가 왔다. 다시 한번 재앙이 떠오르려 하는 순간, 늑대는 도박을 걸었다.

***

충격에 떠밀린 배는 그린란드 해안에 충돌했다. 갑판과 지지대를 붙잡고 어떻게든 견뎠지만, 헌터가 아닌 이들은 넘어지며 충격을 받았을 정도로.

"그래도…"

그래도 이제 살았다. 내륙이라면 바다의 재앙이 쫓아올 리 없으니까. 이제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 연락을 취하면 된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선원과 선장을 부축하며 땅에 내려섰을 땐 몬스터가 사방에 가득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인류가 포기한 땅에는 당연하게 몬스터가 있다고. 그것도 몬스터끼리의 생존에서 살아남아 더 강한 몬스터만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인간이 대적할 수 없는 재앙에게선 어떻게든 가까스로 벗어났다. 하지만 몬스터의 무리가 아직 남아있다. 수십 년 간 버려진 땅, 그린란드의 온갖 괴물들이 눈앞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홍유리와 이은하를 비롯한 배에 탄 수색대 전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

―――도박. 원래라면 용운에 당하기 전에 해야 했다.

하지만 소용돌이를 꼬리에 붙이고 따라올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불확실성을 확실히 하기 위해 기다리고 탐색한 거였다.

그 결과 용운에 휘말려 갈가리 찢기고 상처입고 말았다. 하지만 덕분에 타이밍은 확실하게 익혔다. 용운의 정체도 볼 수 있었다. 저럴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으니까. 피해는 컸지만, 나름대로 수확은 있었던 셈.

"……."

심해까지 잠수했던 재앙이 뛰어오른 순간, 늑대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아까보다 훨씬 더 빨라졌다. 그 이유는 놈이 여태껏 사용하지 않고 있던 마력을 끌어올렸기 때문에.

하지만 속도가 빨라졌을 뿐이지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예지에 가까운 간파와 초감각으로 미리 보더라도 의미 없는 피할 수 없는 거대함. 정면에서 들어가 놈의 내부에서부터 불태우고 엉망으로 만드는 것. 그게 노림수였다.

어스 서펜트의 때와 같이 안에서라면 얼마든지, 수월하게 날뛸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놈이 수면을 뚫고 모습을 드러내기 직전, 도박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만 했다.

전제가 성립되지 않았기에.

"……!"

여태껏 자신을 집어삼키려 하던 놈이 입을 닫고 있었으니까.

세로로 갈라진 레비아탄의 눈동자 속에 보이는 한 줄기 지성에 늑대는 헛숨을 삼켰다. 여태까지와는 달리 놈은 단순한 짐승이나 괴물이 아니라 지성을 가진 용종이란 걸 다시금 깨달았다. 영악한 괴물이란 게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실감하게 됐다.

다물린 입. 명백히 자신을 먹잇감으로 보는 눈. 마력까지 끌어내며 뛰어오른 레비아탄의 거신은 멈추지 않는다. 꼬리 끝에 용운도 사실은 불필요한 것. 왜냐면 그 압도적인 힘에 부딪히기만 해도 전부 끝일 테니까.

그 앞에서 늑대는 도망치지 않았다.

가상의 기관, 마정의 마력을 모조리 끌어내 세포 하나하나에 박아넣으면서 광폭화로 뜨겁게 달아올라 붉은 증기가 끓어오른다. 그 증기는 멀리 떠오르지 못했다.

언뜻 보이는 아지랑이에 삼켜져 사라졌으니까.

마정. 광폭화. 공허. 세 개의 A등급 스킬을 두른 붉은 마랑과 꼬리 끝에 소용돌이치는 바다를 들어 올린 재앙이 맞부딪친 순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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